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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53화 (53/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53화

19. 내일까지만 잘하기 (2)

내일 아침이 되어, 나는 시험장으로 나왔다.

미리 나온 사람 중 일부는 이상한 행동까지 하고 있었다. 물이 담긴 대접을 공손히 받친 채 빙빙 돌리다 마시는 사람, 정체불명의 가루를 사르륵 입에 털어 넣는 사람.

갈색의 커다란 환을 우적우적 씹어 먹는 녀석도 있었다.

거의 악마적 의식의 현장이로군.

아무리 괴력난신을 믿지 않는 선비들도 자기 운명이 걸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나보다. 결국 사람 심리는 다 이렇다는 거 아니겠나.

한참의 시간이 흘러 태양이 중천에 오르자, 젊은 관리 몇이 뒷짐을 지며 나타났다.

시험관들이다. 이번에도 나에게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다들 추운 날에 모여서 고생이 많군, 그래.”

마치 친구에게 농을 건네기라도 하는 투였다. 태연하기 짝이 없는 어조. 짓궂기까지 한 표정.

대사간 이산해!

이전 시험에 등장했던 대사헌 노수신도 전설이었지만 대사간 이산해도 전설은 전설이었다.

고작 몇 달 사이에 판관직에서 당상의 요직으로 올라선 그는 뭇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여기 시험장에 자리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신 역시 이산해처럼 되기를 바라고 있을 터였다. 노수신처럼 되는 것보다 훨씬 말이다.

그 살아있는 전설이 말했다.

“나는 회시 종장을 담당하게 된 상시관, 대사간 이산해라고 하네. 가장 중요한 시험이 이 자리에서 벌어지는 만큼, 응시자들 스스로가 상황의 경중을 잘 파악하고 현명하게 행동하리라 믿네. 여기 자리한 사람 중에서 일흔 정도는 기대하던 결과를 얻지는 못하겠지만…….”

시험장은 두 곳.

때문에 한 곳의 시험장에서 나올 수 있는 급제자는 33인의 정원을 반분한 17명, 혹은 16명이다.

90명이 조금 안 되는 응시자가 모인 이 자리에서 급제의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자는 극소수이며, 이산해의 말마따나 나머지 일흔은 기대하던 결과를 얻지 못한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지금 이 자리에서는 대과에서 가장 중요한 복시, 그중에서도 종장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응시자들의 입장은 전혀 개의치 않는 촌철살인이었다. 그러나 이산해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낙방하더라도 너무 근심하지는 말게.”

위로를 해주는 척하다……,

“원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뜻이니까.”

대놓고 들이박는 이산해였다.

아무리 당상대신이라도 무례한 태도였으나, 감히 지적할 사람은 없었다. 이산해는 살아있는 전설이었고 모두가 그처럼 되기를 원했다.

이산해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는지도 모르지.

그가 말을 이었다.

“문제를 출제하겠네. 근래에 들어 조정에서 논의되는 일이 한 가지 있으니, 바로 조군(漕軍)과 수군(水軍)의 일이네. 그중에서도 조군은 한 해에 7, 8개월을 바다에서 지내니 집안일을 돌보지 못하고 농사를 전폐하니, 많은 사람이 유망하고 일족이 나앉게 되지. 나아가 조운선은 삼 년마다 보수를 하니, 많은 집기와 자재를 소모하고 그 고초가 심하네. 때문에 사람이 조군이 되면 죽을 것을 생각하고서 어떻게든 도피하려 들고, 시름하고 원망하게 되네. 과연 그대들 생각에 이 일은 어떻게 대해야겠나? 대책을 써서 제출하게.”

이산해의 출제가 끝나자, 응시생들은 다함께 붓을 들었다.

나 역시 다르지는 않았다. 아직 대책은 생각 중이지만, 글의 첫머리로 들어갈 부분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신이 돌아보건대, 수군의 문제는 전조인 고려조부터 유구히 거론되었으나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선인들이 각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아직까지도 수군의 문제가 만연하고 만성적인 이유는, 그만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예로부터 수군의 일은 무척이나 고되어 역을 도피하는 사람이 많으니, 결국 한 번 수군이 된 사람은 대대로 수군을 지내게 하며 나아가 형제까지 수군으로 옭아매게 되었습니다.

이는 백성의 처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서 단지 필요한 수군과 조운의 수효만 맞추려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으나, 근본적인 변화가 주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폐단이 된 지 오래입니다.』

물론, 요즘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한계였다.

수군의 일은 무척이나 고되다.

그건 미래라고 다르지 않을진대 요즘 세상이라면 더했지, 덜할 수야 있겠는가?

망망대해의 해상에서 피로에 절은 사내들의 땀내와 바다의 짠내만 진동하는데, 먹는 것은 부족하고 즐길 것은 없으며 마음 편히 쉴 곳도 없었다.

몸고생도 심해지만 마음고생은 더했다. 아무리 강철 멘탈인 사람이라도 버텨낼 수 없는 환경이다.

이건 금시대의 어느 수군이라도 다르지 않아서, 심지어 서양에서는 수군을 ‘납치’로 충당했다.

특히 영국의 강제징집은 프래스 갱(Press Gang)이라는 이름으로 악명 높았다. 해안가 도시와 마을에서 수병을 풀어, 눈에 보이는 장정들은 폭력으로 제압한 뒤 강제로 배에 태우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부족하자 내륙까지 침투해 사람들을 납치했다. 이렇게 납치되어 강제로 수병이 된 사람들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선박이 항구에 정박해도 대다수의 수병은 뭍을 밟을 수 없었다.

이 시대의 수병들이란 이러했다.

극단적인 환경과 노동.

그리고 노예만도 못한 대우. 은유만이 아니라, 조선에서는 정말로 칠반천역(七般賤役)이라는 천한 자가 종사하는 일곱 가지 노역 중 하나에 수군이 들어가 있었다.

어느 누가 고생까지 하면서 그딴 대우를 받고 싶겠는가? 그 점에서 수군 문제는 도리어 쉬운 편이다. 문제가 명확했으니까.

『수군의 문제는 명확하며, 때문에 해결 방법 역시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선인들이 경직된 사고로 수군을 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하의 일이란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하는 것이며, 국가의 일이란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려워지는 법이니, 진퇴와 치란은 진실로 운수가 있는 것이나 요인은 사람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수군의 일이 천하의 일로 전진해야 마땅할 것이며, 또 국가의 일로 다스려져야 할 일입니다.

과감한 사고를 가지고서 옛 제도를 고쳐 인습과 폐습을 파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다면 천하의 어느 일이건 해결되기 마련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과감한 사고와 전진, 변화를 강조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예전 사람들이라고 마냥 멍청해서 수군의 문제를 방치했겠는가?

수군의 존재는 불가피했고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다. 때문에 수효가 많았고 그래서 조금만 처우를 개선하려 해도 상당한 인력과 자원이 소모된다.

게다가 세간의 시선 역시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기피한다는 이유로 수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됐지만, 그것은 수군이라는 역할만 아니라 수군을 지내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쳤다.

그래서 더더욱 기피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단단히 굳어버린 지금, 수군의 처우를 개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군은 처우 개선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본래 고생이란 천한 사람들만의 몫이니까. 당연히 천민에게 어울리는 일이었고 그래서 굳이 처우를 개선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별종이었다.

『가장 먼저 고쳐야 할 것은 수군에 대한 인식입니다.

뭇 사람들은 노고가 심한 역들을 들어 칠반천역(七般賤役)이라 일컬으며 기피하는 것만 아니라 혐오하기까지 합니다.

세간의 인식이 이러하니 어느 누가 수군의 역을 자처하겠습니까?

더욱이 조정 역시 칠반천역을 이행하는 자들을 천하게만 생각했습니다.

조군이 없으면 어떻게 세곡을 옮길 것이며, 수군이 없으면 어떻게 해안을 방비하고, 봉군이 없으면 어떻게 봉화를 피우며, 역졸이 없으면 역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실로 우리가 칠반천역이라고 하는 자들은 나라에 있어 불가피한 자들이며, 그러한 점에서는 오직 자질과 수효만 차이가 있을 뿐 조정을 구성하는 관리와도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정에서는 이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신,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하게만 생각하고 멸시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군을 포함해 칠반천역에 대한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방책도 결국에는 미봉책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수군을 포함한 칠반천역을 우대하고 그들의 노고를 인정해야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일일이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을 쓸 수도 있었지만, 길게 왈가왈부하지는 않기로 했다.

수군이나 다른 칠반천역의 대우와 시선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단단히 굳어졌다. 이것을 깨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 생각에 있었다.

과연 조정의 늙은이들이 나의 주장에 공감해줄지는 전적으로 의문이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결국 나의 말 대로 될 터였다.

무슨 방도가 주어지더라도 결국은 미봉책으로 끝날 뿐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럼에도 부정하겠다면, 내가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귀를 막고 있는데.

나는 붓을 떼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내가 일등이었다. 일순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마치 벌써 답안 작성을 끝냈냐는 투였다.

그래.

벌써 답안 작성은 끝났지.

수군의 문제는 친절하게도 원인이 분명했으므로 그것만 지적하면 됐을 뿐이다. 에둘러 구구절절 말만 늘어놓는 것은 애초에 답이 되지도 못한다.

“오, 첨정은 벌써 대책이 완성된 모양이군.”

계단 너머에 자리하고 있던 대사성 이산해가 말했다. 나는 단지 허리만 살짝 숙일 뿐이었다. 이산해는 살짝 웃고는 장막을 향해 팔을 뻗었다.

나는 기꺼이 장막으로 나아가 답안을 제출했다.

과연 이번 시험의 상시관인 이산해는 나의 답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전에는 은근히 도움을 줬던 적도 있었지만, 그는 자존심이 강한 자였고 고작 인연 때문에 상시관이라는 역할을 저버리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당상 요직에 오르고, 또 장차 북인의 대표까지 된 만큼 능력과 사고만큼은 의심이 필요 없는 자였다.

이산해라면 다른 누구보다도 나의 진심을 잘 알아주겠지. 만일 그가 안 된다고 한다면, 정말로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당당했다.

만일 나의 답안이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건 나의 그릇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의 조정이 나를 담을 그릇이 아닌 탓이니까.

역사 속의 이순신 역시 그릇이 좁은 조선과 왕이 담을 인재가 되지 못했다.

* * *

다음날 아침.

복시의 결과가 나오는 순간이었고, 덕분에 육조거리 바로 옆에 있는 북촌 관광방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덕분에 결과야 어떻건 꿀잠이나 한 판 때리려던 나의 원대한 계획은 실패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했는데…….

막상 바깥의 사람들이 워낙 티를 내다보니 나라고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봐야 하나?”

…….

고민이 드는 걸 보니 영 어쩔 수 없게 됐나보다.

흔들린다는 건, 결국 시간이 더 지나면 결국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된다는 예언과도 같았으니까. 그렇다면 굳이 끙끙댈 필요는 하등 없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후!”

고작 하룻밤 사이에 날씨는 더욱 추워져 있었다.

살을 에는 삭풍에 절로 몸이 떨렸다. 잠기운은 달아난 지 오래였고 말이다.

“어우. 쌀쌀하다.”

회령 생각하면 사실 그다지 추운 편은 아니다.

거기서는 농담 조금 보태서 싸는 오줌이 실시간으로 얼어붙는 정도였으니까. 도성의 겨울 정도면 거의 한여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도성에서 이미 한 해를 꼬박 지냈고, 남부(회령 기준에서)의 절절 끓는 여름도 경험했다.

체감상 꽤나 추운 편!

“솜옷 마련해야겠네.”

회령으로 떠나기 직전에 집안 식구들에게 솜옷을 한 벌씩 돌렸다. 그게 벌써 삼 년 전이었다.

물건이 귀한 요즘 세상에서 삼 년 된 옷이야 그리 오래된 건 아니지만…….

숭신방 저택에 입주도 시작됐겠다, 결국 새 옷은 사야 하니 겸사겸사 기존 식구들 옷 못 맞출 것도 아니다.

‘을룡이는 안 보이고.’

일단은 시험 성적을 보고 와서 말해야겠군.

만약 좋은 결과를 확인한다면……, 인심 더 써줄 수도 있겠지?

옷은 이미 갈아입은지라 나는 더 거칠 것도 없이 저택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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