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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152화 (152/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152화

53. 빛과 소금 (2)

동헌 뜰을 지키고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외부의 시선을 주의하던 을룡은, 나의 명을 받들어 사랑방을 찾았다.

막 김자강이 다녀간 방 내부에는 온기가 여전했다.

나는 그와 소금의 건에 대해 말을 나누었다. 때마침 을룡과의 볼일도 소금과 관련될 일이었다.

얼마전 나는 을룡에게 수하들을 시켜 소금을 구매하게 했으며, 겸사겸사 밀매를 위해 수하들의 신용도 검증하게 했다.

이제는 그 결과물을 확인해야 할 때였다.

“내가 어째서 너를 찾았는지, 알고 있겠지.”

“예.”

“보고해봐.”

을룡은 고개를 끄덕이곤 답했다.

“총원 서른두 명에서 스물두 명이 여전히 소금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구매를 중단한 사람들에게는 그간의 비용을 정산해주었고, 차차 접촉을 끊어갈 예정입니다. 모인 소금의 총량은 마흔 섬입니다.”

“의외로군.”

“…….”

을룡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한 의외라는 것이 무엇을 말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나는 상당히 적은 비율로 사람이 남으리라 생각했다. 전후 사정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막연하게 명령을 내렸으니까. 그것을 끝까지 충실하게 이행할 사람은 흔치 않다.

하지만 서른두 명에서 무려 스물두 명이나 버티다니. 엄청난 비율이었다.

검증이 가혹하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모인 소금의 양이 마흔 섬이다. 북방은 가난했고 일개 가정이 용처도 없이 한 섬 이상의 소금을 사들였다간 가세가 기울 터였다.

분명 검증은 가혹했다.

“능력이 좋구나.”

“어르신께 배운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정체를 노출하거나, 혹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남기지는 않았겠지.”

“예. 항상 유의하고 있습니다.”

을룡은 당당하게 답했다.

거짓말을 할 녀석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수하들을 포섭하고 사로잡은 것일까.

사실 사람을 조종하기 쉬운 방도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동안 걸어온 행보와도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을룡의 성과를 보면 내가 짐작하는 방도가 아닐까 짐작이 간다. 그는 나에게 배웠다고 하니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확인을 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다음 일은 확보한 소금을 회령의 여진족들과 거래하는 거야. 단적으로 말하면 밀매지. 발각된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스물두 명 중에서 얼마나 협조할 것 같은가?”

“의사를 떠봐야겠지만 남은 사람들은 전부 협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많아봐야 한두 명 정도가 포기하지 않을는지요.”

“자신감이 대단하군.”

“사실이 그럴 뿐입니다.”

“보아하니 이미 확실하게 일을 해주고 있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 누군가 변심이라도 한다면 큰일이야. 소금의 건으로 각자 부담이 컸을 테니 확실하게 보상해 주게.”

“알겠습니다.”

“회령의 여진족들과 접촉해서 밀매하는 일은 자네에게 일임하지. 그렇다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지는 말고. 만일 관에 발각된다면 큰일이니까.”

을룡의 수하들은 처음부터 위험에 처해질 것을 감안하고서 포섭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을룡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각별히 주의해.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만큼 나 역시 너를 생각하고 있으니. 신상에 위해가 갈 법한 행동은 하지 않은 게 좋아.”

“명심하겠습니다.”

소금의 일은 을룡에게 전적으로 맡겨둔 채, 시간이 흘렀다.

고향으로 돌아간 김자강과 족장들은 전쟁을 재개했다.

회령을 비롯한 국경 지역의 수령들은 다시 긴장 태세에 돌입했으나 예전 같지는 않았다. 회령 여진족들은 막 입조하여 조선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회령 여진족들은 느슨한 경계를 뒤로 하고 확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미 몇 개의 군소 부족을 점령해 세력이 종성 너머까지 확대됐다.

강 주변을 제외하고는 순 산 뿐인 회령에서 탈피했으니 김자강과 동료 부족장들은 한 층 날개를 단 셈이다.

하지만 목표인 해란강까지는 한참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해란강에는 강대한 세력인 율보리가 강과 일대 평야를 주름잡고 있었다.

그들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게다가 회령 여진족들이 날개 돋친 호랑이처럼 주변을 장악해나가고 있으니. 슬슬 주변 여진족들도 연합해서 대항하겠지.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 * *

“김자강이라는 자가 슬슬 콧대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만. 이쯤에서 한 번 눌러줘야지 않겠습니까?”

정승복이 투덜거렸다.

그는 병마우후로, 종삼품이라는 제법 높은 관직을 지내고 있었지만 내가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직후 기강을 바로잡을 때 매를 맞은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자강 타령을 하는 걸 거다.

“하하하.”

나는 가볍게 웃어주고는 도리어 물었다.

“혹시, 일전에 공을 세우지 못해서 안달을 내시는 건 아니겠지요?”

“아, 아닙니다!”

정승복은 고개까지 저어가며 부인했지만, 강한 부정은 도리어 긍정인 법이다.

역시 무인은 무인인가.

속이 뻔히 보였다.

조정에서 마음을 속이고 사람을 등치는 기술만 익힌 나에게, 정승복은 분명 아버지뻘임에도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김자강과 그의 동료들은 막 아조의 입조한 자들이 아닙니까. 조선에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놈들이 방심을 위해 입조를 한 것이라면…….”

“물론 그런 의도였겠지요. 족장들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부족까지 방치해가며 입조를 했겠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 봐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내막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정승복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나의 편이었지만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함부로 알려줄 정도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건 정승복만 아니라 제삼당 당여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관리들은 원칙상 왕에게 충성하는 자들이니까.

굳이 알려주더라도 이익도 없이 위험의 소지만 있을 뿐인 이야기를 할 이유는 없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사람은 우후께서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철저한 사람이니까요.”

“……물론 소관이 대감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러셔야 할 겁니다. 적어도 적을 대하는 방면으로는, 이 사람 역시 우후 못지않으니까요.”

우후 이상이라고 단언하지는 않겠다.

순진하게 보이고, 또 실제로도 순진한 면이 있는 정승복이지만 그 역시 실전을 겪어본 진짜 무인이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에게 가장 큰 외침이었던 을묘왜변의 참전자였으니까. 당시 두 차례의 침공이 있었고 정승복은 두 차례 모두 참전했다.

그때의 공으로 어피(魚皮)로 장식된 환도를 한 자루 하사받았는데 본가에서 보관 중이라고 했다. 아마 나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테지.

어쨌거나 그런 면에서는 존중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우후 역시 나를 존중했고.

“알겠습니다. 소관이 대감이 아니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많이 아쉬워하신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이 분쟁을 유도할 수는 없으니까요.”

나이가 많아 일선에 서기에는 어려운 몸이었다. 또 언제 은퇴할지 몰랐다.

처지가 이렇다보니 사모를 벗을 때 위안을 삼을 수 있도록 공을 세우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 여한이 없어야 하듯, 관직을 그만둘 때가 되어서도 여한이 없도록.

그 마음을 내가 모르지는 않는다.

“때가 된다면 반드시 우후께서 공을 세우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잡담에 나름대로 결론이 맺어졌다.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사실 이 때문이었기에, 정승복은 더 할 말이 없었는지 입술만 연신 움찔거렸다.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너무 자기 할 말만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의도는 이미 뻔하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딴에는 노력하는 것이겠지.

나는 피식 웃어주고는 직접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에게도 가족은 있었고 아들도 있었다.

특히 삼남 정사준(鄭思竣)은 아버지를 쫓아 무인이 되기를 희망했고, 작년에 가까스로 무과에 병과로 급제했다던가. (같은 시험에서 이순신은 갑과로 급제했다.)

그의 근황을 물어보아도 되겠지. 아들 자랑이 될 테니 정승복도 할 말이 많을 터였다.

입술을 떼려는 그 순간.

“…….”

맞은편, 은근히 먼 곳에서 을룡이 서 있었다. 대화를 방해할 생각은 없어보였으나 시선이 마주치자 꾸벅 허리를 숙였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평소에는 동헌을 지키고 있었고 일이 있으면 출타를 했지, 감영을 찾는 일은 드물었다. 이따금 이렇게 직접 찾아와 얼굴을 비칠 때는 보고할 일이 생길 때였다.

그것도 중요한 편으로.

시답잖은 보고들은 동헌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

나는 짧게 침음하고는 정승복에게 말했다.

“우후께서 이렇게 감영까지 찾아와 안부를 물어봐주시니, 감사하고도 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째서요? 아닙니다. 죄송하다면 오히려 소관이 금천부원군께…….”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조만간 병영을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이야기는 그때 나누도록 하지요. 밀린 공무도 겸할 터이니 보고가 필요한 사안이 있으면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승복도 같이 일어났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니 정승복도 함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예.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정승복은 대청을 빠져나가 뜰에서도 한 번 더 짧게 인사를 올리고는 감영을 나섰다.

직후 나는 동헌을 찾았다. 과연 동헌에 이르자 을룡이 다가와 속삭였다.

“하명하신 일이 완수되었습니다.”

소금에 관한 일인가.

기대하던 바였다.

그러나 동헌이라도 모두가 보고 들을 수 있는 뜰에서 공공연히 이야기할 주제는 못 된다. 나는 발을 멈추지 않고 계속 사랑방으로 나아갔다.

“들어가서 듣지.”

“예.”

먼저 사랑방으로 들어서니, 을룡은 주변의 시선을 확인하고는 뒤따라 들어섰다.

그리고 거침없이 보고를 올렸다.

“당초 선별되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믿을 수 있는 자들을 골라, 회령의 여진족과 접촉하여 비축해둔 소금과 거래하게 했습니다. 거래는 차질 없이 완수되었고 대금도 성공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완벽하군.”

“망극할 뿐입니다. 대금은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

“바로 가져온 건가?”

“예.”

“한 번 보지.”

“알겠습니다.”

을룡은 짧게 고개를 숙인 뒤 사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손에는 큼지막한 함을 든 채였다.

과대포장이 아니라면 엄청난 양이었다. 순간이나마 나를 당혹하게 만들 정도로.

“여기.”

을룡은 서안 위에 함을 내려놓았다. 은도 금속이다. 부피 대비 무게가 상당해 양이 많아지면 무지막지하게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서안이 작게나마 쿵 하고 울었다.

“…….”

과대포장이 아닌 건가? 정말 함 안에 은이 꽉 들어차 있다는 말인가.

믿기지 않았다.

소금은 분명 가치 높은 상품 중 하나였으나 쌀에 비해서는 쌌다. 쌀이 두 섬에 은화가 한 냥이다. 소금 마흔 섬이 전부 쌀이었고 그것을 은화로 전부 치환해도 이만한 무게는 나올 수가 없었다.

‘멍청하게 쇳덩어리라도 받은 건 아니겠지?’

을룡은 나의 어깨 너머에서 배운 건 많을지라도 재물에 대한 안목은 부족했다.

조선이 쇄은을 금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순도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작정 만연하게 통용되었다간 알게 모르게 손해 보는 사람이 폭증하겠지.

그래서 상인이나 쇄은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은의 순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을룡이 거기에 해당되던가?

그가 부리는 수하들은?

‘제기랄.’

기대와는 달리 이제는 불안으로 가슴이 떨렸다. 함에 담긴 것이 순도 높은 진짜 은이건, 은으로 위장한 쇳덩어리건 까봐야 알 수 있었다.

꿀꺽.

입에 한가득 고인 침을 삼키고 뚜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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