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신지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술 냄새 나니까. 얼른 내 집 앞에서 사라지쇼.”
나는 그 순간 그의 손가락 끝을 보았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끊음질을 하며 생겨난 손가락의 두꺼운 굳은살이 도드라져 있었기에.
이 노인이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최고의 나전장이신 신영길 선생님이 확실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선생님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이놈이, 안 놔? 네가 찾는 장인 여기 없어!”
신영길은 나에게 윽박지르며 내 손을 뿌리쳤다.
나는 더는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무 완강하게 거절했고 나전에 관한 이야기 자체를 꺼리는 듯했다.
신지혜와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큰일 났네요. 이제 시작인데 벌써 이러면.”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죠. 쉽게 일이 풀린다 했는데.”
나와 신지혜는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신지혜는 목이 탔는지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슈퍼에 들어갔다.
그런 우리에게 아주머니가 다시 질문을 해오셨다.
“왜 벌써 왔어?”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아까 전의 상황을 설명했다.
“어휴. 영감님 아직도 그러시나 보네.”
“네?!”
“부인 돌아가시고 맨날 술에 취해 사셔. 벌써 1년은 됐는데.”
신지혜와 나는 음료수를 마시며 아주머니가 토해내는 신영길 장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영감님이 그 뭐냐, 나전인가 그거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전국을 돌아다녔거든. 부인한테는 엄청 소홀했어. 우리 마을 사람은 다 알지.”
“아…….”
“그런데 아주머니가 암에 걸린 거야. 근데 다 죽어가는데도 영감님 한 번을 안 불렀어. 큰일 하는 양반이라고. 참 나, 그게 뭐 큰일이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어떻게 되긴. 병원에 실려 갈 때쯤에 찾아와서 펑펑 울면서 병간호도 못 하고 떠나보냈지. 그게 한이 된 거지, 미안하고.”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평생을 나전을 위해 산 장인이 한순간에 모든 걸 내려놓은 절절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였다.
신지혜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사장님 먼저 서울로 올라가세요. 아직 할 일 많을 텐데.”
“디렉터님은?”
“저는 남을게요.”
“네?!”
나는 놀라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빙긋 웃어 보이며 내 등을 떠밀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니 먼저 올라가세요.”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 같은데 같이 가시죠. 시간도 곧 밤이고 내일 다시 오든지.”
“사장님! 저분 중요한 분이죠?”
“그거야…. 당연하죠.”
“그럼 저 한번 믿어주세요.”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신지혜는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결과를 만들어 오는 사람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그녀의 말에 믿음이 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제발 장인의 마음을 움직이길 기원했다.
“그럼 저 먼저 올라갈게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주세요.”
“네, 걱정하지 말고 올라가세요.”
그녀가 나를 향해 걱정하지 말고 떠나라며 손사래 쳤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 안 할 테니 어서 가세요. 저 이제 바쁠 거니까.”
그렇게 나는 경기도를 떠나 다시 서울로 향하는 차에 몸을 옮겼다.
“제발….”
나전장 신영길.
내가 생각하는 많은 디자인에 이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아리raM에 꼭 필요한 장인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전을 그만두게 하면 안 되는 국가의 재산이다.
“황 선생님 도움을 받아야 하나. 하.”
나는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일단 신지혜를 믿어 보기로 한 이상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 와 가네.”
내가 탄 택시가 서울에 막 진입하려는 그때.
전화벨이 울려 퍼졌다.
따르릉!
계획
* * *
나전장 신영길 선생님의 이야기를 뒤늦게 알게 된 황의선 선생님의 전화였다.
나는 있었던 일을 전달하고 거기에 신지혜 디렉터가 남았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래…. 그 영감 고집 장난 아닐 건데. 그 친구 성격은 어때?”
“뭐 서글서글해요. 잘 해낼 겁니다.”
“그렇다면 일단 맡겨둬야겠네! 나도 감당이 안 되는 영감탱이라서.”
“네 선생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을. 내가 돕는다고 하지 않았나.”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잘돼야 할 텐데.”
서울에 도착하니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어 버렸다.
어두운 골목길에 있는 아버지 공방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새로 들여온 기구들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계셨다.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뭐 하세요?”
“놀라라 이놈아!”
“기계들은 마음에 드세요?”
“좋아. 대형 피할기 한 대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는 생각만 했지 이렇게 내 가게에 있으니까 기분이 좋다. 나는 가격대가 무서워서 엄두도 못 냈는데.”
“꼭 필요한 것만 들여놓은 거예요. 차후에 생각해 둔 것도 많아요.”
“그럼 재봉도 전부 다 바꾸자.”
“돈 없어요.”
공방에 들여온 기계는 가죽 프레스기와 대형 가죽 피할기다.
우리가 흔히 아는 천연가죽 원피는 150mm 정도의 두께를 가지고 있다.
가방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로 두께를 조절해야 하고, 좋은 퀄리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하는 게 좋다.
그런 이유에서 대형 피할기가 꼭 필요했다.
“제가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아 연락은 다 남겨 뒀다. 근데 다들 개인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 그게 쉬울지 모르겠네.”
“꼭 한자리에 모아주셔야 해요. 그분들이 없으면 생산 못 할지도 몰라요.”
“알았다. 최선을 다해보마.”
두 번째 단계는 바로 가죽장인들을 모으는 일이다.
우리는 에르맥스처럼 장인 학교를 세우고 브랜드로 편입시키는 제도를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돈이 들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단계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죽을 다루는 다수의 장인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에 내가 고심 끝에 생각한 방법은 전국에 개인 가죽 공방을 운영하는 장인들을 아리raM에 편입시키는 거였다.
각 공방에 지정점을 주고 가방을 주문생산하는 방식으로 한다면 그들도 큰 이득이 생길 거다.
내 의견을 받아준다는 조건 하에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 * *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의 공방이자 아리raM의 작업실로 향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큰 문제 없이 브랜드 런칭 준비가 진행되어가고 있다.
“저 먼저 가요.”
“뭐 그렇게 급해 같이 가.”
우리는 오늘 전국에 있는 가죽 공방을 운영하는 장인들을 모아 사업설명회를 할 예정이다.
내가 공방에 도착하니 단아한 오피스 룩을 차려입은 신지혜가 다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벌써 나오셨어요.”
“네. 떨려서 집에 있기 좀 그렇더라고요.”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그녀도 기대하고 있을 거다.
내가 만들어 가는 브랜드가 얼마나 크게 성장할지에 대해.
신지혜와 나는 넉넉한 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 준비와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모두 마쳐 갔다.
정해진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떨려왔다.
.
.
.
시간이 다가올수록 공방 장인들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설렘에서 초조함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왜 아무도 오지 않는 거지.”
내 옆에 계시는 아버지도 상당히 초조한 모습이다.
공방 장인을 모으는 일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계셨다.
아버지는 실력이 알려진 가죽장인 30명에게 연락을 해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공방을 찾아주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때 전화를 받고 밖에 나갔던 신지혜가 사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선생님들 오셨어요.”
약속 시간에 맞춰 전각장 안윤호와 나전장 신영길 선생님이 먼저 공방에 도착했다.
“선생님 여기 앉으세요. 차 드릴까요?”
“바쁜데 우리는 신경 쓰지 마. 우리 알아서 챙겨 먹을 테니.”
두 선생님 모두 손사래 치시며 거절하셨다.
바빠 보이는 나에 대한 배려였다.
나는 그런 모습에 가슴속에서 존경이 우러러 나왔다.
“두 분 다 이렇게 와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리고 뒤에 있던 신지혜가 신영길에게 다가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선생님 탄 밥 한번 또 드셔야죠.”
“아서라, 네가 하는 밥은 다시는 안 먹는다.”
“또 이러신다. 제가 5일 동안 밥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 * *
한 달 전.
신지혜는 신영길을 설득하기 위해 그곳에 남아 하루가 멀다 하고 신영길을 따라다녔다.
3일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라만 다녔고 4일째 되던 날.
매일 올라가시는 산을 같이 올라가게 되었다.
“오늘은 웬일로 안 막으세요.”
“막는 것도 귀찮다. 올라오고 싶으면 올라오든지.”
매번 산 입구에서 그녀를 막던 신영길이 그날은 신지혜를 막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도 왜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올라가는지 궁금했기에 그의 뒤를 따라 산에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작은 봉분 하나가 있었다.
“인사해. 내 마누라야.”
“아…. 네.”
신지혜는 그제야 그곳에 돌아가신 신영길의 부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옷을 매만지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한 후 절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을 바라보니 그에게 아득한 외로움이 보였다.
다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순간.
신영길이 먼저 신지혜에게 말을 걸어왔다.
“뭐 하러 며칠째 따라다니고 그래.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 없는데요.”
“원하는 것도 없으면서 왜 따라다니는데.”
“선생님 이야기 좀 들어 드리려고요.”
“늙은이 이야기 들어서 뭐 하게.”
“궁금하잖아요. 나전칠기로만 몇십 년을 파고드신 분 이야기.”
“좋지도 않은 이야기 마누라 앞에서 하기 싫다. 내려가자.”
그렇게 둘은 산에서 내려왔고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신지혜는 따뜻한 밥을 신영길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 자처해서 밥을 짓기로 했다.
“제가 밥을 할게요.”
“…….”
“못 믿으시는 거 같은데 밥 잘해요.”
“그래 그럼 한번 해봐.”
신영길도 서글서글한 그녀의 태도가 썩 나쁘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딸이 있다면 이랬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을 터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밥이….”
“선생님 좀 타고 그래야 더 맛있어요.”
“어휴.”
한숨을 내쉬다가 갑자기.
“하하하.”
“선생님…….”
“아니 기뻐서. 미안하네.”
숟가락으로 밥을 드시며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직도 자책하고 계신 마음에 신지혜의 마음도 메여왔다.
그렇게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신영길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지혜는 일주일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선생님 저 이제 일하러 가야 해요. 저희 사장님 등골 빠지겠대요.”
“남자 놈이 혼자서 일도 못 한대.”
“그러게요. 저 갈게요 선생님.”
“…….”
그는 그녀의 말에 뒤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섭섭함에 대한 표현이라는 걸 신지혜는 알고 있었다.
“선생님! 저 간다고요.”
“가라고. 너희 사장 연락처 적어두고 가.”
그렇게 투명하게 말을 던지고는 신영길은 다시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신영길의 연락에 진혁이 그곳을 다시 찾아갔고 신영길과 아리raM이 함께하게 되었다.
“계약서류는 들고 왔어?”
“네. 여기요.”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날의 기억을 다르게 회상했다.
전각에 나전칠기를 끝마치고 피어나는 밝은 빛.
내 눈 앞에 펼쳐진 영상.
그 뒤로 나는 아리raM의 희망과 내가 바라보던 역사를 새롭게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