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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158화 (158/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158화

55. 빛이 있으라 (1)

“두 사람 모두 오해하고 있군.”

“……예?”

김자강과 율보리가 의아하다는 듯 반응했다. 도대체 무엇을 오해했단 말인가. 별로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내가 해안을 확보하라는 명을 내리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그대들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함은 아니야.”

“…….”

두 사람은 순간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해안의 군소 부족들을 정복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고작 봉사활동이나 하고자 병력을 일으킨 게 아니었다.

하지만 금천부원군이 언제까지고 자신들 좋은 일만 시키지 않으리라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은근히 인지하고 있던 바였다.

이순신 역시 그 점을 확실하게 못 박았다.

“국경 너머에 그대들의 영역만 있으면 내가 어찌 적호(賊胡)들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나? 그대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게.”

“그렇다면…… 대감께서 땅을 관리하시겠다는 뜻이십니까?”

“맞다고 단언하기는 어렵겠군. 하지만 그렇게 이해해도 무방할 걸세.”

인정만 하지 않을 뿐이지 사실 자신이 관리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 모두 좋은 결과를 얻고자 금천부원군을 찾아왔지만, 얻은 것은 예상외의 찝찝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들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명목상 금천부원군이 땅을 지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조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몸이었다. 직접 다스리겠다고 한다면 억지에 지나지 않겠지.

결국에는 금천부원군을 대신해 땅을 실질적으로 다스릴 사람이 필요했다.

김자강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의 배려에는 지극히 감사드립니다만, 어르신께서는 조선의 관리로서 국경 너머의 영역을 직접 다스리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알고 있네.”

“만약 저에게 맡겨주신다면…….”

김자강이 말을 이르려는 찰나, 율보리가 끼어들었다.

“김자강의 영역과 동쪽 해안은 거리가 멉니다. 그가 맡는다고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질 리도 전무하고, 어쩌면 자신의 사람을 어르신의 땅에 배치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르신의 땅인데, 당연히 내가 예의를 다하여 관리해야지 않겠나!”

율보리는 김자강의 말을 무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저에게 맡겨 주시지요. 영역이 닿아 있기도 하고, 또 동쪽의 유난히 야만적인 자들에 대해서도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봐!”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순간.

나는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말했다.

“이미 점지해둔 사람이 있어.”

“…….”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만 질리도록 마셔댄 두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미 점지해둔 사람이 있다니.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란 말인가? 금천부원군의 인맥은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누구입니까?”

김자강이 항의하듯 물었다.

“석탈리라고. 회령에서 오래 토관직을 지내던 사람이지.”

김자강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석탈리. 감부를 지내던 자였던가?

그의 신분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김자강이 다급히 아뢨다.

“석탈리라는 자의 능력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고작 토관직을 지내던 자에게 야만적인 동쪽 여진족들을 맡기시다니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평소 김자강과 사사건건 대적했던 율보리도 이번만은 긍정하고 나섰다.

“맞습니다! 재고해주시지요! 동쪽 해안의 여진족들은 저희들보다는 야만적인 북쪽의 여진족들에 더 가깝습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자라 할지라도, 일신을 건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겁니다!”

미래의 연해주 땅에 거주하는 야인여진들은 다른 여진족 분파인 건주여진과 해서여진도 학을 떼는 야만인이었다.

조선이나 명나라와 같은 문명국과 멀리 떨어져 있어, 완전히 야생의 상태로 살아가는 인간의 형체만 한 짐승들.

그들에게 언어란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았고 소통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자들이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말이다.

“예…….”

“부디 재고를.”

김자강과 율보리가 입을 맞춰 항의했지만, 별다른 소용은 없었다.

두 사람 중 어느 쪽도, 사실 마음 놓고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나마 김자강과는 오랜 연이 있었지만 집단의 이익이 걸린 상황에서 개인의 인연이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그가 내색만 하지 않을 뿐이지 만일 야망이 있는 자라면, 배신은 기정사실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독립적인 상태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만일 김자강의 세력이 나의 비호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다면, 당연히 독립을 고려하지 않겠는가?

그에게도 경쟁자가 주어져야 했다. 비등한 상황에 놓인 여러 사람들이, 경쟁자들을 추월하고자 나의 총애를 갈구하도록.

율보리도 그런 차원에서 살려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잊은 것이 분명했다. 누차 경고를 했음에도 말이다.

“물론 동쪽의 여진족들은 그대들이 인정할 정도도 야만적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은 석탈리에게 기회를 주고 싶군.”

석탈리는 대대로 회령에서 토관직을 지낸 자였다. 이건 달리 말하자면, 그는 고작 일개 여진족 나부랭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본래 토관직이란 정복한 땅의 현지인들을 회유하고자 설치한 관직이기 때문이다.

과거 그의 조상은 회령 일대에서 한가락 했을 족장일 가능성이 높았고, 과연 지금의 그는 저택을 소유한 채 십수 명의 장정을 이끌고 있었다.

단기필마로 털레털레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을 찾아갔다가 칼침 맞고 허무하게 죽을 정도로 어설픈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대들이 나의 판단을 지지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

“……무엇입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김자강과 율보리가 입을 맞춰 물었다. 당장 두 사람에게 석탈리의 등장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으니.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두고두고 원한을 품을 것이 분명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 땅에서 소금을 만들 생각이거든. 그럼에도 납득하지 못하겠나? 정 납득하기 어렵다면 내가 둘 중에 한 사람을 골라 땅을 맡기도록 하지.”

“…….”

감히 따지듯 언성을 은근히 높였던 김자강과 율보리는 단숨에 합죽이가 됐다.

소금이 무엇이냐?

여진족 사회에서는 금덩이나 다름없었다. 제일 가치 있는 상품이었고, 소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가 곧 일대를 지배하는 자였다.

괜히 요동 일대에 거주하는 여진족들이, 명이 간간이 뿌리는 '칙서'라는 이름의 무역 허가증에 목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소금을 수급할 방도는 오직 명에서 수입하는 것뿐이기에.

조선 국경의 여진족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김자강 입장에서는 율보리가 소금의 산지를 차지하는 것보다야 금천부원군이 차지하는 것이 나았고, 율보리 역시 김자강이 소금 산지를 차지하는 것보다야 금천부원군이 차지해주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어째, 다들 말이 줄었군. 불만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예. 뜻대로 하시지요.”

김자강은 침울한 어조로 답했다.

하지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여진족들에게 소금을 체계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은 없었다. 금천부원군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누가 해안을 차지했더라도 소금을 얻기는 힘들었겠지.

오히려 금천부원군이 나서주었기에 두 사람은 안정적인 소금의 공급원이 생긴 셈이었다. 대금이야 지불하겠지만 다른 여진족들에게 남겨먹을 차익을 생각하면 많이도 남는 장사였다.

특히 소금의 대금으로 대량의 은을 바쳐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한 김자강에게는 더더욱.

“좋아. 두 사람 모두 이견이 없다면 석탈리가 나의 영역을 대신 관리해주는 것에 적절히 협조해주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김자강이 선선히 답하자, 순간 금천부원군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낀 율보리가 말을 흐렸다.

“적절히,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자신의 앞으로 땅이 돌아온다는 최상의 결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상대방에게 땅이 넘어가는 것보다야 나은 결과를 얻었다.

이번 일로 불만을 품지는 않겠지.

본론이 끝나자 나는 조용히 잔을 기울였다. 그런대로 원하던 그림이 나왔다.

남은 일은 해안에서 어떻게 소금을 얻느냐다. 바다는 무한한 소금의 공급원이지만 나는 고작 소금물이나 얻고자 해안을 장악한 게 아니다.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 * *

“하명하신 대로, 경성부에서 관리하는 모든 것들을 정리해 가져왔습니다.”

경성판관 이준이 수십 권의 책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비록 함경북도의 고을로 인구는 많지 않다고는 하나 경성부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관리 대상은 지극히 많았다.

감영 근처에는 병영도 있었고, 작은 규모이지만 수군진도 있었다. 세 기관 모두 한 사람이 관리하기 때문에 경성부의 관할이란 사실 범위나 규모 면에서는 다른 대도호부 이상이었다.

그러나 판관 이준이 의식하는 부분은 단순히 보고할 내역이 많다는 것이 아니었다.

“송구하오나, 어찌하여 경성부의 모든 관할을 확인해오게 하셨는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부족하거나 미진한 점이 있다면 최대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준은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다.

그는 금천부원군이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마우후 정승복이 매질을 당했던 것을 떠올리고 있던 참이었다.

정삼품의 품계를 가진 병마우후마저 그렇게 매질을 당했을진대, 종오품 판관이라고 몸이 성할 수 있겠는가?

물론 우후가 얻어터진 시점에서 이준 역시 바짝 긴장한 채로 최대한 오점을 남기지 않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대도호부의 행정 상당 부분을 처리하면서 그동안 실수가 하나도 없으리라고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중대한 문제가 있지 않다면, 사소한 실수들은 이 사람이 최대한 판관의 처지를 감안하도록 하겠습니다.”

“망극할 뿐입니다.”

이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생하셨습니다. 돌아가서 쉬셔도 좋습니다.”

“예. 소관은 이만.”

이준은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홀로 남자,

“괜한 고생을 시켰군.”

나는 피식 웃었다.

경성부의 모든 관리 대상을 알아 오게 한 것은 사실 경성부의 소금 생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평소 공무 중에서는 확인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소금 생산만 콕 집어 알아 오게 할 수는 없잖은가?

머지않아 육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소금이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운이 좋지 않다면 조선의 조정이나 함경북도에도 소식이 전해지겠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꼬투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소금은 황해도, 전라도, 강원도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었지. 특히 나주는 한 해 삼천 섬 정도의 소금을 바쳤던가?’

전라도는 환경이 좋아서인지 염소(鹽所, 소금 생산지)가 무려 서른다섯 곳이나 있었다. 소금만을 저장하는 창고도 별도로 있었고 말이다.

어떻게 알고 있냐면, 내가 참의로 있던 호조에서 전국의 소금 생산량과 공납 현황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모를 수가 없지.

‘하지만 함경도, 그중에서도 경성은…….’

소금의 생산량이 지극히 적어 공납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물론 정확한 것은 판관이 가져온 장부를 뒤져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염간(鹽干, 소금 생산자)의 명단만 확보한다면 소금 생산법을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천일염을 생산하는 법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혹한의 북방에 걸맞은 방식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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