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134화
47. 충성을 바쳐라 (1)
달포 뒤.
나는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창의문(彰義門)에 다다르니 놀라는 광경이 펼쳐졌다.
성문 누각에서부터 인근 성벽까지 색색의 종이들을 늘어놓았고 성문에는 신하 십수 명이 위사들과 함께 대와 오를 맞춰 서 있었다.
“…….”
도대체 누구를 맞이하겠다고 이런 환대를 준비했단 말인가. 명나라 사신이 아니고서야 도성에서 이런 대우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설마, 나냐.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맞은편에 자리한 노신 중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손녀사위!”
영의정 권철이었다.
나는 말을 탄 채였고 권철은 그렇지 않았으므로, 하마한 다음 허리를 숙였다.
“영의정 대감. 오랫동안 뵙지 못해 안부부터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보다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 부사에 의해 종계변무가 성사되었음을 확인하였으나 정작 금천군의 생사는 알 수 없게 되었지. 그래서 사람을 보내 확인해야 한다, 안된다로 민감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생환의 소식이 들려왔는데 어찌 환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작지 않은 일을 해냈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너무 과한 건 아닌지.”
“나라의 영웅을 대함에 모자람이 있다면 영웅에게만 아니라, 그 영웅이 보좌하고 이끌어갈 전하와 나라에도 죄를 짓는 셈이지.”
이이가 개성에서 나에게 말했던 게 이거였나. 잔뜩 긴장하라고 했던 것이.
물론 환대는 고마웠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마냥 환대를 즐기기는 어려웠다.
굴포운하에 이어 종계변무까지, 개국 이래로 200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일을 연이어 해결한 나를 추앙하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왕의 입지다.
분명 굴포운하와 종계변무 두 사건 모두 선조의 대에서 성사가 되었으니, 이 공은 분명 현직 왕에게도 돌아가게 되어 있다.
문제는 적극성이다.
과연 선조는 두 사업에 어떤 도움을 주었나? 얼마나 주도적으로 추진했나? 꼭 지금 왕이 선조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나?
‘물론 내가 관문에 들어서게 된 계기는 선조의 영향이 크지만.’
원 역사의 이순신도 선조의 덕으로 크게 출세하여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하는 공을 세울 수 있었으나, 선조는 이순신을 경계하고 견제했다.
내가 관문에 입성하게 도와줬다고 선조가 끝까지 나의 편일 수는 없었다.
하물며 이중적인 태도로 나를 대해온 상태라면 더더욱.
‘하지만 너무 부담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산직(散職, 명예직)이라고는 하나 명에서 종삼품 품계까지 받았으니.’
신하를 독하게 굴리기로 유명했던 세종대왕도, 명나라에서 사품 관직을 얻은 한확을 쉽게 대하지 못했다.
하물며 세종조차 그랬을진대 지금 선조라고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물론 명의 뒷배만 믿고서 까분다면 원인 불명의 ‘급사’를 하는 수가 있다. 선조가 세종대왕처럼 이성적인 사람이 아님을 감안해서라도 처신은 조심스러워야 했다.
“신하로서 전하의 명을 수행했을 뿐인데 환대가 지나치시니, 죄스러운 기분마저 듭니다. 부디 저를 생각해서라도 제공들을 물려주시지요.”
“음……. 알았네. 이 늙은이가 눈치가 없어서 금천군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군.”
권철이 주도한 일인가.
그는 나의 처조부다. 나의 몸값이 올라가면 덩달아 권철의 몸값 역시 올라간다. 그래서 유난을 떤 모양이었다.
덕분에 선조의 경계심만 올라갔겠군.
지금의 나는 용도를 다한 상태다. 기고만장해서도 안 되고, 주위 사람들의 추앙은 최대한 자제시켜야 했다.
나는 권철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영상 대감, 저를 챙겨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복안이 있으시다면 재미없습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앞으로는 자제해주셔야 할 겁니다.”
자제해야 한다, 도 아니고 그리해야 하리라. 이건 손녀사위가 처조부에게 청하는 말도 아니고 예조참판이 영의정에게 부탁하는 것도 아니었다.
영수로서 당여에게 명령하는 것이었다.
“아, 알겠네. 미안했네.”
권철이 당혹한 목소리로 사과하자 나는 물러나서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럼 소관은 전하께 인사를 드리러 가겠습니다. 지금의 회포는, 별도로 찾아갈 터이니 그때 풀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알았네.”
나는 권철을 물리치고 창의문으로 향했다. 좌우에 시립한 신하와 위사들이 꾸벅 고개를 숙여 공신을 맞이했다.
그것은 실로 정수리가 저릿해지는 경험이었다. 평소라면, 왕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극진한 예우는 받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아래에 두고 지배하길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권신들이 최후까지 권력을 놓지 못해 비참한 결말을 맞는 것도 이해가 갔다.
북경에서 가마를 타 두어 다행이었다.
황제가 기거하는 제도(帝都)에서마저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천하를 오시하는 극도로 오만한 경험을 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부담스러워하는 척도 내질 못했을 터이니.
“…….”
관리와 위사들의 대열 다음에는 수많은 도성의 주민들이었다. 내가 이룩한 일들은 한성 주민들의 삶과는 거의 관계가 없었으나, 유명인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 대단한 놈 낯짝이나 한번 보자는 느낌으로.
주변의 위사들과 수행원들이 길을 터주었고 나는 마치 경호 받는 VIP처럼 인파를 뚫으며 경복궁에 도착했다.
한 번 입성하니 주민들은 감히 궐문까지는 넘어오지 못했다. 가을이 다 되었음에도 답답하고 더웠던 공기가 일순 싸늘하게 풀렸다.
‘제기랄, 적어도 며칠 푹 쉰 다음에야 입궐하려 했거늘.’
권철이 일을 벌이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정면의 문을 몇 번 통과하니 어느새 왕의 영역에 들어섰다. 아마 이 시간에는 편전에 있으리라. 호랑이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길이 익숙하다는 것은 지극히 불쾌하다.
[ 門政思 ]
사정문.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으로 들어서는 대문이다. 비슷한 크기의 입구 세 곳이 뚫려 있지만 신하가 입장이 가능한 것은 좌우 양쪽의 입구로 한정되어 있다.
당연하지만 중앙의 입구는 왕에게만 허락된 것이기에.
심신을 가다듬고 의복까지 정제한 뒤 사정문을 넘어서니, 편전내시가 다가왔다.
“금천군 대감.”
“대감이라니요?”
나의 관직은 예조참판. 종이품으로 영감 소리는 들어도 대감 소리를 들을 레벨은 아니었다.
의아해 물어보니 내시가 떠벌였다.
“대감께서는 종계변무의 일로 일등인 수충공성익모수가광국공신(輸忠貢誠翼謨修紀光國功臣)에 책록되시고 품계가······.”
신나게 말하다 말고 입을 꾹 닫고서 전전긍긍한 표정을 짓는 내시였다. 이런 건 왕이 알려줘야지 자신이 알려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
“아.”
탄식까지 흘리는 내시였다.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마, 망극합니다. 대감, 아니, 영감…….”
약간 어수룩한 사람이로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온몸을 뻣뻣하게 만들던 긴장감이 풀렸다. 그래, 너무 긴장하는 것도 도리어 독이다. 나는 미소지으며 청했다.
“전하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안내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따라오시지요.”
내시는 특유의 종종걸음으로 앞서나갔다. 그리고 사정전 내부의 복도를 잠시 나아가더니 어느 방 앞에 멈춰 섰다.
방 입구 좌우에도 내시들이 지켜선 채였다.
“전하.”
“무슨 일인가.”
귀찮아하다 못해 적의까지 묻어나는 목소리. 놈이다. 선조에게는 특유의 어투가 있었다. 적대적이고 악에 받친 자의 표본이다.
자신의 이상은 한없이 드높은데 본인의 능력은 그렇지 못한. 그로 인한 괴리감을 남에 대한 적의로 해소하는.
영의정씩이나 되는 자가 나를 맞이하러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과연 선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금천군 이순신 입시이옵니다.”
“아, 금천군!”
선조의 목소리가 단번에 풀렸다. 반기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들라 하라.”
“예.”
윤허가 떨어지자 미닫이문이 좌우로 열리며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흔치 않으나 오늘로 세 번째 보는 모습이었다.
편전 안에서 집무를 보는 선조는.
목판에는 권자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서안에도 권자가 몇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선조는 핼쑥한 인상이었다.
시커먼 몰골을 보아하니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눈만큼은 기세가 살아 있었다.
-드르륵
뒤편의 미닫이문이 닫히고, 나는 선조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신 예조참판 이순신, 사은사 정사의 역할을 마치고 이제 도성으로 돌아왔사옵니다.”
“기다리고 있었네. 금천군.”
선조는 맞은편을 향해 팔을 뻗었다.
“자리하게.”
“예.”
무릎을 꿇고 앉으니 선조가 권했다.
“편하게 앉아도 돼. 달포 동안이나 꼬박 귀국길로 고생을 했을 텐데 이 정도는 내가 편의를 봐줘야지.”
“망극하오나, 신이 어찌 군주의 앞에서 편한 자세로 앉을 수 있겠사옵니까.”
“그편이 더 편하다면 강요하지는 않겠네.”
무신경하게 답하면서도 내심 미소가 입에 걸린 선조였다.
제가 권해놓고는, 진짜로 마음 편히 앉기라도 했으면 두고두고 앙심을 품었으리라. 이런 류의 인간이야말로 가장 피곤했다.
어지간하면 더러워서라도 피할 텐데 이 놈은 왕이라서 피할 수도 없으니.
“부사에게 전해 들었어. 금천군이 종계변무를 성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다지.”
“부정하지는 않겠사옵니다. 허나 금(琴, 거문고)이 소리를 내는데 어찌 현만의 공이 있었겠사옵니까.”
“나는 정론이나 듣고자 금천군에게 물어본 게 아닐세.”
“…….”
“말해보게. 도대체 어떤 신묘한 계책을 벌였기에 장장 이백여 년 동안이나 요지부동이었던 명나라가 종계변무를 성사해 준 건가?”
“명 조정은 현재 중극전대학사인 장거정이 정권을 쥐고 있는데, 개혁을 앞두고 수많은 반대를 당면한 상태였사옵니다.”
“그래서 장거정에게 도움을 주었다?”
“신이 어찌 명의 조정을 장악한 그에게 대단한 도움이 될 수 있었겠사옵니까. 단지 조선의 사신으로서, 금방 떠날 사람이었기에 이해관계가 맞았을 뿐입니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텐데.”
“신은 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금천군은 겸양이 과해. 그 말대로라면, 선대왕들의 특명을 받고 떠났던 사신들은 최선을 다하지 못해 실패했다는 뜻 아닌가?”
“어쩌면 그분들의 노고가 있었던 덕에 오늘날 성취가 이루어진 게 아니겠사옵나까.”
“별종이군.”
남의 공마저 자신의 공으로 가로채는 세상이다. 이런 마당에 자신의 공을, 분명 인정은 하지만 죽어 이제는 묘소만 남아있을 자에게도 공을 돌리는 자는 흔치 않다.
그래서 선조는 이순신이 예나 지금이나 어려웠다. 아귀가 맞지 않는 두 조각처럼 언제나 속이 거북했다.
선조로서는 이순신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고생했네.”
“아니옵니다.”
“금천군이 이렇게 무탈하게 돌아올 줄 알았더라면 공신 책록을 조금 늦췄을 텐데. 하다 못해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나? 이미 종묘와 사직에 고한 일을 녹훈하지 못하고서 기약 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잖나.”
선조는 아쉽다는 듯 말했지만 진심은 그렇지 않았다.
세 번 연속이나 주청사가 실패해 궁지에 몰린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태안에 있던 이순신을 빼내 네 번째 사신으로 투입했다.
그렇게 사은사를 방자한 주청사가 도성을 떠난 지 어언 삼 개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는 했으나 선조는 밤잠까지 설쳐가며 불안에 떨었다.
만일 이순신마저 실패한다면 자신의 대에서 과연 종계변무를 성사할 수 있겠느냐고. 다른 선왕들처럼 애만 쓰다가 어떠한 결과도 보지 못하고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하고.
하지만 막상 부사 이산해가 돌아와 희소식을 전하자 선조는 두려움이 일었다. 이순신은 이번에도 핵심적인 위치에서 일방적인 공을 세웠다.
그가 조선에 돌아온다면 자신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선조는 기원하는 마음으로 공신 책록을 서둘렀다.
대업은 이미 성사되었으니 이순신은 굳이 조선에 돌아오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차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