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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219화 (219/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219화

75. 마법의 가루 (3)

“양주 궁방전의 비료 만드는 곳을 찾아가게. 취토군과 함께 말이야.”

나의 말에 이이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곳에 초석이 있사옵니까?”

“그렇다.”

“······비료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비료를 만드는 곳이다.”

이이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비료를 만들면 비료가 나와야지, 왜 초석이 나온단 말인가? 16세기는 창조경제를 논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대였다.

‘화학에 대해서도 무지한 시대이지.’

비료의 핵심 성분은 질소와 칼륨이다.

초석의 화학식은 질산칼륨이다.

그러니까 비료를 만들 때 초석도 만들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소위 초석밭이라고 전쟁에 필요한 초석을 수급하고자 밭을 조성했다. 주재료는 똥과 오줌, 부엽토, 짚, 잿가루였다.

이들은 비료를 만드는 재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물론 단순히 비료가 아닌 초석을 효율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배합비율, 환경조성,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하지만 초석의 가치를 고려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초석을 제외하고 남은 부산물은 핵심 성분이 추출되어 비료가 아닌 비료 조무사가 되겠지만, 그것도 농경사회에서는 없어서 못 쓸 지경이다.

‘이래서 아는 게 힘이지.’

원리를 안다면 당연한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르는 자에게는 납으로 금을 만든다는 연금술이 따로 없으리라.

“우의정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얼굴이로군. 의문을 해소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

“······취토군을 데리고 다녀오겠사옵니다.”

“좋아. 그리고 저쪽 친구들은.”

먹고 싸는 건 동물도 할 줄 안다.

달리 말하자면 먹고 싸기만 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건, 동물만도 못한 짓이다.

바쁜 사람 불러놓은 주제에 면전에서 비싼 밥 좀 먹었다고 지랄이라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게 국룰이다.

그런데 왕 상대로는 이때다, 하고서 달려든다.

“모조리 교화소에 처넣어 썩어빠진 정신을 고쳐주고 싶지만.”

썩어빠진 정신들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있으니 교화형은 면해주지.”

“마, 망극하옵니다!”

“하지만 성균관의 유생들 수준이 지극히 저열하니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전혀 없다고 봐야겠군.”

“······.”

유생들이라고 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왕이 뗀 말이 어떤 식으로 흐를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나는 기꺼이 유생들의 기대에 부응해주었다.

“성균관은 없애겠다.”

* * *

어전.

경연장에서 나온 말 때문에 좌우 시립한 제신들이 잔뜩 긴장한 가운데.

“우의정.”

“부르셨사옵니까.”

“양주 궁방전은 다녀왔는가?”

“예. 대략 팔천 근의 초석을 확보하여 군기시에서 보관케 하였사옵니다.”

팔천 근 소리에 대신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영의정 홍섬이 물었다.

“기존에 보관하고 있던 군기시 초석만 하여도 채 수천 섬이 안 되는데, 어떻게 팔천 근이나 되는 초석이 양주 궁방전에 있었사옵니까?”

“내가 있으라, 하면 있게 될 것이다.”

“······.”

홍섬은 입을 열다 말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농담이랍시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가 보다.

하지만 자세히 설명하래도 방도가 없다.

비료의 주성분인 질산과 칼륨이 반응하여 초석이 된다고? 알아먹을 인간이 있겠나. 농만도 못한 대답이 될 터였다.

“경들도 무뢰한 자들이 유생의 신분을 믿고 인군에게 방자하게 군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

“······.”

“이는 성균관이 제 기능을 못한 탓이다. 이제는 사대부들이 학문을 수양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악한 무리가 모여들어 작당이나 하는 소굴이 되었으니 어찌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좌의정 노수신이 나섰다.

“전하. 근자에 유생들이 오만방자해졌다고는 하나 성균관은 열성조께서 나라의 사대부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세우고 유지한 것이옵니다. 어찌 하루아침에 없앨 수 있겠사옵니까?”

“내가 없어져라, 하면 없어질 터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병조는 물론 오위의 요직들은 전부 내 사람이 쥐고 있었다. 명령만 떨어진다면 성균관으로 쳐들어가 다 때려죽이고 불태우겠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지만 나는 이 패를 손에서 놓을 생각이 없었다.

“소위 유학자를 자처하는 자들은, 유학에 대한 지식은 분명하나 자신이 함양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하였다.”

중신들도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없애버리겠다는 소리에 쫄았던가.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만일 지식만 중요하다면 왜 유학자를 써야 하나? 차라리 경전이나 몇 권 마련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적어도 책은 자신에게 쓰인 글자와 반대된 행동은 안 할 터이니 말이다.”

이러한 평가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이겠지.

과연 그가 나섰다.

“온당한 하교이시옵니다. 오늘날 유학을 배운다는 자들은 하나 같이 배우기만 할 뿐, 실천으로는 옮기지 못하니 지극히 통탄할 일이옵니다.”

“하지만 경은 내가 성균관을 없애기를 원치 않겠지.”

“그러하옵니다.”

“내가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나?”

“예. 단지 신의 간언을 들어주시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말이나마 하겠다는데 어쩌겠나.

“기꺼이 듣겠다.”

“한나라의 명제(明帝)는 벽옹(辟雍, 교육 기관)에 임어하고 당나라 태종은 몸소 국학에 나아가 학교를 숭상하니, 무관들도 모두 글을 읽고 오랑캐의 추장들도 자식을 보내어 배우게 하니, 정치가 크게 흥하였사옵니다.”

“그래서?”

“학교를 일으키고 운영하는 것은 큰 이익을 위해서이니, 일부 유생들의 태도가 문제가 된다고 하여 성균관을 폐한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인 줄로 아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종에다 소의 피를 뿌렸는데, 뿔이 곧게 난 소의 피여야만 했다.

그래서 곧게 나지 않은 소의 뿔을 고치려다 그만 소를 죽인다고 교각살우(矯角殺牛)라고 하였다.

한국의 속담으로 치환하면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운다.’가 되겠지.

“고작 학교 하나 세운다고 정치가 흥하는가? 그렇다면 기꺼이 성균관을 무너뜨린 뒤 다시 세우겠다. 몇 번이고.”

나의 입장은 간단하다.

유학을 배운 자들이 유학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한다면, 학문에 어떤 의미가 있나.

그런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에는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랏일을 하겠다는 자는 달라야지.”

과거는 고작 골목대장이나 뽑는 시험이 아니다.

천만 백성을 왕과 함께, 왕을 대행해 이끌어갈 관리다.

“과연 관리들에게 저들이 지키지도 않을 가치관의 성립이 중요한가? 내가 보기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많다.”

이이가 간했다.

“유학을 배운 자들이 이 지경이라면, 유학을 배우지 않은 자들은 어떤 지경에 이르겠사옵니까?”

“유학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단지 중요성이 떨어질 뿐이다.”

“나랏일에 필요한 능력은 관리들이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사옵니다. 하나 마음가짐은 미리 가르치지 않아서는 소용이 없사옵니다.”

“내가 콩이 필요해서 콩을 심겠다는데 경은 팥을 심자는군.”

“콩이 필요하다고 팥을 없애서는 안 될 줄로 아옵니다.”

“하.”

나는 손을 내저었다.

“경은 내가 끝내 성균관을 남기지 않을 것을 알면서 계속 고집을 부린단 말인가?”

“신은 전하께서 끝내 성균관을 남기지 않으실 것만이 아니라, 신의 고집을 들어주실 정도로 마음이 깊으시다는 것도 압니다.”

“나의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

“왕의 은혜는 무한한 법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이보고 철이 들었다고 했단 말인가.

며칠 전에도 유생들이 떡이 되는 꼴을 보았다. 그런데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나의 진노가 의정이라고 비껴갈 줄 아는 순진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딴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나에게 간언하고 있겠지.

“좋아. 경이 이토록 간절하게 간언하는데 내가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그대를 의정으로 삼은 이유가 없지.”

“하오시면······.”

“산학교수를 1인 증원하고 성균관에 배속한다. 그리고 성균관에서도 산학을 가르치게 하라.”

당장 가르쳐야 할 학문은 많지만, 수많은 증명과 검증을 건너뛰고 나만의 학문을 창조할 수는 없다.

대신 모든 학문의 근간이 되는 수학을 가르치게 할 수는 있겠지.

결과적으로 성균관은 유지되는 셈이다.

유학의 비중도 떨어졌지만, 싸가지 없는 유생 놈들은 잡과 축에도 끼지 못하는 산학을 천박하다며 멀리하겠지.

겉보기에는 급격한 변화가 없을 거다.

‘하지만 머리 좀 돌아간다는 놈은 산학도 공들여 배우겠지.’

왜냐?

대과 마지막 시험인 전시의 출제는 왕이거든. 그리고 성균관에 산학 과목을 추가한 놈도 왕이다.

그럼 전시의 주제로 무엇이 나오겠는가?

당장 대과 한 번만 치러도 분위기가 급변할 거다.

이런 와중에 알량한 유학자 자존심으로 끝까지 산학을 외면하겠다면 병신이지. 관리가 될 가치도 이유도 없는 놈이고 실제로도 관리가 되지 못할 거다.

하지만.

‘크게 양보한 것도 사실이지.’

이이는 허리를 꾸벅 숙이더니 감명받은 투로 말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보이는 것처럼 대단하게 감명을 받았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원래 윗사람에게는 과장된 리액션을 보여주게 마련이니까.

“유생들의 태도 문제가 계속된다면 나는 오늘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물론 경도 마찬가지로 후회하게 되겠지.”

“각골명심하겠나이다.”

“말뿐이 아니리라 믿는다.”

알아서 군기 잡으라는 소리였다.

앞으로 유생들 개소리는 좀 줄어들겠지. 물론 겁대가리 없는 놈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고, 삼사와 성균관에는 개념 없는 인간의 농도가 다른 곳보다 높다.

하지만 나에게 깝쳤던 선배들도 뒤지게 맞았고, 관리들도 우의정 눈치를 봐서 말릴 텐데도 굳이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겠다면.

뭐······.

병에 해골과 방사능 마크가 붙어있는 걸 보고도 굳이 먹겠다면 뻔한 결말이 나온대도 별수 없겠지.

* * *

영의정 홍섬.

그는 왕의 부름을 받아 편전을 찾았다. 익숙한 복도를 가로질러 집무실 앞에 서니 내시가 영의정의 방문을 전했다.

안에서 윤허가 떨어졌다.

“들라 하라.”

문이 좌우로 열리고 홍섬은 조심스럽게 입장했다.

왕은 어좌에 모로 누운 채 공문을 읽고 있었다. 태연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왔군.”

“예.”

“소식 들었네.”

왕은 공문을 내려놓고는 자세를 고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정경부인(貞敬夫人)이 많이 편찮다고 들었네.”

정경부인이란 1품 대신의 처를 이른다.

홍섬의 아버지인 홍언필은 영의정을 지냈으니, 홍섬의 어머니인 송씨는 정경부인인 셈이다.

그녀는 나이가 아흔을 넘어서도 정정하였으나 최근에 비보가 있었다.

“봄추위로 인한 고뿔에 잠시 걸리셨을 뿐입니다. 염려치 마시옵소서.”

“내가 걱정하는 사람은 정경부인만이 아닐세.”

홍섬도 일흔을 넘긴 지긋한 연배였으나, 그래도 어머니는 어머니였고 그는 어머니의 자식이었다.

한평생 모시고 산 어머니께서 건강이 안 좋으시다니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단순히 고뿔일지라도 모친의 연배가 아흔을 넘었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했다. 고뿔이라고 가벼이 넘길 게 아니었다.

항상 만일을 각오할 수밖에 없고, 또 홍섬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네. 하지만 시간은 뒤로 돌릴 수 없지. 기회가 있다면 지금일세. 경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으니, 내가 도와주려는데 그대 심정은 어떤가?”

홍섬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묵직한 숨을 몇 번이나 토해낸 뒤 답했다.

“전하의 뜻을 따르겠사옵니다.”

“사직하게.”

“······예.”

“정경부인에게는 금천병원 원장을 보내지.”

허준이다.

그는 내가 선조를 죽였을 때도, 즉위했을 때도 별 반응이 없었다. 숙원사업인 의서 집필로 바빴던 탓이겠지.

그렇다면 당분간만 더 바빠 주었으면 했다.

“망극하옵니다.”

“나라를 위해 오래 일한 신하에게는 궤장을 내려 위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은 이미 궤장을 받았고······.”

“신은 이미 전하께 무한한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내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래.”

홍섬은 나를 믿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은 물론 일가와 문중의 명운까지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 그럼에도 홍섬은 나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거짓말이겠지.

“경이야 알음알음 챙겨먹은 재물이 많아서 그런 쪽의 하사품은 필요가 없을 테고.”

“흠흠······.”

홍섬은 민망한지 헛기침했다.

사람이 뒤가 좀 지저분할 수도 있지. 그가 관문에 입성한 시점은 한참 이전이었다. 그리고 내가 즉위한 후로는 치부를 만들지 않았다.

홍섬 정도면 무척이나 양호한 축에 속했다.

“어쩌면 경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나는 가장 얻기 힘든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네. 딱히 물질적인 가치는 없지만, 물질적인 가치로도 얻기 쉽지 않은 게 또 사람의 마음이니까.”

나는 서안에 백지를 올려두고 일필휘지로 써 내렸다.

[ 暹之忠朕 ]

홍섬은 나의 충신이라는 뜻이다. 후, 바람을 불어 먹물을 말린 뒤 홍섬에게 건넸다.

“이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홍섬은 황송하다는 듯 받들다 놀란 눈으로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전하, 이건.”

“문제라도 있나?”

“마지막 글자가······.”

짐(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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