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00)

“당신!”

“아 놀라라.”

놀란 나머지 입속에 있던 물을 뱉을뻔했다.

“당신! 진짜…….”

‘무슨 일이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오듯 끊임없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강심장인 나조차도 흠칫 놀랄 정도다.

“미안해. 당신도 알지? 민수. 갑자기 가죽유통 해야 할 자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잠깐 빌려준 거야.”

“그래서 가게를 담보로 보증을 서줘?! 당신…… 정말 왜 그래? 우리도 힘들어. 누가 누굴 도와.”

“…….”

내용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크게 잘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주일 가까이 지켜본 부모님은 단 한 번도 큰소리 낸 적이 없었고 서로를 존중해주며 지내셨다.

그런데 오늘 울려 퍼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무겁고 억양 또한 강했다.

“보증은 어제 쓴 거야?”

“3달 정도.”

“그럼 민수 씨는?”

“그게…….”

“말을 해요!”

“며칠째 가게 문도 닫혀있더라고 하…… 일주일째 연락이 안 돼.”

“말이 돼? 몇 년 동안 본 사람도 아니고 이십 년 가까이 본 사람이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는 게. 그래서 대출받은 돈이 얼만데?”

“2… 억…….”

“2억?”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하…….”

나는 안방 문 앞에 멍하니 서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상황상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다.

지금 방에 들어간다면 부모님의 걱정거리만 늘릴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위신도 생각해야 했다.

다이어리의 내용에서 아버지와 진혁의 사이는 각별했고 친구 같았기에.

이 몸의 본 주인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지켜주고 싶었다.

일단은 부모님에게 이 일을 맡기기로 했다.

‘사고 치셨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말을 더는 잇지 못했고 어머니도 별달리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두 분 모두 해결방법이 없는 듯했다.

* * *

출근 준비를 마치고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려 방문을 노크했다.

“진혁이니?”

“네, 저 출근하려고요.”

그제야 방문이 열고 어머니가 방을 나오셨다.

어머니도 방 안 공기가 답답했는지 내 출근길을 마중한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때 어머니 어깨 뒤편으로 한숨을 내쉬는 아버지의 처량한 모습이 비쳤다.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2억이라.’

큰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걱정이 많을 터였다.

어머니도 나에게 애써 웃어 보이는 게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복잡한 심경이 얼굴에 드러났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미안하게.’

오늘따라 방 안과 거실의 온도 차가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다.

“갔다 올게요.”

“그래 잘 갔다 와.”

두 분의 대화를 되짚어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 코가 석 자데. 누굴 걱정하냐.”

* * *

모든 인원이 다시 가방 디자인 최종회의에 참여했다.

회의실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고 김경희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 눈치였다.

그때 회의실로 들어오던 한은샘의 발걸음이 내 앞에서 멈춰 섰다.

“차진혁. 준비 많이 했어?”

“네.”

“목소리 좋네. 기대할게.”

한은샘이 내 어깨를 토닥인 후 자리로 돌아가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그때 김경희와 가방디자이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둘은 썩은 미소로 나를 비웃고 있었다.

‘비웃어?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자.’

막내 따위가 혼자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듯 경쟁상대로조차 생각하지 않는 저 표정.

나는 둘을 무시하고 회의에 집중했다.

“총괄디자이너부터.”

“네.”

한은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듯했다.

어떠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김경희는 회심의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표정과 행동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소재는 카프 스킨 [송아지 가죽]을 그대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고급스러움과 일정 타겟을 노려 마케팅할 겁니다. 자료를 봐주세요.”

[카프 스킨] 송아지 가죽으로 이태리에서 수입되는 가죽이다.

같은 종류의 가죽이라도 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광택이 일어난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의 표정에서 알 수 있듯이 별로였다.

‘평범하네. 정말 기대한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김경희의 디자인은 그저 고급 재료와 화려한 장식으로 떡칠해 만들어진 싸구려 가방 같았다.

한은샘의 시안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아.

이번 시즌에 정해진 콘셉트에도 미치지 못했다.

디자인 요소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쓰레기!

네 실력은 딱 여기까지구나.

‘이겼어.’

나는 확신했다.

내 디자인이 월등히 뛰어나다는걸. 그런데 김경희와 가방디자이너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녀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싸늘하게 다가왔다.

“그럼 다음으로 차진혁 디자이너 발표하세요.”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회의를 진행했다.

“제가 준비한 가방 디자인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무섭게 서류를 넘기던 한은샘이 상기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가방디자인 2.

* * *

가방디자인을 확인한 한은샘은 굳어진 얼굴로 질문을 해왔다.

“내가 만든 시안 사용한 거 맞아? 조금 이상한데.”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사장님의 시안으로 만든 디자인입니다. 다만 브랜드 Han의 색을 많이 입혀 변형이 심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오. 그래?”

한은샘은 내 말에 호응하듯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자신이 바라던 대답이다.

잠시 후 나는 그의 동공이 확장되는 걸 확인했다.

‘놀랐냐. 아직 놀라기에는 이른데.’

지금 보고 있는 건 메인디자인이 아니다.

메인은 맨 뒤에 넣어 두었다.

나는 주인공은 나중에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메인 가방 버킷 백을 시작으로 토트백, 쇼퍼백 그 외에 2가지를 더 준비했습니다. 모든 여성이 사용하는 종류의 가방 형태로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디자인 정말 네가 한 거 맞아?”

이번에는 총괄 디렉터 신지혜가 질문을 해왔다.

“제가 했습니다.”

“잘한다 너.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네.”

그녀 외에도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디자인과 나를 번갈아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다.

김경희와 가방 디자이너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다.

“3개의 가방의 형태는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소재에서 파생된 디자인으로 브랜드 Han의 가방시리즈로 만들어 매 시즌을 준비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리즈라…… 그건 성공을 했을 때 이야기고.”

“맞습니다. 만약 성공하게 된다면 시즌 때마다 이 시리즈를 구매하려는 기존 고객층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될 거로 판단됩니다.”

기대 이상의 성과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한은샘이 나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가방 소재는 뭐로 할 거야?”

“외부는 국산 엠보 소가죽을 사용하고 내부는 스웨이드로 할 예정입니다.”

“왜 국산이야? 그래도 이태리 가죽이 더 좋지 않아?”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방입니다. 고객 연령층의 확대가 더욱 중요하다는 판단입니다. 그런 이유에 가격 절감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디자인에 적당한 가격이라면 더욱 끌릴 게 분명하니까요.”

“좋은 생각이야. 고객층 확대는 곧 매출 성장이니까.”

“근데 이건 뭐야? 쪼인 부분은?”

“도장입니다.”

“웬 도장? 도장치고는 너무 작은 거 아니야?”

“기존도장의 3/1 크기로 조절하였고 화려한 문양으로 리미티드함과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도장의 인장 부분에 브랜드 Han의 로고가 들어갈 겁니다.”

“업체는? 이거 세공을 엄청 신경 써야 할 거 같은데.”

“이미 알아 봐둔 상태입니다. 생산에는 전혀 차질 없다고 전달받았습니다.”

나는 인사동을 다녀온 후.

도장의 이미지가 강하게 머릿속에 박혔다.

분명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디자인에 접목시켰다.

“총괄 디렉터. 국산 가죽 구매량 생산 일정 조율할 수 있죠?”

“네 문제 없습니다. 이태리 가죽을 수입하는 기간을 계산해둔 터라. 국산 가죽이면 시간이 남을 겁니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드디어 선택의 시간이다.

사장과 총괄 디렉터의 대화만으로도 벌써 끝난 싸움이었다.

‘이겼어.’

그리고 나는 직원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나쁘지 않다.”

김경희와 가방 디자이너만을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나를 향했다.

그런데 찜찜하다.

김경희의 불같은 성격으로 지금 같은 상황에 반문해왔어야 했는데 너무 조용하다.

그리고 입가에 피어나는 썩은 미소가 더욱 불안하게 했다.

‘무슨 꿍꿍이야……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한은샘은 총괄 디렉터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경희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고 최종 결정을 하려 모두를 집중시켰다.

“나는 우리 막내 디자인 괜찮은 거 같은데. 다들 어때?”

“저도 마음에 들어요.”

총괄 디렉터 신지혜도 한 표를 나에게 과감히 투자했다.

하지만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모두가 김경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왜 다들 말이 없어?”

한은샘은 답답함에 모두의 의견을 재촉했다.

내 디자인을 빨리 채택하라고.

단독으로 막내의 디자인을 밀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명분이 필요했다.

김경희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명분 말이다.

그때.

“진혁이 디자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선임디자이너와 디자이너 인원들 모두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 이후 다시 침묵이 흘렀지만, 판세는 이미 기울어졌다.

“총괄디자이너 생각은 어때요?”

“제 의견이 중요한 거 맞아요?”

“그게 무슨.”

“아니 벌써 정해놓고 물어보는 거 아니냐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주위를 싹 훑었다.

그리고 소름 끼치는 미소.

주위에 사람들은 그녀의 미소를 보는 순간.

엄청난 공포심과 압박감이 들었다.

한은샘은 주위의 분위기를 눈치를 채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려 말을 이었다.

“다들 의견 없으면 진혁이…….”

시간이 멈추듯 한은샘의 말이 끊어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회의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그만해! 뭣들 하는 거야.”

문을 열고 들어온 백발 노년의 남성.

얼핏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하다.

누군가 그의 얼굴을 보았다면 욕심이 가득한 스크루지로 오해할 정도로 인상이 좋지 않다.

‘누구야?!’

갑자기 한은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놀랐는지 일어나면서 의자가 뒤로 넘어가 버렸다.

“회장님…….”

김 회장은 회의실로 들어와.

주위를 한번 훑어보더니 당당하게 지시했다.

“다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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