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68화
24. 권력의 정점 (2)
역시나.
고작 질문 하나 하려고 나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건 도성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쉬려던 나에게는 희소식이 아니다. 특히나 현직 관리, 그것도 정점에 있는 영의정의 관심은 말이다.
약간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권철이 입을 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앞에서 주눅이 들지. 오래전부터 그랬지만 영의정이 된 뒤로는 더더욱 그렇더군.”
“대감이시니까요. 예의와 대접에 실수가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 다들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이지. 이래서 과거의 척신들이 권력을 놓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일세.”
과거의 숙청 대상을 변호하는 것은, 조금은 위험하기까지 한 행동이었다.
나로서도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취하는 술은 마시는 게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자네라고 특별히 다르지는 않을 걸세. 관문에 들어선 지 고작 두 해 만에 사품 관리에 등극하지 않았나?”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 그리 되었을 뿐입니다. 만일 저에게 권력욕이 있었다면, 이렇게 좋은 시기에 사직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만큼 그릇이 크다는 뜻이지. 고작 사품으로는 감질이 나서 왕과의 불화는 감내할 수 없었잖나.”
분명 선조가 나의 면전에서 발광할 때 권철은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태연한 발언이었다.
과연 앞서 나에게 물어본 왕의 이상행동은 어디까지나 떠보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이래서 늙은이와 정치인은 믿을 수 없다. 물론, 권철 같은 늙은 정치인은 더더욱 믿을 수 없다.
“지레짐작이 과하십니다만, 설령 그렇더라도 권력이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권력에 별 관심 없습니다. 안위를 돌보는데 그다지 도움아 되지 않으니까요.”
“권력이 무엇인지 아나?”
“어찌 모르겠습니까.”
상대방이 원치 않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강요하는 힘 아닌가.
“그럼에도 권력이 안위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하는군.”
“사실이 그러니까요.”
미안하지만 선조가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 권력이란 선조만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과거 실력자들이 모두 실각당하지 않았나.
위세가 왕을 능가했던 심통원이 그러했고 선조를 왕의 자리에 올려놓은 이준경이 그러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낙향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일조한 기대승마저, 지금은 사직한 지 오래다.
전형적인 토사구팽이었고 과거의 실력자들이 빠지면서 남은 권력의 빈 공간은 선조가 차지했다. 그의 위상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랐고 많은 사람이 경멸하고 혐오했으나 그의 의지에 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마당에 무슨 권력에 취하겠습니까.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 이상을 바라는가?”
권철이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주 대놓고 도발이다.
물론 그 이상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어떻게 나라고 만년 소시민 노릇이 즐겁겠나? 오히려 소시민이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손에 닿는 어중간한 권력보다는 확실한 편이 좋았다.
예를 들자면, 선조가 감히 개지랄하려 들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권력이라던가. 하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권철에게 진심을 밝힐 수야 있나.
“……불손한 생각을 다 하십니다.”
그러자 권철이 대놓고 웃는다.
“하하하…….”
마치 대단히 만족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그리고 권철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태도를 취했다. 꼿꼿했던 허리도 옆으로 기울였고, 건조했던 시선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너무나도 태연한 변화다. 마치 자신의 진심은 이러했다는 것처럼. 그리고 너를 경계하거나 거리를 둘 생각이 아니라는 듯이.
물론 그마저도 가식일 수는 있겠지. 성격이 좋건 나쁘건 영의정이라는 자리는 왕이 아닌 자가 다다를 수 있는 권력의 끝이고 한계이자 정점이었다. 그만한 자리에 오르려는 자라면 마치 숨 쉬듯이 상대방을 기만하고 저 앞을 보듯이 사람의 진심을 읽어내야 한다.
그러니 나는 권철이 어떤 모습을 보이건 경계를 늦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태도의 변화야말로, 내가 생각보다 권철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이니.
“요즘에는 말이야.”
권철이 운을 떼었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진지함을 가지는 놈이 하나도 없네.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 아래에는 어떤 내막이 있는지,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약간은 경멸까지 느껴지는 어조였다.
“대부분에게 조정이란 닿을 수 없는 곳이니까요. 굳이 관심을 가지며 심력을 낭비할 필요야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영원히 조정에 닿지 못하는 걸세.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물결만 보고서 일희일비할 뿐이야. 설령 관문에 들더라도, 한심하리만치 짧은 식견으로 남는 자가 많아. 그런 자들은 언제까지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 채 흐름에 휩쓸리기만 하지.”
적대감보다는 오히려 신세한탄 느낌이 났다.
실제로도 그렇다면 짐작할 구석이 없지는 않다.
권철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던 외척의 시대에서 치열하게 살아왔고 마침내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다.
이제 그는 영의정에게만 주어지는 온갖 상징적인 표현과 대우가 허용되었으며, 또 스스로도 고난과 역경의 시기에서 몰락하지 않고 마침내 영의정까지 성장한 것, 권력의 정점에 선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날 터였다.
하지만 막상 영의정이라는 자리는 예전과는 크게 달랐다. 외척의 시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선조의 치세에 들어서서는 왕의 왕권 강화를 위해 거듭 숙청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겪어온 그 모든 고생과 고통에 비하자면 실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결과였다. 어쩌면 공허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결과물이, 과정보다도 훨씬 더 뼈아픈 고통일지도 몰랐다.
그것을 메우기 위해 몇몇 사람들에게 적의를 품는다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른다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심리다.
“영의정 말씀이 옳습니다, 많은 사람이 권력을 좋아하지만, 맹목적인 기대와 막연한 바람만 있을 뿐이지요. 그것이 얻어지는 과정이나, 유지에 들어가는 노고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려던 바가 바로 그것이었네, 첨정.”
나의 위로에 조금은 감정을 덜어낸 권철이었다.
의도대로 말이 통했다니 다행이지만 나는 언제까지고 장단만 맞춰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간만의 휴식을 즐기던 차였고, 영의정과의 독대란 꽤나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빨리 돌아가서 마저 쉴 생각이라, 하던 이야기의 진도를 빼기로 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적어도 무지몽매한 편은 아닙니다만, 권력이라는 것이 먹다 남은 부스러기로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그다지 유익한 일은 아닙니다. 특히 정신건강에는요.”
“음.”
“집착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가치도 없습니다. 하물며 영의정 같으신 분마저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요즘은, 아귀다툼을 벌이기에 좋은 시절은 더더욱 아니지요. 오히려 피해버리는 편이 남는 장사라 생각합니다만.”
“……부정하지는 못하겠군. 자네 말이 맞아. 나의 때와는 세상이 달라졌어.”
순순히 인정하는 권철이었다.
꼬장꼬장한 그가 나에게 설득이라도 된 것은 아닐 거다. 단지 ‘당신 같은 사람도 지금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구절에 공감했을 뿐.
그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자네처럼 사리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고집을 부려야 되네. 그동안 전하께서 사람을 어려워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자네를 대할 때만 제외하면.”
권철은 대과 전시의 순간을 떠올렸다.
당시 이순신은 너무나도 건조한 답안을 올렸다. 권철로서는 그 저의를 짐작할 수 없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으나, 선조는 이순신의 답안에 전전긍긍하며 당혹을 드러냈다.
최근의 사직소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사품 관리의 사직에 어디 아쉬운 것이라도 있다는 것처럼 굳이 어전에서까지 언급하며 여론까지 만들고자 했다.
그런 태도는 선조를 왕으로 만들어준 이준경에게도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권철은 궁금했다. 이순신이라는 자가 당최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패악한 왕조차 어려워하는 것인지.
직접 면대해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권철은 이럴 때를 대비해 생각해둔 일이 있었다.
“자네의 존재감은…… 조정에서 특별하지. 특히 전하께는 더더욱.”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겁니까?”
“관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건가?”
“설마요.”
“솔직해서 좋군.”
그렇다면 권철 역시 솔직하다고 할 수 있겠군. 이제는 그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
많이도 돌아왔지만, 권철의 의도는 이것이다. 이상하리만치 나를 어려워하는 왕을 견제하고자, 막 사직한 나를 다시 관직에 올려놓겠다.
미안하지만 나는 왕이건 영의정이건 그들이 내키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가급적이면 영의정 대감의 뜻을 따르고 싶습니다만, 저는 심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군요. 부스러기 같은 권력에 연연하기에는, 제가 그다지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내가 선을 그어서인지 권철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이어지는 말도 그다지 호의적인 편은 아니었다.
“자네의 당당함은 높게 사지만 당당함이 과할 경우에는 만용이 된다는 것도 알았으면 하네.”
“자신 없이 당당한 것을 만용이라 하지요. 저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신 있다는 뜻인가?”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재산, 명예, 권력. 저는 그 무엇도 개의치 않습니다.”
“하! 자네가 무슨 참선하는 땡중도 아니고 어떻게 아쉬운 게 없을 수 있나? 욕심이 적을 수는 있어도 아예 없을 수는 없네. 그것이 사람이야. 첨정은 과장이 심하군.”
나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더라도 권철은 믿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생각이 어떻건 나는 진심으로 이 시대에 대해서는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
21세기 최첨단 대한민국에서 살다 온 나다.
그런 나에게 조선 시대란 갑갑하다 못해 해탈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만들어주었다.
양반에, 대지주에, 관직까지 지냈지만 그동안 대한민국에서는 소시민조차 능히 누릴 수 있었던 것을 단 한 번이라도, 한순간이라도 누려본 적이 있던가?
심지어는 노숙자들마저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던 휴대폰마저 조선시대에서는 상상도 못할 물건이었다.
지금의 조선 시대란, 설령 조선이라는 나라 전체를 떠다 바치더라도 대한민국의 삶은 조금이라도 재현할 수 없는 시대였다. 욕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짓이라 욕심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입장을 권철도 조금은 읽은 것일까?
“…….”
별다른 말을 더 내뱉지는 않았다.
짧은 침묵이 있었다.
앞에는 차와 다과가 놓였지만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아 방치된 채 식어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권철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섣불리 단언하기도 부담스럽지만…… 자네는 특별하군.”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첨정에게서 드러나는 언행과 태도는 도저히 일반적이라고는 못하는 것일세. 하물며 아직 약관에도 미치지 못한 자라면 더더욱 말이야. 도대체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저도 제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안은 칼같이 거절했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다고 붙들어 놓느냐는 뜻이었다.
물론, 그 이외에도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던 내가 조선시대에서 뭔 고생인지 한탄하는 것이기도 했다. 솔직히 왕이 선조만 아니었어도 이런 생각까지는 안 했을 텐데 말이다.
“흐음……, 흥미롭군. 흥미로워. 만일 내가 자네와 나이가 크게 다르지 않았더라면, 친구라도 자청해보았을 터인데. 자네와 어깨동무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많이 늙었군.”
권철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가 드러내는 호기심은 가식이 아니었다. 마치 실험대상을 본 과학자처럼, 권철의 눈은 지나온 세월을 모조리 걷어내고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 해주실 말씀이 더 없으시다면, 이만 물러날까 합니다.”
“처음에는 나도 여기까지만 생각했네. 첨정이 어떤 사람인지 무척이나 궁금했고,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으니까.”
처음에는.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첨정이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 들어줄 수 있겠나?”
“무슨 부탁인지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로 말입니까?”
“친절하게 말을 해주는 순간, 첨정은 선택을 강요받을 테니 말이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내빼도 좋네. 하지만 앞서 말했던 ‘잃을 것은 없다.’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나게 되겠지.”
“제 명예에 대해서는 걱정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제안을 하건 당당하게 거절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영의정께서 불편하게 여기실 수도 있으니, 미리 죄송함을 표하겠습니다.”
“하하하하…….”
권철은 재미있다는 듯 시원하게 웃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자네 생각해줄 필요 없이, 말해도 되겠군. 잘못 들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눈 똑바로 뜨고, 귀 활짝 열고 들으시게……. 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