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00)

프롤로그

* * *

젊은 감성을 사로잡은 차세대 브랜드 트라이앵글링의 런칭 컬렉션이 파리 한복판에서 시작됐다.

유명한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와 관계자 그리고 잡지사 디렉터와 셀럽들까지.

모든 이목이 트라이앵글링의 패션쇼에 집중됐다.

컬렉션이 열리는 대형 룸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 피날레를 위해 CEO이자 디자이너인 노조미 준이치가 스테이지로 걸어 나왔다.

마침내 패션쇼가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뜻이었다.

“바쟐!”

“응?”

“지금부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야. 기대해.”

“설마…….”

내 말을 듣는 순간 바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진, 하지 마! 뒷감당 어떻게 하려는 거야.”

나는 바쟐의 말을 무시하고 패션쇼가 한창인 스테이지 위로 뛰어 올라갔다.

내 등장으로 런웨이가 일시적으로 멈추었고 침묵 속에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사회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트라이앵글링의 CEO이자 디자이너인 준이치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 순간 노조미 준이치의 얼굴이 굳어졌다.

“네가 여기 왜?! 당장 안 내려가!”

준이치가 나를 향해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지나쳐 메인 스테이지 정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여러분 저는 샤네르 총괄디자이너 김서진입니다.”

내 소개에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 샤네르의 총괄디자이너가 갑자기 무대에 난입한 데에 굉장히 궁금한 눈치들이다.

정신이 나간 놈이 아닌 이상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그 순간 수십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나는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보신 패션쇼는 쓰레기입니다.”

엄청난 발언에 장내는 한순간 고요해졌다.

그리고 모두가 숨죽이며 이어질 말을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디자인을 훔친 도둑[steal] 쇼거든요.”

* * *

― 샤네르 총괄디자이너 김서진의 폭로!

― 트라이앵글링 런칭 패션쇼 화제.

― 런칭과 동시에 끝이 나버린 트라이앵글링.

― 준이치 디자이너. 젊은 창업자의 디자인을 카피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 차세대 브랜드 런칭을 지원하던 켈링 패션 그룹 주가 하락!

실시간 뉴스를 확인하고 나는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었다.

“쌤통이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쟐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야.”

“됐다 됐어. 네 고집을 누가 말리겠어? 저기 내려줘.”

바쟐은 내리기 전 뒤늦게 생각이 난 듯.

“진, 늦었지만 축하해.”

“축하?”

“개인 브랜드 런칭.”

“난 또 뭐라고. 샤네르에 잡혀 있어서 늦었지.”

“어련하시게? 그래서 투자처는 정했어?”

“LVMH 그룹.”

“하여튼…… 내 말은 곧 죽어도 안 듣는다니까. 거기는….”

“잔소리는 사절이야.”

바쟐과 헤어진 나는 파리의 시내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이제 한 계단만 더 오르면 돼.’

지금까지 겪은 고생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꿈꿔왔던 개인 브랜드 런칭만 이룬다면 더는 바랄 게 없었다.

‘할아버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오늘따라 나답지 않게 감상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며 실소를 지었다.

‘어쩌면 오늘은 푹 잘 수 있을지도…….’

잡념을 떨쳐버린 후.

차를 주차하고 내렸다.

“이렇게 조용했던가?”

주위의 적막함이 내 정신을 두려움에 휩싸이게 했다.

오늘은 옆집 로버츠의 기타 소리도 델리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리만큼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 좀 예민하네.”

나는 그제야 숨 막히는 적막을 깨고 트렁크로 이동했다.

그리고 짐을 챙겨 집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윽!”

누군가가 내 뒤로 다가와 입을 막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몸을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조용.”

푹! 푹!

날카로운 무언가가 몸을 파고들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내 온몸을 집어삼켰다.

다시 살아나다.

* * *

눈을 뜨는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어 불쾌감을 더해 줬다.

섬뜩한 기억.

그 불쾌한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젠장!”

나는 놀란 나머지 침대에서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자리에 앉아 복부를 더듬거렸다.

“아무렇지 않네…. 꿈인 건가….”

그제야 나는 안심하고 결론을 내렸다.

좋지 않은 꿈을 꿨다는 거다.

잦은 스트레스로 인해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은 편하게 잘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온몸에서 풍겨오는 술 냄새, 가슴의 통증으로 인해 헛구역질이 밀려왔다.

나는 매스꺼운 배를 부여잡고 부엌으로 향했다.

여전히 몽롱했고 시야가 흐리다.

“어지러워.”

나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그때 나를 향하는 불편한 시선과 등골이 오싹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누구?”

그제야 이 공간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함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낯선 풍경.

낯선 이의 모습.

나는 멍하니 그들을 지켜보았다.

‘이게 무슨!’

“차진혁! 술 작작 먹어라. 시간이 몇 신데 그러고 있어 출근 안 하냐?”

‘차진혁?’

“당신은 주말인데 무슨 출근이야.”

“…….”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어떠한 반응도 없이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며.

“정신 나간 거처럼 서 있어. 밥이나 먹어.”

“아침부터 애한테 잔소리에요. 진혁아. 너 술 마신 거 같아서 북엇국 끓였다.”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이 너무 이질적이고 더는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몸을 돌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문 너머로 엄마라 주장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나를 걱정하는 듯 말이다.

“아들 배고프면 엄마한테 말해. 다시 차려줄 테니까.”

“…….”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녀의 말을 흘려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돼?! 도대체.’

그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거울을 발견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이런 미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거울을 보며 손으로 얼굴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눈을 한참 비벼 보아도 변함이 없다.

“젠장!”

그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여기는 어디고? 얼굴은 또 왜!”

30대 후반의 얼굴이 아닌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잘생긴 청년의 모습.

“설마…….”

그제야 나에게 그날에 일어난 불쾌한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현재의 내가 김서진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까지.

“…….”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알고부터 속이 미친 듯이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강한 이질감에 토사물이 식도를 타고 역류해 올라왔다.

나는 강하게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우웩!

변기를 부여잡고 속에 내용물을 한참 동안 토해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 짧은 순간에도 작은 희망을 품으며 화장실 거울을 확인했다.

모든 게 꿈이길 바라며.

“제발…… 제발…….”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화장실을 빠져나와.

겨우 방으로 돌아왔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생각을 거듭했다.

‘내 브랜드는… 내 미래는….’

나는 얼마 뒤 열리는 파리 패션위크의 샤네르 패션쇼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개인 브랜드를 런칭하기로 되어있다.

모든 상황을 인지한 그때.

나는 침대 위에 있던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구글 검색]

김서진!

― 파리 패션위크를 위해 샤네르 총괄디자이너 교체

― 한국 최초 샤네르 총괄디자이너 김서진 사망.

― 김서진 디자이너 교통사고 사망.

― 천재의 숨겨진 디자인!

― 김서진 디자이너 브랜드창업 투자 무산!

충격적이다.

사망 소식과 개인 브랜드 투자의 무산, 샤네르 총괄디자이너 교체.

가장 황당한 건 살해가 아닌 교통사고 사망.

혼란스럽다.

“교통사고라니. 분명 칼에….”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밤낮으로 달려온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모든 소식을 접하자.

큰 충격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휴대폰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다.

“이 모든 걸 위해 달려왔는데….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생각을 거듭할수록 짜증이 밀려 왔다.

이 모든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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