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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251화 (251/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251화

87. 천국과 지옥 (3)

“거저 의정이 되어서 개념이 없나 봅니다.”

이이가 쏘아붙이자, 두 사람을 말리려다 본인이 두들겨 맞은 심수경은 억울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언쟁하시던 두 분께서 갑자기 의기투합해 저를 공격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이가 답했다.

“전하께서 폐주를 죽이고 조정을 장악했을 때 세 의정 중에서 말린 사람이 둘 있고, 몸값을 높이겠다고 거들먹거린 사람이 하나 있는데, 우상은 각기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건…….”

후자의 한 사람은 명백하게 심수경이었다.

왕이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그가 똥폼이나 잴 동안 노수신과 이이는 진심으로 금상이 독주를 경계했다.

한순간에 권력을 틀어쥔 자는 으레 타락하게 마련이니까.

과거에도 합심한 두 사람은 여전히 합심하고 있었다. 심수경이 제지하지 않아도, 노수신과 이이는 서로를 존중했다.

가장 급박한 순간에는 본인의 이익만을 꾀했던 심수경이 뒤늦게 옳은 소리를 하겠다고 끼었다가 욕만 먹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많이 반성했습니다. 흠흠.”

“됐고.”

이이가 냉혹하게 끊자 심수경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이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의정이라는 위치와 역할의 엄중함을 항상 되새기길 바랍니다. 이해하셨다면, 응당 의견을 내시겠지요.”

삼의정은 문무백관을 대표하는 자리. 이따금 신하의 여론과 다른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아무 의견도 내지 않는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안 그래도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좋은 수가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이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두 분의 의견 모두 합당합니다. 전하께서 위험한 방법을 쓰고 계시지만, 무작정 저지하기엔 전하께서 좋은 결과를 많이 내오셨지요.”

“음.”

“흠.”

노수신과 이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의견이 맞지 않았던 이유는 어느 쪽에 중점을 두느냐가 달랐기 때문이지, 서로의 의견을 몰라서가 아니었으니까.

심수경이 말을 이었다.

“만일 의정부가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전하의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면,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을 겁니다.”

이이가 물었다.

“좋은 생각이지만 어떻게 전하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일의 진행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자는 것이지요. 종교의 문제에 당장 개입하는 대신, 종교인들에게 과세하는 겁니다.”

노수신은 이이와 함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수경 주제에 제법이군.”

“아니…… 심수경 주제에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원으로 관직을 시작해 지금은 칠순을 바라보는 몸입니다!”

그러자 이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상께서는 여전히 개념이 없으십니다.”

“그러게 말일세. 여기서 장원 못 해본 사람 있나?”

노수신은 중종 치세에 장원했고 심수경보다 삼 년 앞선 선배였다. 나이도 한 살 더 많았으며, 이이가 장원한 횟수는 구도장원공이라는 이명이 잘 알려주고 있었다.

“장원 한 번 해본 게 인생의 유일한 업적이라 그런가 봅니다.”

“조금 띄워주니까 자기가 제일인 줄 알아.”

“싸가지가 없습니다.”

노수신은 이이와 주거니 받거니 심수경을 패고는 답했다.

“거, 그런대로 머리를 썼나 본데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게.”

나름의 공을 세우고도 다굴을 당한 심수경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송구한 말씀이오나 이 사람은 지금 당장이라도 의정직을 때려치우고 싶습니다만.”

“자네가 사직하고 나면 남은 건 첩질하는 인간이라는 평가밖에 없어. 그래도 사직을 원하나?”

이이도 거들었다.

“의정이 되어서 이제 밥값 한 번 해놓고는 엄살은 되게 부립니다. 누구는 의정을 하루 이틀 한 줄 아나?”

“어허, 좌상. 자네가 참게.”

심수경은 입술을 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그의 의정 생활은 순탄치 않아 보였다…….

* * *

어전회의.

양아치 왕은 삐딱하게 어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서 삼의정이 진지함 반, 자신감 반으로 왕을 마주 보았다.

떡밥은 뿌려놓았다.

종교의 해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금지함으로서는 통제할 수 없다는 특징을.

왕은 이에 대응하고자 맞불작전이라는 과격한 수단을 택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이미 불탄 숲은 다시 불탈 수 없다는 쪽에 가까웠다.

외부의 종교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을 어용종교에 잠식시키겠다는 것이었으니까.

의정부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왕의 방식조차 아우를 수 있는.

영의정 노수신이 흩어놓은 떡밥들을 정리했다.

“종교의 해악이 이처럼 지극하나 금지로는 통제할 수 없으니, 억지를 부리는 것은 상책이 되지 못할 것이옵니다. 하나 종교세를 거두어 교단에 지급하되 이외의 방식으로는 사사로이 재물을 갈취할 수 없게 법령을 제정한다면, 교인의 수를 파악하는데 용이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피해 역시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짝, 짝.

노수신이 발언을 마치자 어전에 박수 소리가 울렸다. 진원지는 왕이 있는 상석이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잘 된 건가?’

노수신은 겉으로는 의기양양했으나 속에서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왕이 어떻게 자신을 엿 먹일지 몰랐으니까.

박수 소리가 멎고 왕이 말했다.

“안 그래도 종교세를 고려하고 있었는데, 의정부에서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먼저 권하니 제신들이 나랏일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음을 알겠다.”

“망극하옵나이다.”

“전담 관청의 선정과 이행 방식, 법 조항의 개정은 고려해 두었는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아직 종교세의 가부만을 논의하고 있었사옵니다. 만일 전하께오서 종교세의 신설을 반려하신다면 전부 무위로 돌아가지 않겠사옵니까.”

“나는 종교세의 시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노수신에게는 의외였다.

종교세는 자칫 어용종교의 확장조차 막을 수 있고, 교인의 숫자가 가시적으로 판단되니 조정이 종교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도 있었다.

왕이 튕기기라도 하면 전 영의정 박순이 주조권을 챙길 때처럼 추태라도 부릴 생각이었거늘.

뒤에서 무슨 사악한 계획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종교들의 종류와 수효를 명확히 파악하고, 또 각 종교가 원하는 종교세의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율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인력을 편성하는 것이 좋겠다. 종교청을 신설하는 게 어떤가?”

“종교청이라면…….”

종교세만으로도 해악이 큰 종교를 용인하는 느낌이 짙어 은근히 거슬렸는데 종교청이라니.

전담 기관의 설치는 공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왕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종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각 종교의 교인을 파악하고 종교세를 매긴다는, 제법 손이 많이 들어갈 일을 기존 관청이 떠안을 수는 없었다.

노수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조가 호구의 파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니 속아문으로 세우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그리하라.”

“예. 규모와 조직에 대해서는 의정부에서 상세히 논의한 뒤 상신하겠나이다.”

“종교세의 신설과 함께, 납세하지 않고 종교 행위를 하는 자들을 제한하고 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형판이 이행하게 하소서.”

“그리하라.”

노수신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왕이 전부터 종교세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허세는 아니었군. 그는 종교세의 시행을 적극적으로 원조했다.

자신의 맞불 정책보다 나은 방법이라 생각해서일까?

확신할 수 없었다.

당하는지도 모르게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바로 왕이니까. 노수신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계속 들었다…….

* * *

왕의 지원으로 종교청의 신설은 쾌속으로 시행됐다.

보수적인 선비들은 감언이설로 무지한 백성들을 희롱하는 종교를 용인하게 되었다며 조정을 욕했지만, 그들의 여론과 달리 중신들은 종교를 무작정 금지해서는 통제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불교만 해도 지난 이백 년 동안 탄압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지 않은가.

전도보다는 개인의 수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불교마저 이럴진대 역병과 같은 서양의 종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왕마저 맞불을 놓겠답시고 어용 종교를 창시하지 않았나.

“조선성공회, 라는 군요.”

영광스러운 종교청 초대 관리로 선발된 사내가 보고했다.

“조선의 성스러운 공공의 교회라니. 전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잘 알겠군.”

종교청 장관으로 선발된 유영경이 답했다. 한때는 왕을 가까이서 모셨지만, 그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는 너무나 먼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왕은 알던 사람이라고 특혜를 주지는 않았다.

유영경은 별말 없이 정직하게 일했고 종교청이 신설되자 여러 사람이 마다하는 가운데 나서서 자원했다.

“세율은?”

“없습니다.”

“없다고?”

“예. 0할 0푼 0리입니다.”

“……음?”

종교세의 신설과 함께 관련 법이 몇 개 만들어졌다.

교인의 숫자를 최소화하고 엄중하게 관리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로 만들어진 법들이었고 대표적으로 교단은 종교세 외의 수단으로 사사로이 재물을 받을 수 없도록 엄금하고 있었다.

상업 활동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종교세를 받지 않겠다 함은 교단을 수입 없이 유지하겠다는 뜻.

“설마?! 조선성공회가 제출한 문서들을 전부 줘보게.”

유영경은 하관에게 넘겨받은 문서들을 한참이나 뒤적이다 마침내 기대하던 부분을 발견했다.

“조선성공회는 각지에 엄청난 면적의 땅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군. 그래서 종교세를 안 받겠다고 한 거야.”

“이제 창설한 종교 아닙니까?”

“전하께서 창설하신 종교지.”

그리고 내수사는 방대한 재력으로 유명했다.

유영경을 포함해 관리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게 왕이 종교세의 신설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주도한 이유였다.

조선성공회는 전국팔도에 전부 자급자족할 땅이 썩어 넘친다. 종교세 얽매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불교와 토속신앙은 지난 200년 동안 탄압을 받아 세가 미약하여 자립이 힘들고, 기반조차 없는 외부의 종교는 절대적으로 종교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종교의 난립과 확장을 억제하고자 만들어진 종교세는 오직 조선성공회 외의 종교만을 대상으로 한다.

곧 조선성공회는 막대한 재력과 종교세의 존재를 발판 삼아 전국을 장악하겠지. 왕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조선성공회에 각지의 땅과 재산을 물려주었다.

“조정이 놀아난 겁니까?”

“그래.”

“처음 종교세를 주장한 곳이 의정부지 않습니까? 의정부의 대신들이라도 전하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군요.”

“언제는 어쩔 수 있었는가.”

며칠 뒤.

내막이 밝혀지자 의정부에서는 노수신과 이이는 합심해 평소처럼 심수경을 갈궜다. 내수사에서 어음을 몇 장이나 받고서 저지른 일이냐면서 말이다.

종교세의 신설은 두 사람도 동의한 바이지만, 처음 언급한 사람은 심수경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명목상의 이유고, 두 사람은 눈 빤히 뜬 채로 코가 베이자 왕을 대신해 줘팰 분풀이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라고 심수경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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