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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61화 (61/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61화

21. 완전히 미친 사람 (3)

쉬는 날까지 반납해가며 고생을 자처한 결과, 조총은 금세 완성되었다.

매끈하게 빠진 총신은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질 정도고 몸체 역시 정성껏 연마되어 거친 구석이 없었다.

막 생산되어 표면에 발라놓은 기름 냄새가 조금은 강하지만……. 성능과는 무관했다.

“다들 고생했지.”

누구보다 고생한 사람은 나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조총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컸다.

원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성실하면 아랫사람이 피곤해지는 법이니까.

그나마, 다들 내가 첨정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음을 알아서인지 군말 없이 도와주었다. 배웅이라면 배웅인 셈이었다.

조총이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시연할 때였다.

이곳 도성의 남쪽 교외에는 조총의 성능 시연을 위해 여러 사람이 자리해 있었다.

외부 공개에 앞서 군기시 내부에서 따로 시행하는 성능 시험이었다. 다들 나의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가졌던 만큼 너나 할 것 없이 시연장에 참석했다.

특히 군기시정 홍성민.

그가 다가오자 나는 하관(下官)에게 조총을 건네고 홍성민을 맞았다.

“군기시정 나리.”

“드디어 성과를 보았군.”

“덕분입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네. 어쩌면 이번 자리에서 조총의 채용이 결정될 수도 있으니까. ……외부 시연에 앞서서 말이지.”

홍성민이 고개를 돌려 저 멀리 턱짓했다.

그곳에 병조판서 박영준이 있었다.

겨울철에 심하게 감기가 들어, 최근에는 집에서 업무를 볼 정도였는데 이런 자리에 친히 발걸음을 해주었다.

나는 박영준과 눈이 마주쳤고, 홍성민은 눈치껏 물러나 주었다.

“판서 대감.”

“첨정.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지 살이 많이 빠졌군.”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지 않습니까. 소관이야 괜찮습니다만, 판서 대감의 건강이 걱정됩니다.”

“자네가 보내준 약 덕분에 호전은 있네. 하지만 여전히 잔병치레를 하는군. 병이 단단히 들은 모양일세.”

“부디 쾌차하셨으면 합니다.”

“고맙네.”

짧게 인사를 나눈 박영준은 설렁설렁 발길을 옮겼다.

나는 군기시 하관들에게 서둘러 장막을 치게 했다. 아직 연초라 바람이 강하고 쌀쌀했다.

부하들이 명을 받들며 물러났고, 나 역시 시연의 절차를 시작하려는 차였다.

“첨정.”

“아. 미리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송구합니다.”

김성일이었다.

그는 나의 사과에 손을 내저었다.

“아닐세. 그보다, 내가 이런 자리에 껴도 되는 건가? 보아하니 정식으로 무기의 성능을 시연하는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맞습니다. 내부 시연입니다.”

관련자가 아닌 이상, 고작 책임자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참석하는 것은 과분한 감이 있었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성일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연에서 좋은 결과만 확인된다면 바로 사직소를 올릴 생각이었으니까.

‘선조가 너무 또라이다.’

그동안 내가 이순신이라는 위치만 생각해 너무 맹목적으로만 달려왔다.

남들은 일신의 영광을 위해, 가문의 명예를 위해, 설령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에서라도 치열하게 관직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절실한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역할에 따른 도의적인 책임감 때문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나에게 선조의 광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침을 튀겨가며 자신의 생각과 현실을 혼동하는 그 광적인 행태는 제정신인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며, 필시 역사대로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터였다.

나는 거기에 희생될 생각이 없었다.

‘딱 벌여놓은 일만 끝내고 빠지자.’

이것이 나의 결심이었다.

조총 정도면 조선에게는 충분한 선물이다.

획기적인 무기이기도 했고, 적도 쓰는 무기인 만큼 직접 사용하면서 이해도가 높아진다면 더더욱 임진왜란에 쉽게 대응할 수 있다.

이 정도까지 해줬으면 망하는 게 죄였다.

“스승님…….”

나는 조심스럽게 김성일을 불렀다.

이전과는 다른 태도에 김성일은 새삼 놀라워하며 그 역시 목소리를 낮췄다.

“문제라도 있나?”

“저는 가급적이면 이번 시연을 끝내고 사직할 생각입니다.”

“……!”

사직 운운에 김성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가 아는 이순신이라는 자는 당장 관직을 관두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자신의 스승인 이황에 준하는, 어쩌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승인 사람으로서 편애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이십 대 장관의 탄생을 점치고 있었다. 머나먼 과거, 종친들에게 출사가 허용되었던 시절에도 손꼽을 정도의 일이었다.

‘그런데 사직이라니…….’

김성일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제자도 생각이 있다는 건 알지만, 스승인 나에게라도 사정을 설명해주지 않으시겠나? 내 최대한 도움을 주도록 하겠네.”

절실하기까지 한 태도였다.

하지만,

“전하의 부름에 직접 응한 뒤에 결심한 일입니다.”

“…….”

왕이 관여되어있다는 말에 김성일도 차마 더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로서도 의아하긴 했다. 이순신은 왕이 주관하는 전시에서 갑과 삼등의 성적을 냈다. 달리 말해, 왕이 이순신을 갑과 삼등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장차 크게 쓸 생각이 아니고서야 그런 안배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이순신은 왕과 대면한 뒤 사직을 결심하게 됐다.

당사자가 아닌 누구건 간에 섣불리 개입할 일은 아니었다. 설령 스승이라 할지라도.

“……알겠네.”

김성일도 물러나고, 나는 이제 정말로 시연을 시작하기로 했다.

내부 시연인 만큼 번잡한 절차는 불필요했다. 이미 군기시 소속의 병사들이 조총을 받든 채 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렷!”

짧은 외침에 병사들은 오와 열을 갖추었고, 참관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세총(洗銃)!”

병사들이 조총에 걸린 삭장을 뽑아 들어 총신을 쑤셔댔다.

총통류를 방포할 때도 하는 작업이지만 참관인들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시연에 집중했다.

이후로도 명령이 이어졌다. 총신에 화약을 넣고 다진 뒤, 납탄을 넣고 다시 다졌다. 마지막으로 종이를 넣고 다졌다.

‘역시 번거롭군. 처음부터 탄피형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평가해,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실현할 수 없었다.

물건이야 만들겠지만 부품 간의 이격 때문에 발포하는 순간 가스가 샐 가능성이 컸다.

만약 조총이 정식으로 채용되어 양산되고, 기술과 함께 장인들의 숙련도도 쌓인다면 시도해볼 법하지만 아직까지는 욕심이었다.

사직을 결심한 지금에는 더더욱.

이후로도 몇 번의 명령이 떨어졌다. 힘쓰는 과정은 이미 지나와서, 빠르게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거발(擧發).

이름 그대로 발포의 단계였다. 병사들 역시 검지를 방아쇠에 놓은 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덜어줘야지. 긴장을

“거발(擧發)!”

발포 명령과 함께,

-타타탕!

시원하게 총성이 울리고, 매캐한 연기가 시연장을 자욱하게 덮었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남자의 로망이랄까.

어쩌면 이 세상에서는 한반도에도 라인배틀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판을 깐 당사자로서 두 눈으로 직접 봐줘야 하는데.

참관한 사람들 역시 여기저기에서 감탄을 흘려댔다.

“오오.”

“흠!”

“소리는 시원시원하니 좋군.”

하지만 호의적인 평가는 여기까지였다.

무언가 쏘아진 것은 확실히 알겠지만, 무기의 위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폭음과 함께 연기. 그것이 다였으니까.

비격진천뢰 시연 당시의 스펙터클한 폭발에 비하면 조총의 위력이란 정말 맹물처럼 싱겁기 짝이 없었다.

“첨정, 어떻게 된 건가?”

병조판서 박영준이 물었다.

그 역시 의아한 심정은 마찬가지였으나 이순신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 뿐.

“조총의 위력은 표적의 상태를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가져오게.”

나의 명이 하관과 아전, 공노비들에게 차례차례 전해졌다.

곧 공노비들이 시연장의 정 반대편에 걸려있던 갑주를 가져왔다.

색색의 두정갑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아무런 흔적이 없어 보이는데…….”

박영준은 갑옷을 펼쳐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쑥!

갑자기 손가락 하나가 두정갑을 꿰뚫고 나타났다.

느닷없는 삿대질에 박영준은 흠칫 놀라며 물러났다.

“헛.”

“관통 흔적입니다.”

나는 손가락을 빼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서, 가장자리가 새카맣게 그을린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조총이 탄환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으음!”

박영준이 침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들도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두정갑.

겉으로는 원색의 천만 보이지만 내부에는 철편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갑옷이다. 어지간한 위력으로는 관통될 수가 없는 것인데, 조총 앞에서는 허무하리만치 구멍이 나버렸다.

앞뒤로.

“보시다시피, 조총의 위력은 매우 막강합니다. 갑옷을 뚫고 반대편으로 탄환이 나온다는 것은, 달리 말해 두정갑을 두 벌 껴입어도 조총 앞에서는 당해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작아도 화포는 화포라는 뜻이로군.”

“그 이상입니다. 조총은 총통의 화력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활만이 가능했던 살상 거리와 정확도 역시 가져왔으니 말입니다.”

뭇 사람들은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용 총통류들은 정말 극악의 사거리와 정확도를 가지고 있었다.

상당한 화약을 소모하는 만큼 위력은 나쁘지 않았으나, 여러 개의 화살 또는 조약들을 탄환으로 쓰기 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발사체가 총신에 성기게 들어차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맞추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조총은 정말 예상치 못한 거리에 있던 표적을 정확히 맞췄다. 새조차 맞춘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이는 활로 가능한 일이었지만, 활이었다면 두정갑의 전면도 뚫지 못했을 터.

“비격진천뢰에 이어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내셨군, 첨정.”

그동안 오랜 관직 생활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배운 박영준으로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조선의 군사들이 조총으로 무장한다면 적들은 접근을 해오기도 전에 모두 시산혈해로 변모하겠지.

아니, 오히려 적들이 이 무기의 존재를 알고 복제하게 될까 조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강력한 무기를 멀쩡히 두고도 쓰지 못한다는 모순적인 촌극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은 있네.”

“장전 속도겠지요?”

“맞네.”

조총은 그 위력처럼 장전 시간 역시 총통의 무식함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보통 활을 쓰는 사람이 열 번이고 더 화살을 쏠 수 있을 시간에 고작 한 발 쏘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절차가 복잡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숙련된 사람이 쓴다면 지금에 비해 두 배, 세 배는 훨씬 빠르게 장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초 단위로 화살을 쏘아 보내는 속사가 활의 보통 장전속도로 인식되는 이유는, 활이 손에 익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민간에서조차 어릴 적부터 조잡한 장난감 활을 가지고 노니, 오죽하면 조선 사람 중에서 활 못 쏘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그에 반해 조총은 민간에서 다룰 물건이 아니었다. 또 나무와 철이라는 흔한 소재로 만들어진 화살을 쓰는 활과는 달리, 조총은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화약이라는 전략물자를 쓰기 때문에 훈련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분 단위로 3, 4발을 쏠 수 있는 명포수의 등장은 지금의 조선으로서는 까마득한 일이었다. 단지 그런 잠재력이 있다는 것만큼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조총은 정말 무시무시한 무기로군. 설령 갑옷을 입은 적조차 먼 거리에서 절명시킬 수 있는데, 정확도도 높고 빠르게 장전까지 할 수 있다니.”

“모쪼록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합니다. 근래에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왜국의 혼란도 차차 정립되어간다더군요.”

“으음!”

박영준이 침음을 흘렸다.

왜인들은 항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조선반도를 침략해왔으니까.

야만적인 건 주위의 다른 야만인들과도 다를 바 없으나, 여진족이나 몽골과는 달리 왜구들이 그들의 본거지 밖으로 발 디딜 곳이라곤 조선반도가 전부인 탓이다.

“정식 시연에서도 이렇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조총의 도입은 무리 없이 수월하게 진행될 걸세.”

“그리 되어야지요.”

나는 박영준에게 정식 시연에서는 모습을 드러낼 일이 없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여기서는 괜한 분란이 생길 것 같았다. 박영준이 조용히 납득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동안 나를 뒤에서 응원해왔던 그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시연은 끝났습니다. 다들 바쁘실 터인데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며칠 뒤.

조정이 시끄러워졌다.

단 한 장의 사직소가, 모두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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