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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161화 (161/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161화

55. 빛이 있으라 (4)

전문적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염간(鹽干)은 아니었지만, 눈앞에 모인 병사들은 소금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한 자들이었다.

이론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만 가진 나보다야, 실전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자들이 소금 생산에 대해서는 잘 알겠지.

하지만 이들을 빼내기 전에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것이 있었다.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 죄송하지만, 다들 부모님과는 연락이 잘 되고 있습니까?”

“……음.”

병사들은 주저하며 답하지 못했다.

주둔지에 묶인 처지인데 부모님과의 연락이 쉽겠는가. 관리하는 사람도 없으니, 사실 탈주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도 무방하겠으나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어떤 사람은 단순하게 순진한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자리를 비웠다가 걸린다면 삯을 주고 대립을 세운 사람이 곤란해질 것을 우려했다든가.(물론 상대방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자신이 처할 상황을 걱정해서.)

이외의 사정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등.

족히 도망칠 법 함에도 남아있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이 역시 그런대로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이 시대에서 부모님을 지극정성 모시는 일은 지극히 당연했다. 고향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그런데 대뜸 위험한 이역만리 땅으로 떠날 수야 있겠는가?

나중에 마음을 돌릴 소지가 없어야 했다.

‘그래야 나의 일이 탄로나지 않을 터이니.’

여진족 영역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조선과 명나라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소금 밀매를 통해 음성적으로 부와 세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냉정하게 말해 걸리면 목이 떨어질 일이었다.

절대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될 일.

만일 이들을 내가 확보한 해안으로 보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떼를 쓴다면, 탈주라도 하기 전에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은 나라고 원치는 않는다.

이들에게는 그럴 여지가 적다는 점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들에게는 불행이었겠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서로에게 다행이 되겠지.

“다들 부모님에 대한 미련이 많으시겠군요. 하지만 군역이 정상화된다면 연락은 더욱 어려워질 터인데, 음.”

내가 씁쓸하게 운을 띄우자 병사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진즉 도망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손을 들어 모두를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그대들 중에서 부모님을 다시 모시기 어렵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분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세요.”

병사들 중 태반이 손을 들었다.

들지 않은 사람들은 지긋한 나이로, 이미 부모님을 봉양할 시기가 지난 듯했다. 안타까운 사정이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들 다시 정상적인 군역을 이행하기에는 힘들어 보이고, 부모님을 봉양하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군요.”

“…….”

“이 사람이 그대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드릴까 합니다.”

병사들의 눈이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커졌다.

문맥상, 자신들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나올 듯했으니.

그건 사실이었다.

무엇을 예상했든 그 외일 터라 문제지. 물론 이 시점에서 세부적인 것까지 알려줄 수는 없다.

일단은 각오만 확인할 뿐.

“음…….”

나는 짧게 침음을 흘렸다. 이 친구들을 어떻게 시험해야 하나.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제안에 응하는 자들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한다.

특히, 살아서는.

이들에게 대체로 미련이 없는 상황임은 알겠지만 사람의 심리는 모른다.

평소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막상 없어지면 당혹하게 되는 것이 사람 본성 아닌가?

확실한 동기가 필요했다.

“이 사람의 배려를 입어 부모님께 봉양할 수 있고, 정상적인 군역을 이행하는 대신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 머무를 수 있다면, 무엇도 각오할 수 있다는 분이 혹시 계십니까?”

나의 물음에 병사 중 하나가 관심을 드러냈다.

“무엇도 각오한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것을 각오한다는 뜻인지요?”

“정든 곳을 떠나 이전에 알던 사람들과는 다시 연락할 수 없게 된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군요. 마치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살아야 한다, 정도도 괜찮겠습니다.”

충분한 설명이 되기에는 많이 모호하였으나, 이상적인 조건은 아님을 밝히기에는 충분했다.

내가 예시로 들은 말들은 다분히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물론 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실제로도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겠지만, 이렇게 겁부터 줘서야 누구를 포섭할 수 있겠냐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초장부터 겁을 주는 게 맞았다.

어설프게 빙빙 돌려 말했다가 배신감을 느껴 조선으로의 탈주를 야기하느니, 차라리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게 했다가 예상보다는 나은 현실에 안주해 주는 편이 백배는 나았으니까.

한 사람만 응하는 일은 용납할 수 있어도 한 사람이라도 탈주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음…….”

“으음.”

병사들은 당혹한 표정을 지은 채 서로를 살폈다.

다시 정상적인 군 생활로 돌아가기 어려운 그들에게, 또 오랫동안 모시지 못해 막연히 형제 등에게 맡기고서 연락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부모님에게 이제라도 효도하고 군역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다만 조건이 사람을 겁먹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섣불리 응하기에는 대가가 제법 무거워 보였으니.

한 사람이 용기를 낸다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낼 수 있겠지만, 만일 누구도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모두가 용기를 내지 않으리라.

“이 사람이 그대들에게 한 제안은 관리로서 드린 것이 아닙니다. 오래간 시간을 주고 숙고할 여유는 줄 수 없어요.”

“…….”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언제 어느 때라도 이 사람이 조산보를 떠나기 전에 찾아와주셨으면 합니다. 거처 주변을 숙위하는 갑사들에게 말 해둘 터이니.”

용무가 끝난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사들을 해산시켰다.

병사들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기운 없이 물러났다. 숙고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부담스럽겠지.

하지만 쇠뿔은 단김에 빼라고 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사람은 수비적인 판단을 내리기 마련이다.

본래 사람의 심리란 같은 가치라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을 크게 의식하게 되어있으니까. 게다가 이리저리 고민하다 내린 결정은 결과가 어떻더라도 후회하기 마련이다.

부디 나를 따르겠다는 자가 있다면, 결정을 내렸을 때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서 잊어버릴 줄 아는 현명함을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 * *

당일 오후.

반나절이 꼬박 지났으나 만호의 거처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이래서야 수확도 없이 돌아가겠군.’

물론 고작 반나절 만에 남은 인생을 결정지을 선택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라고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며칠은 유홍서가 방기한 공무를 대신 처리한다는 명분으로 조산보에 머무를 수는 있지만, 나는 죄인 유홍서를 확보한 상태고 그를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경성으로의 귀환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에게 했던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은, 내가 원하는 답을 유도하기 위함이기도 했으나 나에게 주어진 현실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다.

억지를 부린다면 못 부릴 것은 없겠지만.

가급적이면 거슬리는 구석은 남기지 않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이래서야 좋은 결과를 얻기에는 글렀다.

내가 다시 나설 수밖에 없군.

“밖에 아무나 있습니까?”

부드러운 물음에, 과연 밖에 있던 자가 정중하게 답해왔다.

“부르셨습니까.”

나와 동행한 갑사 중 하나겠지. 번을 돌려 쉬게 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나나 죄인을 지키지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잠깐 안으로.”

“예.”

경첩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과연 갑사 하나가 예를 표하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하명하실 일이라도?”

“조산보를 지키고 있던 병사 중에서…… 음. 일전에 확인해봤을 때는 다들 피곤해 보였으니. 밖으로 나오는 자가 있다면 이 사람에게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갑사는 오래지 않아 병사 하나를 대동한 채 돌아왔다.

“대령했습니다.”

“고마워요. 잠시 긴히 나눌 말이 있으니, 자리를 비워주세요.”

“예.”

갑사는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났다.

그렇게 집무실에 나와 병사 하나만 남게 되었다. 먼저 운을 뗀 쪽은 나였다.

“그대 이름이?”

“박큰노미, 라고 합니다.”

“이해하기 편한 이름이로군요.”

“감사합니다…….”

양반이나, 혹은 양반을 선망하거나 자존심 있는 자들은 제법 그럴싸한 이름을 만들었다.

반대로 평범한 삶을 사는, 성분 그대로의 평민(平民) 대부분과 노비들은 성의 없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마지막으로 낳은 아이라고 해서 막내라거나.

이름은 막내지만 아래로 형제가 더 있다던가.

아무래도 좋을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했다. ‘큰노미(큰놈이)’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겠지.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그대는 대부분과는 달리 군역을 이행하고자 조산보에 남아있었지요. 수군절도사를 겸하는 사람으로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아닙니다…….”

“일단 앉으시지요. 그렇게 서서 불안해하시니 누가 보면 이 사람이 그대에게 벌이라도 내리는 줄 알겠습니다.”

“송구합니다…….”

나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젓고는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큰노미는 무릎을 꿇고서 다소곳하게 앉았다.

운을 띄우기에 앞서 나눌 잡담은 이만하면 충분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보다 진지해진 태도로.

“그대와 다른 분들이, 이 사람의 제안을 벌써 잊지는 않았겠지요?”

“아닙니다! ……다만 영영 돌아오지 못하신다기에, 다들 어려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들이 진정으로 고민을 하고 있습니까?”

“예! 소인이 어찌 대감께 감히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큰노미는 항변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당당한 것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병사들이 흔들리고는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자극이다. 사소할지라도, 확실한.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개념이 정립된 시대는 아니지만, 인류가 발생한 이래 세상에서 부와 재물은 범주는 달라질지언정 그것이 강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허리춤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쿵!

묵직한 소리가 서안을 울렸다. 기분 좋은 금속성 마찰음과 함께.

큰노미가 당혹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나는 답했다.

“그대가 예상하는 게 맞습니다. 직접 확인해보시지요.”

큰노미는 주저하였으나, 시간을 주자 결국은 손을 뻗어 주머니를 확인했다. 끈이 풀리고 입구가 열리자 쇄은이 드러났다.

특유의 찬란한 빛과 함께 말이다.

큰노미는 반사적으로 손을 뺐다. 마치 뜨거운 물건을 만진 것처럼. 자신이 만져서는 안 될 물건을 만졌다는 투다.

나는 부드럽게 웃어주고는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이 그대들에게 제안을 드린 이유는, 그대들이 책임감 있게 조산보를 지키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조산보만 지키게 하기에는, 많이 아깝지요.”

“…….”

“그대가 이 사람의 제안에 응한다면 이 주머니를 드리겠습니다. 가져도 되고, 원한다면 가족에게 전달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이 사람의 제안에 응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제안을 받아들일 자들의 대표 역할도 맡게 될 겁니다.”

반나절이나 고민을 이어간 큰노미는, 그동안 기다려온 나의 인내가 무색하도록 다급히 결정을 내렸다.

당연하지만,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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