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00)

‘하…. 역시 그랬나.’

왠지 모르게 찝찝했다.

더 나은 길이 있다면 모든 걸 버리고 이곳을 떠나려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너 오늘 한가하냐?”

“네 뭐. 백수니까.”

나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눈빛이 잠시 빛났다는걸.

“그 눈빛은 뭐예요.”

“그게 아니라. 내가 어디 초청받은 게 있는데 너도 같이 가면 좋을 거 같아서.”

전혀 그런 이유가 아닌 듯한데 속아 드려야 하나?

내 유명세가 아직 식지 않은 상태다.

사람이 많은 곳을 간다면 간혹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터.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왠지 내 자식이 유명하면 자랑하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랄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유명세로 아버지의 기를 살려드리려 마음먹었다.

“같이 가세요.”

“정말!?”

“네.”

아버지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 대답에 어머니도 웃으시며 아버지에게 부럽다며 장난을 치고 계셨다.

“진혁아. 다음에 엄마랑 시장 한번 가자. 약속.”

“……네.”

역시 아버지 못지않은 어머니였다.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가슴속이 따뜻해졌다.

“편하게 입어도 되죠?”

“정장 있잖아. 그거 입어 오늘 정말 귀하신 분들 모인다고 들었으니까.”

“누구길래?”

“가보면 안다. 준비해라.”

어디에 가는 것인지 아버지는 살짝 들떠 보였다.

“어디 가시길래 저래?”

* * *

모든 준비를 끝내고 아버지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어디 가는데요? 이제 말해줘요.”

“국립 민속 박물관.”

“거긴 왜?”

“내가 어릴 때 가죽공예를 한답시고 이리저리 많이 다녔거든. 그때 인연이 되신 분이 전시하신다고 해서 초대받았어.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아 그래요.”

국립 민속 박물관.

한국의 문화의 모든 것을 보관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의, 식, 주에 쓰인 도구와 문화재들이 있는 곳이다.

“내리자.”

살짝 들떠 있던 아버지가 나를 재촉했다.

빨리 아까 말했던 그분을 만나고 싶어 하는 눈치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나도 갑자기 그분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국립 민속 박물관에 들어서니 별관으로 보이는 곳에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현대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장인들.

거창하다면 거창하지만, 왠지 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장인이라.”

오랜 시간 한길만을 파고들어 한 분야에 장인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한국의 전통 장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생활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지.

현대에 들어와 무형 문화재 장인들이 제자를 구하지 못해 명맥이 끊기는 일도 다반사라고 들었다.

내가 포스트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멀리서 아버지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얼른 안 오냐.”

“가요 가.”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긴 별관의 복도를 빠져나와 별관에 도착했다.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몸이…….”

마치 시간이 멈추듯 내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게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거처럼 내 눈앞에 강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밝아.”

다행히 이번에는 불결하고 소름 끼치는 검붉은 빛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강렬한 빛 때문에 눈조차 떠지지 않는 상황.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한곳에 모여들며 내 눈을 집어삼킬 듯 다가왔다.

“악!”

짜릿한 기분이 온몸을 강타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에 존재하는 나는 따뜻하고 푸근한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좋은 느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펼쳐진 풍경은 검붉은 빛에 흘러나오는 영상보다 더 참담했다.

“사람들이….”

무참히 칼날에 찢기고 총탄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 속에서 그들은 굳건히 한자리에서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도망쳐!”

가슴이 답답해 소리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도…. 망….”

팔로 함을 가슴 깊이 안고 있는 사내에게 내 목소리가 닿은 걸까?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 순간 온 전신에 소름이 끼쳐왔다.

“무슨?!”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브랜드 Han의 의류 시안 속의 그녀도, 서럽게 울고 있던 류하나도 나의 대답에 응해준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다르다.

내 목소리를 듣고 상투를 튼 중년의 남성이 서서히 나에게 걸어왔다.

근엄하고 패기 있는 걸음걸이.

총탄이 날아들고 날이 선 칼이 그의 목을 스쳐 지나가도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에 목으로 수없이 외쳤다.

“빨리 더 빨리.”

남자의 뒤로 일본군으로 보이는 남성 셋이 미친 듯이 그에게 달려왔다.

탕! 탕!

그리고 커다란 총소리가 짧게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어이없게도 나에게 다가오던 남성은 내 바로 앞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젠장!”

굳어 있는 내 몸을 움직이려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눈앞에 쓰러진 남성이 나에게 살짝 웃어 보이며 가슴속의 함을 내게 내밀었다.

가슴속이 먹먹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기분.

죽어가는 순간이지만 그의 눈에는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가까스로 손을 뻗어 나무함을 받아내려 애썼다.

“조금만 더.”

그 순간 내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모든 실체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멍하니 공허한 공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

그가 지키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정지된 시간이 풀리고 내 몸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한국 전통 공예품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이 나타났다.

순간 내 온몸에서 전율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이거라는 거야?”

정답을 알고 있다면 알려 달라며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판단은 내가 해야 했다.

“어쩌라는 건지….”

이 공간과 흘러나온 영상의 연관성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이곳에 답이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며칠을 고민한 갈림길을 신비한 능력이 힌트를 주는 듯 말이다.

“차진혁.”

멍하니 있던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아버지에게 향했다.

천천히 갔다가는 잔소리가 쏟아질 게 뻔했다.

“그만 좀 불러요. 저 애 아니에요. 길 안 잃어버려요.”

“잘 따라다녀 요놈아.”

투덜거리며 아버지에게 다가서자.

아버지가 내 등을 앞으로 떠밀며 나를 누군가에게 소개했다.

“선생님. 제 아들놈입니다. 진혁아 인사드려라. 화혜장(靴鞋匠) 황의선 선생님이시다.”

화혜장(靴鞋匠) [무형 문화재 제116호] 전통 가죽 신발을 만드는 장인으로 조선 시대 상의원 중 한 명이다.

“안녕하세요.”

인자한 얼굴과 작은 키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할아버지가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크게 웃어 보이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신청했다.

나는 그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고개를 숙였다.

‘단단하다.’

그의 손은 오랜 세월 가죽을 만졌는지 굳은살이 가득했다.

순간이지만 이런 손을 가진 사람이라면 존경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의 손을 놓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형만이 아들 맞아? 뭐 이래 훤칠해.”

“선생님 저도 어릴 때는 훤칠했습니다.”

“됐고, 근데 네 아들놈 낯익다.”

“그게….”

아버지가 말을 이으려다 말고 나를 뻔히 쳐다본다.

당사자를 앞에 놓고 자랑을 하려니 내 눈치가 보이나 보다.

나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눈빛을 아버지에게 보냈다.

내 눈빛을 읽은 걸까. 환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그 얼마 전에 패션쇼 하는데 난리였지 않습니까. 뉴스도 나오고 팬클럽도 생기고 요새도 간혹 인터넷에 올라와요.”

“오호 그래. 유명인사가 여길 다 찾아주고 내가 영광인데.”

황의선은 너털웃음을 내비치며 우리를 자신의 전시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화려하네요.”

나는 전시된 여러 신발을 바라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꽃신인 목단수혜와 십장생 수혜가 눈에 들어왔다.

가죽신에 아름다운 나무와 꽃, 새가 그려져 있는 게 인상적이다.

내가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고 있을 때.

흥미진진한 내 표정에 황의선 선생님이 나에게 말을 붙였다.

“어때? 젊은 디자이너가 봤을 때.”

“제가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한데요.”

“그런가.”

그 뒤로 잠시 침묵이 흐르고 선생님의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이걸 누가 살 거 같은가?”

“흠…. 명절에나 사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렇지.”

“하지만 선생님이 만드신 건 작품이니까. 언제라도 사고 싶을 거 같은데요.”

내 말에 기뻐할 줄 알았던 황의선 선생의 인상에 잠시 그늘이 드리웠다.

“그래서는 안 되지. 이건 신는 건데 작품으로 전시만 해서는 신발이 울 거야.”

“그런가요.”

“바쁠 텐데 내가 하나 더 물어보고 싶은데.”

“네 말씀하세요.”

그는 환한 웃음을 나에게 보이며 부끄럽다는 듯 자신의 숨겨놓은 속내를 드러냈다.

“유명한 디자이너라니 물어보겠네.”

“유명한 건 아니에요.”

“하여튼 한국의 전통 공예품을 가지고 현대적으로 상품화할 수 있겠나? 패션에도 접목하고.”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를 나는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 의견을 전달했다.

“가능합니다. 충분히 패션에 접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는 말이지.”

“네.”

나는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전통 공예품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기성품에 밀린다.

아무리 나라에서 지키려는 무형 문화재지만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사라질 것이다.

상품성을 키우고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한다면 전통과 상생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번뜩였다.

“이걸 내가 바꿀 수 있다면.”

순간 많은 생각이 물이 밀려오듯 가득 차올랐다.

나는 천천히 기획전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거라면.”

모든 공예를 접목할 수는 없지만, 패션과 합쳐진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거다.

생각이 굳혀지는 순간부터 멈춰 있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고민했던 가장 좋은 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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