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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172화 (172/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172화

59. 정철, 정철 (1)

선조는 입을 열었다.

“대사헌의 뜻은 잘 알았다. 그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처벌을 자처하니, 비록 과한 감이 있다고는 하나 마냥 들어주지 않는 것도 가혹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하오시면…….”

영의정 권철이 조심스럽게 의향을 묻자 선조가 답했다.

“이양원의 공신과 군호는 삭제하되 직은 그대로 두라. 당사자는 물론 다른 이들의 이견은 받지 않겠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소를 아예 받지 않는 것이나, 전부 받아주는 것 이상으로 잔인한 판결이었다.

이양원은 사헌부 관리들이 시작한 일을 죄라고 시인하며 처벌을 자처했다.

이제 공신과 군호도 빼앗기고 대사헌이라는 직책만 남았는데, 그가 사헌부로 돌아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하관(下官)들에게 역적 취급이나 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양원의 처지였다. 선조 그에게 감히 거역한 적신(賊臣)이 마땅히 치러야 할 벌이었고, 그렇게 대사헌으로 남아줘야 다른 놈이 또 대사헌 간판을 걸고 공신 삭제로 지랄하지 않을 터였다.

고작 이양원이 입 닫은 정도로 다른 놈들이 포기하지는 않을 테니까.

과연, 며칠 뒤.

어전회의에 참석한 자가 있었다.

“전하, 대사헌 이양원에게 죄가 있다고 한다면 공신의 삭제를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변심하여 공론을 배신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죄이옵니다!”

종삼품 사간원 사간 정철이었다.

게다가 그만이 아니었다.

“치죄를 하더라도 정당한 명분을 세운 뒤에야 마땅한 법인데, 어찌 그릇된 명분을 앞세워 벌을 청하는 소를 가납하셨사옵니까?”

사헌부 정오품 헌납 이발.

실로 터무니없는 조합이었다.

‘아주 지랄이 났구나.’

선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과거 정철과 이발은 당색이 다른 데다 각자 강경한 성격이기까지 해서, 서로를 물고 뜯어대던 자들이었다.

그것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두 사람 모두 공신 삭제로 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음에도 힘은 합치지 않았는데, 이양원이 사직하며 수세에 몰리자 결국은 오월동주(吳越同舟)를 감내한 모양이었다.

“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선조는 신경질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무엇을 통촉해달란 말인가? 이미 나는 이양원의 처우를 결정하며 이견은 듣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대들이 나서서 어전을 소란스럽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정철이 답했다.

“이양원은 공론을 배신하고 뭇 사람들이 간곡하게 바라는 바를 죄악시하였으니, 처벌하더라도 마땅한 방식으로 처벌하여야지 그가 자처한 방식으로는 아니 되옵니다!”

“이미 처벌이 되었는데 방식의 옳고 그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번잡하게 왕명을 뒤집어 다시 복직시키고 다시 벌을 주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정철과 이발이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선조는 눈살을 찌푸렸다.

왕명을 뒤집자는 말을 너무나도 당연히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처럼 왕을 상대로 언성을 높이고 보채기까지 한다.

‘이놈들이 진실로 간적(奸賊)이로구나!’

왕명은 지엄한 것이다. 마땅히 수행해야 할 것이었고, 선조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 스스로 자신의 명령이란 하늘의 명령과 다르지 않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 ‘하늘의 명령’이 손바닥 뒤집듯 말이 바뀌어서야 위엄이 있겠는가? 굳이 왕명이 아니어도 모든 명령은 마찬가지다.

우왕좌왕하는 명령 따위에 권위가 깃들 리 없다. 그래서 왕의 권위와 직결된 왕명이라면 철회는 더더욱 신중해야 했다.

‘그런데도 신하를 자처하는 자들이 감히 왕을 상대로 왕명을 뒤집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선조는 마음 같아서는 눈앞의 두 간적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동안 정철과 이발은 각자의 당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당쟁을 격화하는데 나름의 성과를 보여주어, 선조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골칫덩이가 되었고 자신의 지극한 은혜를 마땅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이제는 왕에게 잘못과 책임을 물으며 피해를 끼치는 것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당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두 사람을 어전에서 찢어 죽이는 일이란 불가했다.

야심은 많아도 눈치는 지극히 보며 자신이 책임질 일이라곤 절대 만들지 않는 선조였기에, 더더욱.

앞으로 알게 모르게 보복이 취해질 예정이었지만 그것도 나중의 일이다. 선조는 일단 이 귀찮은 상황을 벗어나기로 했다.

“그대들의 생각은 잘 알겠으나 이미 처벌을 내렸으니 번거롭게 명을 뒤집고 다시 처벌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는 없다. 또, 이양원은 그대들에게는 선인이 되는 사람이고 관직과 품계도 높은데 가벼이 실명을 거론하며 욕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리 죄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이미 처벌하여 죄를 청산하였는데도 남들 앞에서 공공연히 낮춰 부르는 이유는 조정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함인가?”

선조는 두 사람의 입을 닫게 만들 생각으로, 역으로 죄를 물으며 겁박하였으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또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두 사람은 겁을 준다고 고이 겁먹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과도 정당해야지만 절차 역시 정당하여야 하기에 신들이 감히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옵니다. 이양원이 만일 치죄를 당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면 처벌이 되겠으나, 백주대낮에 습격을 당하여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을 처벌이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도리어 어전에서, 왕을 상대로 말하고 있으면서도 대사헌 이양원에게 백주대낮에 칼침 맞고 싶냐고 겁박하는 정철이었다.

“그리된다면 천벌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 하늘의 뜻이 집행된 것이 아닌가? 설령 과정이 맞지 않더라도 결과가 정당하다면 하늘의 뜻이 이행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어떠한 판결을 내렸건, 그것은 하늘의 뜻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고작 이 정도로 주저할 두 사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이발이 목소리를 높였다.

“천벌이 이행되었다 함은 하늘을 번거롭게 만들었다는 뜻이옵니다. 비록 이양원에 대한 판결은 하늘을 대신하여 일국을 통치하는 인군에 의했다고는 하나, 어찌 인군을 하늘과 동일시 할 수 있겠사옵니까?”

자기가 대단한 놈이라는 과대망상은 그만하라는 일침이었다. 선조는 찌그러진 얼굴로 당장이라도 목소리를 높여 따질 기색이었으나, 이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또한 이양원의 실명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이유는, 아직 그가 정당한 방식으로 처벌되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우연히 벌을 받았다고 해서 어떻게 그가 죄를 청산했다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가 합당한 방식으로 처벌을 받기 전까지는 여전히 죄인의 몸이며 뭇 사람들은 죄인을 업신여김이 지극히 마땅하옵니다!”

-쾅!

어좌의 서안이 요란하게 울었다.

평소 진노를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 선조였으나 두 사람의 행태는 선조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아가 이발은 더더욱 그러했다. 자신을 드높이는 선조의 말을 사사건건 부정하고 깎아내렸다.

심지어 이양원에 대한 처벌도 ‘우연’으로, 마치 별일도 아니었다는 듯 멸시하기까지 했다.

고작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당하지 않은 과정에 합당하지 않은 처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대들은 어찌하여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인군을 핍박하는가?!”

이에 이발이 도리어 따졌다.

“핍박이라니요? 신들은 단지 간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옵니다!”

“불필요하게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라며 언성을 높이고, 나라의 대신을 모욕하지 말라 명하였음에도 대놓고 거스르는 것이 과연 그대가 말하는 간관으로서의 역할인가?!”

“예로부터 쓴 것이 몸에 좋다고 하였사옵니다! 쓴 말 역시 다르지 않을진대, 어찌 전하께서는 신들의 충심 어린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시옵니까?”

“뭐라!”

선조가 다시 진노 어린 말을 풀어내려는 찰나.

영의정 안동부원군 권철이 눈치껏 나섰다.

“그대들은 각자의 뜻을 전하와 조정의 중신들에게 이미 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언성을 높이며 어전에 소란을 일으키시는가?”

“영의정께서 전하를 잘 보필하지 못하여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렀으니 어찌 언성을 높여 지탄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이발이 빈정대자 중신들의 얼굴도 험악해졌다.

권철은 어전이 소란스러워져 마땅히 저지하려 나섰거늘, 신하 모두를 대표하고 궤장까지 수여받은 노대신을 대놓고 면박을 주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발에게는 알 바 아니었다.

정철은 대외적으로 서인의 영수였고 동인 강경파인 이발에게는 정적일 뿐이었다. 그것도 자신들의 세상을 이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때문에 적대감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함께 나온 정철도 놀라서 조용히 따졌다.

“이보시게, 이 헌납. 우리들은 전하께 마땅히 아뢰어야 할 것을 아뢰고자 찾아온 것이지 중신들을 모욕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네!”

“하! 사간께서는 중신들을 비호하면서 동시에 전하의 실수를 바로잡을 생각을 하셨습니까? 주변에는 온통 간신들이 가득한데 어떻게 전하께만 잘못을 따질 수 있으며, 또 오늘의 일이 바로잡힌다 한들 앞으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습니까?”

왕의 실수, 잘못……. 그리고 간신들.

이발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정철이 이발을 데리고 승부를 낸 이유는 그동안 중신들이 공론에 부합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는 하나, 여전히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람이 있다면 중신들도 생각을 다시 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발을 데려온 것은 초유의 실수였다.

같은 편으로 만들어야 했을 중신들마저 간신이라며, 목소리를 죽이지도 않고 공공연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이놈이……! 동인 버러지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힘을 합칠 수 있었다고 믿었으나, 덕분에 모든 것을 망치게 되었구나!’

정신이 조금 돌아온 정철은 그제야 냉정해진 상태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좌의 왕은 지극히 진노한 채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친놈들이 이제는 자기들끼리 지랄을 하는구나, 싶은 표정으로 말이다.

주변에 시립한 좌우 대신들은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서인 영수 중 하나인 안동부원군 권철이 그러했다.

‘이, 이럴 수가…….’

사림 어른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림이라면, 응당 사림 어른들을 존경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한 생각이 정철을 서인으로 만들었고, 정철 그와는 달리 패륜적인 생각을 했던 자들은 동인이 되었다.

이제 정철은 동인과 행보를 함께 했다가 자신이 존중하고 존경했던 서인 어른들에게 무례하고 경우 없는 자가 되었다.

마치 동인처럼!

“저, 전하……. 소관이 청하려 했던 것은 단지 대사헌 영감을 치죄하는 방법에는 더욱 적합한 방식이 있다는 것이었지, 이 헌납처럼 전하께 잘잘못을 따지거나 전하를 모시는 당상 대신들에게 죄를 묻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정철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죄를 회피했다.

곁의 이발이 배신행위라고 느끼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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