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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285화 (285/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285화

102. 운명적 만남 (2)

구주좌수영.

최근 자신의 수군을 이끌고 원정에서 귀환한 이순신은 비보부터 받아야 했다.

“그게 사실인가.”

“예. 이미 증언을 많이 받았사옵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순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수영만큼은 엄격하게 기강과 군율이 유지되어야 했다.

무관과 병사들이 고생한다는 것은 알지만 구주좌수영은 아직 정토되지 않은 왜 영주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만일 저들이 기습이라도 한다면 가장 먼저 받아내야 하는 위치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적의 예봉을 더 꺾어내지 않고, 또 더 버티지 않으면 육지가 위험해진다.

더군다나 자신이 병력 다수를 이끌고 자리를 비운 순간은 특히나 기습에 취약했다.

이런 때 태만과 해이는 용서할 수 없었다.

실수가 아니라 분명한 고의를 가지고서 저지른 죄라면 더욱이!

이순신은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찌그리며 노성을 터뜨렸다.

“원(元)을 당장 내 앞에 대령하라!”

* * *

“원(元)을 당장 내 앞에 대령하라!”

구주좌수사 이순신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최고 지휘관인 자신이 병력 상당수를 데리고서 명나라 원정을 다녀온 참이다.

구주좌수영은 혼슈와 시고쿠의 왜 영주들을 마주한 해역을 총괄하는 자리. 현존하는 조선 수영 중에서도 가장 중요성이 높았다.

이순신은 떠나기 전 수영에 남는 제장들을 모조리 불러모아 앞에서 엄히 일렀다. 이러한 때 실수하는 자들은 엄벌할 것이라고.

하지만 한 놈은 수사를 포함해 보는 눈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긴장하기보다는 태만해졌고 마치 외적처럼 수영의 보안이 취약해진 틈을 타 부정을 저질렀다.

“수, 수사 영감…….”

원(元)이 포승에 매인 채 이순신 앞에 끌려왔다.

능력은 일고도 없는 주제에 출세욕은 강해서 눈치만 살살 보며 한 계단씩 밟아 오르는 것이 꼭 제 아비 같은 놈이었다.

그래서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그 눈길이 잠시 거두어진 틈을 타 대형사고를 쳤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기를, 네가 왜 영주들의 선박을 적합한 절차도 밟지 않고 뇌물을 받고서 밀항을 용인하였다 들었다!”

“아, 아니옵니다! 누가 감히 소관을 모함하였사옵니까?! 당장에 대질을 시켜주십시오!”

“누가 선장인 너와 대질을 하고서 위세에 죽지 않고 사실대로 고할 수 있겠느냐!”

수영 병력이 원정을 떠나면서, 기존처럼 선단 대형으로 모든 해역을 정찰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방어보다 탐지에 유의하는 방향으로 선단을 쪼개 개 선박마다 순찰하게 했다. 조선군 군선 하나가 왜선 여럿보다 강해 비상상황에서 대처하기 쉽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었다.

함께 하는 같은 급의 무관이 없어지자, 선장인 원은 배 위에서는 왕이나 다름없게 되어 온갖 비리를 저질러 댄 것이었다.

휘하의 수병과 무관들도 동승하고는 있었으나 수군은 호흡을 위해 한 번 배정된 선박에서 이동이 적은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원 밑에서 휘어 잡힌 채로 하라는 대로 해오다가, 비리를 잡아줄 수 있는 수사가 돌아오자 말이 새어나간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발자와 대질을 시키라는 건 터무니없는 짓거리.

“내가 이미 정황을 세세히 다 알고 있거늘,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빠져나갈 수작만 부리는구나!”

“아, 아니옵니다! 수사 영감! 소관은 억울합니다!”

“진정으로 억울하다는 놈이, 숙소에서 이런 것들이 튀어 나온단 말이냐?!”

이순신이 뒤편으로 시선을 돌리자 첨절제사가 쥐고 있던 주머니를 내던졌다.

콰르. 둔중한 소리와 함께 구주에서는 볼 일 없는 왜은이 쏟아졌다.

“많이도 해 처먹었구나!”

“이, 이건. 적선을 소탕하고 난 뒤 얻은 전리품이옵니다!”

“적선을 소탕하였다면 어째서 전공을 보고하지 않고, 또 전리품을 사사로이 가로챘느냐!”

“수하들이 노고가 많아 포상하고자…….”

“너희들!”

이순신은 원의 개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그럴 가치도 없었다. 그는 밖에 선 수군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들!”

“예!”

“원이 너희들에게 포상해준 것이 있느냐! 있다면 말해보라! 말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참작의 여지로 삼겠다!”

“…….”

입을 여는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눠 먹기라도 했다면 찔려서라도 원을 비호하려는 자가 있겠거늘.

그렇게 나서는 자조차 없었다. 당연했다. 탐욕스러운 원은 함께 부정을 저지르자 강요하고도 이익을 독점했으니까.

“이래도 네가 너의 죄를 시인하지 않는단 말이냐!”

원은 수세에 몰리자 그제야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수사 영감!”

“너는 내가 구주좌수영의 군율과 기강이 어느 곳보다 더 엄중해야 함을 모르느냐? 어찌 군관이 되어서 병사들에게 모범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나서서 부정을 저지르고 그것을 수하들에게 강요했느냐!”

“소장이 가진 모든 쇄은을 드리겠사옵니다! 목숨만 살려주시옵소서!”

“이놈이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마땅히 내놓아야 할 쇄은을 주겠다니, 나를 매수라도 하겠다는 뜻이냐?!”

“그, 그건.”

“네가 통과해준 왜인 중에서는 필시 몇 번이고 보았던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뇌물을 받고 계속해서 보내주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느냐?!”

조선령 큐슈가 낙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자들은, 대체로 궁핍하거나 몰래 빠져나오느라 여유가 없다.

그런 자들은 왜은을 묵직하게 건네며 주기적으로 큐슈와 그 너머의 섬을 오갈 이유도 여유도 없다.

즉, 원에게 왜은을 바친 자들은 세작이며 조선령 큐슈를 정탐하려던 자이다.

수영에서는 그동안 세작을 가리고자 밀항자들을 받으면서도 철저하게 신원을 검증했으나 원이 통행세만 받는 뻥 뚫린 구멍이 되면서 세작들이 노를 쥔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나다녔겠지.

“모, 몰랐사옵니다!”

“알고서 저질러도 죽을죄고 모르고 저질렀어도 죽을죄이다.”

원은 또 변명하고자 했지만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전에 이순신이 단칼의 원의 머리를 베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군율에 따라 적과 내통한 자를 참수로 다스렸다. 불만 있나?”

대가리가 똑 하니 잘린 원은 대답 대신 떼굴떼굴 구를 뿐이었다.

“놈의 머리를 군문에 걸어라! 감히 대조선의 군관이 되어 역적질한 자의 최후를 모두가 보게 해라!”

이순신은 허공을 베어 환도의 피를 닦아내고는 명했다.

“세작들을 쓴 왜추가 아직 큐슈를 침범하지 않은 게 백 번이고 다행이나, 놈이 조선을 정탐한 이유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조선을 침공하기 위함이니, 변경의 방비가 약해진 것을 확인한 지금 반드시 기회를 이용해 침공할 터이다.”

제장들은 진중한 얼굴로 끄덕였다.

“장수들과 병력이 회복됐으니 기존 방식대로 순찰한다. 아니, 순찰을 더 강화하겠다.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선박과 인물은 확보하도록 하고, 여의치 않으면 제거해도 좋다. 알겠나?”

“예!”

* * *

그날 밤.

눈썹이 무거운 것이 몸이 피로를 호소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순신은 내색하지 않고 직접 배에 승선해 경계에 참여했다.

막 원정에서 귀환하고도 쉬지 못하기는 제장과 병사들도 마찬가지.

지휘관이 되어서 모범은 못 보일망정 뒤에서 쉴 수는 없었다.

그는 망원경을 펼친 채 암흑에 잠긴 망망대해만을 바라보았다. 구름마저 두터워서인지 월광이 하나도 없고 탐지란 극악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기와 기상이야말로 야습의 적기이니!’

이순신 역시 선단의 불을 전부 끄게 했다. 적 선단에 포착되면, 반드시 정찰대를 우회하려 할 테니까.

그리고 불을 끔으로서 적에게 탐지되지 않은 채로 적 선단의 수효와 방향을 알게 되면 대책을 수립하는 데 유리했다.

하지만 양쪽 다 불을 끈다면?

서로의 선단이 스쳐 지나가도 서로 모르는 수가 있었다. 아니라면, 밤눈이 더 밝고 경계를 철저히 서는 측이 우위를 가지겠지.

‘후우.’

이순신은 쓰게 침음했다.

오늘 같은 밤이 가장 위험했고 수군절도사인 자신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모범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스스륵 잠이 들 판.

이순신은 바람이라도 쐬고자 갑판을 돌았다.

“헉, 수사 영감!”

다가오는 발소리에 수병 하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십 대 후반일까. 군적에 오르는 나이가 되어 농사일을 거들 형들을 대신해 수군으로 들어온 막내 느낌이 짙게 났다.

한창 먹고 한창 잘 때이지만 군대는 양쪽 모두 부족했다. 특히나 원정을 막 다녀온 지금은 어느 한쪽도 충족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여, 영감……. 목숨만은.”

“내가 널 죽이기라도 한단 말이냐.”

“겨, 경계를 나와 감히 졸았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가 어떤 병사들은 수영에 두고, 어떤 병사들은 원정에 대동한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는 말아라.”

“예.”

이순신은 수병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네가 잘 버텨내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수, 수사 영감님…….”

단칼에 목이 썩둑 잘린 원 선장처럼 될까 겁을 내던 수병들은 도리어 응원을 받아서인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 며칠만 더 버티거라. 내가 큐슈의 다른 지휘관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니 지원군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쉴 수 있겠지.”

그 전에 상황이 끝나거나.

“예. 알겠습니다.”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엄격하게 군율을 물어 경계에 태만했다는 죄로 벌을 줄 수도 있었지만.

이순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마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 어떻게 말단 수병이 조는 것을 벌한단 말이냐.

그저 다독일 수밖에.

이순신은 후, 쓰게 숨을 내뱉었다.

멀리서 졸았던 수병을 보니, 그는 당파로 자신의 발등을 쿡쿡 찍어대고 있었다.

수사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저렇게까지 하는 녀석을 어떻게 혼낸단 말이냐.

이순신은 그저 이 불편한 경계가 최대한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차라리 전투가 벌어지면 잠이 오는 것을 잊기라도 할 터이니.

* * *

“수사 영감.”

이순신이 비몽사몽한 사이 수병 하나가 다가왔다. 젊은 그 수병이었다.

“무슨 일이냐.”

“들리지 않으십니까? 이 소리가…….”

-솨아아.

-솨아아아.

-솨아아아아아…….

바람이 해수면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아니면 해변에 치는 작은 파도.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어느 쪽도 아니었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몽하게 있던 이순신의 정신이 칼날 위에 선 것처럼 날카로워졌다.

“네가 드디어 일을 냈구나.”

“예?”

“잘했다. 잘했어. 아주 장하다.”

이순신은 수병의 어깨를 두드렸다.

녀석은 다 죽어가는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자신의 격려를 받고는, 당파의 끝으로 연신 자신의 발등을 두드려가며 잠기운을 버텼다.

그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가상한데 이제는 전공까지 세웠다.

“전부 깨우거라. 조용히.”

“적입니까?”

“노 젓는 소리임은 확실하다.”

그것도 한두 척이 아니었다.

젊은 병사가 갑판을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조용히 깨우는 사이 이순신은 선미의 기수를 찾았다. 그는 선상의 분위기가 수상해진 것을 감지했는지 잠기운 하나 없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수사 영감.”

“그래. 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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