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200)

* * *

“박창식 이 사건 접으라고 했잖아. 위에서 계속 네 이야기 나와. 너 여기에 누가 엮여있는지 알아?”

“부장님 이 사건 해결 못 하면 제 동생 사건 근처도 못 갑니다.”

“이 새끼야 네 동생 자살사건 파헤치자고 지검장님 목 날리려고 작정했어. 그리고 너는 이제 시작인데 한강에 시체로 떠오르고 싶어! 나 길게 말 안 한다. 그만해.”

“제발 부탁드립니다.”

“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니야 하…. 미치겠네.”

“…….”

“솔직히 증거도 제대로 없는 거 잡고 있으면 너만 힘들어. 네가 가져온 자료 그거 법정에서 하나도 소용없어 불법 녹취록에 연습생들 인터뷰가 영향력이 있냐?”

박창식은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혜윤아 미안하다.”

박창식은 동생이 죽고 난 이후.

한참 동안 의문 속에서 살아갔다.

동생은 항상 밝았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웃음을 잃었고 불안해하며 정신이 온전치 않게 변해갔다.

그렇게 동생을 잃었다.

그 뒤로 동생이 소속되어 있던 BB 엔터테인먼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을 파고든 순간.

한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연습생과 연예인들의 성 상납.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부터 외압이 끊이지 않고 박창식의 목을 옭아매며 들어왔다.

“BB 엔터테인먼트가 뭐길래!”

이 사건을 시작해야 동생의 자살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 착하고 이쁜 동생을 죽게 한 범인을 찾아 똑같이 복수해주고 싶었다.

“송영태!”

이 이름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사건의 중심에 송영태가 있다.

“저 휴직계 내겠습니다.”

“박창식이 너 정말 이럴 거야 나가서 뭐 하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거보다 나을 거 같습니다.”

“네 동생은 그만 잊고.”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박창식은 그날로 검찰을 나와.

단독으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BB 엔터테인먼트 회사 앞 카페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약속 시각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젠장…. 틀어진 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피해자의 전화도 꺼져있다.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때.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십니까?”

* * *

박창식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누구십니까? 누구시냐고요!”

“저는 차진혁이라고 합니다.”

“누구요? 전화 잘못한 거 같습니다.”

“제가 박혜윤 씨 사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야 너!”

.

.

.

최대한 사람의 눈을 피해 어둠이 짙게 깔린 공원 벤치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박창식은 아직 나를 믿지 못하는 눈치다.

내가 송영태와 엮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일 것이다.

“그 자료는 어떻게 얻은 거지?”

그의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제보라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하….”

박창식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중요한 건 자료를 어디서 얻었느냐가 아니고 자신을 정말 도울 수 있는 자료인가였다.

“그래서 증거 어디 있지?”

“여기.”

나는 서류봉투를 그의 앞에 들어 올렸다.

박창식의 손이 봉투로 뻗어 나오는 순간.

서류를 다시 내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직은 안 됩니다. 이야기가 남았거든요.”

“이 새끼야 이게 장난으로 보여!”

내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그가 크게 소리 지른다.

나는 모든 자료를 한꺼번에 터트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섰다.

정·재계의 거물들이 엮인 거대한 사건이다.

차례차례 무너트리지 않으면 정보를 넘긴 나도 정보를 받은 박창식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전부는 안 됩니다. 퍼즐이 너무 거대해서 한 번에 옮기다가는 무너질 겁니다. 일단 이거.”

나는 서류 한 장을 봉투에서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송영태가 몰래 운영하는 클럽들의 범죄기록.

마약, 성매매 알선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사건부터입니다. 검사이시니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알 겁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때.

“야, 거기 있는 그거 내려놓고 가.”

“아직은 안 됩니다.”

박창식도 사람이다.

자신 동생의 죽음에 송영태가 아닌 YK어패럴의 송원일이 엮여있다는 걸 안다면?

분명 총구의 방향을 틀 거다.

나는 싸늘한 눈빛을 한 그에게 충고했다.

“제가 말한 사건부터입니다.”

“근데 너 정체가 뭐야?”

나는 그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패션디자이너.”

나는 그에게 문제를 남겨주고 자리를 떠났다.

그는 갈고 간 칼을 꺼내 들어 낮은 위치의 범죄자들부터 차례대로 쳐내려 갈 것이다.

* * *

장하나에 대한 일을 모두 처리했다.

법적으로 아직 제약이 많은 그녀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BB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계약파기 문서를 받았다.

“5억 받고 교도소 가서 잘 먹고 잘살아라. 송영태.”

일주일이 지난 아침 대한민국이 흔들렸다.

미친 듯이 속보가 터져 나왔고 유명한 연예인 몇 명의 얼굴이 도배되었다.

대부분 BB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배우들과 가수들이다.

채널을 돌리니 PD 노트라는 시사프로가 흘러나왔다.

BB 엔터테인먼트의 몇 가지 비리를 폭로했고 그중 가장 쟁점이 되는 클럽에서 일어난 범죄사실의 유무를 여러 명을 통해 밝혀내고 있었다.

“저쪽에서도 잘해주고 있네. 이제 시작이지.”

나는 박창식을 만나기 전 가장 파장이 크고 정·재계의 거대한 인물들이 엮이지 않은 자료만을 PD 노트에 제보 형식으로 전달했다.

익명으로 전달한 사항이었지만 확실한 증거들이 나와 있었기에 발 빠르게 움직인 듯했다.

“대단하네! 며칠 만에 이 정도로 만들어 내다니.”

운이 좋다면 좋았다.

클럽 사건이 터지고 PD 노트에서도 편성을 변경해서 방영한 거로 보였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송영태가 구속될 거다.

그때 나를 보고 있던 다니엘이 다가왔다.

“사장,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웃고 있어?”

“그런 일이 좀 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나 보다. 송영태가 평생 교도소에서 썩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그때 다니엘이 가방 하나를 내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다 만들었어. 악어가죽으로 만든 온리 원 백이야. 실도 링카블레를 사용했어”

“내장재는?”

“내장재는 국내산 내추럴 소가죽.”

“국내산?”

“그래. 국내산도 좋은 품질이야. 넌 너무 이태리 이태리 해. 악어가죽 금액 얼마인지 알지.”

“알겠어. 그만해.”

시간이 지날수록 다니엘의 잔소리가 늘어났다.

나는 항상 최고의 품질과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재료만으로 가방을 만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현실에 맞춰 가방을 만들기를 원했다.

“누가 사장인지 모르겠다.”

“한 번씩 보면 말이야. 너 에르맥스 장인 학교에서 배운 사람 같아.”

“무슨?! 왜 그렇게 생각해.”

“딱 하는 짓이 그래. 에르맥스 교수들한테 세뇌당한 인간 중 한 명으로 보여. 맨날 좋은 재료, 좋은 품질 입에 달고 살 거든. 윽!”

다니엘은 정말 싫다는 표정으로 뒤돌아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런 모습의 다니엘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가볼까.”

광고와 성과

* * *

BB 엔터테인먼트의 일은 박창식에게 맡겼으니 이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오늘은 신지혜가 잡은 일간 잡지사의 인터뷰와 촬영이 있는 날이다.

우리는 의정부에 있는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패션부 편집장 김소연이에요.”

“차진혁이라고 합니다.”

“컬렉션 때 봤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요.”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때 신지혜가 김소연에게 다가갔다.

“언니 저도 왔거든요.”

“지혜야 오랜만이다. 왜 이렇게 이뻐졌어.”

“갑자기 왜 이래?”

“브랜드 디렉터한테 잘 보여야 다음에 또 인터뷰라도 해줄 거 아니야.”

“됐거든요. 하던 대로 하시죠.”

왠지 둘의 대화가 어색하지 않다.

농담을 나누는 둘에게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두 분 아시는 사이에요?”

“언니 동생 하는 사이죠. 워낙 바쁜 동생이라서 오랜만에 봤네요. 앗…. 사장님한테 말씀 안 드린 게 있는데요.”

“무슨?”

“저희 잡지사랑 엘리제랑 협약을 맺었거든요. 그쪽 잡지 출간일에 특별부록으로 나갈 거예요. 첫 부록이라 아리raM 단독으로 발행될 겁니다.”

“네?!”

“뭐 문제 될 건 없으시죠?”

“그럼요. 저희야 너무 좋죠.”

“어휴 말도 마세요. 정보가 어디로 새어 나갔는지 지혜 저게 자기네가 하겠다고 저를 얼마나 들볶던지.”

“그랬군요.”

역시 신지혜다.

회식 날 빨리 잡지사에 연락해야 한다며 날 들볶더니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 고마움을 말하려니.

“말하지 마세요. 당연한 일을 한 거니까.”

“그래도.”

“제 일을 한 건데요. 사장님 일단 메이크업부터 받고 오세요.”

나는 등 떠밀리듯 스튜디오 한쪽에 마련된 메이크업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헤어와 메이크업 전문가들이 대기 중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대기 중인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와우! 어디 소속 연예인이에요?”

“피부 완전 대박이신데.”

마치 그녀들의 바비 인형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를 이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강렬한 소녀들의 욕구에 찬 눈을 보고야 말았다.

그런 그녀들에게 나는 강하게 찬물을 끼얹었다.

“최대한 차분하고 깔끔하게 해주세요. 메이크업도 최대한 연하게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약간 아쉬워하는 눈빛이지만 그래도 좋다며 여러 명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보다 내가 디자인한 가방이 돋보여야 한다.

메인 헤어디자이너가 내 머리를 몇 번이나 바꿔가며 예를 보여주었다.

그 과정이 조금 루즈하게 느껴졌지만 나쁘지 않다.

“다 잘 어울리네요.”

“그러게요. 이쁘네요.”

“제가 연예인 헤어만 몇 년째인데. 이렇게 다 소화하시는 분 처음 봐요. 어디 소속사예요?”

“네?!”

헤어디자이너는 나를 모델이나 연예인 지망생쯤으로 생각한 듯했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저 디자이너예요. 연예인 아닙니다.”

“설마요…. 그럼 이번 촬영 가방 만드신 분이세요?”

“네 제가 디자인했어요.”

“대박…. 아까 보관실에 있는 거 봤는데.”

“그래요. 어떤가요?”

나는 잠재적 고객이 될 이들이 바라보는 가방 디자인에 대한 소견이 궁금했다.

“흠…. 이쁘다고만 말하기에는 아쉽고 제가 그런 표현에는 약해서 근데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나쁘지 않은 답변이다.

이쁘다는 말이 아쉬울 정도였고 구매 욕구까지 불러들인 다라.

그때 옆에서 메이크업을 준비하고 있던 아티스트가 대화에 참여했다.

“저도 같이 봤거든요. 최고였어요. 최근에 나온 샤네르 가방보다 이쁜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내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말에 정말 웃음을 뿜을 뻔했다.

최근 S/S시즌 샤네르의 가방은 내가 디자인한 상품이다.

얼마 전 명품 브랜드 S/S시즌 가방 판매율을 확인했을 때.

당당히 1위 매출 수량과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품보다 더 아리raM의 가방이 이쁘다는 게 나를 웃게 했다.

“2번째 머리로 할게요.”

“네 그럼 헤어 한 번 더 씻어드리고 스타일 만들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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