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진혁 디자이너님은 모델로도 활동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디자이너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습니다.”
“최고의 자리라면?”
“아직은 이르지만, 최고의 명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내가 대답하는 순간.
한은샘과 박한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꿈같은 이야기이지 않은가.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야기.
하지만 그걸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벽이라는 게 존재하기에.
그때 위아래를 흰색으로 통일한 여성 정장을 입은 여성이 나에게 질문해 왔다.
“어떻게 만든다는 거죠?”
“그건 비밀입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진 그녀는 나를 향해 비웃듯 피식 웃어 보이고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누구야? 내 말이 웃긴가?’
내 거침없는 대답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느낄지도 모를 거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한번 겪어 본 과정이다.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에 따르는 과정을 겪은 경험이 나에게 있다.
다시 이루지 못할 게 없다.
“이제 들어가자.”
더 많은 질문이 쏟아질 거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한은샘은 빠르게 피날레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무대 뒤로 돌아왔다.
“차진혁.”
“네.”
“너 그 말 너무 경솔했어. 모두가 그렇게 말하지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야.”
“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한은샘은 나를 걱정하는 듯했다.
잘못된 대답으로 여러 사람의 시기를 살 수 있다.
그리고 부정적인 인식이 나를 공격할 거다.
건방지고 자만심 가득한 인간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마세요. 보여드릴 테니.’
그때 한은샘이 장난스레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 최고의 명품. 브랜드 Han으로 만들어 줘라.”
“…….”
나는 이 부탁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장현석 1.
* * *
컬렉션이 끝난 후.
밀려드는 물량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때 점심을 먹고 돌아온 박한우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최근에 총괄디자이너로 승진해 기분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점심 안 먹어?”
“먹어야죠. 이것만 끝내고요.”
“밥은 챙겨 먹고 해라.”
“네.”
“배고프네. 슬슬 마무리 지어 볼까.”
브랜드 Han의 매출이 최근 들어 200% 이상 성장했다.
초기 물량 판매율과 여러 이슈 거리와 디자인 변화 덕분에 매출에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주춤했던 가방 판매량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한 주에 400개~500개가 미친 듯이 팔려나갔다.
‘언제까지 실시간 검색 차트에 올라있을 거야.’
나는 모니터 화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틈만 나면 내 이름이 검색창에 오르내린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줄이야.’
금방 잊힐 거 같던 내 존재가 팬클럽까지 형성되며 점점 몸을 불려 나간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모니터를 꺼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모르겠다. 밥이나 먹자.”
요새 들어 점심시간을 놓치기 일쑤다.
나는 가방디자인을 한 당사자이기에 생산 중 일어나는 불량과 CS 업무가 추가되었다.
그렇다고 막내가 해야 하는 잡다한 일을 빼주지 않으니.
몸이 점점 지쳐갔다.
나는 굳어가는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뻐근해진 등 근육이 펴지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와 살겠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려 퍼졌다.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자리하고 있지 않은 상태.
“두고 갔나? 누구 전화야.”
나는 시끄러운 통화음을 멈추기 위해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뭐야 왜 하필 이놈 자리야.’
장현석의 자리다.
나는 전화벨을 무시하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이름에 잠시 돌리던 걸음을 멈추었다.
‘한미나?’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한미나라면 모델이다.
뭐 디자이너에게 걸려오는 모델의 전화야 대수겠냐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냥 장현석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뭐야 또.”
내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나며 잔털들이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장현석 책상에 쌓여있는 서류 더미에서 짙은 검붉은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미친…….’
전과는 다르게 광량이 엄청나다.
어둠에 집어 삼켜질 거 같은 이 불안감이 나를 긴장토록 했다.
불길한 예감!
아니나 다를까.
내 몸이 한순간에 굳어져 갔다.
그리고는 한순간 검은빛이 솟아오르며 내 눈동자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왔다.
“웩!”
나는 그 순간 불결한 느낌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소름 끼치는 감각이 내 온몸을 지배했다.
그리고 한 여인이 내 앞에서 한없이 울고 있다.
억울한 걸까.
꺽 꺽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아.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복수를 해 달라는 눈빛으로.
“…….”
나는 저 간절한 눈빛을 보고 슬픔에 잠겨 들었다.
그리고 내 눈을 집어삼켰던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한미나?”
영상 속에서 지켜본 그녀는 장현석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건 인물이 분명하다.
“전화와 한미나…… 장현석.”
내 머릿속이 다시 한번 꼬여가기 시작했다.
“뭔가 있어.”
* * *
나는 울렁거리는 속으로 점심은커녕 간식조차도 입에 넣지 못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머릿속에서는 잡다한 생각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 왜 한미나가 그 영상의 주인공인 거지?
― 왜? 장현석의 휴대전화에 발신자가 한미나였을까?
나는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거다.
나는 밀려드는 일을 하며 머리를 조금 식히려 애썼다.
하지만 이 물음에서 빠져나오려면 내가 무언가를 행해야 했다.
“다들 모여봐.”
매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박한우가 소리치며 모두를 한자리로 불러들였다.
박한우는 이름처럼 머슴같이 생긴 커다란 덩치를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 장의 서류종이를 머리 위로 흔들어 보였다.
“이번 신제품 가방 판매량 4000개 달성했다.”
“와…… 벌써요.”
“그래 그리고 기쁜 소식 하나 더. 사장님이 모두에게 금일봉을 주시기로 하셨다.”
“정말요.”
성과에 합당한 부상이 주어진다는 건 기쁜 일이다.
모두가 힘껏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하지만 예외는 존재했으니 그게 바로 나다.
현재 나는 애매한 감정이다.
‘또 시달리겠네.’
가방 판매율이 올라갈수록 장현석과 주위 디자이너들의 시기 질투가 심해진 지 오래다.
몇몇은 그마저도 지쳤는지 나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장현석이 한 번씩 날리는 말에 다시 동조하는 인원들이 생겨났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어김없이 장현석이 나에게 딴지를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차진혁 너는 금일봉 안 받아도 되잖아.”
“그게 무슨?”
“왜 너는 디자인 로열티 따로 받잖아. 금일봉까지 받아가면 반칙 아니야?”
이때까지 단 한 번도 그의 말에 반문하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못났다 해도 나보다 몇 년을 앞선 선배이기에 참고 참았다.
하지만 아까의 일이 생각나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게 그거랑 같습니까?”
“뭐?! 대드냐?”
“그게 아니라.”
“돈 좀 벌었다고 하늘 같은 선배한테 대드네. 이거 억울해서 회사 다니겠어.”
그의 한마디에 주위반응도 심상치 않다.
“그런 뜻이 아니라.”
“차진혁! 선배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
“사과드려. 요새 1년 차는 하늘도 모르고 까부네.”
나는 이때까지 함께 고생한 디자이너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참고 참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멈춰있던 나의 시한폭탄이 오늘에서야 터지고 말았다.
‘너희들 사람 잘못 봤어.’
차진혁이 된 이후.
참고 참았다.
이 녀석이 꿈꿔온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에서는 위계질서가 가장 우선시되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오늘 모든 걸 내려놓을 각오가 되었다.
“적당히 하시죠.”
“뭐! 적당히?”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적당히 하라고.”
“미쳤어? 네가 안 참으면 어찌할 건데. 왜 치게? 쳐봐 나도 돈 좀 벌어보자. 하하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고작 한다는 생각이 그겁니까?”
“뭐 이 새끼야!”
말싸움이 커졌다.
말리는 사람도, 방관하는 사람들도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늘 중재자 입장이었던 박한우도 팔짱을 끼고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본다.
그리고 나는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예측할 수 있었다.
‘내 편은 없네.’
나는 두 달 동안 누구보다 좋은 성과로 회사에 보답했다.
그렇다면 인정은 못 해줄지언정 이 정도 권리는 나에게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인 듯 보였다.
“장현석 디자이너님, 무릎까지 꿇어가면서 회사에 남았으면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않아요? 왜 김경희가 시켰어요? 나 때문에 회사 나가게 돼서?”
“뭐야! 이 새끼야 입 안 다물어.”
장현석은 아랫입술을 씹어먹듯 깨물었다.
자신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소문난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몰랐다.
“너 두고 봐.”
“하…….”
장현석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경고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격앙된 상황이지만 나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어차피 약육강식에서 저놈은 능력 없는 약자일 뿐이다.
‘뻔뻔한 새끼.’
상황이 끝이 났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내가 자리로 돌아가려 하자.
박한우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차진혁! 따라와.”
“네.”
나는 길게 한숨을 내리 쉬며 박한우의 뒤를 따랐다.
그를 따라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아주 차갑게 나에게 꽂혔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