소설리스트

37화 (37/200)

장하나가 소리쳤다.

다니엘이 완성 시킨 마이 시크릿 백을 전시장에 넣어두고 바로 아버지에게 다가가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울려 퍼지는 환호 소리가 우리의 귀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오른쪽 상단의 ARS 투표의 게이지가 엄청나게 상승하는 걸 확인했다.

“압도적인 1등이야.”

그 뒤로는 다니엘의 형인 존 커터가 조명되며 화면이 넘어갔다.

편파적인 방송편집이었지만 오로지 수제로 하는 브랜드는 아리raM밖에 없었다.

내 추측이지만 PD가 그린 그림과 우리의 그림이 비슷했을 거다.

“저쪽 브랜드는 인원수도 많은데 내부는 다 재봉틀 작업하네.”

“저 인원이면 충분히 핸드메이드로 해도 될 텐데.”

나와 다니엘의 말을 듣고 있던 신지혜가 말을 이었다.

“이후를 생각한 거겠죠. 제너락은 백화점 입점과 중국진출까지 한 브랜드예요. 그 말은 핸드메이드만으로는 물량을 맞출 수 없다는 뜻이고요.”

“제 생각은 달라요.”

“네?!”

“제 눈에는 커터 빼고는 바느질 자체를 못 하는 거 같아요. 만약 가능하다 해도 정교하지 못한 바느질은 재봉보다 못해요. 시장 가방보다 못해질 겁니다. 그러니 저 방법을 사용하는 거죠. 제너락 평균 가방 가격 얼마예요?”

“100에서 300 정도로 알고 있어요.”

“도둑놈들이네.”

그때 다니엘의 형이 바느질을 시작됐다.

그의 바느질은 화려하면서 빨랐다.

“역시.”

존 커터가 바느질하는 곳은 가장 노출이 심한 전면부가 다였다.

그만큼 저기 모인 모두가 바느질에 자신이 없다는 거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다 같은 바느질이겠지만 내구성에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일명 [새들 스티치], 가죽 바느질 기법의 하나다.

에르맥스에서 창안한 바느질 공법으로 말의 안장을 만들던 에르맥스의 가죽 장인들이 창안한 방법.

그만큼 안정성이 뛰어나고 실과 실 사이가 아주 촘촘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재봉틀[미싱] 하면 윗실의 바늘이 장력으로 밑에 실을 끌어오는 방식이다.

그런 이유에 땀 하나가 터지면 전체가 풀려버리고 만다.

하지만 새들 스티치는 한 땀이 터진다고 해도 다음 땀이 그 힘을 지탱하는 아주 견고한 바느질 공법이다.

“존 커터라 탐나네.”

“탐내지 마. 자주 보고 싶지 않으니까.”

다니엘은 존 커터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 듯 보였다.

‘영입해야겠네. 저 정도 실력이면 다니엘과도 맞먹겠어.’

나는 큰 그림을 그려가며 마지막 결과를 기다렸다.

새로운 멤버.

* * *

아리raM의 로고가 화면에 떠오르며 MC 전형무가 1등을 발표했다.

“1등은 최진혁 디자이너의 아리raM!”

우리는 잠시 침묵하다.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

.

회식으로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아직도 어지럽네…. 하. 다들 걱정이네.”

내 걱정과는 달리 생생해 보이는 신지혜가 등장했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힘들어요. 멀쩡하시네요. 왜지?”

“제가 좀 세죠. 짬이란 게 그런 거랍니다.”

혼자서 소주를 다섯 병을 마시는 여자라.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어제 이야기를 이어갈 때쯤.

다니엘과 아버지도 출근했다.

“다니엘 씨 오늘 일할 수 있는 거예요?”

다니엘이 문을 여는 순간.

송장이 걸어 다니는 거 같았다.

가뜩이나 흰 피부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창백했다.

“괜찮아요. 일해야죠.”

‘그렇지 술 먹은 건 먹은 거고 일은 일이지. 기특하다 다니엘.’

모두 휴식시간을 가졌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들떠있는 듯 보였다.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지는 그때.

다시 한번 아리raM 공방의 문이 열리며 낯익은 인물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뒤섞여 들어왔다.

“어…. 김상진 대리님?”

“하하 오랜만입니다. 진혁 씨.”

나는 어리둥절하며 신지혜를 바라봤다.

‘그때 보면 안다는 말이 이 말이었구나.’

신지혜는 내 표정을 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는 김상진 대리에게 다가가 어깨를 부여잡고 사무실로 끌고 왔다.

“아무리 찾아도 이 녀석만 한 애가 없더라고요.”

“네…. 뭐.”

김상진 대리.

김경희의 비리 사건에 연루된 자다.

회계를 맡겨야 하는데 입장에서 솔직히 꺼림칙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내 생각을 읽힌 걸까.

김상진 대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못 미덥겠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혁 씨 아니 사장님. 그때는 정말 실수였습니다. 그러니 기회를 주십시오.”

“네…. 뭐.”

그때 신지혜까지 거들며 일은 일단락되어 버렸다.

“이 녀석이 사고 치면 운명공동체로 저도 함께 벌 받을 테니 받아주세요.”

“제가 일괄 맡겼으니 어쩔 수 없죠. 김상진 대리님 잘 부탁합니다. 이제 회계일은 모두 김상진 대리님이 전담해주세요.”

“그럼 저 고용된 거네요. 감사합니다.”

김상진 대리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직도 불안해하는 그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짧게 본 김상진 대리는 순하고 착한 사람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일이 각인되어 잠시 이 사람을 나쁘게 봤을지도 모른다.

“근데. 브랜드 Han 그만두신 겁니까?”

“뭐…. 그렇게 됐습니다. 현석이도 그렇게 되고 저도 소문이 나서. 그만둔 지 좀 됐습니다.”

“아 그렇군요.”

회계일을 맡게 된 김상진 대리와 신지혜와 함께 영업팀을 꾸려갈 3명이 들어왔다.

아직 기획팀을 꾸리기에는 여건이 맞지 않아 모두 영업팀에 배치하기로 했다.

“이대로 이행할게요. 이제 저도 숨 좀 쉬겠네요.”

“디렉터님은 이제 문화재 선생님들 신경 좀 더 써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잘 챙겨 드리고 있으니까.”

“그래요?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쪽에는 좀 둔해서.”

“별말씀을요. 그리고 얼마 전에 신영길 선생님 작업실 갔다가 한지장 어르신 만났는데 자기도 도울 일 있으면 돕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한지장이라…….”

오늘은 내가 기다리는 사람도 아리raM을 방문하기로 되어있다.

‘곧 올 때가 됐는데.’

“누구 기다리세요?”

“올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리던 사람이 등장했다.

“저기…….”

문을 열고 들어와 한참 주위를 힐끔힐끔 보고 있는 그녀.

낯선 환경에 어색함이 묻어났다.

“누구시죠?”

“제가 스카우트한 의류디자이너예요.”

“의류디자이너요?”

“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날의 일을 회상했다.

파일철을 떨어트리는 순간.

내 온몸이 굳어지며 광휘로운 빛에 집어삼켜 졌다.

“여기는.”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었고 방 안 호롱불 하나가 칠흑 같은 어둠을 조금 무뎌지게 해주었다.

그곳에는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한 명의 남자는 양장을 입은 젊은 사내로 어리지만 엄청난 무게감이 실려있었고 상투를 튼 중년의 남성이 지엄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래, 이제 떠난단 말이냐.”

“네, 아버지. 오늘은 출발해야 이 선생님과 은밀히 만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 결단이 섰다니 기쁘구나.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나는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온다 해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내가 더 고마웠다. 내 아들 준아. 그리고 이건 어머니가 지어놓은 옷이다. 받거라.”

“…….”

20대의 젊은 남성은 보에 고이 담긴 옷을 꺼내 보았다.

내 눈에 비단으로 만든 양장[정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네 어머니가 제일 좋은 옷감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렇게 만들었더구나.”

“…….”

“이제 나가보거라.”

옷을 받아든 남자는 비단으로 만든 정장 한 벌을 부둥켜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왜 아름다운 옷감으로 만든 정장을 받아들고 하염없이 울고 있을까?

의문만이 가득하다.

방을 빠져나오던 그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흘러나오던 영상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떨어진 그녀의 파일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신기한 디자인이네요.”

“네. 제가 한복을 좋아해서 개량을 많이 해보는 편이거든요.”

“좋은 디자이너인 거 같은데 회사는 왜 그만두신 거예요?”

“그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만뒀어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

그녀에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생각 있으면 찾아와요.”

“아리raM?”

“제 브랜드예요. 이 디자인을 보니까 저희와 잘 맞을 거 같네요.”

.

.

.

신지혜는 엄격하게 그녀가 들고 온 포트폴리오에 집중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와. 진짜 이쁜데요.”

다니엘도 궁금했던지 슬금슬금 다가와 디자인을 구경했다.

“진짜 특이하긴 하네. 비단으로 정장이랑 드레스를 만든 건 처음 봤어.”

“다니엘 씨 이럴 땐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시선에서 보면 한복도 드레스의 일종이에요. 하지만 이건 조금 더 다르네요.”

“아 그런가. 아름답네.”

역시 다니엘은 신지혜의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놈이다.

“저는 총괄 디렉터 신지혜예요. 잘 부탁드려요.”

“류미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근데 외람된 질문이지만 서안 전문대 나오셨네요.”

“네….”

“이 정도 실력이면 특채로 더 좋은 데 갈 수 있었을 텐데 왜 전문대예요?”

“제가 집안 어른 말을 거역하고 독립했거든요. 그래서 빨리 일을 해야 하기도 했고.”

“아…. 미안해요. 어려운 대답시켜서.”

.

.

.

아리raM도 나름 괜찮은 조합의 브랜드의 팀이 만들어졌다.

신지혜는 새로 온 사람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며 말을 이었다.

“이번 대회 끝나면 사무실을 옮길 예정이니까. 좁아도 조금 참아주세요.”

“네.”

나는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류미리를 내 자리 앞에 앉혔다.

“회사는 어때요?”

“다들 좋은 분들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럼 회사는 다닐 거죠?”

“허락해주신다면 열심히 일해보겠습니다.”

나는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류 한 장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연봉 이야기해볼까요?”

“연봉이요?”

“네. 얼마 정도 생각해요.”

“제가 무슨 연봉까지 협상할 처지가 되나요. 전에 직장에서는 2500만 원 받았습니다.”

“2500만 원이라.”

나는 사람의 능력에 비례해 연봉을 차등 지급할 생각이다.

회사의 CEO이자 경영자는 직원의 노고와 노력을 합당한 임금을 지급해 사용하는 거다.

그렇다면 류미리에게 얼마를 주는 게 합당할까?

“5000만 원[email protected]로 하죠. 그 대신 야근은 어쩔 수 없어요.”

“5000만 원이요?!”

“적나요?”

“아니요!”

그녀는 놀라며 손사래 쳤다.

나를 바라보며 과분하다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류미리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났거나 어린 시절부터 옷감과 한국적인 느낌의 문화, 이미지를 많이 접한 듯했다.

“그럼 제가 제시한 금액으로 계약하시죠.”

“네,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죠.”

“근데 왜 저한테 이런 기회를 주시는 건가요? 제 디자인을 보고 칭찬해주신 분은 사장님이랑 여기에 있던 몇 분뿐이거든요. 가족들도 다 싫어하고.”

류미리는 말을 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렸다.

마음고생을 많이 한 듯하다.

“아리raM에서 미리 씨의 능력을 가장 처음 발견했다고 해두죠. 하나 더 말하자면 정말 좋은 디자이너가 될 거 같거든요.”

그녀는 내 말에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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