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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215화 (215/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215화

74. 니탕개의 난 (1)

어두운 밤.

풀벌레조차 울지 않는데 수상한 소리만 났다.

-사박사박.

인영 수십 개가 산비탈을 타고 움직였다. 관목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여기저기서 부러졌다. 인영들은 최소한의 조심성도 없어 보였다.

선두의 인영이 손짓하자 다른 인영들이 몸을 낮췄다.

언덕에서 불빛 몇 개가 올라왔다.

중심에는 중년의 장정 원색의 갑주를 입고 있었다.

최근 이쪽 길목에서 파발과 호위들이 습격을 당해 전멸했다는 소식이 있어서일까. 사내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북방의 광풍이 부는 밤에서 횃불은 풍전등화나 다름없었다. 단지 주변만 어렵사리 밝히는 정도요, 양측의 산비탈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인영이 자신들을 향한 줄은 추호도 모르리라.

선두의 인영이 허리춤에서 활을 꺼냈다. 그 모습에 주변 인영들도 하나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으드득…….

오래된 활대가 비명을 질렀다. 맞은 편의 조선군들은 시선만 아니라 화살까지 자신들을 향한 줄은, 여전히 추호도 모르는 모습이다.

-팡!

시위가 허공을 때렸다.

화살은 이미 저만치 날아가 갑주 입은 사내의 안면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곧, 화살이 얼굴을 꿰리라!

주변의 인영들도 시위를 놓았다. 쉭쉭거리는 뱀소리가 행렬에게 퍼부어졌다.

대지에, 말에, 사람의 형체 위로 대살이 피어났다. 행렬의 사내와 병사들은 단말마도 내지 못하고 낙마했다.

주인 잃은 말들은 두세 개의 화살을 꽂고서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인영은 일어나서 만족한 투로 말한다.

“처치했나?”

자.

여기서 모두가 알아야 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허공을 향해 ‘처치했나?’ 하고 중얼대는 건 반전을 부르는 주문이라는 것이다. 설령 여진어라고 해도 말이다.

-삐이이이이…….

피리 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그러더니.

-펑!

하는 시원한 폭음과 함께 허공에서 섬광이 빛났다.

인영들에게서 일순 여진족의 형상이 드러났다. 주변은 다시 어둠에 잠겼으나, 여진족들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야!”

분명 행렬은 단숨에 처치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여진족들은 활과 곡도를 부여쥐고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없다. 마치 그들이 어둠에 숨고 적막에 기대 조선군을 노렸듯.

분명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이가 있거늘 사방은 온통 어두웠고 적막에 잠겨 있었다.

여진족들은 한참이나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반응은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 식경은 꼬박 지났거늘 화살 하나 올라오고는 끝이었다.

어쩌면 그 화살은 우연히 쏘아진…….

“착각인가?”

자.

이런 발언도 마찬가지다.

허공을 향해 ‘착각인가?’하고 중얼대는 것은 신상에 전혀 이롭지 못하다.

과연,

-퍽!

여진족 중 하나가 가슴에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눈동자를 키웠다. 소리 없이 날아온 화살이 가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이거 편……, 전…….”

보통 화살의 절반 길이지만 매섭기는 보통 화살의 배 이상이다.

귀신같이 날아와 귀신같이 박힌다. 알아차린 다음에는 너무 늦었다.

여진족들은 춤추듯 몸을 틀더니 픽, 쓰러져 비탈을 굴렀다. 가까스로 나무 기둥에 기대 몸을 피한 여진족들만이 저만치 굴러가 처박힌 동료들을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선군도 매복하고 있었단 말인가?!”

“제기랄!”

“수하들을 미끼로 삼다니!”

여진족들은 헐떡이며 한두 마디씩 털어냈다. 그렇게 한숨 돌린 여진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대장은 없었다. 역습 당하는 와중에 뒈져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여진족 사회에서 지휘관이 죽는 일은 일상이었다.

피신한 자 중에서 가장 연륜있는 전사가 입을 열었다.

“조선군이 우회하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 전부 따라오도록!”

말을 마친 전사는 나무를 밀치고 뛰쳐나갔다.

능선을 타고 이동하여 조선군을 따돌릴 생각이다. 살아남은 여진족들은 다급히 전사를 쫓았다. 등 뒤로 둔탁한 소리가 났고, 또 무언가가 굴러 떨어졌다.

여진족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헉, 헉, 헉…….”

여진족들은 한참이나 달려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야 숨을 돌렸다.

다들 주변의 지형을 익혀두었으나 야밤에 보이는 것은 없다. 하늘이라도 맑았다면 별자리에 의지해 방향을 구분했겠으나, 오늘은 유난히 날이 어두웠다.

그래서 길일로 잡고서 고을을 오가는 조선군 파발을 사냥하러 나선 게 아니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나, 제 발을 찍은 격이었다.

“조선군은 따돌린 것 같으니 천천히 탈출하자.”

전사가 말했다.

시간은 많았다.

하늘마저 어두운 밤 아래에서 방향감각을 잃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조선군들이 한참이나 산을 뒤지다 어떠한 수확도 얻지 못하고 동이 틀 즈음, 그들은 느긋하게 본거지로 귀환하고 있으리라.

습격자들의 퇴로마저 예상해둔 게 아니라면.

-퍽!

앞장서던 전사는 가슴에서 격통을 느꼈다. 무슨 소리가 들린 듯한데.

시선을 내려 채 통증의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전사는 쓰러졌다.

뒤따르던 여진족들은 깜짝 놀라 물러섰다. 각자 다시 나무 기둥을 하나씩 차지하고서 몸을 피신했다. 선두의 전사가 죽었으니 화살이 날아온 방향만 막는다면…….

“끄악!”

여진족 하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어디야!”

“아무것도 안 보여!”

여진족들은 고이 몸을 건사하기 힘든 것을 알고서 시위에 화살을 걸었으나, 그것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는 몰랐다.

“악!”

비명이 밤을 울린다.

공포에 미쳐버린 것인가, 좌절한 것인가. 여진족 하나가 발작적으로 튀어나와 허공을 향해 시위를 놓았다.

퉁!

화살은 힘차게 날아갔으나 허공만 가르다 말았다.

“으아아아!”

막 갈겨버린 여진족은 숨지도 않고서 악만 내질렀다. 그러자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듯 어둠 속에서 화살이 날아와 처박혔다.

“꺽.”

그렇게 여진족 하나가 또 죽었다.

하나가 또 죽었고,

또 죽었다.

“바얀? 나라?! 타이!”

홀로 살아남은 여진족이 전우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아무나 답해줘! 충샨! 시안! 제발…….”

고래고래 악을 쓰니, 인기척이 있었다.

동료인가?

적인가.

다가오는 발소리에 여진족은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놈이었으나 전우는 아니었다. 행렬의 한 가운데 원색의 갑주를 입고 있었던 자였다.

분명 화살을 맞고 죽었을 텐데.

“이거 뒤지게 시끄럽네.”

놈이 조선어로 중얼거린 탓으로, 여진족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칼집에서 끌려 나오는 금속성 소음의 의미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용정 관아……, 라기보다는 관아로 전용하게 된 여진족의 저택이지만.

아무래도 좋으리라.

권관 하나가 흙먼지를 잔뜩 묻힌 채로 들어섰다. 그는 용정 군수 이순신에게 예를 표하고는 보고했다.

“수괴의 신원을 확실하게 알아냈습니다.”

“누구인가?”

“니탕개라 하였습니다. 발음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에 군수 근처에 자리해 있던 토관이 말했다.

“용정의 서쪽에 자리한 부족장을 말하는 걸 겁니다.”

“규모는?”

“교류가 없어 상세히는 모르나 일천이 안 되는 것으로 압니다.”

“회령군 대감의 사람이 아니었나 보군.”

“예. 용정 영내에 있는 부족도 아닙니다.”

“집안싸움에 외부 세력이 개입한 셈인가.”

“조선이 연해도를 장악하게 되면 처지가 곤란해지니 훼방을 놓으려는 모양입니다.”

토관들의 증언으로 적이 대강 용정의 서쪽 너머에 거주하는 여진족임은 확인했다.

하지만 내부 정리에도 힘이 부족한 마당에 무작정 병력을 이끌고 서부 전체를 순회하며 다 때려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덫을 놓았다.

자신과 관찰사 사이에 오가는 문서에는 중요한 정보들이 많이 담겨있었고, 배후는 한 차례 문서를 탈취해 재미를 보았을 테니 반드시 또 노리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과연 놈들은 예상대로 당해주었다.

“수괴의 정체를 알아냈다면 남은 일은 오직 처단이다. 병사들을 소집해라. 조선의 백성을 해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예.”

토관들은 결의를 굳힌 얼굴로 일어나 흩어졌다.

이순신은 군관도 보내고서 집무실을 찾았다. 벽 한쪽에 조총이 걸려 있었다.

그는 기꺼이 조총을 매고 밖으로 나섰다.

“총원?”

“육백 명입니다.”

“조선군은,”

“이백 명입니다.”

“두 명이 빠졌군.”

“전부터 독질로 고생하던 놈들이었습니다.”

강 너머의 겨울은 함경도보다도 혹독했다. 자기들의 여식이 하삼도의 병사 셋보다 더 강할 거라 호언장담하던 함경도 토병들도 고작 강 하나 넘었을 뿐이거늘 빠짐없이 환자가 나왔다.

“쉬게 두고, 우리는 떠난다.”

“예.”

이순신은 권관이 대령한 전마에 올라탔다. 조선의 말은 북방의 말에 비하면 조랑말 수준이었다. 무인인 이순신조차 적응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처음 올라탈 때는 한쪽 다리를 올리고서 폴짝폴짝 뛰어대느라 양반님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금방 익숙해져 천만다행이었다.

“출발하라.”

이순신은 고삐를 당기고 말허리를 가볍게 찼다. 전마가 어기적거리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주변으로 토관들이 붙었다.

여진족들은 몰라도 조선군은 대부분은 조총병이라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행군이 시작되자 토관들이 이순신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동이 틀려면 족히 네 시진은 지나야 할 겁니다. 고려해주시지요.”

겨울의 밤은 유난히 길고, 북방의 밤도 유난히 길었다. 그리고 북방의 겨울밤은 오지도록 길었다.

이미 새벽이었지만 한숨 자다 일어나도 여전히 해는 뜨지 않았겠지.

“야간전을 우려하는 건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행군하더라도 채 반 시진이 안 되어 니탕개 세력의 경계에 닿습니다.”

“이쪽만 야간전을 치르는 게 아니다.”

토관들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면으로 야간전을 펼치겠다는 건 제정신으로는 불가한 일이었다.

야밤에 뭘 보고서 지휘하겠단 말인가?

난전으로 격화되기 일쑤고,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창이건 칼이건 휘둘렀는데 뭐가 걸렸다면 그게 아군인지 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야간전은 무척이나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한밤중에 병력 모조리 끌고 가서 들이박는 게 아니라.

“기병전이 벌어지면 조총수들은 피아 구분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토관이 우려했다.

같은 여진족도 피아구분이 안 되는 밤에 조선군들이 뭘 알겠는가? 냅다 갈겨댈 테고 등판에 맞는 친구들만 불쌍했다.

이순신이 답했다.

“가급적이면 조선군 위주로 싸울 걸세.”

“기병 돌격을 보병으로 받아내시겠다는 겁니까?”

“화력은 충분해.”

“단 한 번의 돌격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병력 전부가 와해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한다면, 그래야겠지.”

이순신이 억지를 부리자 만류하던 토관의 곁으로, 다른 토관이 다가왔다. 이하 토관 2호는 이순신이 듣기를 원치 않는다는 듯 여진어로 말했다.

“우리 여진족 대신 조선군이 싸운다니 굳이 말릴 일은 아니잖나?”

그는 빙글빙글 웃었다.

외부 세력인 조선이 이 땅을 지배하겠다는데 현지 세력이 힘을 보탤 이유는 추호도 없다. 토관 2호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토관 1호가 답했다.

“이 사람아. 조선군이 패퇴하고 조선이 철수하면 우리 입장이 뭐가 되나? 김자강도 떠난 마당에 그를 다시 부를 수도 없고, 부르더라도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

용정의 토관들은 잃을 게 많은 입장이었다.

각자 부족과 영역을 지배할 권한을 잊었다곤 해도, 조선의 지배가 완전하지 않은 지금은 다분히 형식적이었다.

이 땅이 완전히 조선의 것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흐를 테고 토관들은 대대로 토관직을 물려받으며 부와 권력을 누릴 터였다.

당장 함경도의 여진족들도 개척된 지 150년이 지났거늘 여전히 토관이 존재하고 각자의 저택에서 사병이나 다름없는 장정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예전 같은 혼란의 시대가 아니라, 조선이 지배를 굳혀 우리 이익과 권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걸세.”

“듣고 보니 자네 말이 맞군.”

“내가 언제 틀린 적이 있나? 이 전투는 우리가 나서는 한이 있어도 이겨야 해.”

“흠. 그런데 군수는 왜 조선군만 동원해서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가?”

“나야 모르지. 공을 독식하겠다고 똥배짱을 부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자신이 있어서인지.”

용정 토관들이 전장에서 믿음을 가지고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둘이었다.

조선왕과 김자강.

두 사람은 몇 번이나 회령 여진족을 구원했고 세도 넓혀주었다.

전장에서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지휘관처럼 든든한 존재는 없다. 하지만 군수 이순신은 참전 경력도 없고 이전에 북방에서 일한 전적도 없는 자였다.

그런 사람이 한 줌 조선군으로 니탕개를 대적하겠다니 걱정될 수밖에.

“여의치 않으면 나서자고.”

다른 토관들도 내색만 않았을 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대화가 끝나자 이순신이 물었다.

“내가 그대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당초 수립한 계획을 방해한다면 죄를 물을 수밖에 없네.”

“전황이 안 좋아진다면 군수와 조선군을 구원해야 한다고 말을 나눴습니다.”

“걱정해주니 마음은 고맙네만 필요하면 부를 터이니, 섣불리 개입하지 말게.”

토관이 보기에 이순신은 똥배짱을 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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