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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는 답답한 나머지 집 근처 전집에서 막걸리를 들이붓고 있었다.
“오빠 여기서 뭐 해요. 겨우 찾았네! 동네 술집은 다 돌아다녔어요?”
“아. 미안하다. 답답해서.”
“어휴, 청승은. 저한테 말했으면 같이 왔죠. 저도 한 잔 주세요.”
“어….”
“오빠 이거 봐요. 인스타 게시물 전체 삭제했어요. 송영태 진짜 치사하지 않아요.”
장하나는 자신은 괜찮다는 걸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요. 저도 기획사 나오고 싶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
“오빠 술 좀 그만 마셔요.”
둘이 대화를 이어가던 중.
장하나의 귓가에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여기로 앉으세요.”
그 소리에 장하나는 한눈에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카페에서 만났던 사람.
나름 이슈 거리를 몰고 왔던 차진혁 디자이너라는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인사라도 하자는 마음이 생겨났다.
‘기억하려나? 모르면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던 그녀가 용기를 내어 진혁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누구시죠?”
진혁이 알아보지 못하자.
장하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장하나 씨?”
장하나는 진혁이 자신을 알아봐 주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 * *
며칠 동안 너무 무리했던 탓일까.
아침부터 두통에 시달렸다.
그때 어머니가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아들, 오늘 하루 쉬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맨날 중요하다며 아픈데 하루 쉬어.”
어머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셨다.
나는 그 마음을 달래 드리기 위해.
억지로라도 웃어 보였다.
“정말 괜찮아요. 이번 주말에는 쉬도록 할게요.”
“그래. 어휴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쁘니 원.”
어머니는 못 이긴 척 한숨을 쉬시며 안방으로 돌아가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결같이 복잡했다.
나를 차진혁이라 생각하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지만 깊은 내면에는 늘 미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어휴. 출근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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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빨리 집을 나섰다.
2달 가까이 하루도 쉬지 못한 신지혜를 위해서였다.
아버지도 같은 처지였지만 집에서 어머니가 좋은 음식을 많이 챙겨주고 있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신지혜는 홀로 사는 처지였고 매번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경이 쓰이던 차.
오늘은 그녀를 위해 아침 일찍 죽으로 유명한 맛집을 들렀다.
“전복인삼죽 3인분 포장해 주시겠어요. 아 그리고 장조림도 포장해 주세요.”
“네 15분만 기다리세요.”
나는 식당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 그때 텔레비전 뉴스에 낯익은 인물이 나왔다.
― 현재 인플루언서 J양이 소송에 휘말렸는데요. 어떻게 된 건가요?
―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로 인해 기획사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J양이 왜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했죠. 그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제가 J양의 계약서를 확보했는데요. 내용을 확인한 결과 독소조항이 많았습니다. 기획사의 말을 어길 수 없게 만들어 두었더군요.
―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J양에게 큰 피해가 갈 것으로 보입니다.
“장하나?”
뉴스에 모자이크가 되어 나오지만, 실루엣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봐서인지 아주 선명하게 받아들여졌다.
“젠장. 일 났네.”
나는 바로 전화기를 들어 장하나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췄다.
“하…. 아니야. 일단 공방부터 가야겠어.”
때마침 주문했던 죽이 나왔다.
나는 포장된 종이가방을 들고 빠르게 회사로 향했다.
내가 도착하니 바로 신지혜가 도착했다.
나보다 그녀의 표정이 더 심각했다.
장하나 2
* * *
신지혜는 외투를 의자에 걸치자마자.
나에게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 이야기를 꺼냈다.
“아침에 뉴스 보셨어요.”
“네. 섭외 어떻게 하죠. 머리 아프게 됐네요.”
“제가 연락해볼게요. 그게 나을 거 같아요.”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려는 그녀를 말렸다.
그리고 포장해온 죽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오늘 느낌이 지금 안 먹으면 쫄쫄 굶을 거 같은데 드시고 하세요.”
“뭐예요?”
“아. 맨날 아침 거르고 오신다고 그래서 제가 사 왔어요.”
“정말요. 이야 제가 상사일 때는 몰랐는데 다정하신데요.”
“뭐 이 정도로 일단 드세요.”
신지혜는 죽 도시락을 열며 말을 이었다.
“장하나가 딱인데.”
“장하나 씨 안 되면 신인 모델이나 일반인 모델 고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계약금이 싸기는 한데 현재 우리 회사에는 장하나가 적격이에요.”
보통 유명한 인플루언서를 모델로 계약하는 돈과 신인 모델을 고용하는 돈의 차이는 상당하다.
하지만 신지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꼭 그녀를 잡고 싶어 했다.
“왜 장하나예요?”
“아. 예전에 제가 브랜드 Han 모델 섭외 담당일 때가 있었는데. 장하나도 순위에 있었거든요. 그때 팔로워 수가 120만 명이었는데 현재 몇 명인지 아세요?”
“아니요 아직 확인 못 했어요.”
“330만이에요. 웬만한 톱스타급이에요. 그런데 계약금은 1/3도 안 될 거예요. 왜냐 스타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장하나를 써야겠죠.”
“그러네요. 그럼 얼른 식사하세요.”
“사장님 눈빛이 방금 반짝이셨어요.”
앗 그랬나.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겨났다.
게시물 한 번에 330만 명에게 광고를 할 기회이지 않은가.
그녀의 식사가 끝나갈 때쯤.
다니엘과 아버지도 회사에 출근했다.
“좋은 아침.”
“뭐 좋은 일 있어? 얼굴이 밝다.”
다니엘이 아침부터 환한 미소를 머금고 공방에 들어섰다.
“오늘 가방 디자인 최종본 준다며. 빨리 만들어 보고 싶어서. 근데 넌 왜 얼굴이 죽상이야?”
“아 좀 그런 일이 있어.”
“뭐야. 디자인 완성 안 됐어?”
나는 다니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테이블에 파일철 하나를 던졌다.
그는 냉큼 서류를 펼쳐 가방 디자인 최종 시안을 바라봤다.
“뭐야 다 했잖아. 문제 되는 부분 아예 새로운 디자인으로 보완했네. 와…….”
다니엘의 감탄사에 신지혜와 아버지도 파일철 앞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신지혜는 파일철을 다니엘의 손에서 뺏어 들고 뚫어지게 쳐다보는 중이다.
“말도 안 돼…. 하루 만에 느낌이 아예 바뀌어 버렸네요.”
“네 그렇게 됐어요.”
“사장님 천재긴 천재네요.”
“노력파죠.”
“분위기도 훨씬 젊어졌어요. 광고 콘티도 살짝 바꿔야겠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발 빠른 업무능력 덕분에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 많았다.
“아. 아버지랑 다니엘도 죽 좀 드세요.”
“다니엘 챙겨줘라. 나는 아침밥 든든히 먹고 왔다.”
아버지의 말에 다니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고 보니 다니엘은 완전 이국땅에서 왔네.’
도시락 두 개를 들고 기분 좋아하는 그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 또 말해 사다 줄게.”
“와 진짜 사장 굿굿!”
그래그래 많이 먹어라.
오늘 할 게 태산일 텐데.
새로운 디자인이 나온 날인 만큼 가방의 패턴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최종 시안이 나왔으니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도면을 짜내야 한다.
“다니엘 도면프로그램 학교에서 배웠지.”
“……응. 어떻게 알았어?”
“친구한테 들었어.”
“거짓말.”
웃음이 나올 뻔했다.
다니엘이 볼에 바람을 넣어 부풀렸다.
그 모습이 친구이지만 귀엽게 느껴졌다.
“거짓말이건 아니건. 컴퓨터 작업 해줘 철형 업체에 보내야 해.”
“알겠어.”
철형은 가죽 재단하는 도구다.
가죽 위에 철형을 올린 후.
가죽 프레스기를 이용해 강한 압력을 부여하면 날카로운 틀에 맞춰 가죽이 재단된다.
소수의 인원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는 방법이다.
다니엘과 나 같은 에르맥스의 장인만큼은 아니지만 섬세하고 정교한 방법이기에 명품 브랜드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다.
“다니엘 그리고.”
“그만. 알고 있어 이 악덕 고용주야. 통가죽, 염소 가죽, 앱송(소가죽의 일종으로 에르메스의 버킨백, 켈리백에 주로 사용되는 고급가죽.) 가죽으로 일단 만들게.”
“부탁해.”
다니엘과의 대화가 끝나고 바로 신지혜가 나에게 말을 이었다.
“빨리 번호 주세요.”
“네. 잠시만요.”
나는 휴대전화 연락처를 뒤져 장하나의 번호를 신지혜에게 전달했다.
신지혜는 바로 장하나에게 전화 연결했다.
“바로 받는데요.”
나는 숨죽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해.’
마침 신지혜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뭐래요?”
“일단 만나기로 했어요. 문제가 많은 거 같아요.”
“언제 만나면 되죠?”
“바로 만날 수 있다네요. 같이 가실 거죠?”
“네.”
우리 둘은 장하나가 묵고 있는 오피스텔 근처로 향했다.
“아 그리고 제가 아까 장하나 인스타 확인했는데 팔로워가 많이 빠졌더라고요.”
“갑자기요? 사건이 터졌다고 해도 기존 게시물 구독자들이 있을 텐데.”
“그게…. 게시물을 모두 지웠더라고요. 소속사가 한 짓인 거 같아요. 뭐 그래도 아직 250만 가까이 유지하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일이 더 루즈해지면 큰일 나겠네요.”
“그렇죠.”
운전을 하고 있던 신지혜가 액셀러레이터를 더 강하게 짓눌렀다.
알게 모르게 조바심이 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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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때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쓴 장하나와 매니저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장하나 씨 반가워요.”
“네. 죄송한데 안에 들어가서 대화해요. 보는 눈이 많아서요.”
“그래요.”
넷은 룸으로 이루어진 카페에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장하나 매니저 안현수라고 합니다. 우리 하나를 정말 브랜드 모델로 쓰고 싶다는 게 맞습니까.”
성격 급한 양반이네.
안현수는 모두가 자리에 앉자마자.
나와 신지혜를 바라보며 차례로 질문을 해 대기 시작했다.
신지혜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
“네 장하나 씨와 계약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전속으로 할 생각입니다.”
신지혜가 자기 생각을 정확히 전달했다.
그런데 정작 모델이 될 장하나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계속 안현수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안현수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어갔다.
“저희 현재 소송 중인 건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