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63화
22. 자유의 몸 이순신 (2)
‘치킨에는 맥주가 국룰인데…….’
조선에는 맥주가 없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었다.
“공자님, 정말 맛있습니다!”
을룡이 짭짭대며 감탄했다. 한 손에는 닭다리까지 든 채로 말이다.
한 입 뜯어먹고 남은 자리에는 뜨끈한 기름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맛있다니 다행이다.”
“그래도……, 귀한 기름을 너무 많이 써버려서 걱정됩니다요. 전 부칠 때도 몇 방울 둘러놓고 두고두고 쓰기 마련인데 가마솥 한가득 써버렸으니.”
“나는 살려고 먹는 사람이 아니라, 먹으려고 사는 사람이야. 게다가 이미 저지른 일이니 이제 와서 왈가왈부해서 무슨 소용이냐? 튀길 때는 한 마디 안 해 놓고.”
“……하핫.”
을룡은 멋쩍게 웃더니 다시 치킨을 뜯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식사도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쿵, 쿵!
실로 산통 깨는 짓이 아닐 수 없었다. 밥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말이다.
을룡도 썩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이게 다 무슨 냄새인가?”
이이였다.
나로서는 정말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다. 오늘은 휴일도 아닌 평일이었으니까. 백수가 된 나라면 몰라도 현직 관리인 그가 탱자탱자 남의 집을 방문할 때가 아니었다.
“아주 속이 니글거리는군. 기름으로 목욕이라도 한 건가?”
이이는 마당에서 닭을 뜯는 인파를 헤치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농담이라도 하듯 말했다.
“이번에 사모 던졌다며?”
“예.”
“기왕 사직할 생각이라면 코앞인 당상직이라도 제수된 뒤에 하지 그랬나. 이거, 대과 급제한다고 괜히 고생만 한 셈 아니야?”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형님한테 연락도 안 하고?”
이이는 성큼 다가와 팔로 내 머리를 감쌌다.
“아무리 관직 생활이 더럽고 고되다지만, 맞서 싸울 생각을 해야지 그렇다고 도망을 쳐? 이 괘씸한 녀석!”
“아, 아파요!”
한평생 공부만 한 백면서생이 힘이 왜 이리 센지.
회령에서 2년 구르다 온 나도 겨우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형님이 제 일에 대해서 얼마나 아신다고 맞서 싸우라 하십니까? 어지간한 일이었으면 제가 못 맞섰겠어요? 상대가 상대니 그렇지.”
개또라이 선조!
영화 ‘몰락’에 나오는 히틀러 명장면처럼 악을 쓰는 장면을 보고는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다. 그런 놈이 왕으로 있는 요즘 시대에 어떻게 제정신으로 공무원 노릇을 한단 말이냐.
만약 다른 놈이 문제였으면 나도 어떻게든 손을 써보려고 했을 거다.
그게 아니어서 문제지.
이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할 뿐이었다.
“천하의 이순신이 못 이길 사람이 어디 있다고?”
“천하의 이순신도 못 이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형님.”
지금의 나나, 원래의 이순신이나.
개또라이 같은 선조는 못 이겼지.
“어휴. 그렇게 생각하니까 결국에는 지는 거야. 신하는, 신하만의 방식이 있다고.”
“……?”
이이의 말에 나는 새삼 놀랐다.
신하는 신하만의 방식이 있다니.
마치 내가 선조 때문에 관직을 내려놨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설령 상대방이 왕이라도 신하가 맞설 방법이 없지는 않다.
유교에서는 왕의 중요성과 충성의 가치를 크게 강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신하를 왕의 발닦개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왕의 자질과 역할을 분명히 밝히고, 거기에 왕이 부합하지 못했을 때인 폭군과 암군을 정의하고 찬탈의 정당성을 제시하는 것이 또 유교였으니까.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고는 해도 정당하게 왕을 괴롭힐 방법은 유교가 인정하고 권장하는 테두리 안에서도 많았다.
서슴없는 직언 직필로 왕을 괴롭히는 것이 오히려 역할인 관리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선조는 성군이 아니니까.’
맞다.
만일 왕이 합리적인 사람이고 뒤끝이 없는 성격이라면, 당한 만큼 되돌려주면 된다.
틀린 소리만 아니라면 정당성이 있는 게 신하의 발언이었고 오히려 성종의 치세에는 개소리마저 태연히 왕을 구박하는 데 쓰일 정도였다.
그러나 다음 대인 연산군에서는 어떻게 되었던가?
물론 성종의 오냐오냐에 당시 간관들이 ‘선’의 개념을 잊어먹은 탓이기도 했지만, 연산군은 성종처럼 관리들에게 관대한 왕이 아니었다.
그도 처음 몇 년은 참았지만 결국에는 옛일로 트집을 잡아 두 번이나 사화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의 왕인 선조는 앞선 사화들의 규모를 훨씬 넘는 초대형 옥사를 일으키는 자였다. 그것도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로, 음모를 일으켜서까지 말이다.
“이번에 개똥을 하나 봤는데, 아주 왕건이더이다. 옛사람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던데, 나는 더럽고 무서워서 피해버리지 않았겠습니까?”
“흐으음…….”
이이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는, 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태연하게 나의 앞에 앉았다.
나로서는 정말 궁금해서라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공무 중에 이렇게 태연히 남의 집에 찾아와도 되는 겁니까?”
“이것도 다 공무야. 자네처럼 유능한 사람이 조정에서 나간다니까 사유 정도는 알아봐둬야지.”
“뻔뻔해서 편하시겠습니다.”
“얼마나 살기 편한데. 자네도 조금 뻔뻔해질 필요가 있어.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말이야. 기분 나쁜 일 있다고 이렇게 도망칠 생각이나 하니.”
이이는 쯧쯔,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님도 닭다리 하나 뜯어보시지요. 식기 전에 드셔야 맛있는 겁니다.”
“흠.”
이이는 사양하지 않고 대접에 놓인 닭다리를 하나 뽑아 들었다.
“오면서도 보긴 했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음식인가?”
“알려주셔도 모르실 텐데.”
“어허. 말이나 해봐.”
“프라이드 치킨이라고 합니다.”
“프, 프……. 뭐?”
혀 꼬인 발음을 예상대로 따라하지 못하고 재차 묻는 이이였다.
“제 말이 맞았지요?”
“크흠. 장난친답시고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거 아니지?”
“아닙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이이도 더 따지지는 못했다. 닭다리로 시선을 옮길 뿐. 그에게는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음식이었다.
기름이 귀한 요즘 시대에 닭을 통째로 튀긴다는 건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였으니까.
일본에나 가서야 덴뿌라라는 비슷한 음식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물론 거기에서도 튀김이란 영주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겠지만 말이다.
“흐음……. 냄새는 조금 거북한데.”
이이는 평소답지 않게, 굉장히 조심스레 닭다리를 입에 가져갔다.
-바삭.
짧은 한 입.
고작 그뿐이었는데 이이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러더니 말도 하지 않고 우악스럽게 닭다리를 마저 뜯는 게 아닌가.
배가 부른 세상에서 온 나로서는 굳이 먹지도 않는 연골까지 싹 발라먹어, 손가락만 한 뼈 기둥 하나만 남겨놓은 채 이이는 중얼거렸다.
“너무한 맛이군…….”
“마음에 드셨습니까.”
“아, 아니!”
이이는 뼈만 남은 결과물을 코앞에 둔 채, 마음과는 다른 소리를 태연히도 내뱉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너무 맛있잖나.”
“맛있는 것도 불만입니까?”
“이런 데에 빠지면 다른 음식은 입도 못 댈 것 같아서 그러네.”
“하하하……. 그럼 큰일 났는데요.”
“왜?”
“이미 입에 대시지 않았습니까. 두고두고 생각나실 겁니다.”
이이는 기름이 잔뜩 묻은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그러다 이마를 쓱 쓸어내렸다. 무척이나 후회된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으으.”
“기왕 맛보신 김에 마저 드시지요. 질리도록 먹어두면 차라리 한동안은 생각이 안 나실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
이이는 말로나마 거절하지도 못하고 결국 대접의 치킨을 집어들었다. 그러더니 처음 닭다리를 뜯을 때처럼 말도 없이 먹어댔다.
마음에는 든 모양이었다.
흠,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날 텐데. 모든 음식이 기름진 미래에서는 몰라도 요즘 시대의 기준에서 치킨은 너무 기름진 편이긴 했다.
‘김치 있으면 딱인데.’
알싸한 김치 한 입이면 농담 조금 보태서 기름도 꿀럭꿀럭 넘길 수 있었다.
기왕 여유도 찾았는데, 일본에서 고추라도 수입해볼까? 그쪽 사람들도 잘 안 먹는 거라 쉽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독초로 오해하는 작물인데 못 내줄 것 어디 있겠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옆에서 이이가 채신머리없이 트림을 터뜨렸다.
“그어억. ……어우. 잘 먹었다.”
“막걸리도 한 잔 하시지요.”
“술은 마다하는 게 아니지.”
나는 마당에서 벌러덩 드러누워 쉬는 머슴을 불러 술대접을 가져오게 했다.
한참 잘 먹고 쉬는데 심부름을 시켜 미안하지만, 그게 또 밥값 아니겠나.
곧 이이의 손에 술대접이 쥐어졌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잘 마시겠네.”
술대접에 새하얀 막걸리가 채워졌다.
이이는 살짝 대접을 들어 이만하면 됐다는 의사를 드러내고는, 사양 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크으! 시원한 게, 기름기가 쑥 내려가는군.”
이이는 그새 치킨이 아쉬워졌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하지만 대접의 치킨은 어느새 뼈만 남은 채였다.
“…….”
이이는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더 없냐는 듯.
이게 치맥, 아니 치막의 매력이지.
내가 반응을 해주지 않자 이이는 애써 관심을 돌리겠다는 듯 말했다.
“관직도 내려놓았겠다, 이제 뭘 할 생각인가?”
“생각을 해봐야지요. 하지만 도성은 뜰 생각입니다.”
“굳이 도성에서 나갈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불편하게.”
“저는 탈출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편에서는 잠깐 놔준 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여지를 주고 싶지 않군요.”
“으음…….”
이이가 쓰게 침음을 흘렸다.
“자네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군.”
“착각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제가 우려한 일을 그대로 겪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
“며칠 동안 아는 사람들 만나면서 인사드리고서, 고향에도 인사드리고. 그러고 지방으로 내려가서 반쯤은 묻힌 채로 살까 합니다.”
“그러기에는 자네의 명성이 너무 크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초야에 숨어 산다는 것은, 지금의 자네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그럴 수도 없고.”
“…….”
“당분간이나마 도성에서 머무를 동안 잘 생각해보게.”
이이는 회의적으로 말했다.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최연소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린 나이에 종사품 관원이 됐다. 전시에 합격했으니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삼품 관리에 오르게 된다.
종삼품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당상의 반열에 올랐을지도 모르지.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모두의 이목을 살 터였다. 숨어 사는 ‘척’은 할 수 있겠지만 조정에게서 완전히 숨을 수는 없었다.
“쩝…….”
“어떻게 되건, 후회할 일은 아니네. 만일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면, 마침 잘 쉬게 된 셈이지. 당분간 고향 쪽이나, 그보다 약간 더 내려가서 요양한다는 차원에서 한동안 머물러도 무방할 걸세. 그러다 때가 되면 다시 올라오면 되는 거고.”
“애써 달래주실 필요 없습니다.”
피식 웃으며 말하자, 이이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내가 언제 자네를 달래주려 했다고? 착각을 다 하는군.”
“끌끌.”
나는 나의 술대접을 채운 뒤 목을 축였다.
빌어먹을 선조 놈만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여유롭게 지내면서 공무도 그럭저럭 성실하게 해냈을 터인데.
하필이면 왕이 또라이 같은 놈이라.
솔직히 말해, 완장 떼고 한 판 붙자면 선조 따위 엉엉 울면서 엄마나 찾게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그럴 수가 없어서 내가 피하는 것이지.
‘빌어먹을 놈.’
재산을 박박 긁어모아 탈조선이라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누가 대문을 두드렸다.
-쿵, 쿵!
“오늘 손님이 유난히 많군요.”
“동생이 워낙 유명인사라 그렇지.”
“어휴. 인기인이란.”
피곤해하는 나를 대신해 을룡이 대문으로 나아갔다.
대문은 금세 닫혔다. 을룡은 손님을 안으로 들이는 대신, 나에게 다가와 의향을 물어보았다.
“공자님.”
“누구야?”
을룡은 이이를 의식했는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류성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