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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232화 (232/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232화

80. 불붙이기 (2)

오토모 소린은 과연 신하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소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박순은 믿기지 않았는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히 채근했다.

“그것이 사실인가?”

“예. 왜국에서는 조총을 중요한 무기로 취급하여 수량이 얼마나 있는지로 영주가 강하고 약함을 분간합니다.”

“그대의 가문에는 조총이 몇 정이 있는가?”

“일만 이, 삼천 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순은 입술을 말았다.

일개 영주가 가진 조총의 개수가 조선이 보유량을 능가한다니. 열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인가?

근황은 예조를 통해 피상적으로 확인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내란은 생각보다 격렬했고 위험했다.

“과장이 아니렸다?”

“어찌 졸자가 조선국에 이르러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지금의 수량은 오히려 몇 년 전에 비하면 반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린은 입에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박순의 반응에서 조선의 일면을 보았기 때문이겠지.

놈도 실상은 일국의 군주나 다름없다. 한평생을 조선의 왕보다 위험한 환경과 위치에서 지냈고 죽지도 않았다.

일개 영주라고 얕볼 자는 아니다.

“대우 가는 크고 작은 전쟁에서 많이 패했지. 그때 무수한 병장기를 잃어버렸을 테니 과연 사신의 말대로다.”

“전하······.”

“사신은 들어라. 문명국의 국력은 조총의 개수로는 좌우되지 않는다. 그대들처럼 야만적인 상태에 놓여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소린은 순순히 수긍했다.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전 당주라고는 하나, 대우 가의 실권은 현 당주가 아닌 그대가 쥐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직접 조선을 찾은 이유는, 단지 내가 불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예.”

나의 원호에 기운을 차린 박순이 몰아붙였다.

“그대는 무슨 속셈을 가지고 아조를 방문하였나?”

“대우 가는 사방을 적으로 두고 있어 풍전등화의 운명입니다. 만일 조선과 같은 문명대국이 대우 가를 보듬어주시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너희들의 싸움에 개입하라는 말이냐?”

“직접 군사를 보태주지 않으셔도 대우 가를 도울 방법은 많습니다.”

“만일 너희들이 잘못된다면 열도의 많은 왜구가 조선을 적으로 생각할 것인데, 우리가 무엇을 얻겠다고 너희들을 도와야 한단 말인가?”

“조선과 같은 대국이라도 남만인(南蠻人, 포르투갈인과 스페인인)과 홍모인(紅毛人, 네덜란드인)은 접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신비한 물건과 지식을 갖추고 있으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오랑캐들의 신변잡기에는 관심 없다.”

박순이 선을 긋기에,

“나는 관심이 많다.”

“전하······.”

“경들의 생각보다 세상은 넓고 우리가 모르는 것, 가지지 못한 것은 많다.”

“기껏해야 중원 주변의 오랑캐들일 것인데 그들의 하찮은 물건과 생각이 무슨 쓸모가 있겠사옵니까?”

“내가 사신이었으면 조선을 비웃었겠군. 아니 그런가, 대우종린?”

소린은 말없이 고개만 숙였다.

박순은 저 왜놈이, 하고 이를 갈더니 말했다.

“남만인이나 홍모인이라면 색목인(色目人, 주로 서아시아인과 중앙아시아인)들의 별종인 듯하온데, 색목인들에 대해서라면 충분하지는 않지만 신들도 알고 있사옵니다.”

“남만인과 홍모인은 서로 비슷하지만, 두 별종은 색목인과는 다르다. 내가 보기에 영상의 학문은 진실로 충분하지는 않군.”

“······.”

“영상, 내가 경을 총애하지만 아무리 총신이라도 일개 왜인 앞에서 빈번히 조선의 학문과 식견을 깎아내린다면 나라도 불쾌할 수밖에 없다.”

“소, 송구하옵나이다.”

박순은 입을 꾹 닫고서 물러났다.

“손님을 세워두고 잔말이 많았군, 대우종린.”

“아니옵니다.”

“나는 대우 가를 도울 의향이 있다. 하지만 고작 오랑캐들의 신변잡기만으로는 정산이 충분하지 않아.”

“무엇을 바라시옵니까?”

“조선은 그대가 바라는 것 이상을 도울 것이고, 그대가 예상한 것 이상을 취할 생각이다.”

소린의 눈이 커졌다.

“열도 놈들은 항상 이 땅의 백성들을 괴롭혀왔지. 전조만 해도 끊임없이 왜구들에게 시달려 종국에는 누구도 해안에 살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는 왜구들이 함경도까지 쳐들어올 정도였으니까.

정말로 해안이란 해안은 모두 폐허가 되었다. 백성들은 무능한 정부와 사나운 왜구들을 피해 산과 내지로 숨어들었다.

그러자 왜구들도 내지까지 들어와 약탈했다. 작은 배가 움직일 수 있는 강에서 시작해, 운신이 편한 평지에서, 나중에는 산지까지.

“만일 열도가 하나가 되면, 전조에서 각지를 노렸던 왜구들이 하나의 군대가 되어서 쳐들어오겠지. 아조의 안위에는 절대 좋지 않은 일이다.”

이에 좌의정 노수신이 한 걸음 나섰다.

대판 깨진 영의정 박순을 대신해.

“전하, 아조가 세워진 이후에는 왜구들의 침입이 줄어들어 이제는 손에 꼽힐 정도가 되었사옵니다. 우려도 좋지만 대응이 과하면 도리어 독이 되지 않겠사옵니까?”

왜구가 침공해 변경이 함락된 적은 70년도 더 된 삼포왜란이 마지막이다.

삼포왜란도 조정에서 보낸 중앙군으로 진압되었고 배후로 지목된 대마도주 종성친에게는 대폭 불리해진 조약이 강요되었다.

이후 변변한 왜침은 없었다.

대마도주는 지금 있는 이권이라도 유지하고자 비교적 협조적으로 행동해왔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첫 번째 이유는 크게 혼쭐이 나서 대마도주들이 대대로 교훈을 잊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무역을 유지하기 위함이옵니다.”

“잘 아는군. 대마도는 조선과 무역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대마도의 생산량은 곡식 수천 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열도와 조선 사이의 중개무역으로 그의 몇 배나 되는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불어난 인구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무역을 유지해야 한다.

사적인 이익을 조금 누리고자 조선을 침범하는 해충이 발생했다간 대마도 전체가 폭삭 망하는 수가 있었다.

그래서 대마도주는 왜구들을 최대한 근절해왔다.

“만일 열도가 통일되어 하나의 세력이 다스리게 된다면 대마도는 어떤 입장에 처할 것 같나?”

“최대한 조선과 열도 사이를 중개하고자 할 것이옵니다.”

“잘 아는군. 하지만 열도 전체가 전쟁을 결심하게 된다면 대마도가 그 흐름에 항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그렇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것이 내가 우려하는 바이다.”

임진왜란 당시 대마도를 지배하는 소(宗) 가문은 어떻게든 평화를 유지하고자 양측의 국서를 날조하는 등 각고로 노력했다.

심지어는 조선이 왜침에 방비케 하고자 조총이라는 위협적인 신무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도주들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고 소 가문은 당시 당주인 요시토시부터 첨병으로 내몰렸으며 조선은 사상 초유의 왜란을 겪어야 했다.

“반드시 일어날 전쟁이라면 먼저 공격하는 것이 이롭다. 누군가의 땅이 전쟁터로 변모해 백성이 피란하고 농지가 황폐화되어야 한다면, 적의 땅이 그렇게 되는게 좋지.”

노수신은 물론 제신들은 쓰게 입술을 말았다.

“극단적인 주장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에 대해서는 확신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경들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일어날 일은 벌어진다.”

“전하의 결단에 의해서 말이옵니까?”

“아니. 나는 단지 주도권을 쥐려는 것뿐이다.”

나는 소린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알기로 그대는 기리시탄(크리스천)의 포교를 허용하고, 큰 전쟁에 패한 뒤로는 개종하여 그들 식의 이름도 가졌다 들었다.”

“조선 국왕 전하의 말씀대로이십니다.”

“그들이 독이라는 건 알고 있었겠지.”

“예. 하지만 대우 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이 든 잔이라도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아하니 남만인이니, 홍모인이니 하는 놈들의 독은 영 성능이 시원찮은 것 같군. 내가 제대로 된 독으로 잔을 채워주고자 하는데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졸자의 의향이 의미 있습니까?”

“없지.”

“대왕의 뜻대로 하십시오.”

“기꺼이.”

나는 어좌에 늘어져서 덧붙였다.

“물러나라. 다시 부를 것이다.”

“예.”

소린과 통역이 물러났다. 그러고도 엄중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왕이 전쟁을 각오했으니까.

좌의정 노수신이 다시 나섰다.

“신들은 모두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옵니다.”

“안다.”

달라지는 것이 없을 뿐이지.

“전하께서 진정으로 일군을 일으키시겠다면 신들이 막을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하나 신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 내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발로이옵니다.”

“안다.”

“예전부터 성상께서는 여러 일을 신들에게 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처리해 오셨사옵니다. 하나 이 일만큼은 신들에게 맡겨주시옵소서.”

“내가 무리를 한다 생각하느냐?”

“전쟁이란 크건 작건 무리인 것이옵니다.”

“맞는 말이로군.”

“그러니 간절히 청하옵니다. 각고의 노력을 다하여 필승의 계획을 세우겠으니 전쟁은 신들이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다. 하나 경들이 무엇을 우려하는지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 그대들이 최대한 우려를 덜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

노수신이 간절한 목소리로 청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옵니다.”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그대들은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육조거리에서는 주기적으로 궁녀인지 상궁인지 모를 여인이 나와 힘찬 목소리로 왕의 무수히 많은 별칭을 외운다.

낯부끄러운 짓이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별칭 하나하나가 왕의 실제로 세운 업적이었으니까.

“나는 최소한은 개입할 것이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경들은 미리 익숙해지라. 이 일만 성사하면 나는 많은 부분에서 양보할 터이니.”

대신들은 침만 삼킬 뿐이었다.

회의가 파했고, 오늘의 의정부는 유난히 북적였다.

삼의정에 동벽과 서벽은 물론 육조와 오위, 금군삼청의 당상들도 집결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박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노파심에 알려드리겠소. 전하께서는 왜와 일전을 벌일 생각이시오.”

주변에서는 쓴 침음이 흘러나왔다.

의정부 당상 심수경이 물었다.

“전하께서는 왜가 통일되면 아조를 노릴 것이라 확신하셨는데, 정말로 그렇겠습니까?”

“가능성을 아주 간과할 수는 없소이다.”

“하지만 전쟁의 징조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통일된 것도 아니고 여전히 저들끼리 싸우기 바쁘지 않습니까?”

병조판서 이을룡이 나섰다.

“징조가 보인다면 대응이 늦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왜를 격멸할 생각이라면 통일되기 전에 나서는 것이 옳습니다.”

“열도의 사정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인데 다짜고짜 전쟁을 준비하는 건 신중한 행동이 아니외다. 그런 식이라면 조선은 한 시도 평화롭지 못할 것이오.”

이에 좌의정 노수신이 우의정 이이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고 노수신 쪽이 입을 열었다.

“다짜고짜는 아니외다.”

“좌의정 대감?”

“전하께서는 즉위 전부터 왜가 쳐들어오리라 확신하고 계셨소이다.”

“어떻게······.”

심수경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박순이 끼어들었다.

“그걸 좌상과 우상 두 대감만 알고 있었단 말이오?!”

극비 정보를 두 대감만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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