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200)

송원일은 3년 전 음주 사고로 일가족 3명을 죽였다.

하지만 교도소를 가지 않았다.

YK그룹 회장인 아버지 송태원의 힘 덕분이다.

3명의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아버지에게 돈을 주었고 경찰과 관계자들을 포섭했다.

그렇게 사건이 아닌 사고로 무마되었다.

“둘째 형 가만히 지켜만 보실 거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저도요.”

그날 이후 남동생과 여동생은 서로 송원일의 살점을 물고 뜯어냈다.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송태원은 셋째와 넷째의 말에 따라 송원일은 밖으로 내보냈다.

어쩌면 셋째와 넷째의 말을 들어준 척 자신의 속내를 꺼낸 건지도 모른다.

평생 악역을 주위에 약한 자들에게 시키는 인간이었다.

‘여우 같은 영감!’

송원일도 알고 있다.

자신을 빼낸 것도 회사의 이미지를 걱정한 것이지 자신을 걱정한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한 달이 지나 자신이 확실히 버려졌다는 걸 인지했다.

“YK어패럴 이게 네 전부다. 그러니 이제 찾아오지 마라.”

“아버지! 거긴 생긴 지도 얼마 안 된 비상장회사인데.”

쾅!

송태원 회장은 탁자 위에 놓여있던 국보급 도자기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내 대답은 이건데. 더 할 말 있어?”

“…….”

아버지의 모습이 확고했다.

그 뒤로도 작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모두 숨기며 몸을 사렸다.

그리고 운이 좋은지 패션 시장의 거대성장으로 3년 만에 YK어패럴이 상장하며 나름 굵직한 기업으로 커가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만 따내면 주가 상승할 테고 아버지한테 당당해질 수 있어. 그리고 그 두 연놈 씹어 먹어버릴 기회가 오겠지.’

송원일이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입꼬리를 살짝 올릴 때.

협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계획해둔 게 있습니다.”

“믿어보지.”

* * *

변경된 사항 중.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이 늘어났다.

― 패션 나인 방송촬영 예약.

― 회사 소속만이 대회에 참석 가능.

― 소속 전속모델 3명 이상 컬렉션 참여.

― 20가지 이상 의류 디자인에 대한 가산점 부여.

‘오트 쿠튀르 가입조건과 흡사하네. 하…….’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화가 나는 건 가방 제작 부분이다.

1차 예선 가방 디자인과 제작.

그런데 시간이 자유로운 게 아닌 제작 인원을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아리raM은 모두 지정점 위주.

모두가 개인사업자다.

그런 이유에 소속된 가방 장인은 나와 다니엘, 아버지 오직 3명뿐이다.

“제작 방식을 바꿔야 하나.”

내 말을 들은 다니엘이 말을 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 셋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

“제작 시간 3시간이야. 그런데 우리는 핸드메이드 가방이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가방을 다 바느질할 필요 있어? 심사하는 동안만 형태 유지만 되면 될 거 아니야. 그럼 부자재 다 빼버리면 시간 충분해.”

“안 돼…! 아니지 될지도.”

그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 * *

서울 패션위크가 한창 진행 중 DDP 전체가 사람으로 붐볐다.

우리는 1차 예선을 위해 DDP 목련 2관으로 향했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고 연습처럼만 해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었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다니엘은 1달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고생을 해오며 새로운 가방에 집착했다.

온리 원 백 물량이 늘어나면서 바쁜 와중에도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3시간 동안 가방을 만들었다.

“다들 떨지 말고 했던 만큼만 하자.”

“아버지가 더 떨고 계시는 거 같은데요.”

아버지는 아침부터 우황청심환을 두 알이나 먹고도 손을 떨고 계셨다.

심적으로 부담이 많아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될 테니까.”

“그러게요. 아부지 몫까지 제가 다 만들 테니까 여유를 가져요.”

어느새 다니엘은 아버지와 엄청나게 가까워졌다.

호칭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나와 같은 방식으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다니엘을 보며 정감이 갔다.

“다니엘 말이 맞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렇게 시간이 다가왔고 우리는 복도를 지나 목련 2관으로 이동했다.

무궁화 1관에는 곧 열리는 디자이너의 컬렉션이 시작될 예정이다.

“와 연예인!”

“곧 디자이너 컬렉션 시작할 거야.”

“저기 봐 영화배우 한미옥이다.”

“다니엘 긴장 좀 해라.”

다니엘은 정신이 팔린 듯 1관 앞에 모여드는 연예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다니엘을 내가 끌고 왔다.

“어휴, 언제 철들래?”

“그게 무슨 말이야?”

“하…. 아니다. 일단 들어가자.”

모르는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더 말하면 나만 힘들 것 같아 잔소리는 접어두기로 했다.

우리가 2관 앞에 도착하니 안내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디 소속이시죠?”

“아리raM 차진혁입니다.”

“확인되셨습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바로 다른 안내원이 안내해드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풍경이 펼쳐졌다.

가죽공예에 사용하는 여러 도구와 파티션으로 나누어 놓은 작은 공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칸막이는 일직선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방송용 카메라가 일렬로 서있었다.

우리를 촬영하고 송신하기 위한 장비들인 듯했다.

다니엘도 그 광경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장난 아니네. 비싼 도구들 천지야.”

다니엘을 신이 났는지 도구가 놓여있는 파티션 한쪽으로 이동했다.

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시죠?”

“YK어패럴 송원일입니다.”

“아 아리raM 차진혁입니다.”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왜 박창식의 동생 서류에 이름이 적혀 있었을까?

내 의문이 깊어갈 때쯤 그가 말을 이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요.”

“운이 좋았죠.”

“운이라. 운도 실력인데. 하하하”

“칭찬이라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칭찬이죠. 운이 얼마나 가나 봅시다.”

송원일은 내 운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표정으로 비웃듯이 나를 지나쳐갔다.

‘네 운은 얼마나 가나 나도 지켜볼게.’

조금만 더 지나면 교도소에 갈지 계속 YK어패럴의 수장일지 말이다.

.

.

.

20개 브랜드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 중 10곳은 탈락을 하게 된다.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파티션 앞에 자리했다.

그들도 분주하게 심사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각 브랜드가 제출한 디자인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안녕하십니까? 사회를 보게 된 전형무입니다.”

‘무슨 연예인까지 초청한 거야.’

“1차 예선전이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제 신호에 맞춰 뒤쪽 방으로 이동해 주시면 됩니다. 방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입된 가죽과 국내산 가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계의 초침이 3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마치 미션을 치르듯 전형무가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출발!”

모두 어리둥절하며 방황했지만, 하나둘 전형무가 말한 뒤쪽 방으로 이동했다.

우리 셋도 그들의 뒤를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수백 장의 가죽이 한데 엉켜 산처럼 쌓여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짓이야! 가죽 상하게.”

다니엘이 이 광경을 지켜보며 버럭 화를 냈다.

가죽을 좋아하고 가방을 사랑해서 이 일을 하는 다니엘에게는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짓이었다.

그때였다.

“어…….”

“왜 그래?”

“아니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 거 같아서.”

“네가 여기 아는 사람이 있어? 이태원 클럽에서 본 사람 아니야?”

“아니. 개 같은 놈 한 명 있어. 피렌체에 있어야 하는데.”

“피렌체. 장인학교 동문?”

“아니 피렌체 전통 가죽 학교에서 가장 재수 없는 새끼.”

“뭐?!”

피렌체 전통 가죽 학교.

에르맥스 장인학교와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전통 가죽공예를 가르치는 명문 학교다.

그들은 상업적인 성향보다 전통을 지켜가는 존재들이다.

그런 이유에 피렌체 가죽 시장을 장악해 성장했다.

피렌체 전통 가죽 학교 출신들은 에르맥스의 학생들을 경멸하고 무시했다.

그 이유는 에르맥스의 진보적인 성향 때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 도태된 그들의 시기 질투일 뿐이다.

“일단 가죽부터.”

“어….”

내 말에 다니엘과 나 그리고 아버지는 산더미 같은 가죽들을 발로 밟으며 우리가 원하는 가죽을 찾아 나았다.

가죽을 밟는다는 게 썩 내키는 방법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가죽은 카프스킨[송아지 가죽] 토고 가죽과 앱송 가죽이다.

최고급 가죽으로 피렌체 가죽 명문의 무두질을 받아 탄생한 가죽이다.

모두 소를 가공해 만든 가죽으로 그중 송아지 가죽으로 가공된 가죽은 금액대가 상당하다.

오트 쿠튀르 예선에 가장 어울리는 가죽이라 말할 수 있었다.

“찾았다.”

“뭔데?”

“토고.”

“앱송만 찾으면 되겠네.”

우리는 그 뒤로도 온몸이 땀에 젖을 때까지 가죽을 찾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젠장! 어딨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찾을 때쯤

전형무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크게 울려 퍼졌다.

“1분 남았습니다. 그 전에 나오지 않으면 탈락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나와 다니엘 아버지까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죽을 파헤치고 있었다.

“아들 안 되겠다. 국내산 앱송으로 가져가자.”

“아……. 일단 챙겨주세요. 안감으로 쓸 가죽은 제가 벌써 챙겼으니까. 다니엘 이제 나가야 해.”

다니엘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하염없이 가죽 더미를 뒤졌다.

얼마나 집중한 건지 정신이 팔려버린 듯했다

“젠장! 없어.”

“일단 나가야 해.”

나는 다니엘의 팔을 잡아끌고 방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다시 파티션이 설치된 바로 앞 무대에 다가서니.

10명 남짓의 그룹이 우리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무슨?”

“저기 맨 앞에 처웃고 있는 놈. 내가 아는 놈이야.”

“응?”

다니엘의 말에 나는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저자가 여기 있는 거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니엘이 얼굴을 구기며 욕을 뱉어냈다.

“개자식.”

경연대회 [가방] 2.

* * *

한 그룹에서 최고급 앱송을 모두 독점했다.

“이런 씨.”

“화낼 거 없어. 디자인으로 승부 보면 되니까.”

나는 디자인으로 승리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기준을 알 수 없기에 아쉬운 건 사실이다.

가죽의 질감과 광택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고급스러움은 재료 본연의 힘이 강하다.

요리사가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의 가죽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

한 녀석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다니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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