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200)

나는 몸을 돌려 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하려 하는 순간.

여자의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흑흑! 엄마….”

자재 너머로 몸을 밀어 넣으니 한 여성이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저기요.”

“….”

내가 부르는 소리에 몸을 움찔하더니 소매로 눈물을 닦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뭐라 해야 하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여기 위험한 거 같은데 나오시죠.”

“앗. 네.”

나를 행사 관계자로 착각한 듯 몸을 일으키고는 나뭇더미를 밟으며 넘어왔다.

그 순간 발이 꼬인 건지 그녀가 나를 향해 넘어지는 게 아닌가.

“어. 어어어어!”

쾅!

우리 둘은 낯부끄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다.

“죄송해요.”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죠?”

“네.”

여자는 160 정도 되는 키에 댕기머리를 하고 있다.

아이돌도 울고 갈 정도의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검은색 파일철.

‘저거다.’

내 눈이 뱀눈이 되게 만드는 저 파일철.

은은한 빛이 그 틈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파일을 펼친다면 저 은은한 빛이 변모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어디 소속이시죠?”

“그게……. 코데츠라는 브랜드인데 아세요?”

코데츠.

고가의 사회적 패션 브랜드다.

신기하게도 이 방법이 현대의 젊은 고객에게 먹혀들었다.

군복, 가죽 재킷, 엄청난 크기의 박스티, 구제스타일 소재를 자유롭게 표현한 브랜드다.

“들어본 거 같네요.”

내가 대답하자.

내 대답에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변하더니 얼마 못 가 우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거기 소속 아니에요. 오늘 그만뒀거든요.”

“네?!”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여기에 숨어서 예선 시작하면 구경이라도 하고 가려고 했거든요.”

그녀는 이 말을 남기고 나를 스쳐 지나가려 했다.

나는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그 순간.

그녀가 들고 있던 파일철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나는 광휘로운빛에 휩싸였다.

몸이 서서히 굳어져 갔고 모든 시간이 정지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 * *

예선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컬렉션에 올라갈 의류 디자인을 미룰 수 없다.

“할 일이 태산이네.”

내가 며칠을 집에도 가지 못하고 사무실에 박혀있자 어머니가 회사를 찾아오셨다.

“진혁아.”

“여기는 무슨 일이세요.”

“며칠을 집에 안 들어오니까 걱정이 돼서 왔지.”

“아버지가 말을 안 했어요.”

“네 아빠 말은 괜찮다고 하지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하겠니. 자 이거부터 먹어 너 지금 얼굴이 반쪽이야.”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형편없네.’

규칙적이지 못한 패턴으로 며칠을 지냈더니 다크 서클이 한가득 내려와 있다.

“장어탕이다. 몇 시간을 푹 고아서 가져온 거야 빨리 먹어.”

“네.”

‘감사합니다.’

벌써 이 몸에 들어온 지 5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적응할 만도 한데 아직도 이 따뜻함과 사랑이 미안한 건 왜일까?

“아…. 제가 집에 가서 드리려고 했는데. 계속 깜빡했어요.”

“뭘? 돈이면 필요 없다. 예전 네 아버지가 벌어온 거보다 더 잘 벌어오는데.”

“돈 아니에요.”

나는 사무실 책장 위에서 가방이 포장된 아리raM의 포장 상자 하나를 꺼냈다.

“뭐냐 그게. 파는 건데 이걸 나한테 왜 줘.”

“어머니 드리려고 제가 하나 더 주문한 거예요.”

내가 내민 건 아리raM의 첫 번째 리미티드 에디션.

좋은 가죽으로 만들어 드릴 수도 있지만, 현재는 이게 더 특별하게 느껴지실 테니 이것만 한 게 없다.

“이거 받아도 되니?”

“그럼요.”

“이 보석함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 이렇게 이쁠 수가….”

“그것도 제가 디자인한 거예요. 그러니 잘 써주세요.”

“고맙다 아들. 네 아버지보다 백배는 좋다.”

그때 작업 중인 아버지가 슬금슬금 사무실로 들어오시더니.

“나보다 좋다고. 섭섭하네! 뿡 여사.”

“이 영감탱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어휴.’

장난기 가득한 아버지가 시비 아닌 시비를 걸면 어머니는 과하게 반응하셨다.

어머니는 모를 거다.

이 반응 때문에 아버지가 괴롭힌다는 걸.

“뿡 여사는 뭐예요? 어머니 성이 김 씨인데.”

“아들. 그런 게 있단다. 부부 사이의 비밀이야.”

“아…….”

“이 아비는 네가 정말 궁금하다면 알려줄 의향이 있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버지에게 천천히 다가가셨다.

그 모습을 포착하고는 아버지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시며 도망갈 준비를 했다.

“이 영감탱이가 그만하라고!”

“어휴. 두 분 다 집에서 싸우세요.”

내 말을 끝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다니엘 이것 좀 먹어.”

“안 부르면 섭섭할 뻔.”

“어련하시겠어.”

다니엘은 사무실에 앉아 나와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네 형이라는 사람은 다시 돌아간 거야?”

“모르지 뭐. 근데 오래 있지는 않을 거 같은데. 피렌체 전통 가죽 학교 출신이잖아. 분명 돌아갈 거야.”

“그렇게는 한데. 만약 그 브랜드에 남는다면.”

“경쟁상대가 되겠지.”

그때였다.

노랑머리의 장신이 아리raM 공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우리를 보자 손을 올리며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이 어색했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헬로우.”

“여기는 무슨 일이야!”

다니엘은 상대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방금 이야기 중인 당사자가 갑자기 회사로 찾아온 것이 아닌가.

나는 둘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왠지 존 커터가 나쁜 의도로 다니엘에게 접근했다고 볼 수 없었다.

“나는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맞는 거 같아.”

나는 공방을 빠져나가며 다니엘의 형에게 스치듯 말했다.

“잘못한 걸 바로잡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엘의 형이 공방을 빠져나왔고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 동생 잘 부탁해. 그리고 대회는 꼭 우승하고.”

“그래. 넌?!”

“난 여기까지. 동생한테 사과하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우연한 기회에 참여한 거뿐이야. 그리고 하나 더. 온 힘을 다해야 할 거야 여기는 편법을 많이 쓰는 거 같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답은 보스가 찾아야지. 다음에 연락 줘. 동생의 보스니까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다니엘의 말과는 다르게 다니엘의 형은 다니엘을 무척 아끼고 있다.

말에 따뜻함과 걱정이 묻어나 있다.

‘대외적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를 뒤로하고 공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다니엘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뭐래?”

“그냥 뭐.”

다니엘의 눈이 상당히 충혈되어 있었다.

눈물을 억지로 참는 듯 말이다.

“왜 또 괴롭혀? 협박이라도 하든?”

“아니 그 반대.”

“반대?! 무슨 말이야.”

“미안했대. 자기도 철이 없었다고 인제 와서 개소리하는 거지 뭐.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너 보려고 한국까지 오고 정성이다.”

“오든지 말든지.”

다니엘은 아직 존 커터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듯했다.

오래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외국에 부모님 성격이 어떠시길래?”

“아…. 뭐랄까 자유분방하셔.”

“너랑 비슷하려나.”

“그럴걸. 아버지가 나랑 비슷해 뭐 두 분 다 좋은 분이시고.”

다니엘과의 대화 중.

내 시선이 어느 곳으로 향했다.

책상 위의 메모.

전라북도 전주시……. 영어로 적혀 있다.

내가 지긋이 그 메모를 바라보자.

다니엘이 메모장을 들고 말을 이었다.

“사실 친부모님을 찾고 있었어. 근데 커터 놈이 찾아서 가져왔네. 나는 한참을 찾아도 못 찾았는데.”

이제야 내 궁금증이 모두 풀리는 듯했다.

처음 만난 그날의 내 질문에 슬픔을 드러낸 건 자신을 버린 가족이 생각나서였다.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는다는 말이 가죽과 공예에 국한된 게 아닌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그래서 주소로 찾아가 보게?”

“흠…. 모르겠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다니엘이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만약 친부모를 찾아가도 거부당하거나 과거의 잊힌 기억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받을지도 모른다.

다니엘은 주위 입양자들을 봐왔기에 두려운 거다.

“같이 가자.”

나는 불안해하는 다니엘을 위해 함께 가기로 했다.

* * *

“긴장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

전주 한옥마을이 훤히 보이는 산 중턱에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여기네.”

다니엘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대문 너머로 안을 바라보았다.

그때.

“누구시우?”

나와 다니엘은 빠르게 몸을 돌렸다.

우리 앞에는 머리가 하얗게 변한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말이 어눌하지만, 거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 찾으러 오셨소?”

나는 다니엘의 한쪽 어깨를 두드리며 얼음이 된 그를 달랬다.

“혹시 장옥순 씨 여기 사시나요?”

“장옥순? 처음 들어 보는디. 우리 오빠 오면 물어봐.”

할머니는 배시시 웃으시며 올라왔던 골목길을 빤히 쳐다보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키에 개량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셨다.

“오빠. 이분들이 장옥순이라는 사람 찾아.”

“…….”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리고 다니엘을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니엘에게 다가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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