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도 한참을 생각하던 다니엘과 신지혜가 내 의견에 동의 의사를 보였다.
“일단 해보죠.”
“나는 아주 좋아 솔직히 더 받고 싶지만.”
그리고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는 아버지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의견 없으세요?”
“내 의견?!”
아버지는 내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더 받아도 될 거 같아.”
“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나 말고도 신지혜와 다니엘도 눈만 끔뻑거리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공방에서 이미테이션도 만들어 팔았거든, 부탁하는 고객들도 많아서. 에르맥스나 루이바통 프리미엄 상품들. 근데 그 가격이 얼마라고 생각하냐?”
“그거야 원자잿값의 2배 정도 아니에요? 보통 공방들 그렇게 받는 거로 알고 있어요.”
“아니. 정말 정교하게 만들면 적게는 3배 많게는 4배 가까이 받는다.”
“정말요?”
“사람들은 디자인과 퀄리티만 좋으면 사 간다. 몇 년 사이에 더 많이 그렇더구나. 그러니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라.”
아버지는 이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셨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 셋은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사장님. 저 말도 일리는 있지만, 인지도와 사람들의 인식이 문제예요.”
신지혜의 말에 나는 무언가에게 강하게 머리를 강타당한 거 같았다.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인식!”
“네?!”
“신 디렉터님 장인분들 프로필이랑 사진 촬영 일정 잡아주세요.”
“갑자기 왜?”
“고객들의 인식을 바꿔야겠어요.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자극할 겁니다. 우리 브랜드가 한국을 대표하는 장인 브랜드라는 것도 알리고요.”
그렇게 나는 오픈 전부터 무형문화재와 가죽장인들의 이미지메이킹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다행히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이 손써준 덕분에 아침에 편성되는 프로그램도 나가게 되었다.
“아침마당에 신영길 선생님 나오신다 우와.”
“굿모닝 오늘에는 안윤호 선생님 나오세요. 회사 이름 그대로 드러내시네요.”
이렇게 작은 결과들이 사람의 인식을 바꾸고 자긍심을 키워 줄 것이다.
* * *
눈코 뜰 새 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주문서가 쌓여가고만 있었다.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다음에 밀려드는 물량을 보완할 수 있다.
다니엘은 지방으로 보내질 물량을 재단하기 바빴고 아버지는 쉴 틈 없이 바느질을 하는 중이다.
나와 다니엘만이 가죽 재단을 할 수 있었기에 한시도 프레스 기계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다니엘 손실 최대한 줄여줘.”
아리raM은 소 한 마리의 가죽으로 하나의 가방을 만드는 게 원칙이다.
하나의 소가죽에서 나오는 좋은 품질의 부분이 소량이기에 이 방법을 택했다.
“재단 전문가를 구하긴 해야겠는데.”
나는 밀려드는 물량에 갑자기 걱정스러운 마음이 돋아났다.
재단 전문가가 가장 필요한 이유가 있다.
가죽에 생기는 상처와 살이 접히는 부분에 대한 불량과 손실률을 최소한으로 줄여준다.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금전적 손해가 발생한다.
“정말. 이 방법으로 계속 생산할 거야?”
“당연하지.”
현재 재단 전문가가 아닌 우리가 재단을 하니 가방의 품질은 잡았지만, 손실률이 높다.
하지만 내가 이 방법에 대한 다른 임시 방도를 찾았다.
“주름이랑 상처 부위 가죽 다 모아 놨지?”
“어 근데 이거 뭐에 쓸려고?”
“가방 만들어야지.”
“이걸로?”
다니엘도 알고 있다.
이 부위로는 가방을 만들 수 없다는 걸.
만든다 해도 볼품없는 쓰레기가 될 게 뻔했다.
하지만 내가 고안해낸 방법으로는 할 수 있다.
나는 자투리 가죽 몇 개를 골라.
직접 구두칼로 가죽을 절단해 나갔다.
다니엘도 궁금했는지 중간중간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더니 갑자기 다니엘이 소리 지르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와…. 이런 방법이 있었네.”
나는 여러 가지 가죽을 이용해 주름과 주름을 연결하는 공법으로 가죽을 이었다.
그리고 가방 하나를 만들어 냈다.
괜히 온리 원 백이겠는가.
손잡이와 끈의 색을 다르게 만들었고 본판으로 들어가는 가죽을 부분을 여러 가지 색으로 조합했다.
그리고 가죽과 가죽을 정교하게 덧댔다.
그 결과 가죽의 주름과 주름이 결합하며 신비한 물결을 만들어 냈다.
색의 조화에 따라 원색으로 만들어진 가방보다 더욱 찬란한 가방이 만들어졌다.
“나쁘지 않은 방법인데. 좋은 거 배웠다.”
내가 고안한 방법은 한번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름의 방향 다음으로 이어지는 디자인을 모두 계산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니엘은 가죽을 몇 개 골라 내가 했던 방식 그대로 똑같이 재현해내는 게 아닌가.
“뭐야 바로 따라 한다고!”
단 한 번의 눈대중으로 가방을 만들어 냈다.
“대단한데.”
다니엘은 내 칭찬에 어깨를 으쓱하며 이쯤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이었다.
“나 S클래스 지망생이었다고.”
“알았어. 일해.”
나는 다니엘의 말을 끊어버리고 다시 프레스 기계 앞에 데려다 놓았다.
나는 며칠 새 다니엘을 모두 파악했다.
온종일 붙어있으니 모를 리가 있나.
다니엘은 말도 많고 우유부단함의 끝판왕으로 핵인싸 꿈나무다.
너무 띄워주면 신이 나서 수다를 떨며 농땡이 피울 게 분명하기에 사전에 차단해야 했다.
“악덕 사장.”
“뭐래? 농땡이 직원이.”
한참 일을 이어가는 와중에 아리raM 공방의 문이 열렸다.
“계세요?”
“네. 누구시죠?”
“아 저 가방 판매하는 것인지 궁금해서요.”
“네, 그럼요 판매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주문 안 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제가 급했는데 어서 주세요.”
후줄근한 후드티에 커다란 선글라스 하나를 쓰고 나타난 젊은 여성.
그런데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모든 게 명품이다.
“근데 가방 가격이 얼마죠. 240만 원인가요?”
‘안 좋아 보이나. 흠….’
그녀의 질문에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요. 저건 200만 원 정도 측정될 거 같습니다. 아직 시제품이라서요.”
“네?! 훨씬 이쁜데. 더 싸다고요. 더 비쌀까 봐 물어본 건데.”
“뭐, DP 상품이기도 하고….”
손님은 좋다며 손뼉을 쳤다.
“제가 당장 살게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포장해서 바로 가져다드릴게요.”
“네.”
그렇게 선글라스의 그녀가 가게를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따르릉 따르릉!
정신없이 일을 이어나가는 그때.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 신지혜 총괄 디렉터
“무슨 일이지?!”
신지혜는 다른 잡지사 촬영이 잡혀 장하나와 함께 스튜디오에 있었다.
엘리제가 발행된 이후.
잡지사와 패션저널에서 물밀 듯 섭외가 이어졌다.
“무슨 일이세요?”
“사장님! 정말 이럴 거예요.”
“네?!”
갑자기 그녀가 버럭 나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뭐지?’
“갑자기 무슨?”
“인터넷에 지금 난리 났어요. 아리raM 최초의 리미티드 백이라고 어떤 블로거가 사진이랑 글을 올렸는데. 지금 네티즌들 난리 났어요.”
“블로거요?”
“네, 주문방식도 다르고 홈페이지에 판매공지도 없는 제품이라 문의 글 폭발했어요.”
“리미티드 백? 그런 거 만든 적 없는데.”
“하…. 일단 사진 한번 보세요.”
그녀가 전송한 사진을 열었다.
그런데 그 사진에 아까 전 손실 가죽으로 만든 온리 원 백이 이쁘게 촬영되어 나타났다.
“사장님이 만든 거 아니에요?”
“…….”
“사장님.”
“제가 한 거 맞네요.”
그 뒤로 내가 충분히 변명했지만 한참 동안 신지혜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이제 그녀가 무서워지려고 했다.
요 며칠 새 잔소리가 200배 늘어난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정정 공지 내야겠어요. 그리고 주름 부위 가죽 모두 남겨두세요. 판매하지 마시고요.”
“네, 근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공지 올리고 리미티드 백으로 판매할 겁니다. 광고를 해줬으니까 이용해야죠.”
“대단하시네요.”
“그리고 진짜 상의 좀 하세요. 다니엘 씨랑 들어가서 봅시다.”
“어……. 어……. 갑자기 전화 수신이.”
“사장님!”
뚜뚜뚜.
일단 피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일에서만큼은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이기에 2절에서 3절 이상은 잔소리가 이어질 게 뻔했다.
“무슨 일이야? 신 디렉터 전화야?”
“응, 너 조금 있다 혼날 거래.”
“내가 왜?”
“그런 일이 있어.”
다니엘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겉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젠장! 나 오늘 일찍 퇴근할게.”
“안 돼!”
다니엘도 이미 몇 번을 당했다.
그래서인지 몸을 떨며 퇴근을 하려는 걸 내가 겨우 말렸다.
매도 나눠서 맞아야 하기에.
절대 혼자 그녀를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
.
.
몇 시간 뒤.
신지혜가 나타났다.
리미티드 에디션.
* * *
서울 디자인 재단 관계자들과 패션위크 총감독, 서울시 관계자까지 DDP 회의실에 모였다.
곧 열리는 F/W 패션위크에 참석하는 브랜드와 중요사항을 점검하기 위해 열린 회의다.
패션위크 총감독의 말을 시작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패션위크 참여 브랜드와 디자이너 리스트가 정해졌습니다. 전년도 매출과 인지도를 모두 고려해서 결정 내렸습니다.”
“일단 이건 알겠는데요.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결과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서울시 담당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말을 이었다.
“예산 편성해야 하는데 아직도 안 된 거예요?”
“아니요. 리스트는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1년에서 2년 차의 신생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을 추려냈습니다. 근데….”
“왜 말을 끊어요. 계속하세요.”
“그게 1개월 남짓의 신생브랜드가 있는데 기준 미달입니다.”
“기준치에 미달하면 안 되는 거죠. 왜 고민하고 있어요.”
“그게…. 1개월 치 성장이 엄청납니다. 맨 뒷장에 자료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총감독의 말에 협회와 재단, 서울시 관계자까지 서류 마지막 장의 한 브랜드의 프로필에 집중했다.
“아리raM?”
“네, 2개월 전 런칭한 브랜드입니다. 디자이너 이름은 차진혁. 여러분이 알고 있는 브랜드 Han 출신의 디자이너입니다.”
“해외파 출신이에요?”
“아닙니다. 한국대 출신입니다. 하지만 능력이 대단한 거 같습니다. 브랜드 Han S/S 신상 가방을 단독으로 디자인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판매율도 무서울 정도입니다.”
“매출 5배 성장했다는 그 가방?”
“네 맞습니다.”
한참 동안 서류를 바라보던 모두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때 서울시 담당자가 침묵을 깨고 말을 이었다.
“좋네요. 성과만 내준다면 기준이야 바꾸면 되는 거고.”
“모두의 동의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그때 백발에 비녀를 꽂고 있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노년의 여성이 말을 이었다.
“나도 찬성합니다. 무형문화재들과의 협약이라 아이디어 좋네요.”
“선생님 의견도 그러시다면. 협회장님은 어떠십니까.”
이 그룹에서 가장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패션 디자인 협회장에게 질문했다.
“고문 이사님이 그러자고 하시니…. 따라야겠죠….”
그녀의 동의에 누구 하나 아리raM의 참석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