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200)

연출과 의류의 조화로 인해 내 정신까지 그곳으로 스며들었다.

“화려하네. 좋다…….”

자리에 앉아 있는 연예인과 잡지사 디렉터, 유명인들의 표정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반응이 나쁘지 않네.”

한눈에 들어오는 대형 룸의 풍경.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이라 믿었다.

그리고 안심했다.

“다행이다. 전개도대로 잘 바꿨어.”

쇼가 진행되는 동안 흘러가는 상황을 계속해서 체크했다.

조명과 모델에게 비추는 조명을 색의 변화를 말이다.

이번 브랜드 Han의 쇼는 의상에 따라 조명이 바뀌고 빛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중요했다.

내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전개도를 임의로 변경했기에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모델과 무대 전체를 비추는 조명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빛과 의상이 하나 되어 패션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 * *

나는 무대를 빠져나온 모델들을 한 명, 한 명 확인하며 즉시 다음 의상을 지정해 주었다.

한 치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순간.

그런데 그때였다.

“으악!”

쿵.

무대와 대기실을 연결하는 통로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확인을 위해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뒤를 따라 한은샘과 스태프들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모델이 다친 거 같습니다.”

남자 모델이 바닥에 주저앉아 괴로워하며 발목을 부여잡고 있다.

얼굴도 바닥에 있는 딱딱한 모서리에 찍힌 듯 피가 흘러내렸다.

계단을 내려가다 실수로 발을 접질린 듯 보였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아니요.”

“아…… 큰일 났네. 사장님 어쩌죠?”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쇼는 현재 진행 중이고 모든 결정은 CEO인 한은샘의 몫이다.

“대체할 남자 모델은?”

“없습니다. 남자 모델들 한 번에 다 나가야 합니다.”

브랜드 Han은 여성 의류가 주력인 브랜드다.

차기 기획을 노려 이벤트성 남성 의류를 위해 남자 모델을 소수로 뽑은 상태다.

현재 남자 모델이 한없이 부족하다.

“무슨 일이에요?”

그때 런웨이를 끝내고 내려오던 한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아 하율아. 남자 모델 다쳤다.”

한은샘의 소리에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남자 모델에게 걸어갔다.

남자 모델의 발목 상태를 확인하더니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쉰다.

“새끼, 조심 좀 하지! 일어나지 말고 구급차 불러서 병원 가.”

“네, 선배님. 죄송합니다.”

“괜찮아. 발목 안 부러진걸. 다행이라 생각해.”

나는 그녀의 행동에서 진심으로 후배를 걱정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하율은 15년 동안 현역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모델로 뉴욕과 이탈리아 패션쇼를 경험한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탑 클래스 모델이다.

그런 위치의 사람이 까마득한 모델 후배의 발목까지 걱정하다니 놀라웠다.

한하율이 고개를 들더니 한은샘에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 내려오면서 들었는데 남자 모델 부족하다면서요?”

“그래. 대체인력 DDP에 있어?”

“그건 아니고요. 그런데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해요.”

“뭔데? 빨리 말해. 시간 없어.”

쇼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한은샘 입장에서 1분 1초가 급한 상황.

“오늘 유심히 본 사람이 한 명 있긴 한데.”

“무슨 말 하는 거야? 오늘 여기에만 있었잖아.”

“여기에서 모델로 스카우트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거든요.”

한하율은 오랜 경력으로 모델 기획사와 광고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CEO다.

모델 기획사를 하며 신인 모델 발굴해왔다.

그리고 현재는 국내, 해외를 할 것 없이 많은 모델이 그녀의 밑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가 스카우트를 하고 싶어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분명 믿을만하다.

“누군데? 급해 뜸 들이지 마.”

“저분이요.”

한하율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람은 바로.

“저요?!”

“우리 진혁이?”

그녀는 한은샘이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자.

신기하다는 듯 질문을 해왔다.

“무대 스태프 아니에요? 선생님 목소리가 애정이 가득하신데.”

“막내 디자이너야.”

“앗 정말요.”

“하여튼 지금 급해 인사는 다음에 하고. 진혁이를 올리자고?”

“네, 키도 제가 봐서 186에 얼굴도 잘생기셨고. 걷는 것도 올곧은 게 바로 무대에 올라가도 된다는 판단이에요.”

“그렇다는 말이지.”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잖아요.”

“네가 봤을 때 그렇다면 그런 거지. 오케이.”

나는 그녀의 눈썰미에 놀랐다.

키 186 정확하게 맞추었다.

‘예리하네.’

그리고 이어진 한은샘의 간절하고 강렬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사장님…… 설마 아니시죠?”

“아니 그 설마가 맞아.”

“네? 그게 무슨! 제가 모델도 아닌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은샘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나를 탈의실로 밀어 넣었다.

“조금만 기다려.”

“사장님…….”

“다들 의상 준비해서 탈의실 들어가.”

까짓거 한번 무대에 올라가 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로서 컬렉션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솔직히 말해서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10년 이상을 패션쇼를 해왔던 사람이다.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무사하게 마무리될 거라 믿었다.

그때 남성 메인 의상을 들고 박한우와 스태프 몇몇이 탈의실로 들어왔다.

“탈의해. 급하다. 바로 올라가야 해.”

“네…….”

나는 커피로 얼룩진 흰 셔츠를 벗어 옷걸이에 걸쳤다.

그 순간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다.

“너 몸이.”

“왜요?”

“평범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보니까 엄청 다부지네.”

박한우는 몸이 좋다는 말을 서두 없이 돌려서 말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좋은 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다.

죽기 전 과거에 운동에 미친 바쟐 덕분에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해왔다.

‘그 미친 운동중독자. 잘 지내려나.’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일에 지쳐 쓰러져도 바쟐은 하염없이 집 앞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피트니스를 가기 위해서.

내가 운동을 빠지는 날에는 다음 날 더 악독하게 운동을 시켰다.

‘그때 몸이 더 좋았는데.’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나에게 박한우가 재촉하듯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하여튼 빨리 입자.”

“네.”

박한우의 손에 들려 있는 붉은빛의 블레이저[재킷]가 눈에 들어왔다.

남성스럽게 강렬하고 열정적인 느낌을 표현한듯했다.

그리고 붉은 세미 슬랙스.

둘의 조화는 아주 멋있으면서도 화끈하게 다가왔다.

박한우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고 스태프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와 이 옷 불편하네요.”

“조금만 참아.”

말로 표현하자면 새미 정장이지만 형태가 아주 다르다.

어깨가 엄청 넓었고 복부 쪽은 엄청 슬림했다.

각종 화려한 액세서리들이 부착돼 있어 살을 찔렀다.

컬렉션을 위해 제작된 옷으로 일상복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실용성보다는 보여주기식 디자인으로 브랜드 Han은 남성복에도 미래가 밝다는 걸. 알리는 의상이었다.

“와 멋지다. 옷이 날개라더니.”

“뭐. 옷이 이뻐서 그런 거죠.”

“아니야. 너 정말 연예인 같다. 전에도 잘생긴 건 알았는데 메이크업까지 하니 엄청 화사한데.”

“그래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빨리 무대로 가자.”

나는 걸어 나가는 길에 거울을 힐끔 쳐다봤다.

그 순간 흠칫했다.

‘뭐야. 외계인이야?’

머리 스타일은 올백에 색은 또 붉게 물들어 놓았다.

그런데 더욱 놀란 건 메이크업이다.

마치 얼굴을 학을 형상화한 거처럼 만들어 놓았기에.

눈썹은 엄청나게 길게 연장되어있고 눈 화장도 아주 진하게 그려두었다.

“하…….”

“웬 한숨?”

“아닙니다.”

“긴장하지마 별거 아니야.”

자기 일 아니라고.

편하게 말하는 박한우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다시 내쉬었다.

‘될 대로 되겠지.’

디자이너로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오른 무대는 많다.

그런데 런웨이를 직접한다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차진혁. 바로 올라가.”

“네.”

무대 위로 올라가는 길에 모든 스태프와 모여든 모델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 누구야?

― 부럽다. 차진혁.

― 모델로 전향해라.

― 어디 소속사 모델이야?

얼굴이 화끈거린다.

낯설다는 느낌이 더 맞는 거 같았고 사람들의 반응이 부정적으로 들려왔다.

‘놀리는 거야 분명해.’

나는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무대 바로 뒤에 멈추어 섰다.

그때였다.

“부착해.”

박한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태프들이 작은 고리를 내 날개뼈 부근에 연결했다.

“뭐예요?”

“별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하…… 네.”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런웨이를 기다렸다.

그때 긴장한 내 어깨를 누군가가 살짝 주무르며 터치해왔다.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잘하실 거니까. 긴장하지 마세요.”

한하율이 장난스레 다가와.

활짝 웃는 얼굴을 보이며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저희 소속사 모델보다 핏이 더 좋은데요. 걱정할 거 없겠어요.”

“근데…… 왜 하필 저를?”

내가 그녀에게 질문하는 순간.

박한우의 스탠바이 신호가 날아들었다.

“준비해.”

그녀도 내 질문에 대답 없이 무대를 내려갔다.

그리고 돌아보며 말을 남겼다.

“제가 아는 분을 많이 닮았거든요.”

나는 그녀의 말을 흘려듣고 신호에 맞춰 대형 룸으로 걸어 나갔다.

나의 첫 런웨이가 시작됐다.

“큐!”

새로운 경험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상쾌한 공기가 나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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