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빠져나오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와!”
“모델 같네.”
주위에 스태프들과 신지혜 그리고 편집자인 김소연까지 나를 보며 환호했다.
‘다들 왜 이래.’
나는 무덤덤하게 그들을 지나쳐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설치된 곳으로 이동했다.
인터뷰의 배경이 되는 뒤쪽에는 아리raM의 온리 원 백 서른 개가량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콘티의 방향을 결정하고 싶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나의 디자인으로 여러 개의 가방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편집장인 김소연이 직접 내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작해도 되죠?”
“네.”
“어려운 질문보다는 홍보 형식으로 해드릴게요. 지혜랑은 다 말을 끝냈으니까 긴장하지 마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신지혜랑 무슨 대화를 했던 걸까?
그녀가 어떻게 잡지사 편집자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큰돈을 지불해도 어려운 일일 텐데 그 일을 신지혜가 해냈다.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시작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뭐랄까? 사실 아직 무덤덤해요.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설레고 있습니다.”
“아리raM은 무형문화재분들과 많은 협업을 하고 있는데요. 계기가 있을까요?”
“최근에야 한국예술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이걸 패션에 접목해보고 싶었습니다.”
많은 질문을 김소연에게 받았다.
디자이너로서의 힘든 점, 모델 장하나에 관한 이야기까지.
사소한 부분까지 그녀는 나를 파헤쳐갔다.
그렇게 마지막 질문이 나에게 이어졌다.
“그렇다면 아리raM의 최종 목표는 뭐죠?”
“당연한 대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리raM을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만들 겁니다.”
“…….”
김소연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지그시바라본다.
“예상 밖이네요. 제가 신생브랜드나 디자이너 인터뷰하면 이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분은 드문데.”
“그런가요.”
“네, 세계 최고의 명품이라. 특종감인데요. 실례가 안 된다면 개인적인 질문 한 가지 더 할게요.”
“네.”
“어떻게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 만들 거죠?”
어떻게? 말은 나에게 없었다.
내가 겪어온 경험과 실력이 아리raM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겸손하지 못하거나 과대망상 환자로 생각할지도 몰랐다.
나는 그제야 생각을 멈추고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그건 영업비밀이라 말씀 못 드릴 거 같아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고 사진 촬영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모델이 촬영하는 게 낫지 않나요?”
“그건 따로 스케줄 조정해서 할 거예요. 특별부록 형식이라 사장님 분량만으로는 부족하기도 하고 지혜 부탁도 있었고요.”
“근데 저도 개인적인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혹시 디렉터님 부탁이면 다 들어주시는 거예요?”
“음…. 그건 아니죠. 근데 그만한 힘이 있어요.”
“네?!”
“모르시나 본데.”
김소연이 나에게 무슨 말을 이으려는 그때.
신지혜가 갑자기 나타나 김소연을 불렀다.
“언니!”
“깜짝이야. 왜?”
그 순간 신지혜가 김소연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젓는다.
편집장인 김소연도 알았다며 대답을 마무리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정신 좀 봐. 사진작가님 기다리시는데.”
“…….”
“이쪽으로 오세요.”
“네.”
그렇게 사진 촬영이 시작되었고 무리 없이 일정을 마무리했다.
내 의문이 풀린 건 아니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 * *
잡지가 발행되는 날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장하나의 인스타와 신지혜가 운영하는 아리raM의 홈페이지까지 광고성 게시물들이 올라갔다.
그런 이유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장하나도 같이 자리를 하고 싶다며 아리raM 공방에 안현수와 찾아왔다.
“사장님. 서점에 들러서 바로 사 왔어요.”
“몇 권이나 사신 거예요.”
“10권 정도?”
신지혜는 기념이 될 첫 잡지라며 10권이나 잡지를 구매해 왔다.
그렇게 모여있는 모두가 한 권씩 들고 잡지를 넘겼다.
모두 천천히 잡지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
부록 형식의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첫 장에는 내가 인터뷰하는 모습이 크게 실려 있었다.
―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의 전통브랜드 아리raM
첫 메인 문장을 넘기니 내 인터뷰 내용과 온리 원 백을 배경으로 한 인터뷰 사진 그리고 장하나의 사진이 이어졌다.
“근데 부록은 보통 컬러 없이 나올 텐데. 신기하네요.”
장하나가 이런 건 처음 본다며 말하자.
신지혜가 질문에 답했다.
“그게 편집장 언니가 힘 좀 쓴 거 같아요. 온리 원 백은 가죽 색상, 실의 색, 질감까지 컬러가 아니면 표현이 안 될 거라고 그랬거든요.”
왠지 편집장이 아닌 그녀가 힘을 쓴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궁금하네. 물어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숨기는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실례가 되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정말 좋네요. 편집장님한테 밥 한번 사야겠어요.”
“제가 벌써 샀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가 기뻐하며 이야기를 이어갈 때쯤.
공식 홈페이지에 설정해둔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전화벨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부터 받아들었다.
“네 아리raM입니다.”
“차 사장! 나 광주에 오채중이요.”
“네 사장님. 무슨 일로?”
“무슨 일은 여기 사람들 몰려와서 가방 주문한다고 난리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전화했제.”
내가 전화를 받고 있자.
아버지의 전화벨도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혁아. 경상도 친구데. 주문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인증점이라는 현판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그때 신지혜가 나서서 말을 이었다.
“공식 홈페이지로 주문해야 한다고 전해주세요. 지방에서 주문받으면 고객관리에 차질 생겨요.”
“네.”
나와 아버지는 신지혜의 말을 공방 사장님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혼선이 될 걸 우려해 다른 분들에게도 연락을 드렸다.
우리는 겨우 일을 처리하고 한시름 놓는 듯했으나.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장하나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저……. 저…. 이거 한번 봐야 할 거 같아요.”
“뭔데요?”
“그게…….”
장하나의 인스타 게시물.
엘리제 잡지가 발행되는 아침 10시 이후 게시했는데 현재 좋아요와 댓글 수가 100만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런 적이 처음인데. 댓글 한번 보세요. 다 주문 방법 문의에요.”
“이걸 어쩌면 좋나.”
“사장님 줘보세요. 제가 주문 방법 올려야겠어요.”
이걸 기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생각한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갑자기 신지혜가 컴퓨터 앞에서 소리쳤다.
“헉!”
“무슨 일이에요?”
나는 걱정스레 그녀에게 뛰어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손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가방 주문정보?”
“사장님 몇 개인지 보세요.”
“몇 개나 들어왔길래?”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잡지가 방금 출간했고 장하나와 공식 홈페이지 게시물이 등록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200개?!”
“네 정확히 231개. 새로 고치면 283개.”
“…….”
“또 해볼까요?”
“아니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 옆으로 슬며시 다가오던 다니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도 직감적으로 알 것이다.
작업의 지옥이 열렸다는걸.
“진혁…. 그때 약속을 지키는구나. 쉴 새 없이 가죽 만지게 해준다더니.”
다니엘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웃음에 거기에 모여있던 모두가 웃어 보였다.
웃음의 의미는 모두 다르겠지만 모두 행복해 보였다.
대단한 성과.
* * *
순식간에 1000개 이상 주문이 쏟아졌다.
그야말로 엄청난 성과다.
높게 측정된 가방 가격에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온리 원 백 가격은 평균 240만 원으로 신생브랜드 런칭 가격치고는 비싼 편이다.
* * *
런칭하기 전에 온리 원 백의 소비자 가격을 정해야 했다.
나는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온리 원 백의 가격을 결정하려 하는데 의견들 물어보고 싶네요. 디렉터님 보고서도 보긴 했지만.”
“사장님은 어느 정도 생각하시는데요?”
“마음 같아서는 300만 원 이상이지만 무리겠죠. 200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내 말에 신지혜가 화들짝 놀라며 혀를 찼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다.
“명품 기본라인 가방 가격 얼마인지 알고 하는 소리예요?”
“당연하죠. 그걸 모르겠어요?”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간다.
내 당당함에 신지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절대 그 가격으로 승산 없어요. 신생브랜드 가방치고 그 가격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아무리 최상의 재료와 장인들이 모였다고 해도요.”
“그럼?”
“150선이 적당해요. 제가 조사한 결과. 기본 백 기준으로 루이바통 180만 원, 프리드 160만 원, 다올 200만 원 선이에요. 우리도 최대한 여기에 맞춰야 해요. 첫 번째 목표는 이 명품들의 기본 백 판매량과 매출을 앞지르는 걸로 하죠.”
전문 경영을 전공한 그녀다운 데이터를 이용한 계산법이다.
‘신 디렉터 말도 일리가 있어….’
어쩌면 내가 과거 유명디자이너였을 때의 눈높이로 가방의 소비자 가격을 측정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자인을 놓고 본다면 저 가격은 내키지 않는다.
‘내가 너무 욕심을 낸 건가?’
그때 다니엘이 이전까지 보지 못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가격은 기본 백 기준이잖아. 그건 계산법이 틀렸어.”
“…….”
“우리는 프리미엄이야. 신 디렉터 혹시 에르맥스 가방 원자재 가격이 얼마 정도일 거 같아?”
다니엘의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그거야.”
나는 에르맥스의 가격정책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지만, 다니엘의 의심을 피해가기 위해 말을 아꼈다.
“에르맥스는 모든 재료를 최상품으로 사용하지만, 원자잿값은 최대 100만 원 선이야. 뭐 특별히 악어나 낙타 가죽을 쓴다면 더 올라가겠지만.”
“그렇게나 싸요?”
신지혜가 다니엘의 말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판매 가격이 기본 버튼 백이 1500만 원일 텐데.”
“신 디렉터 말이 맞아.”
“그럼 원자잿값의 몇 배의 가격을 받는 거네요.”
“적게는 10배 많게는 15배 이상 이득을 얻어. 손실률을 계산해봐도 이익률 95% 이상이라는 소리지. 그런데 우리는 가방 제작 비용이 얼마 정도 될 거 같아?”
“그거야.”
“70만 원 선이야. 에르맥스와 크게 차이가 없어. 그만큼 퀄리티가 좋다는 거야. 그리고 150에 판매하면 공임에 장인분들 로열티까지 빠져나간다고 들었는데 우리한테 남는 게 있을까.”
“남기는 하지만.”
“더 깊게 생각할 문제야. 지금은 작은 공방이지만 위로 발돋움해야 하니까.”
“다니엘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렇다면 얼마 정도 예측하세요.”
“내 생각에는 최소 180 이상은 받아야 해.”
다니엘의 말도 틀리지 않는다.
둘의 의견을 모두 수렴해.
중립적인 처지에서 생각해보아도 170만 원 이상 책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한국전통의 프리미엄 브랜드.
처음부터 낮은 금액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
명품에 뒤처지지 않는 좋은 디자인에 질 좋은 제작방식.
이 이유라면 고객들은 우리를 선호하고 알아줄 것이다.
“179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