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290화
외전 2-조선의 대학원생 (2) + 후일담
-깎깎!
까마귀 하나가 저택 위를 가로지르며 울었다.
실눈을 뜬 이덕형은 이 시간에 새소리라니, 싶었다가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새카맣게 물들었던 밤하늘도 환해진 채였다.
“헉!”
이덕형은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을 줄이야!
술자리를 함께 한 사내는 관리라고 들었는데 그는 팔자 좋게 벽에 기댄 채 침이나 질질 흘리면서 자고 있었다.
신하들이 입궐할 때 머리에 이는 새벽별은 온데 간데 없고 중천에는 태양이 빤히 떠 있으니, 이덕형은 사내가 경을 치기 전에 깨우기로 했다.
“혀, 형장! 일어나십시오! 백주대낮이 됐습니다!”
사내는 애타는 부름에도 깨지 않았다. 이덕형은 결국 사내를 흔들었다.
“으……. 누구냐.”
“누구기는요, 납니다. 이덕형. 어젯밤에 형장이랑 술 같이 마셨던 사람! 지금 둥근 해가 떠서 쨍쨍 빛나고 있어요!”
흔드는 손길이 거칠어지자 사내의 머리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자 사내도 더 이상 꿈나라에 있을 수만은 없었는지 찌푸린 눈을 반개했다.
“아.”
“형장.”
사내는 이덕형과 어깨너머의 하늘을 보고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상스러운 언어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표현했다.
“아, 씨. 조졌네.”
“나도 이제 깼습니다. 미리 깨우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나 역시 대학에 가봐야 하니 형장께서도 정신을 차리세요. 언제 또 만납시다.”
이덕형은 사내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고는 대청에서 나왔다.
그리고 서둘러 뜰을 가로질러 저택을 나서려는데.
-덜컹!
솟을대문 너머로 일단의 무리가 있는 게 아닌가.
수염 하나 없이 턱이 맨들맨들한 자를 중심으로, 일단의 장정들이 갑주와 무구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수염 없는 자는 내시이고 장정들은 무관이겠지.
이덕형의 등장은 저들이 바라던 일은 아니었는지 내시와 무관들의 눈살이 대번이 찌푸려졌다.
“헉!”
그들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일은 없었다. 이덕형은 대낮부터 인생이 꼬일 위기에 처하자 기겁하며 물러났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안에 어르신 계신가?”
“예?”
“안에 어르신 계신가 물었네.”
이덕형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르신이라면 모르겠으나, 자신을 관리라 소개한 자는 분명 대청에 늘어진 채 아직까지도 잠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말하는 것일까.
저택에서 달리 어르신이라 불릴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덕형은 내심 놀랐다. 내시와 무관들까지 찾아와 어르신이라고 부를 정도라면, 몇 살 터울 안 나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품계가 상당히 높은 모양이었다.
‘내가 실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과 대작한 건가?’
이덕형은 궁금해졌다.
사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지.
내시가 말했다.
“물러서게. 어디 가지는 말고.”
“예에…….”
이덕형이 비켜서자 내시는 안으로 들어가 사내를 깨웠다. 어르신이라고 부른 것과는 달리, 내시는 제법 거칠게 사내를 흔들어댔다.
그러자 다시 깨어난 사내는 태평하게도 배를 벅벅 긁으면서 말했다.
“이제 치국은 세자에게 맡기고 나는 좀 설렁설렁 놀면서 하면 되겠나?”
“전하,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잠이 덜 깨셨사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옵소서.”
“으으.”
“신이 냉수를 가지고 올 터이니 정신을 차리고 계시옵소서.”
내시가 할 말만 하고서 물러나자, 왕…… 은 무척이나 피곤한 얼굴로 하품하더니 일어나서 뜰로 나왔다.
이덕형은 턱이 빠져서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왕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언제는 어르신이라더니?!
“흐암.”
“저, 전하.”
이덕형은 다리가 후들거려 자신도 모르게 엎어졌다.
“수력과 풍력 없이 일정한 동력을 얻는 법을 모르겠다고?”
“…….”
“진짜, 어지간한 일이라면 내가 일일이 개입할 생각은 버리기로 했지만. 동생이 나를 도발했으니 한 마디만 해 주지. 동력이란 건 열에서부터 출발할 수도 있는 거야.”
왕은 손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이덕형은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왕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그 끝에는 기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떠다니는 기구와 동력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일까.
하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왕이 아무런 이유 없이 기구를 가리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 망극하옵니다.”
이덕형이 고개를 푹 숙일 동안, 내시가 돌아와 왕에게 대접을 건넸다.
왕은 대접의 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입을 헹궜다. 그리고 이제는 가야 한다는 듯 저택을 나서자, 내시가 이덕형에게 한마디 했다.
“자네가 여기서 보거나 들은 건 없는 거야. 부디 가벼운 언동으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를 바라네.”
“가, 각골명심하겠습니다.”
내시는 왕을 쫓아 저택을 나섰고 이덕형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서 묵은 숨을 뱉어냈다.
야밤에 우연히 만나서 함께 술 한 잔 걸친 사람이 무려 왕이라니.
게다가 왕은 이덕형이 당면한 문제를 타개할 단초까지 알려주었다. 정답을 바로 알려준 것은 아니었으나, 이만해도 엄청난 진전이었다.
동력은 열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기구.
남들이라면 여전히 오리무중이겠으나 오랫동안 논문을 위해 고민해온 이덕형은 벌써부터 실마리가 잡히는 기분이었다.
아니, 이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증기기관!
석 달 후.
이덕형은 마침내 증기기관을 실현했다. 석사 논문은 통과되었다.
이덕형의 증기기관은 열원의 상태가 고정되지 않아 동력 출력이 안정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어 이상적인 동력원은 되지 못했으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점이 높게 반영되었다.
한 달 뒤, 교수는 이덕형의 증기기관의 불규칙적인 출력을, 운동량을 일시적으로 질량체에 저장하는 장치인 플라이휠을 붙여 개선해 냈다.
사흘 뒤, 왕은 교수의 증기기관에 원심 조속기를 달아 증기기관이 자체 피드백을 이용해 출력량을 스스로 안정하게 개선했다.
다음 날, 이덕형은 박사 과정에서 탈출했다.
* * *
-후일담-
-권율
말단 관직을 지내던 중 사위가 대뜸 왕이 되는 바람에 부원군으로 영전하였으나, 안주하지 않고 대원군과 함께 사군을 안정시켰다.
그 공을 인정받았으나 더 오를 위치가 없었던 탓으로, 권율은 변변찮은 포상도 받지 못하고서 귀한 재능을 썩힐 수 없다는 이유로 조선반도 외부의 편입 지역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조선국의 부원군이라는 위치와 재능을 이용해 각지의 군사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게 된 권율은 역사상 유일하게 대(大)부원군이라는 존칭을 받았다.
-김성일
대대로 공조판서를 역임한 김성일은 공무를 우수하게 수행하여 의정대신의 반열에도 올랐으나, 당대에는 능력보다 왕의 스승이라는 이력으로 더 유명했다.
말년에 정계에서 은퇴한 김성일은 목돈을 모아 대학 입시, 공무원 시험 합격만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최초의 학원을 세웠고 크게 성공해 도성에서 손꼽히는 갑부가 되었다.
-노수신
영의정 관직까지 버리고 명나라 원정대를 쫓아 의주까지 올라간 노수신은, 다시 왕을 볼 면목이 없다면서 가족까지 불러 의주에 뿌리를 내렸다.
말년에 먹었던 매운 해장국의 맛을 잊지 못한 그는 거듭된 해장국 재현 시도 끝에 조선 북부의 독자적인 식문화를 탄생시켰고, 역사보다 식문화사에서 더 높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
-누르하치
요동에 정착한 그는 무과를 치러 무관이 되었으며, 명나라 원정에서의 종군과 공훈을 인정받고 출세욕에 걸맞은 능력까지 발휘하여 요직에 안착했다.
그 과정에서 여진족 출신이라며 받은 홀대를 의식했는지, 자신의 성을 한자로 그대로 옮겨 적은 애신각라(愛新覺羅)가 자신들이 신라 명족의 후손이며 그래서 신라를 잊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라며 프로파간다를 퍼뜨렸다.
그것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당대의 누르하치 본인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으나, 시일이 흐르자 애신각라 가문은 신라 시대부터 시작된 족보를 가지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열도 원정 끝에 수급이 잘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황금 술잔이 되었고, 먼 훗날 대가리만 남아 박물관 전시실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유명인이 되었다.
-류성룡
왕에게 잘못 처신한 역사를 가진 류성룡은 상관인 이이가 노구가 되어 낙향할 때까지 장장 40년 동안 사직도 못하고 의정부에서 극딜을 당해야 했다.
그동안 군기가 바짝 잡힌 채로 정무에 임해서인지 사고 치지 않고 갖은 업적을 남겨, 후대에는 명신이자 처신의 중요성을 잘 알려주는 반면교사로도 알려졌다.
-만력제
조선의 왕과 친목질을 다진 만력제는 맏아들 주상락의 황태자 책봉을 서두르고, 책봉식 당일 선위를 천명하고는 조선으로 도주하려다 실패했다.
이후로도 만력제는 조선으로 가겠다며 떼를 썼고 신하들은 황태자가 황제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결국 황제의 탈출을 방관했다.
만력제는 한성에서 태평하게 살다가 갔으며, 후손으로 장동 주씨를 남겼다.
그가 죽고서 백 년 뒤 조선은 왕가에 장동 주씨의 혈통을 흡수하고서 황위 탈취 명분으로 명나라에 전쟁을 선포했다.
-미철재상 이산해
왕의 치세 초반, 국고인 쌀을 대량 투입해 철장 단지와 광산을 개발한 이산해는 쌀로 철을 연성했다고 쌀 미에 쇠 철을 붙여 미철재상(米鐵宰相)이라는 이명을 얻었다.
이산해는 자신의 별명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나, 말년에 들어서는 주화입마에 빠졌는지 진정으로 쌀을 철로, 물질을 다른 물질로 변환할 수 없는지를 연구했으며 최종적으로 물질의 근본은 더 쪼개지거나 변화되지 않는다는 원자설을 발표했다.
-박순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절의와 맑은 물과 밝은 달과 같은 정신의 소유자라는 평가까지 얻었던 박순이나, 그도 왕은 당해내지 못하고 영의정직을 사직한 채 전 재산을 챙겨 본관인 충주로 도주했다.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항상 밥에 케찹을 비벼 먹었으며 여러 사람이 영향을 받은 끝에, 충주 일대에서는 케찹밥과 케찹밥에 갖은 고명을 올린 오므라이스가 전통음식이 되었다.
-심수경
수많은 첩을 거느리며 무수히 많은 서자와 얼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자식들을 차별 없이 아끼는 성격이라, 서얼허통을 주장했으며 종내에는 신분 차별 철폐까지 주장했다.
의정 대신이 작정하고 욕받이를 자처한 덕으로 그는 왕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신분제의 갖은 폐단을 없앴다. 그 과정에서 갖은 수모와 위협을 다 당하면서도 당당했던 심수경은 훗날 자유의 투사로 기록되었다.
-이름도 안 나온 세자
부왕의 뒤를 쫓아 조선의 왕으로 등극했으며, 안정된 치국을 펼쳐 조선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나 앞선 왕이 해낸 일이 너무 많아 사가에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순신
열도 원정이 끝난 직후 낙향한 이순신은 선단을 꾸려 대양으로 나섰다.
그는 각지에 세워진 조선성공회 지부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세계 일주에 성공했으며, 매번 항로를 바꾸며 몇 번이고 세계를 더 돌았다.
전근대 세계에서는 지독히도 위험한 해상에서 한평생을 살면서도 죽지 않고 편안한 최후를 맞은 이순신은 해신(海神)이라는 이명과 그에 걸맞은 전설을 각지에 남겼다.
해상에서 닿을 수 있는 전 세계를 탐험한 이순신의 수기는 훗날 중요한 사료로 남았다.
-이억기
만년 부원수로 재직해서인지 영광을 찾고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소리를 몇 번 하다가 돌연 관직을 버리고 정찰대를 꾸려 시베리아 개척에 나섰다.
이억기는 그가 원한 대로 시베리아에서 갖은 고생을 다 했는지, 개척지 총독을 맡기겠다는 조정의 제안에 기겁하며 거절하고는 여생을 도성에서 머무르며 평온하게 지냈다.
-이이
이른 나이에 영의정 자리에 올라 의정직을 계속해서 역임하면서, 아홉 번의 장원을 했다는 구도장원공에 이어 의정직을 아홉 번이나 연임했다는 구연의정공이라는 이명도 얻게 되었다.
왕의 위험한 이중생활을 알아차린 이이는 왕명을 받들어 필요에 따라서는 왕에게 반항을, 저항을 연출했다.
그 덕에 역사에서 이이는 왕과 호형호제한 절친이자 왕이 반정을 일으켰을 때는 지조 있는 왕조의 충신으로, 또 치국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한 명신으로, 필요할 때는 맞서기도 한 간신(諫臣, 간언하는 신하)으로 알려졌다.
-정인홍
스승에게 물려받은 경의검을 당당히 차고 다닐 정도로 대쪽 같은 성격이었던 정인홍은 문인이면서도 군의 일로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아들과 손자를 먼저 떠나보낼 정도로 장수하고서는 성격이 많이 죽었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휴식을 위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왕은 신하들의 사직서를 항상 받아주었으나 오직 정인홍에게만은 가납해 주지 않아 103세까지 일해야 했다.
-정철
왕이 폐주를 죽이고 정권을 탈취하자 서인의 거두였던 정철은 제 발 저리는 심정에 도성을 탈출하고서 한참을 숨어 지냈다.
그로부터 시일이 흘러 동서인의 당색이 무색해지고 나라가 안정되자, 정철은 살금살금 도성으로 귀환해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을 발표하며 자신을 기용해 달라 징징댔다.
-조선성공회
유럽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조선성공회는 세력을 키워 마침내 대립 교황을 선출, 유럽 각국의 이해관계를 이용해 30년 종교 전쟁을 일으킨 끝에 승리하고 교황령을 차지했다.
가톨릭 교황을 확보한 조선성공회는 교단 최고 성지인 경복궁 후원의 ‘참회의 연못’으로 데려가 입수, 개종시켰다.
-천둥군주 신립
무순관을 단 한 발의 화살로 무너뜨려 여진족들에게 아디한 한(천둥군주)의 이명을 얻게 된 신립은 명성과 무력을 바탕으로 여진족들을 통제하며 그들이 조선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왔다.
낙향한 후에는 선인들의 전통과 선비의 마음가짐을 보전하기 위해 국궁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협회장이 되었다.
-허봉
역사에서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으나, 아버지 초당 허엽이 만든 두부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두부김치 안주를 개발해 낸 허봉은 조선 술꾼들의 성인이 되었다.
-내가 왜 이순신이죠?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