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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140화 (140/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140화

49. 자연재해 (2)

-끼이익…….

경첩 소리가 스산한 겨울밤의 침묵을 깼다.

정승복은 침을 꼴깍 삼켰다.

감옥에는 그 외에는 수감된 사람이 없었다. 정체불명의 외부인은 오직 정승복만을 보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횃불 하나 없어 어두컴컴한 옥이 발소리로 진동했다.

정승복은 입술을 바짝 말고서 긴장했다. 과연 누가 찾아온 것일까? 자신을 탈옥이라도 시키겠다는 터무니없는 시도는 아니었으면 했다.

옥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으나 자신은 목숨 외에도 잃을 게 많은 사람이었다.

금천부원군 같은 자연재해급 인물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그런데…….

“대, 대감.”

자연재해 그 자체가 정승복 앞에 나타났다.

“추우시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나오세요. 그대가 고뿔에 걸리면 이 사람이 피곤해집니다.”

금천부원군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더니 허리춤에서 열쇠고리를 꺼내, 친히 자물쇠를 풀었다. 삐그덕 하는 소리와 함께 옥문이 열렸다.

“……예?”

정승복은 당혹스러웠다.

혹시 금천부원군이 일부러 자신을 놓아주려는 건 아닐까? 그러고 다시 잡아들여 탈옥을 이유로 극형에 처한다거나.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어째서 자신을 옥에 집어넣고, 몰래 찾아와 다시 풀어준단 말인가?

정승복은 졸지에 탈옥범이 되어 자신의 수하였던 병사들에 뒤쫓기는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 아니옵니다. 소관의 죄가 분명하니 옥에 있다가 달게 벌을 받겠사옵니다.”

“하하하. 물론 죄는 있지요. 하지만 정 우후께서는 억울할 법도 해서 그럽니다. 따지자면 무구의 관리 소홀은 우후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건…….”

“이 사람이 설마 정 우후를 싫어해서 소란을 벌였겠습니까. 모두가 태만에 젖어있으니, 분위기 환기가 필요해서 우후를 잠시 괴롭혔을 뿐입니다.”

“…….”

정승복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억울하긴 했는데, 금천부원군처럼 높은 사람이 친절하게 사정을 설명해주니 거기에 부응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명감이 들었다.

“나오세요. 동헌에서 언 몸을 녹이시며 날을 보내시고, 새벽 즈음에 은근슬쩍 다시 오시면 됩니다.”

“형의 집행은 어떻게……, 됩니까?”

“극적인 효과를 줘야하니 최대한 죄질이 나쁜 쪽으로 군법을 적용할 겁니다.”

“……!”

“하지만 형을 집행하기 전에 비계를 넣어줄 겁니다. 볼기에 깔아놓으면, 물론 장을 치면 상당히 아프겠습니다만 병신이 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조정에 보고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건 정 우후를 곤란하게 하려는 일이 아니라, 단지 함경북도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함일 뿐이니까요.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아, 아닙니다! 최대한 아프게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한 방향으로 충심을 표출하는 정승복이었다.

“하하. 기대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요란을 떨 필요는 없고요. 나오세요. 옥은 춥습니다.”

“예!”

정승복은 일어나 옥의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를 털어내고는, 발을 돌린 금천부원군을 쫓았다.

“소, 송구합니다. 전임 병사의 태도가 어떻건 소관만이라도 성실해야 했는데.”

“이제부터 성실하시면 됩니다. 과거의 일은 바꿀 수 없으니까요.”

“예.”

“하지만 앞으로도 이 사람이 계속 친절할 수는 없어요. 우후께서 벌을 받으신 것은, 설령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해도 대외적으로는 진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이나 우후의 처우를 우습게 알고서 직무에 불성실한 사람이 나오면, 이 사람은 진정으로 엄히 나올 수밖에 없어요.”

“제가 최대한 아랫 녀석들을 잘 구슬리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찌 저라고 피를 묻히는 일이 즐겁겠습니까. 대신, 우후와 다른 사람들이 고생해주는 만큼 챙겨줄 생각이에요. 노고가 있다면 응당 위로도 있어야 하니.”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데 포상을 생각해주시니, 송구할 뿐입니다. 대감께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데도 불성실한 사람이 있다면 저 역시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하하하.”

정승복은 금세 감화되어 있었다. 가식적으로 하는 반응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로 있는 와중에는 많은 힘이 되어주리라. 이인자와의 관계가 어떻느냐에 따라 한없이 피곤해질 수도 있고, 쉬워질 수도 있는 게 일인자의 자리이니.

그런 점에서 나는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 셈이다.

정승복은 동헌 사랑방 중 한 곳을 내어주고, 위안이 되도록 좋은 술과 약간의 안주를 보냈다.

내일 새벽이 되어 찾아가니 정승복은 알아서 옥으로 돌아간 후였다.

나는 조금 더 잤다가 아침이 되어 일어났다.

“흐암.”

밝게 빛나는 방문을 밀어내니, 이미 완연한 낮이었다. 물론 북방의 겨울답게 청명한 하늘과는 달리 바람은 칼날이었다.

“어후!”

몸을 부르르 떨어주고는 방으로 돌아와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주변의 공노비와 아전들이 꾸벅 인사를 올렸다.

나는 을룡에게 시켜 정승복에게 두터운 비계 한 쌍을 전했다. 알아서 엉덩이에 단단히 붙여놓고 나오겠지.

형을 집행할 말단 병사도 불러 주의를 해주었다. 수상하더라도 그대로 형을 집행하라고.

그리고 때가 됐다.

“형틀이 준비되었습니다.”

아전을 대표하는 수리(首吏)가 보고했다.

“형 집행 준비가 끝났습니다.”

“우후를 형틀에 누이라.”

“예.”

수리가 말단 아전에게 눈치를 주자, 시선을 받은 아전이 관아 뒤편으로 사라졌다. 머지않아 병사들과 함께 정승복을 대동한 채였다.

정승복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비록 보여주기라곤 해도, 무려 형을 집행 당하는 일이다.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다.

또 곤장은 무지막지한 형구다. 가려서 치지 않으면 사람을 시체로 만들 수도 있었다. 아무리 비계를 깔았어도 안 아플 수가 없었다.

딴에는 최대한 아프게 보이도록 하겠다던 정승복이었으나…….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죽도록 아플 거다.

“우후는 그동안 병영의 병기 관리를 소홀히 하였으며, 이를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장부를 위조하였다. 대명률에서는 관물을 분실 또는 오훼(誤毁, 망가뜨림)하는 자는 장 육십을 치게 하고, 공문을 자의로 증감하는 자는 장 오십을 치게 하는데, 두 가지 죄를 같이 저질렀을 때는 무거운 쪽을 치죄하고 다른 죄는 묻지 않으므로, 장 육십을 집행함이 옳을 것이다.”

“…….”

“그러나 오늘날 병영의 기물이 망실되고 장부가 조작된 것을 어찌 우후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더욱이 우후는 관인(官人)으로서 오랫동안 나라를 위해 봉사하였으니 법률대로 처리할 수는 없다. 이에 이 등을 감하여 스무 대만 치도록 할 것이나 군의 일이므로 태가 아니라 장으로 벌한다. 형을 집행하라.”

엄명이 떨어지자 형틀 좌위에 매를 든 병사들이 시선을 주고받더니 한쪽이 외쳤다.

“한 대요!”

우렁찬 외침과 함께 높이 솟은 형장(刑杖)이 정승복의 엉덩이 위로 떨어졌다.

-철썩!

고기를 떡으로 만드는 찰진 소리라 감영 뜰을 울렸다.

“으악!”

정승복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작 한 대만 맞았을 뿐인데 얼굴은 붉게 물들고 이마에는 힘줄이 돋았다.

역시나.

고작 비계 좀 깐다고 죽도록 아플게 안 아파질 리가 없었다.

정승복도 각오는 했겠지만 상상 외였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지만 형을 집행하는 병사들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두 대요!”

-철썩!

“우와악!”

…….

…….

…….

형의 집행이 끝났다.

정승복은 풀려났다.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일어나지 못하기에 공노비들을 시켜 양쪽에서 부축하게 했다.

“우후를 거처로 보내라.”

공노비 한 쌍은 허리를 꾸벅 숙이곤 정승복을 데리고 감영을 나섰다.

뜰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정삼품이라면 당상관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제법 높은 품계다.

그럼에도 속전도 없이 장 스물을 그대로 때려버렸으니, 이제 함경북도에서 금천부원군에게 잘못 걸렸다간 몸 성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만하면 수작 부리기 좋아하는 아전들도 이해했겠지.

하지만 나는 친절한 사람이다. 눈앞의 광경을 뻔히 보고도 이해하지 못한 멍청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설령 병마우후라 할 지라도 죄과가 있으면 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그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병방들은 군적을 새로 작성하는 일에 착수했습니까?”

“예, 예!”

병방이 외치듯 답했다.

“군적을 새로 작성하면서 호적(戶籍)과 양안(量案, 토지대장)을 나중의 일로 미룬다는 건 지극히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호방에서는 무얼 하고 있습니까?”

“……그게.”

“말씀하세요.”

“하명하신 바가 없으셔서…….”

“내가 그것까지 일일이 물어보고 지시를 내려야 합니까?”

“아, 아닙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이전의 일은 묻어두겠으나 이후로는 주의들 하라고. 명이 있건 없건 맡은 역할을 이행하지 않는 자들은 책임을 물어 경중에 따라 엄벌에 처하겠습니다.”

“예, 예.”

“바쁘실 텐데 일들 보세요. 이 사람은 잠시 출타해야겠습니다.”

정승복의 엉덩이 상태를 보러 가야 했다. 그 친구가 제 역할을 못하는 기간만큼 우후의 업무가 나에게 전가될 터이니.

관아를 나서니 을룡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멀리 안 가.”

“다시는 대감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을룡의 눈에서는 안광이 형형했다.

나는 이마를 쓸어내렸다.

“덕분에 조만간 내가 남색을 한다는 소문을 얻겠구나.”

* * *

“우으으…….”

정승복은 거처 사랑방에 누워 엉덩이를 지지고 있었다. 구들장의 열기 덕인지, 고통이 조금은 가신 느낌이었다.

분명 형을 집행하기 전이 비계를 받아 엉덩이에 붙였다. 한겨울 한기에 얼어붙은 비계는 마치 가죽처럼 단단해, 내심 많이 아프지는 않으리라 기대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형 집행이 끝난 후 비계는 떡이 될 정도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으나, 뼈까지 울리는 통증을 전부 막아내지는 못했다.

분명 며칠은 요양해야 좀 정신이 돌아올 것 같았다.

“저기, 어르신.”

방문 너머에서 노복이 말했다.

안 그래도 숨을 돌리고 있던 정승복으로서는 무척이나 귀찮은 부름이었다

“무슨 일이냐……. 내 분명 한동안은 쉬어야 할 터이니 귀찮게 하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예. 그리 말씀하셨습니다요. 하지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무슨 손님이 찾아와? 내가 오늘 볼기가 결딴이 나서 옥황상제라도 받아줄 수가 없다 전하거라!”

“병마절도사 대감이십니다만……,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뭐? 아니야! 잠시만 기다리거라! 이봐!”

정승복은 다급히 외치며 방문을 향해 엉금엉금 기었다. 이로써 금천부원군은 옥황상제보다 더 높은 존재임이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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