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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214화 (214/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214화

73. 조선 스트렐치 (2)

“위사 이순신과 화포장 이장손 입시이옵니다.”

“들라 하라.”

윤허가 떨어지자 이순신은 이장손의 등을 툭, 때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좌우에는 대신들이 시립해 있었다. 피로한 탓으로 살이 빠졌을 뿐이지만, 덕분에 날카로운 인상이 되어 이순신과 이장손은 침부터 꼴깍 삼켜야 했다.

어좌에는 왕이 앉아 있었다.

“신 이순신과 화포장 이장손이 인사 올리옵나이다.”

“병판에게 들었다.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던데.”

“예.”

이장손은 조총과 U자 형태의 쌍날을 가진 창을 내보였다.

조총은 몰라도 생소한 형태의 창이 나오자 중신들이 관심을 가졌다.

“당파인가?”

“날이 세 개가 아니라 두 개로군.”

“두 개가 되면 특별한 효용이라도 생긴단 말인가?”

신하들이 의문을 표하자 이순신이 설명했다.

“조총의 무게는 1관 1근에 달하옵니다. 병사들은 항상 무기를 지참해야만 기능할 수 있는 법인데, 환도와 활은 허리에 걸 수 있으며 총통은 장대를 달아 세우거나 수레에 태워 끌 수 있으나 조총은 그러한 편의가 없사옵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총을 개발하고 직접 전장에서 운용했던 사람이니, 이 자리의 누구보다 조총수의 어려움을 잘 알 터.

이순신은 호의적인 반응에 힘입어 말을 이어갔다.

“또 조총수들은 근접전을 대비해 환도를 패용하나, 거칠고 야만적인 여진족이나 왜구를 상대로 효용이 크지 않사옵니다.”

농사도 보통 힘쓰는 작업이 아니나 일상이 승마이자 사냥인 여진족이나 칼밥으로 먹고 사는 왜구와 비할 수는 없다.

나아가 환도도 보조무기로써 편의를 위해 날도 짧았다.

근접전에서는 일신의 위력은 물론 무기도 열세인 셈이다.

“하오나 이 당파를 쓴다면 조총수가 근접전에서도 제 위력을 다 할 수 있사옵니다. 나아가, 갈라진 날 사이로 적의 병장기를 막거나 묶는데 지극히 용이하옵니다.”

왕이 말했다.

“갈라진 날이 효용이 근접전에만 있지는 않은 듯하군.”

역시 실전을 겪어본 사람은 달랐다. 처음 보는 형상의 창이거늘 단숨에 효용을 읽어냈다.

이순신은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러하옵니다.”

이장손은 기다렸다는 듯 창날 사이에 조총을 걸었다.

“날이 갈라져 발포 시 당파를 받침으로 쓸 수 있사옵니다. 이렇게 조총을 걸어서 발포할 경우, 무게나 반동으로 흔들릴 염려가 사라져 명중률을 크게 증대할 수 있사옵니다.”

이미 효용을 알고 있었던 왕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곤 신하들에게 물었다.

“제신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병조판서 을룡이 나섰다.

“새로운 당파는 즐비한 단창의 머리를 갈아 끼우는 것으로 만들 수 있어 예산이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지극한 편의와 효용이 있사옵니다.”

“내가 보아도 그렇다.”

병조판서와 왕의 반응이 좋다니, 딱히 군대의 일에는 관심 없는 신하들은 그러려니 싶었다.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가 되자 영의정 홍섬이 나섰다.

그는 두 사람에 말했다.

“놀라운 일을 해주었군. 마땅히 치하해야 할 일이나 앞서 공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안 되네. 두 사람 중에 누가 이 같은 발안을 내었나?”

이순신이 답했다.

“이 철장이 먼저 장대 위에 조총을 얹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하였사옵니다.”

이장손도 답했다.

“소인은 단지 아무렇게나 말했을 뿐이옵고, 효용을 파악하고 이 같은 형상의 당파와 사용법을 만들어낸 사람은 이 위사이옵니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남을 저주하고 중상모략하는 자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서로 공을 마다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다.

홍섬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이고는 어좌로 향했다.

“전하. 두 사람이 만들어낸 당파는 실효가 지대하옵니다. 허나 실전에서는 어떨지 모르니 소량만 생산하여 일선에서 먼저 시험하게 하시옵고, 두 사람에게는 적당한 상을 내리게 해주시옵소서.”

“영의정의 말대로 하라.”

“망극하옵나이다.”

홍섬이 허리를 꾸벅여 예를 표하자 왕이 덧붙였다.

“정해진 역할만 이행하는 것을 넘어, 나라와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돕고자 애썼으니 후하게 치하하여 모범으로 삼음이 옳을 것이다.”

“명심하겠나이다.”

“이후의 일은 각사에서 알아서 이행하라.”

“예.”

신하들은 꾸벅 허리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시연을 마친 이순신과 이장손은 예를 표하고 물러났다.

왕은 큰 감흥이 없어 보였으나, 속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스트렐치인가?’

스트렐치(Streltsy).

머스킷과 버디슈로 무장한 러시아 최초의 상비군이다.

버디슈는 초승달 모양의 길고 특유의 날을 가진 도끼다. 스트렐치들은 버디슈를 세우고 날 안쪽에 머스킷을 얹은 특유의 자세를 취했다.

총을 어딘가에 얹어 쏜다는 것이 꼭 스트렐치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 친구들이 대표적이니까.

어쨌거나 조선 스트렐치라니 신선하다.

받침으로 도끼가 아닌 당파를 쓰지만 조총수가 돌격하기보다는 창방진을 만들 수 있는 쪽이 낫겠지.

* * *

연해도를 삼분하여 다스렸던 회령군 김자강, 해란군 율보리, 해삼군 석탈리는 평화적으로 지배권을 이양했다.

국경 맞은편의 강 일대 부족들은 오래전부터 조선의 번호로 지내 말은 많았으나 가시적인 저항은 없었다.

문제는 내륙이었다.

김자강과 율보리의 직속 수하들이 지배하던 곳은 비교적 협조적이었으나, 새로이 복속되거나 가식적인 충성으로 존속하게 된 부족들은 느닷없이 진주한 외부 군대와 새로운 통치자의 등판에 강력히 반발했다.

각지에서 사소한 다툼부터 크게는 무력충돌이 발생했고 여진족 중에서도 야만적이기로 유명한 야인여진들이 거주하는 해삼부는 거의 전쟁 상태였다.

이에 연해도 관찰사인 유극량은 연일 휘하의 목민관, 지휘관들과 서찰을 나눴다.

그러던 중.

“영감!”

해란판관이 다급히 유극량을 찾았다.

“무슨 일인가!”

“용정 군수가 막 치계하기를, 미상의 적이 파발과 병사들을 죽이고 영감의 서찰을 훔쳤다 하옵니다!”

“뭐라!”

유극량은 거칠게 서안을 내려쳤다.

-쾅!

“제기랄, 용정이라면 본래 회령군이 직접 다스리던 땅이 아니냐? 그런데 용정조차 대조선의 통치에 저항하는 우매한 오랑캐들의 소굴로 전락한 것인가!”

“군수가 속히 내막을 조사하여 추가로 장계를 올리겠다 약조하였습니다만, 용정의 토관들이 벌인 일은 아닐 것이라 하였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인지 진정으로 믿을 구석이 있어서인지는 군수만 알 것이다.”

유극량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하지만 군수가 정말로 책임을 회피하고자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연해도 관직은 창설부터 모두가 질색했다. 차출된 사람들은 유서를 썼고 미리 장례까지 치러가며 엄살이란 엄살은 다 부려댔다.

이런 마당에 자원자는 최초인 해삼부사 정인홍과 유극량 본인을 포함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중 하나가 자원자 중에서는 막내인 용정 군수 이순신이었다.

최근 복직하여 위사로 있다가 총을 얹어 쏠 수 있는 당파를 개발한 공을 세웠으나, 안주하지 않고 험지인 연해도의 관직을 자처했다.

제 발로 죽을 각오까지 한 사람이니 고작 책임회피 따위나 할 정도로 그릇이 좁지는 않으리라.

“군수에게 철저히 조사하여 진범을 잡아내도록 각별이 분부하라.”

“예.”

“이번에는 호위를 많이 붙여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받들겠습니다.”

* * *

이순신은 이전부터 과거 왕이 싸워 대승을 거둔 전장을 답사하고 싶어 했고, 또 참전자들의 증언을 듣고자 했다.

나아가 자신이 개발한 당파의 실효를 직접 입증하고 싶었다.

용정 군수를 자원한 것은 그러한 연유에서였다.

‘원하던 걸 이루게 되겠군.’

전자는 이미 현지 사람들과 지겹도록 말을 나누어 이미 이루었다.

왕은 사오이(沙吾耳)에서 오백의 병력과 대피하고 남은 현지인들로 율호의 기병 일천 기를 막아냈다.

경이로운 전과였고 비결은 왕이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거주지를 무너뜨려 기병의 진입로를 제한하고, 근처의 강에서 적신 천을 폐허에 덮어 화공을 방지했다.

적의 접근을 막고서 조총수들이 뛰어난 화력을 투사하자 결국 여진족들은 패퇴했다.

열세의 상황에서도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왕의 뛰어난 전략 덕이기도 했겠으나, 당시 전장은 지휘관이었던 왕마저 낙마할 정도로 무척이나 위험하고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왕은 낙마하고도 말이 대오를 흩뜨리지 않도록 끝까지 고삐를 놓지 않았고, 또 바로 일어나서 지휘를 이어갔다.

‘장군이라면 마땅히 모범으로 삼아야 할 모습이다.’

용정에 적이 있음이 드러난 지금, 이순신도 자신의 자질을 시험할 날이 머지않았다.

곧 원하던 대로 당파의 실효를 확인하게 되리라.

사무와 군무로 지치지 않는 날이 없었지만, 이순신은 어느 때보다도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군수 어르신.”

토관 하나가 집무실을 찾았다.

어설프지만 확실하게 조선어였다.

용정의 과거 실세들로서 최근 토관에 임명된 자들은, 회령군 김자강의 옛 수하들이자 회령과 교류하던 족장들이었다.

각기 조선말에 최소한의 조예는 있었고, 연해도의 다른 목민관들은 항상 통역을 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

“근일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토관들이 아뢸 바가 있어 모두 모였나이다.”

“바로 나가지.”

서안의 책을 덮고 집무실을 나서니, 뜰에 면식을 익혀둔 토관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다들 군수의 등장에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으나, 단순히 윗사람을 본다는 것으로는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서 그 역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일렀다.

“무슨 일들인가?”

토관 중 하나가 나섰다.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말하게.”

“최근 파발과 호위가 죽은 사건에 저희들은 일절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아시겠지만, 저희들은 오래전부터 회령군과 합심하여 전하께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갑자기 불손한 마음을 품고서 조선에 대적하겠습니까?”

토관이 절실한 투로 말했다.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토관들이 마음을 달리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들이 이전부터 전하와 교류하였음은 사실이나, 완전히 수직관계가 된 것은 굉장히 최근의 일이었다.

이전에도 토관들은 전하에게 충성을 바쳤으나 지배받거나 복속한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각자 부족의 주인으로 군림하면서 전하께 충성한다는 것은 구실로만 삼고서 이익을 누렸을 뿐이다.

상황이 반전된 지금 그들에게 아쉬운 구석이 하나도 없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대들을 믿으니 걱정하지 말라. 관찰사 영감께도 배후에 용정 토관은 없을 것이라 아뢰었다.”

부하를 믿어야 했다.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나 범인을 색출하겠다고 토관들을 들쑤신다면 협조하는 자들도 적이 될 수 있었다.

만일 토관 대다수가 복심을 품었다면 믿어봐야 의미 없겠지만, 사방이 적인 셈이니 믿지 않더라도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믿는 쪽이 정답이었다.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고, 어설프게 대응했다간 제 발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은 기록된 수많은 전쟁이 가르쳐 주는 교훈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합리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동안 방식이 달랐을 뿐이지 전하와 조선을 위해 매한가지로 충성한 자들이 아닌가.”

이순신이 거듭 확인해 주자 토관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군수가 저들을 의심해 들쑤셔댈 줄로 알았던 것이다.

“군수께서 저희를 믿어주신다니 지극히 다행으로 여깁니다.”

“별일 아니거늘 고작 이런 우려를 표하고자 모였단 말인가.”

“송구할 뿐입니다. 하나 저희들은 용정 토관으로 지낸 것은 잠시요, 삶의 대부분은 족장으로 지냈습니다. 대대로 번호의 족장으로서 맡은 바를 다하였으나 조선의 관리들은 저희들을 언제라도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야만적인 오랑캐로 치부하고서 무시하고 의심하며 경멸했으니, 지극히 우려스러운 마음에 군수의 진심을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망극할 뿐입니다.”

토관들은 꾸벅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조선, 아니 적어도 군수만큼은 자신의 편임을 확인해서일까. 용무를 마친 토관 중 하나가 아뢨다.

“현장에서 적의 시체를 확인했을 당시에는 섣불리 확답할 수 없었으나, 소인처럼 의구심을 품은 자들이 많아 모여 논의하니, 대강 적이 서쪽에서 왔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서쪽에서?”

“적에게서 발견된 장식의 양식이 용정의 양식과는 다릅니다.”

“……!”

이순신은 왕의 일화를 떠올렸다.

볼하진이 습격당하자 조선은 번호 중에서 배후가 있을 것으로 짐작고서 회령 일대를 쓸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왕은 회령의 번호를 신뢰하였기에 현장과 증거를 다시 확인하여, 적의 시신에서 나온 장식이 회령과는 다른 곳에서 왔음을 알아냈다.

꼭 그 일화를 믿고서 토관들에게 신뢰를 보낸 것은 아니지만.

일화가 주는 교훈은 틀리지 않았다.

“알려주어서 고맙네.”

자세한 설명을 듣는다면 진범의 위치는 대강 파악되리라. 남은 일은 오직 전장에서 자신을 검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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