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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109화 (109/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109화

37. 어미새 (1)

조선은 개국과 함께 굴포운하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이를 현실화할 여러 방안을 모색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셋은 이러했다.

1. 무식하게 파기.

고려에서 시도했다가 이미 실패했음을, 그 이유는 태안의 지질이 지랄 맞기 때문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음에도 다시 한 번 대가리를 맨땅에 박자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이 나온 이유는 조선 조정이 바보천치 소굴이어서가 아니라, 고려조에 시도한 굴포운하 흔적이 여전히 방대한 공간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조금만 더 고생을 얹어서 굴포운하를 날로 먹어보자는 게 1안의 요지였다.

2. 육로 경유.

1안의 경우, 고려에서 이미 많은 희생을 견뎌 상당 부분 진도를 밀어두었어도 화강암 암반을 캐야 한다는 맹점은 여전했다.

특히 고려조의 공사를 좌절하게 만들었던 공사 난항 구간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어 말처럼 쉽게 날로 먹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때문에 2안의 내용은 아예 굴포운하를 포기하고, 태안반도의 좁은 틈을 남북으로 찔러오는 두 개의 만에 각기 창고와 부두를 설치하여, 중간을 육로로 잇자는 것이었다.

얼마나 게을러 터졌는지 삽도 뜨지 않고 유사 운하를 시도하자는 2안은 실현이 어렵지는 않았으나, 치명적인 맹점이 있었다.

태안반도가 있는 서해안의 경우 조수 간 차이가 커서, 부두의 위치를 잡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육로를 경유하기 위해서는 화물을 내리고 다시 선적하는 번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남북의 부두와 창고마다 다수의 인력이 상시 배치되어야 했고, 또 태안반도 북쪽에서 도성까지 세곡을 옮길 배와 인력도 추가로 필요했다.

그러니까, 육로를 경로하자는 제안은 ‘그게 말처럼 쉬웠으면 그렇게 했지, 운하 파겠다고 이 고생을 하고 있겠냐 덜떨어진 자식들아’라는 반박에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최종적으로 제안된 것이 바로 3안이었다.

3. 지표 위에 운하 만들기.

3안은 파나마 운하처럼 관문을 이용해 물을 가둬, 운하를 지상 위에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지상 위의 운하는 앞뒤만 수문으로 막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수 킬로미터 길이의 운하 전체를 감싸는 벽이 필요했다.

문제는 자연재료를 위주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물과 압력에 상시 노출되는 수벽을 km 단위로 짓자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다는 거다.

조선 조정의 엘리트들은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지적해야 했으나 책상물림들은 어련히 잘되려니 싶었는지 결국 3안을 기반으로 첫 삽을 뜨고 말았다.

공사 중간 즈음에는 ‘이게 아닌데?’ 싶었겠지만 저지른 일의 규모가 너무 커서, 국가 초유의 사업은 뻔한 결과를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당찬 포부를 품고 시작한 3안은, 1안 실현에 필요한 노동력, 2안 실현에 필요한 부가시설과 상시인력을 모두 소모하고도 초라한 수송력에 그마저도 조수 변화에 따라 제 꼴리는 대로 작동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능동형 운하로 끝나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이 운하 조무사는 태종 초유의 흑역사가 되어 버림받았고 이후 누구도 이를 굴포운하의 실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그리고 이것이 굴포운하의 마지막 역사였다.

“쩝.”

전근대 국가의 한계였다.

현장 경험 없이 책상물림 아저씨들이 초유의 대공사를 탁상공론으로 처리한 것도 문제고, 아니다 싶을 때 포기하지 못한 것은 국가의 한계와는 별개지만.

굴포운하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적 한계였다.

인력으로 암반 깨기, 흙과 돌로 운하 만들기. 양쪽 모두 답이 없었다.

미래에서도 유명한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모두 19세기의 기술력으로 시행되었음에도 무수한 사망자가 발생했으니.

요즘 시대에서 운하를 만들자는 건 만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방도가 없는 건 아니지.’

다행스러운 점은 굴포운하의 규모가 수에즈나 파나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다는 것이었다.

45,000톤급 전함인 아이오와도 지나다닐 수 있는 파나마와는 달리, 굴포운하를 주로 이용할 선박은 50톤 안팎의 조운선이었다.

거의 애들 장난, 미니어처라 봐도 무방하리라.

그리고 수십 km를 깎았던 수에즈나 파나마와 달리 굴포운하는 수 km에 불과한 거리마저 인간의 목숨을 바칠 테니 운하를 내려달라는 인신공양으로 이미 길이 나 있었다.

‘오직 딱 하나만의 비책이 있으면.’

게임은 끝이라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화강암 덩어리 자체인 태안을 판다는 것 자체가 정상인인 내 기준에서는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수로를 지표 위에 내야 하는데, 맹점이 자연소재로 운하를 만들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자연소재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운하를 성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래에서 살았던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는 나에게는, 이미 답안이 펼쳐져 있었다.

거리에 좌우로 끝없이 늘어진 건축물들. 무엇으로 올린 것이던가?

‘시멘트!’

미래 건축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마법의 가루였다.

물론 조선이라고 석회의 존재를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석회석을 가마에 구워서 석회석을 얻어냈기 때문에, 돌을 캐야 하는 어려움에 땔감까지 수급해야 해서 흔히 쓰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택의 지붕이나 돌담에 미관을 이유로 진흙 대신 사용하거나, 지체 높은 사대부의 무덤을 봉인할 때, 궁궐이나 성 등의 고가치 시설처럼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규모의 경제 맛을 보여줘야지.’

운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물 붓듯 석회를 쏟아부어야 했다.

지금처럼 전국 팔도의 고을 구석마다 석회가마 몇 기 있는 정도로는 택도 없었다. 어느 세월에 한 줌씩 올라오는 석회를 구워서 운하를 만든단 말인가?

아예 석회석 광산 위에 가마 단지를 만들어야 했다.

비용이야 들겠지만 운하를 생각하면 곁가지나 다름없었다. 미륵인 내가 운하를 만들려 하는데 조정이 푼돈에 얽매여 똥막대기처럼 굴어서야 쓰겠는가?

‘일단 첫삽을 뜨는 데만 성공하면 굴포운하는 이미 반은 지어진 것과 다를 바 없다.’

시멘트까지 개발되었으니 조선의 건설기술은 혁신을 맞이하겠지. 물론 나의 평판에도 혁신이 있을 터였다.

칼 좀 잘 휘두르고 무기에 조예가 있는, 문인치고는 좀 야만적인 면이 있는 친구에서 팔방미인으로 말이다.

그뿐인가?

선조도 나를 다시 생각할 터였다. 놈을 알음알음 견제하려는 나로서는, 적의 경계가 누그러지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물론 경계심이 꼭 호의로 바뀌리란 보장은 없다. 오히려 나의 유능함을 더욱 경계하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이간질이 전부인 주제에, 편집적이고 오만하며 아집 세고 배타적인 자가 졸지에 태조와 태종도 실패한 굴포운하를 완성하게 되었는데 나를 견제할 수 있겠는가?

저택은 자신을 지탱하는 기둥을 찍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싫어하고 증오하더라도 말이다.

‘이미 판은 깔아두었다.’

드높아진 박영준의 명예와 평판. 그것을 제물로 바쳐 운을 띄우면 이산해가 여론을 만든다.

동인의 영수나 다름없는 그가 과하다시피 반대한다면 서인들은 도리어 반발심이 들겠지.

물론 처음부터 설득력 있는 사업개요를 준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시멘트가 나에게 있는데 고작 설득력도 못 주겠는가?

그런 상황에서도 이산해가 꾸역꾸역 반대하는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말 서인들은 눈이 뒤집혀서 어떻게든 굴포운하 사업을 성사시키려 들 터였다.

“아.”

상상은 여기까지.

이 정도면 미래를 예상하는 수준이 아니라 망상에 젖어서 자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현실이 그렇게 되겠지만.

언제까지고 생각만 해서야 쓰겠나.

나는 서안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하아,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아전이 말했다.

그는 잔뜩 상기된 채였다.

고작 석 달 전만 하더라도, 그는 동료 아전들은 물론 공노비와도 한데 엉켜 자야 할 정도였다. 순번을 정해가면서까지 말이다.

‘두 채 남은 여막을 아전과 노비가 각각 한 채씩 나눠가져야 한다고 했다간, 폭동이 일어날 상황이었으니.’

자존심과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목숨만 하겠는가.

한강 한가운데 떡하니 떠 있어 외부와 격리된 율도에서는, 공노비들이 폭동이라도 일으켰다간 아전들은 찍 소리도 못하고 죽는 수가 있었다.

이미 거처 태반을 잃은 공노비들은 더더욱 어려워진 환경에 폭동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정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더니.’

눈앞에 저택이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밤섬에서 일하는 팔십 명을 족히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 제법 커다란 건물이 복층으로 세워져 있으니 위세만 따지자면, 불충한 소리지만 경복궁 강녕전도 부럽지 않았다.

물론 전하와 궁인들 소수가 기거하는 궁궐과 달리 밤섬의 아전과 공노비들 모두 저택 한 곳에서 살게 되겠지만.

콩나물 시루에서 못 죽어 살던 지경과 비교하면 오히려 명나라 황제도 부럽지 않은 상황이었다.

“영감, 이 은혜는 정말 각골난망하겠습니다.”

아전은 곁에 자리한 공조참의에게 눈물을 그렁거리며 예를 표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각골난망하겠습니다!”

자기 자식뻘인 청년이었지만, 인외마경이나 다름없는 밤섬에 강림하시더니 하루아침에 지옥도를 천상으로 만들어놓았다.

물론 하루아침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크지만…….

여하간 밤섬에서 일하는 봉상시와 상의원의 아전, 공노비들에게 공조참의 이순신은 현인신이나 다름없었다.

세간에서는 비용을 공조판서가 다 댔다지만 밤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따금이지만 공조참의가 저택에 건축에 관여하는 모습은 고작 예산을 대신 집행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지금 공조판서는 참의 영감께서 이조에 계실 때에도 이조판서로 있었구나.’

이런 사람을 아래에 둘 수 있다니, 정말로 복 받은 사람이었다.

* * *

“나는 정말로 복 받은 사람일세!”

공조판서 박영준이 외쳤다.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나?”

공조 당상대청.

셋뿐인 공조의 당상관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만능분(萬能粉)’을 소개했다.

물에 섞어 성형하면, 몇 시진 뒤 단단하게 굳어 돌덩어리 그 자체가 되는 신비로운 녀석이었다. 물론, ‘만능의 가루’라는 이름과는 달리 평범한 시멘트일 뿐이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만능이라는 표현도 과장이 아니었다.

세간에 만능분이 알려지면 신묘한 성능에 기대고자 먹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고생깨나 할 텐데 부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래야겠군.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굴포운하를 짓겠다고요.”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가능할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확언을 해드리지요. 가능합니다.”

“그 자신감이 마음에 드네!”

다른 사람 같으면 오만함을 지적하였겠으나, 박영준에게는 알 바 아니었다.

전조 고려는 물론 조선까지 장장 450여 년 동안 절실하게 바라기만 했을 뿐, 연이은 실패로 감히 운도 못 떼는 숙원사업이 자신이 공조판서로 있을 때 성사될 참이었다.

“그런데…….”

박영준이 운을 뗐다.

과연 만능분의 재료가 무엇인가?

신묘한 녀석이었고, 이순신의 비책일 터라 알려주기 힘들겠지만 호기심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박영준이 만능분에 대해 물어보려던 찰나.

“대감.”

“어?”

“대감께서는 이조의 관리에 실패한 책임으로 공조판서로 체직된 순간부터, 국가의 숙원사업이었던 굴포운하를 성공시켜 나라와 전하께 진 빚을 갚기로 각오하셨던 겁니다.”

“어, 응?”

박영준은 순간 정신이 멍해져 물었다.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정작 공조에서 굴포운하 소리를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은 참의거늘.

하지만 금방 진의를 알 수 있었다.

“참의가 굴포운하 사업을 일으키려는 이유는, 내가 과거에 지은 죄를 속죄해야 한다고 말해서로군?!”

“갑자기 새삼스러운 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

박영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게 무어냐?! 굴포운하에 도움이라곤 하나도 안 되었던 자신을, 고맙게도 공신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소리였다.

“크흠, 흠!”

고작 몇 마디 말로 감히 감사를 표현하려 드는 것도 죄짓는 것 같아, 박영준은 그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의자에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능분의 정체?

알 바 무어냐?

“참판 어르신.”

이순신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참판 이준민을 향했다.

이번에는 그의 차례였다. 곧 이어질 상황을 직감한 이준민의 얼굴도 새빨갛게 달아올라, 마치 먹이를 물어온 어미새를 바라보는 새끼처럼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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