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선뜻 내게 말을 하지 못하셨다.
“저번에 안 왔던 가죽공방 사장들이야.”
“아…….”
아버지가 내 반응을 살폈다.
“아들. 이렇게 된 거 이야기 좀 들어보자. 우리도 일손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래요. 근데 저번이랑은 달라요. 수수료 부분과 실력검증도 할 겁니다.”
“당연하지 너한테 피해 줄 생각 없다.”
런칭 전과 지금의 아리raM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단 2달 만에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때의 불확실성과는 다르기에 이들에게도 제약이 주어져야 공평하다.
나는 일단은 아버지의 지인으로 그들은 깍듯하게 대했다.
“커피나 차 드릴까요?”
“아니요. 안 주셔도 됩니다.”
나이 지긋한 남성분이 나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하시며 거절했다.
그런데 이들 중 젊은 층에 속한 남성 한 명이 큰소리를 내며 나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브랜드 만들었다고 유세 떨더니 별거 없구먼. 거기 어린놈 커피나 한잔 가져와.”
나는 아버지의 지인이라는 점을 고려해 최대한 감정을삭였다.
그의 말에 주위 사람들도 나를 보며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뭐랬어 별거 없다고 했잖아. 일거리 우리한테 떠넘기려고 그러는 거라니까.”
이 한마디에 왜 이들이 그때 오지 않았는지 알 거 같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주위를 흙탕물로 만든 거다.
“이보게 말 가려서 하게. 차 사장이 그럴 사람도 아니고 우리가 부탁하러 온 입장인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김 영감님 감이 없으시네. 저쪽에서 우리한테 부탁해야 하는 거야. 무슨 차 사장 오면 내가 말할 테니 가만히 있으쇼.”
“흠….”
“괜히 끼어들어서 방해하지 말라고.”
듣자 듣자 하니 열이 끓어올랐다.
‘얼마나 더 하나 보자.’
그 순간 봉지 가득 간식거리를 들고 아버지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다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내 드릴 게 없어서 앞에 가서 먹을 것 좀 사 왔습니다.”
“뭘 또 이런 걸 사 와.”
“어쩐 일로 다 모이셨어요?”
그때 아버지의 질문에 나를 열 받게 한 놈이 나서기 시작했다.
“차 사장 우리한테 일 좀 줘. 요즘 같은 경기에 먹고 살기 힘든데 다 같이 돈 좀 벌자고.”
“하하하 그러니까. 그때 오지 그랬어요.”
누구한테나 성격 좋은 아버지는 그에게 너털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지만, 확답은 주지 않았다.
모든 결정은 나에게 맡긴다는 의미다.
“근데 뭐 가방 제작수당이랑 로열티도 얼마 또 준다며.”
“그건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다 알고 왔어. 차 사장. 우리도 그렇게 줘 응? 그럼 우리도 일해줄 테니까.”
‘미친놈인가? 누가 누구한테 부탁하는지 모르겠네.’
아버지가 차마 입을 열지 못하자.
그 순간 내가 나섰다.
내가 앞으로 다가서니 아버지가 눈치채시고 날 소개하셨다.
“일단 그 일은 사장님이 결정하실 겁니다.”
“차 사장이 사장 아니라고?”
“네 어르신 전 이제 이 친구 밑에서 일합니다. 능력 좋은 사람이 있는데 내려놔야죠. 제가 30년 동안 못 이룬 걸 단 한 달 만에 해냈습니다.”
“그래. 대단한 친구고만.”
아버지는 내가 아들이라는 걸 이들에게 숨겼다.
나를 쉽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 보였다.
두 분의 대화가 끝이 나고 나를 열 받게 한 놈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일을 준다고 만다고?”
그의 재촉에 짜증이 밀려왔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보따리 내놓으란 심보다.
나는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정당하게 가죽에 대한 식견 바느질에 대한 테크닉을 시험할 겁니다. 그리고 로열티는 능력에 비례해 결정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런 걸 왜 시험받아야 해!”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건 사장님들 선택입니다.”
단호하게 내 의견을 전달하자.
그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 박스 하나를 올렸다.
“이건 뭔가?”
“시험 도구입니다. 어르신.”
“아 그런가. 뭘 하면 되나?”
“설명하겠습니다. 앞에 보고 계신 건 1.0두께 가죽 3장입니다. 순서는 타공을 따로 해 주시고 접착 이후 바느질입니다. 그리고 실의 모양, 땀의 일정한 굵기, 바느질 도중 발생하는 실의 손상, 제작 속도까지 보겠습니다.”
“…….”
모두의 표정이 썩 밝지 않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과제다.
따로 구멍이 뚫리고 접착이 된 두께만 30mm의 가죽에 바느질.
바늘이 들어가다 따로 접착된 구멍에 바늘이 막힐 게 분명하다.
하지만 숙련된 장인이라면 그 길을 만들어 손쉽게 빠져나가 아름다운 바느질을 할 거다.
“이게 가능한가? 이만한 두께를 작업해 본 적이 없으니.”
“가능합니다. 제가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바늘에 실을 연결하고 첫 땀을 시작했다.
막히는 부분은 손끝의 감으로 길을 찾아 나아갔다.
“대단하네. 젊은 친구가 웬만한 가죽장인들보다 잘해.”
“그러게 말이여. 차 사장이 자리에서 내려올 만하네.”
단 한 명만 제외한 모두가 감탄사를 뱉어냈다.
“그럼 바로 시작해주세요.”
.
.
.
모두 타공과 접착과정을 마치고 바느질에 착수했다.
불만이 가득하던 그놈도 바느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손끝에 감이 없는지 첫 땀도 제대로 넣지 못했다.
‘입만 살아서.’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그 순간 정말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김 영감님과 김 영감님 옆에 할머니 한 분이 정말 정교하게 바느질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느리지도 빠르지 않은 속도지만 일정하게 기계보다 더 정확한 땀을 이어갔다.
“두 분은 그만 하세요. 그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어이구 우리가 많이 부족했나 보네.”
“아니요. 그 반대예요. 정말 잘해주셨어요.”
“…….”
내 말에 두 분은 손을 꼭 잡으시더니 눈물을 보이셨다.
“내가 이 일 하면서 큰돈은 못 벌어도 재미있게 했는데. 이렇게 잘난 사람한테 칭찬받으니까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네.”
“에이 돌아가시면 안 되죠. 저희 평생 봐야 하는데요.”
나는 천천히 걸어 나가며 한 명, 한 명의 바느질을 확인했다.
그리고 절반은 합격, 절반은 불합격을 통지했다.
그 순간.
“에이씨 더러워서 안 해!”
불만 가득했던 놈이 소리를 지른 후.
가게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에고 저놈 저거 성질.”
“그러게 지가 마음 졸이면서 여기 오자고 사람들 모아놓고는.”
“저놈 저거……. 가게 장사도 안되고 힘들다고 그러더만.”
나는 그가 무슨 사연이 있든 상관할 생각이 없다.
저런 태도는 간절함이 부족한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실력이 부족하면 연습하면 된다.
근데 저런 성격을 가진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없기에 잡지 않았다.
“합격하신 분들은 바로 계약서 작성하겠습니다. 그리고 불합격 인원들은 실력 키우시고 다시 찾아오세요. 제가 다시 봐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불합격 인원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력만 한다면 기회는 언제든지 주어진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이제 합격자분들만 남아주세요.”
내 말에 불합격 인원이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합격 인원 5명만 남게 되었다.
노부부는 수원에서 오셨고 셋은 성남, 서울, 인천으로 경기지역의 인원들이 대거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합격 인원에게 다시 말을 전달했다.
“모두 계약서 잘 읽어보시고 사인이나 지장을 찍어주세요.”
나는 그들의 실력 편차에 따라 인센티브를 결정했다.
김 영감님과 부인분은 6% 다른 셋은 4%.
기존 장인들과 편차를 두었지만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여기 사인하면 되나?”
“네, 거기 하시면 됩니다.”
그 후에도 한참 동안 경영과 장인들이 해 주어야 하는 것들은 전달했다.
마지막으로 아리raM의 현판을 전달하며 가죽장인들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이거 대단하구먼. 밖에 걸기 아까울 정도야.”
“모두 무형문화재 어른들이 만드신 겁니다. 우리 회사의 긍지가 담겨있으니 최선을 다해주세요.”
내 말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아리raM에 가죽장인 다섯이 늘어났다.
* * *
5곳의 공방이 합류하며 가방 판매에 열을 올렸다.
다행히 3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고객에게 1달 안에 가방을 발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행이네요. 제일 곤란했던 문제가 해결돼서.”
“그러게요. 생각보다 문제가 빨리 풀렸어요. 숙련된 가죽장인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나는 홈페이지에 숙련된 가죽공을 구하기 위해 상시공모를 올렸다.
아직도 수요보다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아 그리고 VOKE에서 화보 제의 들어왔어요. 리미티드 에디션을 봤는데 완전 극찬을 하더라고요.”
“VOKE?!”
“네.”
“근데 극찬했다니. VOKE 한국지사 편집장도 아는 분이세요?”
“제 영업비밀이니까 모른 척해주세요.”
‘도대체 이 여자는 무슨 일을 몰고 다니는 거야?’
VOKE 세계적인 잡지사다.
모든 패션잡지사를 통틀어 최다 구독자를 보유한 회사.
우리 같은 신생브랜드가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이 일을 신지혜가 해냈다.
“저희 입장에는 최고의 조건이에요. 브랜드 이미지가 몇 단계는 상승할 겁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거 같은 여자다.
그녀에게 의문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다시 한번 깊은 궁금증을 일으키는 사건이다.
‘VOKE라니….’
하지만 좋은 일인 만큼 따져 물을 수 없었다.
“장하나 씨 메인으로 촬영할 겁니다. 그리고 그쪽에서 조건을 내걸었어요.”
“무슨?”
“다른 의류브랜드 옷을 입어달라네요. 나쁘지 않은 조건인 거 같아서 좋다고 했어요.”
“뭐 그 정도야.”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사장님도 함께 화보에 참여해달라고 합니다. 저번에 엘리제 화보를 본 모양이에요.”
“또요?!”
“정말 좋은 기회인 거 아시죠. 한 번만 더 찍으시죠.”
“……네. 일정은?”
“패션위크가 끝나는 시점에 찍을 겁니다.”
너무 좋은 기회이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한국 VOKE에 실린다는 건 프리미엄 브랜드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리고 일부 다른 국가에 브랜드를 알릴 기회였다.
“그리고 다른 사항이 있어요. 이건 정말 중요한 건데.”
신지혜의 말이 무서워졌다.
한 번씩 분위기를 잡고 말할 때마다.
너무 파급력이 큰 발언들이 튀어 나왔다.
‘VOKE보다 더 중요하다라. 무슨 말을 하려고?’
한국의 오트 쿠튀르.
* * *
신지혜는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패션 협회에서 연락이 왔어요.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고.”
“프로젝트?”
“한국형 오트 쿠튀르 선발 대회라는데 1, 2년 차 브랜드로 구성한다네요.”
“오트 쿠튀르라.”
“말 그대로 고급 맞춤복 대회를 준비하는 거 같아요.”
“근데 저희는 아직 가방이 주력인데.”
“그러게요. 어쩌실 거예요? 빠른 답변 바란다던데.”
“나쁘지는 않은데…….”
오트 쿠튀르.
나는 의류 디자인협회와 여러 관계자가 무슨 큰 그림을 그리는지 알 수 없었다.
새로운 명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건지, 파리 생디카에 가입시키려는 건지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생디카에 가입된 곳이 없지.’
오트 쿠튀르.
오트[고급의], 쿠튀르[재봉 또는 맞춤복]를 합친 용어다.
말 그대로 명품 브랜드에서 고급스러운 맞춤복을 선보이는 컬렉션.
파리의 고급의상점 조합 사무국 생디카에 가입한 브랜드 혹은 디자이너만이 참여할 수 있는 컬렉션이다.
가입조건이 굉장히 까다롭기에 유명하며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그런 이유에 참여자 모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는 컬렉션이다.
현재 샤네르, 다올, 지방띠, 루이바통 같은 고급 명품들이 대거 가입되어있다.
“참가 브랜드가 얻는 건 뭐죠?”
“파리진출 지원, 서울 패션위크 우선 참여권, 상금 10억이에요. 근데 조건이 있어요.”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