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57화
20. 살아 있는 전설 (3)
“정말로 별 생각 없이 대충 썼는데요.”
진심이었다.
애초에 전시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각오도, 생각도 없었으니까. 어차피 급제는 따 놓은 당상이었으니 굳이 열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덜컥 갑과 삼등에 낙점될 줄이야.’
복시 때 정말 가까스로 합격해서 등수가 오를 수는 있겠다, 생각은 했다. 하지만 삼등은 염치상 생각도 안 해뒀던 성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말 건성으로 답안을 작성했거든. 뻔한 대답이라 애초에 높은 등수가 나올 수가 없었다.
‘분명 채점자는 선조일 텐데 말이지.’
마침 나와 접점이 있는 사람도 시험관 중에서는 선조가 유일했다.
독권관과 대독관도 등수 결정에 관여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권유에 불과했다. 결국 최종 등수를 확정하는 것은 왕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선조가 츤데레거나, 실수했거나. 그 외 다른 이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전말은 그러할진대…….
“우리 순신이가 능력이 좋으니, 적당히 해도 그 정도는 간다는 뜻이지. 힘 빡 줬으면 장원급제 할 뻔도 했구만!”
아버지는 마치 나를 세기의 천재라도 나온 것처럼 자랑했다.
솔직히 사람은 욕심의 동물이라, 을과를 했으면 갑과가 부럽고 갑과를 하면 삼등인 탐화보다는 방안이, 방안보다는 장원이 부럽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미 내가 장원을 하고도 남은 사람 대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긴가민가한데 말이지.
“음, 겸양인지 자랑인지 알 수가 없구만.”
집안 어른 중 하나가 말했다.
핀잔처럼 느껴지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전주 이가는 왕의 집안이다. 그래서 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종친은 전, 현직 왕으로부터 4촌까지를 말한다.
이는 유교 경전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명시된 ‘4세(世)가 되면 시마(緦麻)인데 이는 복(服)의 끝이며, 5세(世)가 되면 단문(袒免)인데 이는 동성(同姓)을 감한 것이다.’에 따른 것이다.
복(服)이란 상복을 줄인 말이며 시마란 3개월 입는 상복을 뜻한다. 여기까지가 친척으로서 응당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단문 또한, 상복으로는 취급되나 이는 친척의 상에 참가할 때만 입는 옷으로 특별히 애도의 기간을 가지지 않았다.
예시에서도 명하기를 ‘동성(同姓)을 감한다.’고 했다. 즉 성이 같기 때문에 집안사람의 제사이니 예의 차원에서 입으라는 것이며, 이는 왕으로부터 5촌 이상 벗어난 사람은 왕의 친척이 아니라 단지 성만 같은 사람이 됨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전주 이씨는 왕의 집안이다. 그런데 왕과 친척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스스로를 증명해야지. 여느 사대부 집안과 마찬가지로.’
그랬다.
왕에게서 멀어진 전주 이가는 보통의 사대부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3대 안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내지 않으면 사대부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설령 왕의 집안사람이라고 해도 끈 떨어진 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며, 도리어 평민으로 전락해 전주 이가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된다.
나라가 백 년 동안 유지되면서, 왕의 성을 단 채 평민으로 전락한 자가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그들은 집안의 수치였다.
‘하지만 내가 대과에 갑과로 당당히 급제했으니.’
적어도 나와, 아버지와 가까운 사람들은 왕의 성씨를 쓰는 문중 사람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다. 우리의 피에는 사대부의 자격이, 유력자의 자질이 흐르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 이 첨정께서는 달리 필요한 것은 없으시고?”
집안 어른 중 하나가 물었다.
나는 감사함을 드러내며 사양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으음, 문중에서 난 수재를 박대하면 조상님들께서 노하실 터인데.”
집안 어른은 흠흠, 콧바람을 흘리더니 옛다 싶다는 듯 말을 이었다.
“태종대왕께서 쓰시던 활을 내가 지키고 있는데. 첨정 정도라면 나 다음으로 대왕님의 하사품을 지킬 자격이 있겠어.”
“……!”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워했다.
아버지께서도 적잖이 놀라셨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태종대왕님께서 쓰시던 활을 주려 하십니까?”
우리 집안은 비록 태종대왕의 혈통이긴 하지만, 그 아래는 왕이 되지 못한 양녕대군이었으며 그 아래가 다섯 번째 서자였다.
이건 달리 말해 태종대왕의 활이란, 진짜라는 가정 하에 정말, 아주 정말 가까스로 전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왕이 실제로 쓴 물건이라면 방계의 방계에 있기에는 과분했으니까.
하지만 집안 어른의 어조는 지어낸 말 따위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진중한데다 다른 친척들 역시 그러해서, 정말 태종대왕의 활이 아닌가 싶었다.
“첨정 정도라면 못 물려줄 것도 없지. 안 그래도 그동안 급제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급제하는 녀석에게 꼭 물려줘야 되겠다 싶었다.”
실망스러운 역사였다.
3대에 이를 동안 가까운 친척 중에 단 한 사람도 급제를 하지 못했으니.
그래서 나의 급제가 더 환호 받는 것이기도 했다.
집안 어른이 말을 이었다.
“이제 내가 넘겨주려고 하니 첨정도 역사를 알아야겠지. 우리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활은, 태종대왕께서 흔히 쓰시던 물건은 아니었다. 실제로 쓰였는지도, 사실 의문이지.”
굉장히 소극적인 반응이었다.
태종대왕의 활이지만 실제로 쓰였는지는 의문이라니. 대체로 이런 의혹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태종대왕의 활이라 불리던 이유가 있을 터였다.
집안 어른이 말을 이었다.
“첨정도 알겠지만 우리의 조상이신 양녕대군께서는 그 행실이 바르지만은 않으셨고, 결국 동생인 세종대왕께 세자를 이양하게 되셨다. 아버지이신 태종대왕께서는 그런 양녕대군을 기특하고 또 안쓰럽게 생각하셔서, 위안을 위해 모든 양녕대군의 자식들에게 친히 썼던 무구를 한 자루씩 물려주시기로 약조하셨지.”
아하.
이래서 방계임에도 활이 내려올 수 있었구나. 그래도 꽤 포장된 감이 있었다.
양녕대군이 보인 행동들은 마냥 ‘행실이 바르지만은 않았다.’고 표현될 정도가 아니었고, 또 세자 역시 세종대왕에게 ‘이양’한 게 아니라 아버지 태종에 의해 박탈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직계 조상님인데 어떻게 대놓고 ‘개망나니처럼 설치다 세자 직위를 박탈당했다.’라 말하겠나.
좋게, 좋게 포장해야지.
“활이 오래 되었으니 잘 관리해줘야 해. 어쩌면 첨정에게는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안에는 둘도 없을 보배이니 부담이 될 것을 알면서도 맡기는 것임을 이해해주게.”
“명심하겠습니다.”
집안 어른은 나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며칠 뒤.
나의 방 한구석에는 활이 놓였다. 태종대왕의 활이라던 그 유물이었다.
솔직히, 나는 오래된 활이고 관리가 많이 필요하다기에 국궁의 전형적인 종류인 각궁이라 생각했다.
각궁은 여러 종류의 자연소재를 이용해 만드는 합성궁이었고, 또 그런 합성궁은 내구도가 예민한 편이었으므로 실제로 섬세한 관리가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전해진 것은 정말 상상 이상의 물건이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통짜 쇠활.
철궁(鐵弓)이라고도 하는 물건이다.
놋쇠로 만들어 몸체에서는 은은한 금빛이 발하는 고급진 활이었으나, 금속성인 만큼 무겁고 요구하는 힘도 상당해 실전용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즉, 힘 자랑 용도로는 이따금 쓸 만도 하지만 이걸 실전에 쓰다가는 손가락이나 어깨가 상하기 십상이었다.
‘태종의 생각을 알 것도 같다.’
그가 양녕대군의 자식들에게 하사했다는 이 활.
철궁.
범인(凡人, 보통 사람)은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를 하사한 태종이 이전의 세자였던 양녕대군을 폐하고 세종대왕을 차기 왕으로 삼은 역사를 생각하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너는 왕이라는 자리를 감당할 재목이 아니니 단념하라는 뜻이겠지.’
그러니 이 철궁은 우리 집안의 둘도 없는 보배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상처이기도 했다.
과연, 누구보다도 왕에 가까웠으나 자질 부족으로 왕이 되지 못한 자에게 어울리는 하사품이었으니까.
“흠…….”
나는 걸어둔 철궁의 감상을 끝낸 뒤 원래 자리에 두었다.
은영연(恩榮宴)이 있었다.
문무과 급제를 축하해주는 자리였고, 조정에서 친히 주재하는 연회였다. 그래서 대신들만 아니라 왕까지 참석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그렇다고 대뜸 입궐부터 하는 건 아니고, 급제자 모두가 장원의 집에 모여서 대기하다가 때가 되면 장원을 선두로 입궐하는 것이다.
입궐하기에 앞서 급제자들이 경쟁자가 아닌 동기로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게 된다. 그리고 이번 시험 급제자에는 유성룡도 있고, 정여립도 있었다.
갑과 일등, 장원 유성룡!
갑과 이등, 방안 정여립!
둘 모두 레전드라면 레전드였다.
임진왜란 당시 일등 전시재상으로 명성이 드높았던 유성룡은 말할 것도 없었고, 정여립은 역사상 최초의 공화주의자였다.
어쩌면 유성룡이나 정여립, 혹은 둘 모두와 절친한 사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후자는 불안불안한 감이 있지만 말이야.’
이제 갓 관리가 된 사람이니 당장 위험할 것은 없다. 하지만 역사가 원 역사처럼 흘러간다면, 그와의 인연이 돌부리가 될지도 몰랐다.
기축옥사의 규모는 이전 사화들을 능가하는 대규모 학살이었고, 단지 정여립과 서찰을 몇 편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된 사람들도 즐비했으니까.
만일 인연이 생긴다면 그가 너무 과격한 노선은 걷지 않게 달래야겠지. 하지만 나 역시 정여립과 같은 길을 가게 될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흔치 않게 나의 미래의 개방적인 사고방식에 동감해줄 몇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선조 놈만 없었어도!’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야.
갑과 삼등이라는 자리를 준 건 고맙지만 내가 아는 선조란 나에게 조금 도움이 되었다고 좋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조심해야지.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래의 일이다.
이제 유성룡과 정여립을 보러 갈 때였다.
* * *
유성룡의 거처는 남촌 낙선방에 있었다.
잠깐 알아본 결과 부친은 관찰사까지 지냈다는데, 그걸 감안하면 꽤나 검소한 위치였다. 대체로 하급 관리들이 남촌에 많이 살았으니까.
하지만 직접 가보니 마냥 검소한 것만도 아니더라.
초가집이 흔한 남촌에서 유성룡의 거처는 주변의 집 몇 채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큰 기와집이었다. 검소할 수는 있어도 궁상맞을 생각까지는 없나보다.
“다들 들어오시지요.”
문간에 서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사람은, 무려 유성룡 본인이었다.
그는 꽤나 호감 가는 표정을 한 채로 차례차례 찾아오는 동기 급제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랐는데…….
“첨정 나리.”
류성룡은 나의 차례가 되자 절도 있게 허리를 숙였다.
이미 현직 관리이고, 삼 년이나 관문을 먼저 넘어선 선배인데다 이번 급제를 통해 어쩌면 당상까지 노릴 수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아직 관리도 아닌 자신이 건방지게 친한 척을 할 수 있느냐, 그거겠지.
하지만 오히려 격식 없이 마음을 터놓길 바랐던 나로서는 아쉬운 반응이었다.
“서애. 이번에 장원을 하셨더라고요. 축하드립니다.”
일단은 말이나 붙여보자 싶었지만 류성룡은 끝까지 격식을 거두지 않았다.
“첨정 나리만 하겠습니까. 이전부터 명망이 높으셨으니, 이번 급제를 통해 조정의 중심에 나가시게 되겠지요. 경하드립니다.”
이런…….
완전히 선배 관리로 찍힌 모양이었다. 오히려 너무 딱딱한 태도이기까지 해서, 내가 이 자리에 오면 안 됐던가 싶을 정도였다.
은영연이라는 것이 과거 급제를 축하해주는 자리이긴 하지만, 그 대상이란 대체로 이제 관문에 들어설 자들이었으니까.
이미 관문에 들어선 나로서는 삼수생이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그런 애매하기 짝이 없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류성룡이라는 사람은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구나!’
약삭빠른 사람 같았으면 이런 어색한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급제자들은 다급히 허리 숙여 예의를 표했다. 상급자 이미지가 제대로 꽂힌 것이다.
그런데 나……,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많게는 스무 살이나 더 적다고!
같은 곳에 자리한 누군가에게는 자식뻘일 내가, 류성룡 덕분에 십대 후반의 최연소 노땅이 됐다……. 어라……? 왜 안구에 습기가 차는 거지?
“크흐흠.”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나 다음으로 입장하기 위해 사람 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무어라 말하지도 못한 채, 나는 안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