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00)

회의실에 있던 인원들 모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생전 알지도 못한 사람의 명령조가 불쾌하게 들려왔다.

‘회사 정말 다이나믹하네.’

“다들 나가서 볼일 봐.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자.”

“예, 사장님.”

모두가 한은샘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김 회장의 등장으로 상황이 김경희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간다는 걸 느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회의장의 문을 열고 나오니.

복도 끝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회계팀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서류뭉치를 한 움큼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다들 왜 저러는 거야?”

회의실에는 브랜드 Han에서 팀을 이끄는 총괄급들이 모두가 모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한 남성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 * *

“내가 너무 고분고분하게 부탁했나?”

“회장님 그게 무슨?”

왜 김경희가 회의 중 그렇게 웃고만 있었는지.

처음부터 김경희가 회장을 개입시키려 했다는걸.

한은샘은 뒤늦게야 눈치를 챘다.

“매출이랑 재고정리 서류 줘 봐.”

“네, 회장님.”

김 회장은 서류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한은샘에게 소리쳤다.

“사장 그만하고 싶어? 매출이 이게 뭐야!”

한은샘은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경영자로서 가장 회의감이 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회장님 아직 약속한 기한 아직 안 됐습니다.”

“약속?! 자네도 내 약속을 안 지키는데 내가 들어 줘야 하나? 바로 임시주총 열 거니 각오해!”

“그건…….”

김 회장의 윽박에 한은샘은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경희가 말을 이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고 싶었나 보다.

“한 사장님 저한테만 강하신 분이네요. 저희 아빠한테는 한없이 약하시다.”

“…….”

“그러게. 쉽게, 쉽게 갔으면 서로 기분 나쁜 일 없잖아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과할 거. 왜 이런 사태를 만드냐고요. 저번처럼 또 소리 질러보시죠?”

“…….”

김경희는 상대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하하하 네, 네. 저는 마음이 너그러우니까 한번은 용서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가방디자인 이야기 좀 해볼까요?”

“그건…….”

한은샘은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진혁의 디자인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상황을 주시하던 총괄 디렉터 신지혜가 상황에 끼어들었다.

“총괄님 디자인으로 시즌 준비하면 매출 보장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 욕심을 부려요!”

“뭐? 뭐라고! 네까짓 게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디렉터 일이나 잘해.”

“하…… 넌 안 되겠다.”

“뭐?! 다시 말해봐 미친년이!”

“회장님 딸이라도 이건 아니지. 여기는 회사야. 그럼 이건 어때?”

신지혜는 재킷 안쪽 포켓에 가지고 있던 USB를 꺼내 프로젝트에 연결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 * *

진혁은 인사동을 다녀온 다음 날.

전산프로그램에 저장된 본사의 현재 재고 현황과 이익 차이 분석표를 확인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했다.

“설마 보안 걸려있는 건 아니겠지?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전산에 입력했다.

누군가 보기 전에 서류를 열람해야 했기에 빠르게 움직였다.

“여기 있네.”

한 해 동안의 매출과 재고가 기록된 지표.

나는 서류를 인쇄해 조용한 곳에서 상세하게 확인하려 했다.

그런 이유에 아무도 없는 회사 자료실에 들어왔다.

“본사 서류는 이상이 없는데…… 왜 어두운 빛이 흘러나온 거야?”

진혁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 패션스쿨에 재학 당시 전체 과목 수석을 한 수재다.

지표분석과 확인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아무것도 없어…… 내가 잘못 짚었나? 재고수량이랑 매출금액도 정확히 맞아떨어져.”

근데 이상하게 꺼림칙하다.

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분명 어두운 빛이 일렁거린 데는 이유가 존재한다 믿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더 확인하기 위해 업체 전화번호가 가득한 다이어리를 펼쳤다.

“브랜드 Han 재고관리팀인데요. 서류 좀 받아보려고요.”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선의의 거짓말이니만큼 모두가 이해해주길 바랐다.

홈쇼핑에 이어 가장 매출 타격이 큰 아웃렛 재고관리팀에 전화를 걸어 서류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메일을 확인했다.

“일 처리 하나는 빠르네. 보자…….”

진혁은 볼펜 뒷부분을 이로 씹어가며 지표를 뚫어지게 분석해 나갔다.

집중한 상태인지 오랜 버릇이 튀어나왔다.

“달라!”

브랜드 Han에 입력된 지표의 숫자와 홈쇼핑 그리고 아웃렛에 기재된 숫자가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나는 작년 기준 서류와 업체에서 받은 서류를 보고 알게 됐다.

판매량을 비교해보니 작년과 비교한다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본사에 입력된 숫자만큼은 아니다.

“누가 거짓서류를 제출했거나 데이터베이스 조작했다는 건데…… 심각해.”

나는 혼자서 판단할 범위를 벗어났다.

매출지표가 다르다는 게 가장 큰 이유.

재고 데이터야 잘못되었다면 수정하면 그만이지만 매출지표는 아니다.

돈이 오가는 숫자이며 엄연한 범죄다.

“차익은 누가 가져갔다는 건데!?”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회사의 돈을 매출지표를 조작해 빼돌린 큰 사건.

간혹 작은 회사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상장까지 한 회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정확한 판단을 위해 확인하고 확인했다.

“누가 이런 짓을…….”

한참을 서류를 보아도 결과는 한결같다. 혼자서 고민을 이어갈 때쯤.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가방디자인 3.

* * *

총괄 디렉터 신지혜가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차진혁!”

“네?!”

“너 회사 데이터베이스 왜 열었어. 막내가 그걸 왜 열어?”

“그걸 어떻게?”

당황스러웠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손에 들고 있는 서류가 모두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져온 자료였기에.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만일이지만 범인이라면…….’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지. 사장님과 회사 초창기부터 함께한 사람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어.’

나는 고민을 내려놓고 신지혜에게 지금의 상황을 전달하려 마음먹었다.

“그게 얼마 전에 선임디자이너님 책상에 있는 지표를 보는데 공부해두면 좋을 거 같아서요.”

“뭐! 차진혁 그렇다고 데이터베이스 보고도 없이 막 열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내가 회계팀 일이 있어서 거기 있기를 망정이지. 회계팀장이 바로 사장님한테 보고한다는 거 겨우 말리고 왔어.”

“네… 감사합니다.”

신지혜는 뒷말 없이 충고만을 남기고 시원하게 자신의 부서로 돌아가려 했다.

기회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야.

“디렉터님.”

“할 말 남았어?”

“제가 매출이 너무 급격하게 떨어진 게 이상해서 홈쇼핑이랑 아웃렛 관리팀에서 지표서류 몇 가지를 받았는데요.”

“뭐?! 그걸 왜?”

“좀 이상해서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재고랑 매출지표는 올라오는 즉시. 회계팀이 관리하는데.”

“한번 보시죠.”

나는 본사와 업체 간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형광펜으로 표시해 두었다.

누가 보던 한눈에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이게 왜…… 뭐야!?”

“저도 이상해서…….”

신지혜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항상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 한순간 흙빛으로 변했다.

단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아 더 놀라 하는 눈치였다.

“진혁아. 이거 자료 나한테 다 보내 그리고 입단속하고 내가 알아봐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응?”

“제 생각인데 회계팀에 공조한 사람이 있을 거 같아서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일단 모른척해.”

“네.”

서른 중반의 신지혜도 나만큼이나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분명 이번 사태를 문제없이 해결할 거다.

나는 이제야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았다.

“잘하겠지.”

* * *

신지혜는 겸허한 표정으로 모두의 앞에 섰다.

그리고 무겁게 말을 이었다.

“모두 여기 봐주세요. 중요한 사항입니다.”

“뭔데 그래? 나 바쁜 사람이야.”

“회장님도 꼭 보셔야 할 사항입니다.”

신지혜는 화를 억누르며 김 회장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한은샘도 신지혜의 성격을 알기에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녀는 늘 완벽했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였다.

그만큼 신임하고 있었다.

“지금 보시는 자료는 브랜드 Han의 재고와 이익차익 분석표입니다.”

“그건 벌써 내가 회계팀장한테 받은 거잖아. 뭐가 문제야?!”

신지혜는 큰 숨을 들이쉬고 프로젝트의 페이지 한 장을 넘겼다.

“이건 저희와 거래하고 있는 홈쇼핑과 아웃렛의 재고와 매출서류입니다. 다음 장을 보시면 본사와 두 업체 간 서류를 대조한 자료이고요. 보시면 알겠지만, 서류가 아예 다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게 왜 달라?”

“회장님 사장님. 왜 다를까요?”

“신 디렉터 본론만 말해.”

“누군가가 서류를 조작하고 업체에서 일어난 매출액을 빼돌렸다는 겁니다. 서류가 이걸 증명하고 있고 제가 두 업체까지 찾아가서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그 순간 신지혜의 눈에 김경희에게 향했다.

그녀의 얼굴빛이 백지장처럼 하얘졌고 핏기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신지혜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제가 이 서류를 누군가에게 받아보고 며칠 동안 단서를 찾고 찾아 이에 관련된 사람을 찾았습니다.”

“누구야?”

김 회장과 한은샘은 동시에 대답했다.

어떤 누구라도 묵과할 수 없는 범죄다.

신지혜가 먼저 지목한 사람은.

“회계팀 김상진 대리.”

“뭐!”

신지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계팀장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정말이냐는 어투로 질문을 해왔다.

“상진이가 그럴 리가 없어. 얼마나 착실한 앤데.”

“벌써 이실직고했습니다. 두 업체에 찾아가서 누구에게 넘긴 것인지 모두 확인했으니까요.”

김 회장은 얼굴을 붉히며 김상진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회의장에 정적이 흘렀다.

“회장님 이쪽이 김상진 대리입니다.”

“팀장이나 된 놈이 애들 관리 잘한다.”

김 회장은 한심하다는 듯 회계팀장을 나무랐다.

하지만 그 말이 후회로 돌아올지는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 그 많은 돈을 횡령하고 무사할 거 같아. 그 돈 다 어딨어?”

“그게…….”

김상진 대리는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에 앉아 있던 김경희 총괄디자이너에게 눈을 돌렸다.

그리고 한은샘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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