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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72화 (72/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72화

25. 아직은 보통 사람 (3)

“실력이나 볼까요?”

가볍게 운을 떼니,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실력부터 알아야 맞춰서 교육도 하지 않겠는가.

이순신은 철궁을 나에게 돌려준 뒤, 허리에 차고 있던 자신만의 활을 꺼냈다.

“반질반질하군. 오랫동안 쓴 물건인가?”

“장인이 물려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잘 관리하고 있군.”

이순신의 처참한 실력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순순히 칭찬해주는 신립이었다.

각궁을 소지하는 것은 쉬워도 관리는 어렵다. 주재료인 아교가 습기에 취약해, 물을 먹는 순간 분해되기 때문.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에는 온돌을 피운 방에서 보관해야 했으며, 이외에도 사용에 따라 활대의 휨이 변하기도 하는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적어도 무인으로서의 기본은 하고 있어 다행이로군. 하지만 활을 잘 관리하는 것은, 꼭 무인이 아니어도 가능한 일이네.”

신립은 멀찍한 거리의 숲을 행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에 표적을 걸어놓게. 한 번 맞출 수 있는지 보자고.”

거리로 따지면 200m 정도 될까? 제법 까마득한 거리였고, 내가 알기로 무과에서 치르는 시험보다도 멀었다.

그럼에도 신립은 개의치 않았다. 적어도 무인이라면, 이만큼은 해야 한다는 게 그의 기준이었다.

가혹하지만 일단 이순신의 최우선 과제는 무과 합격이며, 일신의 무예는 강한 편이 아닌 만큼 혹독한 훈련이 차라리 나았다.

이순신 역시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서인지, 군말 없이 숲으로 저벅저벅 나아갔다.

“어떻습니까?”

내가 신립에게 물으니, 신립이 답했다.

“무과를 준비한다고는 했으나, 기간이 길지는 않아 보입니다. 육량궁에 미치지 못하는 활로도 끙끙댈 정도니까요.”

“많이 쏘다 보면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이순신이라는 자가 전임 영의정이나 공자님의 안목을 배신하지 않기만을 기대할 뿐입니다. 혹시라도 괜한 고생만 한 것이라면…….”

신립의 미간이 확 주름졌다.

“기우입니다, 기우.”

“그렇기를 기대할 수밖에요.”

한참이 지나, 이순신이 돌아왔다. 어느새 도포 자락은 벗은 채였다. 그의 도포는 저 멀리, 숲에 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설령 도포가 상하더라도 고생하는 것은 주인이 아니라 침방 노비이기 때문에.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좋아. 바로 실력을 보세. 거기 서서, 자네가 걸어놓은 도포를 맞추게.”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을 돌렸다. 그리고 동개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드드득. 활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철궁을 다룰 때와는 달리 절제되고 단호한 움직임이었으며, 시위는 단숨에 끝까지 당겨졌다.

신립은 별말 없이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서, 이순신은 가볍게 시위를 놓았다.

-퉁!

파공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는 화살. 촉이 햇살을 반사해 한 번 반짝이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더 쫓지도 못했는데 신립이 실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못 맞췄군.”

이순신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신립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먼 거리에서 활을 쏴본 적이 없나?”

“많지 않습니다.”

“자랑스럽게도 말하는군. 활을 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감각이야. 여러 거리에 익숙해지지 않고, 단지 정해진 거리에 맞춰서 쏘기만 한다면 어떻게 활 자체에 익숙해질 수 있겠나?”

신립은 보고 배우라는 듯 직접 활을 꺼냈다. 그는 딱히 자세를 잡지도 않았다. 여전히 발끝은 이순신에게 돌린 채로, 화살 하나만 빼서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퉁.

별것 아니라는 듯 눈 깜짝할 사이에 화살을 날렸다.

도저히 저 멀리 있는 과녁을 맞히기 위함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건성이었다. 하지만 나무 사이에 걸린 도포 자락이 일순 펄럭였다.

굳이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신립은 여전히 당당했으며 이순신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맞춘 것이다.

신립이 말했다.

“과녁을 맞혀 무과에 급제할 생각에만 급급하니 활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는 거야. 먼저 활에 익숙해지지 않는 한, 무과에 급제할 수 없네.”

“송구합니다.”

“어디에서라도 매 순간 바람을 의식하게. 바로 이 자리에서 활을 들더라도, 표적을 맞힐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이 한다면 입만 산 소리로 들렸겠지만……. 저 멀리 까마득한 표적을 단숨에 맞혀버린 신립이 한 말이라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이런 게 바로 무인의 생각이라는 걸까.

그저 일신의 무용만 강한 사람이라며 은근히 이순신을 아래로 보는 감이 있었는데, 비록 역사는 그의 편이 아닐지라도 진정한 무인이었다.

“공자님.”

“저요? 말씀하시지요.”

“공자님께서 한 번 맞혀보시겠습니까.”

“음……. 한 번 쏴보도록 하지요.”

나는 철궁을 꺼내 들었다.

신립에 비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실전을 겪어본 몸이다. 대략 200m……. 표적인 도포마저 깨알처럼 보일 정도지만, 못 맞출 것도 없다.

동개에서 화살을 꺼내 철궁의 시위에 걸었다. 철궁인 만큼 당기기는 쉽지 않으나,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적게 당겨도 멀리 날아가기 때문에.

-탕!

총성 비슷한 파공이 울렸다. 화살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저 멀리 나무 사이에 걸린 도포 자락이 가볍게 펄럭였다.

‘설마…….’

맞춘 건가?

신립이 입을 열었다.

“역시.”

맞출 줄 알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면 못 맞출 줄 알고 있었다는 건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어 신립을 바라보니, 그가 말을 이었다.

“역시 공자님이십니다. 맞추셨습니다.”

“아. 의외로군요.”

“흠. 사수로서 확신 없이 노린다는 것은, 설령 표적을 맞히더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운이 좋을 뿐이니까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공자님께서도 더 많이 활을 쏘신다면 점차 확신이 생기실 겁니다. 활이 익은 사람이라면, 시위를 놓는 순간 바로 표적을 맞혔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를 알게 되지요.”

“대단합니다.”

신립은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것까지는 아닙니다. 무인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해야지 않겠습니까.”

신립은 이순신을 바라보며 웃었다. 문인의 길을 걷는 나는 몰라도, 이순신만큼은 그래야한다는 것. 이순신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쏘게. 말했듯, 확신이 없다면 표적을 맞추더라도 의미가 없어. 이번에는 어디를 맞추더라도 시위를 놓는 그 순간까지의 감각을 새기게. 그리고 화살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확인하게.”

“알겠습니다.”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화살을 쟀다. 훨씬 신중해진 태도로, 그는 한참이나 표적을 노리다 일순 손을 놓았다.

-퉁!

소리는 시원했으나 이순신은 실망스런 표정으로 입술을 핥았다. 이번에도 도포는 맞추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실망감을 오래 붙드는 대신, 동개에서 새로운 화살을 꺼내 걸었다. 그리고 한동안 시위를 당긴 채로 집중했다.

신립이라는 좋은 스승도 얻었고, 결정적으로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실력은 금세 일취월장하겠지.

이순신은 머지않아 무과에 급제할 거다. 원 역사처럼 또 우연히 낙마할 가능성은 낮으니, 더더욱 급제는 빨라지겠지.

-퉁!

다시 한번 시위가 놓였다. 그 직후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맞췄습니다.”

보지 않아도 안다는 듯.

신립은 가만히 도포 자락을 주시하다, 그것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무인답군.”

“두 분 덕분입니다.”

“오늘은 이만하세. 활은 평소에 많이 잡아야지, 날 잡아서 많이 당긴다고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한 가지 조언을 해주자면, 이 사람은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몇 년은 꼬박 활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

“명심하겠습니다.”

짧지만 확실한 교육이 끝나고, 나와 두 사람은 발길을 돌렸다. 그새 도포를 회수해온 이순신은 구멍이 듬성듬성 난 도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은 채였다. 마치 전사가 입은 영광의 상처라도 된다는 듯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신립을 먼저 배웅해 보냈다. 그가 있는 자리에서는 할 말이 아니기에.

나는 곁에 홀로 남은 이순신에게 말했다.

“이 공(公)의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니, 이 말을 하더라도 이르지는 않겠지요.”

“……말씀하시지요.”

“무과 급제를 위해 활에 익숙해지는 것도 좋지만, 공의 시대에 활 실력이란 무장에게 중요하지 않게 될 겁니다.”

“송구하오나,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총이란 무기를 아십니까?”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모르겠냐는 듯.

“첨정께서 직접 개발하신 무기가 아닙니까?”

“내가 만든 무기라서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조총이 가진 막대한 잠재력을 경계하고자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조총이란 이전의 총통과는 달리 먼 거리에 있는 적도 단숨에 죽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조총의 전부가 아니에요. 지금 당장은 조정이 신무기에 확신이 없어 기존 총통들을 일부 대체하는 것으로 끝냈지만, 머지않아 조총의 위력이 짐작 이상임을 깨달을 겁니다.”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조선은 남녀노소 활을 다루는 세상이라, 원거리 화력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조총을 처음 접했을 때 시큰둥했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잦은 전쟁을 통해 효율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전국시대의 열도와 유럽 열강들은 달랐다.

활은 활잡이 흉내만 내는 데도 몇 달이 걸리며, 사수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린다.

그에 반해 조총은 직관적이다. 총구의 끝을 적에게로 돌린 채 일련의 절차만 따른다면 처음 조총을 다루는 사람조차 적을 죽이는 데 문제없다.

“조총의 비율은 총통을 넘어서서, 활의 비중에 근접할 겁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 3할, 4할도 이를 테고 결국에는 대부분이 총을 들겠지요.”

“그 정도입니까?”

나의 호언장담에 이순신이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과거를 알고 있으니, 이건 예견도 아니라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은 임란을 통해 조총의 무서움을 확실하게 깨닫는다. 그것이 쇼크 수준이라, 병자호란 당시에는 대부분이 조총으로 무장했다가 낭패를 볼 정도였다.

냉정해질 수 있었던 후기에 들어서는 삼수병 제도를 통해 조총수, 사수, 살수 세 가지 병과로 군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망국에 이르러서는 다시 대부분이 총으로 무장하게 된다. 이때는 민간에서조차 활의 민족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활이 도태되고 조총이 대체하게 된다.

그만큼 총의 잠재력은 압도적이다.

“이건 개발자로서 무기에 자신 있어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설령 내가 조선에서는 최초 개발자로 남을지라도, 조총은 이미 각국에서 범용적으로 쓰고 있어요. 오히려 조선이 늦은 겁니다.”

이순신은 사실 여부는 묻지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대안을 물을 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드렸듯, 일신의 무예란 이제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구시대의 병법서 또한 철이 지났습니다. 활보다 조총이라는 무기에 익숙해지십시오. 그리고 언젠가, 적의 손에 들린 조총을 보게 될 날이 올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순신은 뛰어난 사람이다. 원 역사에서 적아에 대한 압도적인 이해력으로, 전장을 장악하고 일방적인 전과를 낸 사람이 아닌가.

그는 고작 활 따위에 몰입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무과에 급제하는 대로, 탄탄대로를 걸어 다시 한번 조선에 닥칠 임진왜란에서 활약해야 했으니까.

“이만하면 이 사람이 드릴 말은 다 했습니다. 굳이 더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공께는 충분하겠지요.”

“…….”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배웅해드리고 싶지만, 일정이 있어서.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갓을 내리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순신은 꾸벅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답했다. 나는 가볍게 웃어주고는 발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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