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65화
23. 진실의 순간 (1)
자리가 파해질 분위기가 되어, 나는 문갑에 넣어두었던 선물을 꺼냈다.
갈색의 딱딱한 직육면체 덩어리였다.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자, 류성룡은 대번에 관심을 드러냈다.
“아, 처음 방에 들어오면서 무언가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바로 이것이었군요.”
“맞습니다.”
나는 류성룡에게 건넸다.
그는 무작정 선물을 받아들기에는 부담스러웠는지, 한 번은 사양하였으나 거듭 권하자 감사를 표하며 받아들였다.
류성룡은 선물이 풍기는 냄새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채신머리없이 코를 박고 킁킁댔다. 술김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정말로 냄새가 좋습니다. 향낭에 넣어서 쓰기에는 큰 것이 아쉽군요. 약간 물렁한 것이…… 잘라서 써도 되겠습니까?”
“음, 제가 드리는 것이니 서애께서 어떻게 쓰시건 의향대로지만. 원래의 용도가 있는 물건입니다.”
류성룡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냄새가 좋은 물건에 무슨 용도가 따로 있다는 말인가. 첨정이 그러했던 것처럼 집 어딘가에 둔다면 두고두고 좋은 냄새를 풍길 터인데 말이다.
나는 그런 얼굴을 한 류성룡에게 말했다.
“서애께서는 손을 씻으실 때 어떻게 씻으십니까?”
“보통은 세안수를 대접에 떠다 씻습니다.”
“저 역시 그러합니다. 하지만 손에 먹물이라도 묻거나, 혹은 옷이 그렇게 된다면 단순히 물로 씻어서는 얼룩이 가시지 않지요.”
“예. 그럴 때는 잿물을 씁니다.”
“제가 드린 물건이 있다면, 일일이 잿물을 준비할 필요가 없지요.”
“……?”
류성룡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하기야, 내가 준 선물은 조선에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이니까.
마치 후라이드 치킨처럼 말이다.
지난날 나는 대량의 닭을 튀겨낸 뒤, 한 솥 가득 폐식용유를 남겼다.
기름이 귀한 조선 시대이니 설령 폐식용유라도 용도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양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래서 나는 한꺼번에 처분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비누였다.
“이 자리에서 한 번 써볼까요.”
나는 마당을 지키고 있던 머슴을 시켜 물대접을 가져오게 했다.
머슴은 곧 이 연초의 쌀쌀한 우물물 한 대접을 대령했다. 방 안으로 가져오기 위해 손을 대자, 손가락 끝으로 차가움이 확 올라왔다. 술김과 은근한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이제 어떻게…….”
“먼저 손에 물을 적시고, 비누를 만지시면 됩니다. 그럼 마치 잿물처럼 거품이 일지요. 한 번 해보시지요.”
“예.”
류성룡은 대접에 손을 가져가다 차가움에 새삼 놀라고는, 곧 나의 조언대로 젖은 손으로 비누를 문질렀다.
그러더니 깜짝 놀라는 게 아닌가.
다시 손을 씻으니 뽀득뽀득 청결함 가득한 소리가 방을 울렸다.
“신기합니다. 참으로 귀물이 아닙니까? 만일 이 물건만 있다면 일일이 잿물을 만들어 쓸 필요가 없어지겠군요. 게다가 냄새도 좋기까지 합니다.”
“마음에 드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들다 뿐이겠습니까. 귀히 쓰겠습니다.”
류성룡은 받들 듯 비누를 챙기며 말을 이었다.
“괜찮으시다면, 소관이 아는 사람을 하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서애께서 소개해주시는 분이라면 마다할 수 없지요. 누구입니까?”
“소관이 도성으로 상경한 직후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드린 사람은 이 사람은 아니고……, 그의 동생입니다.”
“지인도 아니고 동생이요?”
“예.”
류성룡이 말을 이었다.
“이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사람입니다. 자질이 특별히 뛰어난 편이라고는 못하겠으나, 침착하고 자신에게 엄격하여 어떻게든 성과를 이뤄낼 자이지요.”
“흠. 남에게는 엄격하기 쉬워도 자신에게 엄격하다라. 듣기만 해도 존경심이 드는군요. 그런 분이라면 제가 더더욱 마다할 수 없겠습니다.”
“마음에 드실 줄 알았습니다.”
류성룡이 빙긋 웃었다.
“왜요, 이 사람이 그런 팍팍한 부류의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었잖습니까.”
“비록 소관이 첫 만남에서부터 실례가 많았고……. 그럼에도 첨정께 큰 후의를 입지 않았습니까? 아랫사람의 실수를 너그럽게 대해주시니, 첨정이시라면 전도유망한 젊은이 하나를 잘 길러주실 것 같았습니다.”
“기른다라. 하하. 과분한 표현이로군요.”
은근히 속이 좁은 나로서는 말이다.
“그런데 얼핏 들어보면 그 사람이 다른 이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듯합니다?”
“예. 원체 성격이 그러하니 사귀는 사람이 많지 않지요. 솔직한 말로는, 소관 역시 이따금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허허…….”
류성룡조차 느낄 정도로 딱딱한 사람이라니, 보통은 아니겠군.
설마 처음 류성룡을 만났을 때처럼 또 오해라도 생긴다면 큰일이었다. 개인적인 만남이니, 내가 인내심을 가진다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류성룡이 굳이 알려주겠다는데 마다할 수야 있겠는가.
“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요. 물은 건너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니 그 사람이 저에게 어떨지는 아직 모르지요. 길일을 잡아서 알려주십시오. 한 번 만나보겠습니다.”
“예. 그쪽에도 잘 말해놓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가 소개 받는 사람의 함자를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직접 물어보기도 하겠지만 미리 알아두는 편이 좋겠지요.”
“아.”
류성룡은 아차 싶었다는 듯 말했다.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지 못하실 겁니다.”
“사람의 이름이 특이한가요?”
“아닙니다. 하지만 특이하지는 않아도 특별하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첨정께는 말입니다.”
“흐음……?”
흥미로웠다.
나를 얼마나 겪어보았다고 내가 특별해하리라 생각한다는 건지. 아직 나는 무언가에 대한 대단한 관심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류성룡은 일부러 뜸을 들이고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첨정 나리와 같습니다.”
“……?”
“쓰는 한자는 다를지 몰라도 말할 때는 동일하니까요.”
“……설마요.”
“설마가 맞습니다.”
류성룡이 웃는 낯으로 확언했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었다. 누가 됐건 간에 지금처럼 놀랍지는 않았을 테니까.
‘내가 아닌 또 다른 이순신이라.’
동명이인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성씨는 수없이 많지만 쓰이는 한자는 많지 않았고, 이름 중 한 칸에는 정해진 항렬을 쓴다. 그리고 나머지 자리에 들어갈 한자 역시 인명으로는 주로 쓰이는 것들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아마 이 순간 조선 팔도에 이순신은 수백 명도 더 있을 거다.
문제는 이 시대가 임진왜란을 앞둔 선조 치세라는 점이고, 수백 명의 이순신 중에 한 사람은 내가 아는 조선의 성웅 이순신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뭐,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진짜 이순신이건, 그렇지 않건 나는 사직했으니까. 혹시라도 임진왜란이 터진다면 두메산골로 숨어들 생각이었다.
그러다 조선이 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선조의 대가리가 따일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다지 싫은 일만도 아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직접 따는 게 아니라는 게 다겠지.
나의 조국은 조선이 아니었고 바뀐 세상의 조선은 더더욱 아니었다.
“첨정 나리?”
“아.”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의외라 잠시 놀랐을 분입니다. 동명이인을 접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서애께서도 참으로 짓궂으시군요. 일부러 동명이인을 소개해주다니.”
“하하하. 오해십니다.”
“이번 오해는 잘 안 풀릴 것 같은데요. 풀려면 꽤나 고생하시겠습니다.”
씩 웃으며 말하니 류성룡이 술병을 들었다.
“소관이 한 잔 올릴 터이니, 오해는 이만 풀어주십시오.”
“흐음……. 하하하.”
* * *
류성룡과 오해를 푼 것은 기쁜 일이다.
도성을 떠날 생각을 한 다음에야 가까스로 화해해, 더 만나기 힘들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물론 언제까지고 등을 돌린 채 찝찝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보다는 백번이고 나았다. 애초에 어느 누구와도 불편한 사이는 원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니기도 했다.
‘이순신…….’
류성룡이 또 다른 이순신의 존재를 밝혔다.
그가 내가 생각하는 이순신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성격까지 알려주면서 말이다.
류성룡으로서는 진귀한 인연이라는 대단치 않은 생각으로 언급한 것이겠으나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여태껏 나는 내가 진짜 이순신의 대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진짜 이순신이 있으면 그럼 나는 뭐가 되는가.
뭐가 되긴, 짭 되는 거지!
짭순신!
충격은 크고 기분은 삼삼했으나 그 외의 감정은 없었다.
사직하기로 한 시점에서 나는 나의 역할을 내려놓은 것이었으니까. 진짜 이순신을 대체하지 않기로 한 것과 진배없다.
그러니 진짜 이순신이 따로 있었다고 무슨 상관이겠나. 오히려 그가 나를 대신해 선조에게 시달릴 것이 걱정됐다.
당사자의 성격을 생각하면 본인은 크게 의식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아무리 왕이 패악을 부려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이순신이다.
-쿵, 쿵.
대문 소리가 났다.
꼴깍. 침이 넘어갔다. 또 다른 이순신을 볼 때가 되었군.
을룡이 나아가 손님을 맞았다. 녀석은 이순신과 짧게 대화를 나눈 뒤, 동행하여 뜰로 데려왔다. 누구보다도 고대해온 사람과의 첫 만남이었다.
내가 흔히 접해서 아는 후덕하고 인자한 인상은 전혀 아니었다.
살집이 없지는 않았으나, 피부는 햇살에 그을렸고 얼굴에서부터 깐깐한 성격이 드러났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익히 알려진 용모보다는 이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
그러니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사람이 진짜 이순신이구나.
“첨정 나리. 처음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소인, 덕수 이가의 순신이라고 합니다.”
“으음…….”
막상 이순신을 대하려니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많은 예비 위인들을 만나왔다. 이순신은 급이 다르긴 했지만 새삼스럽게 어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서애가 자네를 소개하면서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라고 했지요. 직접 보니 기분이 묘합니다.”
“소인 역시 그렇습니다.”
“서애에게서 이 사람에 대해 들었습니까?”
“예. 첨정께서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적은 연배에도 낭중지추(囊中之錐)의 두각을 드러내어 관직이 첨정에 이르렀는데, 직접 보니 능력보다도 인품이 뛰어나다 했습니다.”
“과장이 심한 사람이로군요. 그래도, 서애의 노고를 허사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요. 들어오세요. 자리를 마련해두었습니다.”
“영광입니다.”
직접 마주한 이순신은 당당하고 자신 있어 보였다. 그런 사람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정말로 태도가 그러했다.
하석에 무릎을 꿇고 앉음을 자처했으나 허리는 꼿꼿했으며 얼굴에서는 단호함이 드러났다. 예의는 갖추나 비굴하지 않으며 눈치 보는 대신 당당했다.
나보다는 나이가 많다고 해도 지금의 이순신은 무척이나 젊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서애는 이 사람이 그대에게 스승 비슷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더군요.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편하게 대해주시고, 또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면 개의치 말고 해주십시오.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입니다.”
“하하하…….”
갈 길이 멀다니, 의례적으로 한 말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순신은 이미 완성된 사람이었다.
대기만성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정반대의 표현인 싹부터 다르다는 말도 있지 않나. 이순신이 꼭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