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00)

그리고 젊은 경찰관이 나에게 슬쩍 다가왔다.

“잠시 자리 좀 벗어나시죠.”

“네.”

우리 둘은 엘리베이터 중간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몸을 옮겼다.

“신고자분이시죠?”

“네.”

“흠……. 이게 지금 여성분이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서 저희도 어찌할 방도가 없어요. 신고가 들어왔으니 둘 다 경찰서로 가긴 해야겠지만.”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게 확실한가입니다. 저희 입장도 있어서요.”

나는 잠시 말을 곱씹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한미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해맑은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녀.

그리고 소름 끼치게 전신을 자극한 검붉은 빛.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확신합니다.”

“알겠습니다. 신속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나와 젊은 경찰은 다시 802호로 향했다.

다시 오피스텔로 도착하는 순간.

정신을 어느 정도 차렸는지 장현석의 부인이 장현석을 흔들며 악을 지르고 있었다.

“미친 새끼야 거지 같은 놈 내가 겨우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네가 날 배신해! 넌 이제 끝이야 끝이라고!”

“여보 정말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

정말 뻔뻔하게도 거짓말이다.

아내도 모르는 오피스텔에서 매번 술 취한 여자를 겁탈한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인 만큼 정말 신빙성이 없었다.

“가시죠.”

젊은 경찰관은 장현석의 팔목에 쇠고랑을 채우고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장현석은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일어났고 부끄러운 건 아는지 자기 바지를 챙겨 입는다.

그리고 나를 지나쳐 현관을 빠져나오며 나에게 경고했다.

“내가 이대로 끝날 거 같아! 내가 너 죽을 때까지 쫓아갈 거야.”

“그러세요.”

나는 눈웃음치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안심하세요. 특수강간은 최소 3년은 받을 겁니다.”

“네 걱정 안 합니다.”

내가 걱정됐는지 젊은 경찰관이 나에게 안심하라며 형벌의 무게를 알려줬다.

“3년이라.”

나는 3년의 세월이 지나면 장현석 같은 놈이 쳐다도 볼 수 없는 곳에 가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때 되면 말도 못 걸 놈이 무슨.”

젊은 경찰관이 장현석을 데리고 나가자.

뒤를 이어 소방관 두 명이 들것을 가지고 달려왔다.

그리고 누워있는 여자를 들것에 옮긴 후 오피스텔의 방을 빠져나갔다.

“신고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큰일 하신 거예요. 차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선임으로 보였던 경찰관은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 공간에 남은 사람은 장현석의 부인과 나뿐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사모님. 괜찮으세요?”

“네…….”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가난했던 장현석과 결혼해.

장현석이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그녀의 집안이 나름 알아주는 졸부라고 장현석이 매번 자랑하는 걸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야 이거 보이냐 이번에 처가 가서 하나 가져왔다.”

“롤렉스 아닙니까?”

“그래 이런 게 집에 한가득이라서 하나 주시더라.”

“선배님 차 바꾸셨습니까?”

“그래 이번에 벤츠로 바꿔주더라.”

“형수님이요. 이야 부럽습니다.”

뭐 여러 상황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끝났다.

현재 그녀의 눈을 보아.

장현석은 이제 빈털터리가 될 게 뻔했다.

“연락해줘서 고마웠어요. 설마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녀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손으로 겨우 부여잡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이제 끝인가.”

장현석을 끝장냈지만 뭔가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저런 쓰레기 한 놈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았는가.

“어휴….”

그리고 나는 전화기를 들어.

한미나에게 문자 한 통을 남겼다.

― 덕분에 잘 해결됐습니다.

* * *

다음 날 회사에 난리가 났다.

경찰관들이 아침부터 찾아와 한은샘과 대화 중이다.

나는 딴청을 피우며 모른 척하고 일에 집중했다.

.

.

.

“그러니까 현석이가 마약에 성범죄까지 저질렀다는 말씀이시죠?”

“네. 어제 저희가 긴급체포했고요. 그곳에 있던 피해자가 정신 차리고 나서 모두 진술했습니다.”

“그럼 현석이는 어떻게 되는 거죠?”

“조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차후 피해자가 더 나올지도 모르지만, 오늘 안에 기소 처리 끝내고 구속할 겁니다.”

“…….”

한은샘은 경찰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으며 혀를 찼다.

그리고 경찰관이 아침부터 이곳을 찾은 연유가 궁금했다.

“그런데 회사는 왜?”

“가해자 휴대전화 번호 조회해보니까. 특정 인물 몇 명 빼고는 거의 다 모델 지망생이더라고요. 그중에 피해자도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피해자가 나와서 조사해야 합니다.”

“모델 지망생이요?”

“네. 그러니까 이 회사에서 일들이 벌어졌다고 추정 중입니다.”

“아…….”

“회사에 가해자 자리도 봐야 하고 연루된 사람도 있는지 확인할 겁니다.”

“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한은샘은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안했다.

‘소문이라도 나면…….’

다수의 피해자가 모델 지망생이라는 말에 회사의 이미지가 얼마나 망가질지 두려워졌다.

패션 회사와 모델은 떼 놓을 수 없는 상생의 파트너다.

그런데 구설수에 브랜드 Han의 이름이 거론된다면 패션쇼는 이제 없는 일이 되고 말 거다.

“총괄디자이너.”

“네 사장님.”

“두 형사님 장현석 자리로 안내해드려 그리고 필요한 거 있으면 최대한 도와드려.”

“형사요?!”

“그래.”

박한우는 멍해진 얼굴로 두 형사를 교대로 쳐다봤다.

처음 회사에 들어오는 둘의 행색을 보아 남다름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형사일지는 꿈에도 몰랐다는 얼굴이다.

두 형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박한우를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안내 안 합니까?”

“네, 네 갑니다.”

박한우는 그 둘을 앞질러 장현석의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짧은 머리 스타일을 가진 형사가 박한우에게 말을 이었다.

“박한우 씨라고 했죠. 뭐 하나 물어봅시다.”

“뭘요?”

“장현석이라는 이 사람 회사에서는 어떠했습니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별로 아는 게 없어서.”

“친했던 사람은?”

“…….”

“박한우 씨 직함 뭡니까?”

“현재 총괄디자이너입니다.”

“같은 디자이너인데 왜 아무것도 모릅니까!”

짧은 머리의 형사는 버럭 화를 내며 박한우를 몰아세웠다.

“그게……. 말을 섞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돼서.”

“무슨 회사가 이래.”

박한우도 질문에 선뜻 대답할 게 없었다.

자신에게 다가온 장현석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 잠시 가까워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를 대변하자니 불안했다.

“근데 현석이가 뭘 잘못했나요?”

“잘못했으니 저희가 왔겠죠.”

작은 키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스포츠머리의 형사가 답변하기 귀찮다는 듯 박한우에게 손사래 쳤다.

“여깁니다. 현석이 자리.”

두 형사는 아무 말 없이 책상 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영장을 가져온 건 아니지만 한은샘이 허락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소란스러운 모습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현장을 나도 보고 있었다.

“내 답이 맞았나 보네.”

이 상황을 비추어 보면 내 추측이 모두 사실인 게 확실했다.

‘정말 끝났네.’

한참 동안 책상을 뒤지던 형사들이 이후.

브랜드 Han의 직원들 한 명 한 명을 회의실로 불러내 질문을 이어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진혁 씨? 신고자분이시죠?”

“네.”

“뭐 신변 보호 차원에서 회사에는 밝히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그렇다고 예외는 또 아닙니다.”

“네.”

“아실 테지만 마약 사건입니다. 쉽게 넘어갈 수가 없어요.”

역시.

이들은 성폭행 사건 때문에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네, 아는 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는 게 많지 않지만, 최대한 협조했다.

한참 동안 조사가 이루어졌고 형사들과 함께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한은샘과 박한우, 그리고 신지혜까지 초조한 표정으로 회의실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형사들은 짧게 인사를 남기고 회사를 빠져나갔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가세요.”

한은샘은 그 순간.

신지혜에게 말을 이었다.

“현석이 퇴사 처리하고 기사 뜨면 우리랑 전혀 상관없다고 정정 기사 내. 이거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야.”

“네, 사장님.”

그리고 한은샘은 박한우에게 카드 한 장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점심때 싹 다 데리고 나가서 회식해.”

“네…….”

“모두 입단속 시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한은샘의 간절함과 리더십에 감탄했다.

한 명으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이유에 위의 행동은 합당했다.

그리고 한은샘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차진혁. 넌 나 좀 따라오고.”

다시 꿈을 꾸다.

* * *

한은샘을 따라 사장실로 향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알 거 같았다.

“앉아.”

“네.”

“무슨 일이야? 갑자기.”

“…….”

“뭐냐고 이게!?”

한은샘은 종이봉투 하나를 내 앞에 슬쩍 내밀며 질문했다.

나는 멍하니 봉투 한 장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말이 없자.

한은샘이 답답한 마음에 질문을 던져왔다.

“갑자기 무슨 사직서냐고. 설마 인기몰이 좀 했다고 나가서 사업하려는 거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긴 하다.

얼마 전까지 열의에 차 가방디자인을 만들어 왔던 내가 급작스럽게 사직 요청했으니 그도 많은 생각을 했을 터다.

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고개를 양쪽으로 돌렸다.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습니다.”

“한번 들어나 보자.”

“아버지 일을 이어서 할 생각입니다. 인기가 생겼다고 나가는 건 아니고요.”

“…….”

“제 능력에 비해 많은 걸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 부분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이르지 않아? 좀 더 배우고 나가든지.”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설교가 이어졌다.

걱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결심은 변하지 않을 거다.

“내 밑에서 조금 더 성장해서 나갈 생각은 없어?”

“아버지 가게도 힘든 상황이라서 제가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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