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왜 이순신이죠-203화 (203/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203화

70. 철의 나라 (1)

“이런, 제기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

사내가 욕지거리와 함께 곡괭이를 내팽겨쳤다.

-땡그랑!

순간 불꽃이 튀며 엄청난 소음이 주변을 울린다. 사내도 이 정도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귀를 막고 눈살을 찌푸린다.

빛도 없는데 협소한 공간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묵묵한 돌 냄새까지 짙었다. 도저히 사람이 제 발로 기어들어 갈 공간은 아니었다.

사내가 외쳤다.

“지금 누구 덕분에 여기 처박혔는데 일을 안 하시는 겁니까?!”

사내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었다.

맞은편에 앉은 자가 있었다. 그는 질린 표정을 하였으나 금방 정신을 차리고 되받는다.

“사대부인 내가 천인들이나 할 짓을 해야 한단 말이냐?! 네가 나의 종이니, 당연히 네가 대신 일해야지!”

“아직도 당신이 사대부 나부랭이인 줄 알아!”

“뭐라!”

두 사내의 몸이 단숨에 섞였다. 피육 때리는 소리와 고함, 비명이 연신 주변을 울렸다.

이 두 사이좋은 친구들은 다름 아닌 김 진사와 수노였다.

김 진사는 현감의 면전에서 당차게 왕을 욕보인 죄, 그리고 수노는 주인 간수를 똑바로 못 하고 공모한 죄로 사이좋게 ‘노동 교화’에 당첨됐다.

노동 교화란…….

대충 표현하면 죄수들을 철광에 처박아 개념을 주입하고, 나라는 철을 얻는다는 단순명료한 정책이었다.

어둠 속 협소한 공간에서 두 사내가 서로의 육체를 부딪치고 비비며 낯뜨거운 온기를 풍기자 안쪽에서 고함이 터졌다.

“무슨 소란이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새로 등장한 사내는 철장관이었다.

더러워진 심신은 오직 육체의 노동만으로 정화될 수 있다는 미친 슬로건에 희생된 자들은 비단 중죄인들만이 아니었다.

근무 평점이 안 좋았던 공무원들도 똑같이 철장관이라는 이름으로 노동 교화를 당하고 있었다…….

“이 자식들이, 캐라는 석철은 캐지 않고 쌈박질이나 하고 있어?!”

최근 철장관에 임명되어 심기가 많이 불편해진 관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거침없이 빠따를 휘둘렀다.

신기하게도 그의 현란한 매질은 단 한 번도 빗나가지 않고 김 진사와 수노의 위로 떨어졌다.

“살려주시오!”

“잘못했습니다요!”

두 사람이 애처롭게 자비를 구걸했으나 철장관은 진득하게 분풀이를 한 뒤에야 매를 거두었다.

“이놈들, 또 한 번만 소란을 일으켜 봐라. 아예 땅속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명심하겠습니다요.”

“빌어먹을 쓰레기들 같으니!”

철장관은 침을 칵 뱉고는 안쪽으로 사라졌다.

흠씬 두들겨 맞은 김 진사와 수노는 차가운 지하의 돌에 맞은 부분을 대며 고통을 삭였다.

이제는 동병상련의 처지가 되어서일까. 싸우기 바빴던 김 진사와 수노는 서글픈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쇤네는 살아서는 나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요.”

“이놈아, 영원히 광산에서 살라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양만 납부하면 다시 나갈 수 있는데 벌써부터 죽는 소리를 하느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석철을 캐라고 하는데, 쇤네가 캐는 게 석철인지 그냥 돌덩이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요?”

“차차 실력이 늘지 않겠느냐? 철간(鐵干)들도 처음에는 막연하게 시작했을 것이야!”

이 순간, 죄를 짓지 않았으나 단지 재수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철을 납부하는 자들이 있다.

철간.

본래 조선은 철간의 고생을 인정하여 역을 면제하고 땅도 지급하였으나 특혜가 차차 사라지면서 결국 수군보다 못난 존재로 전락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광산에 처박힌 거다. 철간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서.

대자대비한 나랏님께서는 철간의 노고는 알아도 중죄인의 고생은 알 바 아니었다.

-탕! 탕!

동굴 벽을 때리는 타격음과 함께 고함이 울렸다.

“금일 작업은 여기까지다! 장구와 석철을 반납하고 숙소로 돌아가라!”

한참 쉬었던 김 진사와 수노는 식은땀을 훔치고는 석철을 포대에 담았다.

고상한 김 진사님은 곡괭이를 들었고 천한 수노는 천근만근의 석철 포대를 짊어졌다. 이제는 익숙해진 어둠 속을 짚으며 나아가니 빛이 보인다.

“내려놔.”

피로한 인상의 철장관이 장비를 받는다.

석철 포대는 무게를 달아보고는 장부에 기재한다.

“누구 앞으로 달 거지?”

노동을 통해 순수한 심신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즉 출소하기 위해서는 죄에 따라 정해진 양의 석철을 납부해야 했다.

“쇤네랑 진사님 앞으로 반반씩 해주십시오, 나으리.”

“좋아. 충성심이 있는 친구라 보기 좋군. 이제 꺼져.”

김 진사와 수노는 박대를 받으며 숙소를 찾았다. 정확히는 숙소의 부대시설인 군마투(群摩透)다.

군마투에서는 식권은 물론 작업 동안 출출한 허기를 달랠 한 줌 생보리부터 육포와 술까지 구매할 수 있다.

죄수 수용소 주제에 복지시설이라니 인간 낙원이 따로 없다. 대금으로 낼 석철만 충분하다는 전제하에서는 말이다.

“식권 두 장 주십시오, 헤헤.”

늘어진 줄에 한참이나 서 있던 수노와 김 진사는 군마투 철장관에게 비굴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철장관은 식권 두 장을 내주며 주판을 튕겼다. 식권 두 장의 가격은 무려 석철 반 섬! 심신의 정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자는 밥도 주지 않는 냉혹한 세계였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자는 석철 500섬으로 일일 외출권을 살 수도 있다…….

김 진사와 수노는 외출권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광산 일을 하는 노역자들이라 밥은 든든하게 나온다. 단지 갖은 재료를 한솥에 때려 박고 끓인 찐득한 꿀꿀이죽이 전부일 뿐.

급양관은 죄인에게 미식은 필요 없다는 주상 전하의 훈시를 철석같이 지키는 자였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철장관 신세를 벌어날 것으로 믿고서.

처음 꿀꿀이죽을 마주하고는 며칠 굶었던 김 진사와 수노는 묵묵하게 배를 채웠다.

우연히 같은 숙소에서 지내는 동기도 만났다.

죄수 번호 구십오 번이다. 재미도 없는 반체제 소설을 집필한 탓으로 갇힌 자였다. 그는 출소가 머지않았다며 기뻐했다.

재령 노동 교화소의 하루가 지나간다…….

* * *

“전하, 경하드리옵나이다.”

호조판서 이산해가 운을 뗀다.

“무슨 일인가?”

“지난 달포 동안 재령 교화소에서 생산한 철이 황해도 전체에서 생산한 양을 능가하옵니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군.”

나는 철 수급 제도를 개선하기에 앞서 당장 생산량을 늘릴 방법을 구상했다.

바로 도형(徒刑) 이상을 선고받은 죄인들을 철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중죄인에게 노역을 강제하여 심신을 정화하는, 미래에서는 잊힌 이 아름다운 풍습은 중세시대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나아가, 나는 중죄인들을 하나의 시설에 집중 투입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결과는 보다시피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전국의 철간들과 취련군들의 노고가 줄어들겠구나.”

“그러하옵니다.”

취련군이란, 불쌍한 군인 버전의 철간이다.

농번기는 조선은 물론 북로남왜도 농사를 짓느라 바빠서 안보 비수기라 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군인들을 놀릴 수만은 없으니 대부분 둔전에 투입하는데, 일부 군인들은 주변에서 철이 난다는 이유로 철을 모아야 했다.

그들을 취련군이라 했다.

매일 철이 나는 것도 아니겠거늘 취련군에게는 매일 할당량이 주어졌다.

만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다면, 뭐. 당연하겠지만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하, 재령에 교화소를 세우신 이유는 죄를 저지른 자들의 심신을 말 그대로 교화하기 위함이옵니다.”

“그런데?”

“태나 장이 적용되는 죄인 중에서 일부는 단지 매를 맞는 것으로는 반성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 개중에서 악질적인 자들을 선발하여 충당함이 어떻겠사옵니까?”

“철이 화수분처럼 난다니 호조판서께서 신이 많이 나셨군.”

이산해는 부정하지 않았다.

불쌍한 백성들과 군인들을 굴려서 한 줌 철을 얻을 바에야, 못난 죄인들을 대거 투입하여 밤낮으로 철을 캐게 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죄인을 부리는 게 문제가 되는 세상도 아니었다.

이산해의 취지는 단지 약간의 ‘확대적용’을 통해 철을 많이 생산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형조판서 대감.”

나를 대신해 노수신이 나섰다.

“그대도 알고 있듯 전하께서 교화소를 세운 이유는 죄인을 교화하기 위함이지, 철만을 생산하기 위함아 아니외다.”

노수신은 유배를 당한 전적이 있는 자였다.

만일 소윤이 약간의 창의성만 발휘했다면, 그 역시 교화소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몸짱으로 거듭나야 했으리라.

아니면 죽거나 병신이 되어서 나오던가.

“좌의정 대감. 교화소의 의의가 철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죄인들은 철을 생산함으로서 교화됩니다. 무엇이 문제가 된단 말입니까?”

“자칫 무분별하게 동원했다간 가벼운 일로 노역을 하게 되고, 개중에서는 무고한 자들이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던 자들도 있을걸세!”

“형이 가벼운 자들은 납부 할 양을 조절하면 그만 아닙니까.”

이산해와 노수신이 투닥대기 시작하니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만.”

손을 들고 제지하니 단숨에 조용해졌다.

“좌상의 말 대로 내가 교화소를 설치한 이유는 중죄인들이 죄를 뉘우치게 하고 백성들의 노고를 덜기 위함이지, 나라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하옵니다.”

노수신이 슬쩍 거들었다.

“만일 나라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점차 무분별해지는 바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효용이 크더라도 때가 시급하지는 않으니 차후에 다시 논하라.”

“예.”

이산해는 반발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보다 철 수급 제도를 개혁하는 일은 어찌 됐나?”

“근래에 들어서야 겨우 실마리를 잡았사옵니다. 전적으로 전하의 은혜 덕분이옵니다.”

“나는 달리 지시한 일이 없거늘.”

금칠부터 하고 드는 건가.

“교화소의 소출을 확인하면서 신은 오직 철만 채굴하는 자들이 다수의 백성이나 군인을 동원하는 것보다 이로움을 알았나이다.”

“농군과 군인들은 채굴이 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에서 곡괭이질을 하겠나, 철광석을 녹여서 제련하겠나.

철간과 취련군 모두 강바닥에서 깨알 같은 철가루를 수집해 납부했다.

시간과 고생은 많은데 소출은 형편없을 수밖에.

누군가는 철을 캐고 가공하는 것을 업으로 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광맥을 찾아 능숙하게 곡괭이질을 하며, 숨 쉬듯 간단하게 원석을 철괴로 가공할 자들 말이다.

이산해가 입을 열었다.

“재령의 철광처럼 폐쇄된 광산이 다수 있사옵니다. 이것을 민간에서 개발할 기회를 준다면 각 광산마다 상당한 양의 철을 채굴할 줄로 아옵니다.”

철은 재활용할 수 있어 유용함에 비해 가치가 크지 않다. 그러나 광산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다.

수지타산 맞지 않는 장사에 사람을 불러들이기란 쉽지 않다.

“적합한 제도와 절차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마땅히 논의하여 최선의 제도와 절차를 마련하겠나이다.”

“좋다. 호조와 의정부에서는 광산을 민간에서 개발하도록 독려할 방도를 강구하라.”

“예.”

“농기구를 생산하는 건은, 재령의 교화소가 충분한 양의 철을 공급하고 있으니 부담과 비용이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농번기가 다 지나가지만 일을 완수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터이니 서둘러 착수하는 편이 좋겠다.”

“받들겠나이다.”

“마침 사업에 필요한 예산도 막 도성에 도착했다. 내가 자리를 마련할 터이니 경들은 나와 함께 각자의 수고를 위로하고 예산을 가져온 손님을 맞이하라.”

아주 멀리서 온 손님들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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