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51화
18. 한성시 급제자 이순신 (3)
며칠 전만 하더라도, 선조는 내심 불안했다.
자신이 특채한 이순신이 올해 식년시를 치른다는 소식이 있었다.
과연 그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이순신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의 처지란 선조의 입장에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선조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제 자신이며, 이번 일로 자신의 안목이 시험받는 것이 불쾌했을 뿐이다. 혹시라도 이순신이 초시에 불과한 한성시에 낙방이라도 한다면 자신은 망신거리가 될 터였다. 그 때문에 선조는 상시관을 불러 당부를 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지만 상시관인 박순은 그것이 가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선조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한동안 전전긍긍하며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물러가라.”
선조는 승전색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승전색이 가져온 이순신의 답안이지, 승전색이 아니었다. 때문에 승전색이 눈치껏 답안만 올리고 알아서 꺼져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하지만 승전색은 왕의 마음도 모르고서 태연히 인사를 올렸다.
“예……. 하오시면 신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가라!”
선조는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승전색은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그에게 왕의 변덕이란 익숙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자리를 최대한 빨리 비우는 것이 최선임을 직감한 승전색은 빠르게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주변이 금세 적막으로 가라앉자 선조는 그제야 이순신의 답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게 그 화제의 답안이로군.’
답안을 향한 선조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처음 이순신이 한성시에 장원으로 합격했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하필이면 같은 시험에 응시했던 다른 특채자들은 모조리 낙방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적어도 한 사람만큼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이순신의 오만함을 조금은 참작해줄 생각도 들었다. 아주 조금은.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선조는 박순을 떠올렸다.
‘이조판서 박순…….’
최근 선조는 어전에서 이순신의 장원을 공공연히 언급했다. 자신의 안목을 입증하는 것이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 순간 이조판서 박순이 끼어들었다. 박순은 이순신의 답안을 장원으로 올린 이유가, 현 세태의 문제점을 분명하고 인식하고 있으며 대안을 명확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소 박순은 발언을 아끼는 편이며 말 또한 조곤조곤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어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무척이나 변칙적이었다.
그건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선조로서는 지극히 불쾌한 경험이었다. 박순은 자세한 정황은 말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선조는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박순의 의중을 읽을 수 없었다.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선조, 그는 장차 조정을 장악하고 절대왕권을 수립할 자였다!
그런 그에게 고작 일개 신하가 왕도 모르는 일을 멋대로 어전에서 지껄여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왕이 모르는 일이 있다는 것도, 일개 신하가 그렇게 오만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도…….
박순의 의아한 행동을 접한 자들은 그 정황을 알아내고자 전말을 수소문했을 거다. 그들 중 몇몇은 한성시 채점자들과 안면이 있었을 테고, 어렵지 않게 사실을 파악했겠지.
이 역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철저히 왕은 배제한 채 자신들만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선조라고 신하 중 하나에게 물어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자신에게 복종하고 순종해야 할 자들에게 얕보일 구석을 내비치고 싶지는 않았다.
정작 명을 내려서 답안을 가져오게 한 승전색?
애초에 내시는 왕을 수발하는 게 존재 의의의 전부인 놈들이다. 의식할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하지만 놈들도 입과 귀는 있다.
조만간 왕이 내시를 부려 이순신의 답안을 직접 찾아봤다는 소문이 퍼지겠지. 그 소문을 접한 자들은 더더욱 이순신의 답안을 알려 들 터였다.
‘이게 박순, 네놈이 원했던 흐름이구나.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
박순은 문제가 될 소지는 최소화한 채 자신이 원하는 것만 챙겨갔다.
이래서 늙은 놈들은 안 된다.
왜 자신이 을사사화의 희생자들을 기용하는 것이겠나?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오지에서 스무 해 시간을 축내고 조정으로 돌아온 그들은, 경험도 없고 해낸 것도 없었다.
근본도 없이 요직에 오른 자들이 믿을 것이 왕뿐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면 원하건, 원치 않건 왕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왕의 의사를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감히 박순처럼 굴 수는 없는 것이다.
“…….”
한동안 속으로 앓던 선조는 콧김을 내쉬었다. 그마저도 부족해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에야, 선조는 이순신의 답안으로 손을 가져갔다.
불안했다.
그의 장원은 박순의 안배가 주효했으며 이는 이순신의 답안이 박순의 입맛에 맞는 글이라는 뜻이었다.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비록 이순신이 기대와는 달리 여느 관리들처럼 오만하고 버릇없는 자이기는 하나, 적어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기용된 만큼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의 자리에 올려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충의 정도는 말이다. 그리고 선조는 배신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져온 이상 직접 확인해볼 수밖에 없다. 이순신의 배신을, 반역을.
-스르륵.
돌돌 말린 권자가 펼쳐졌다.
선조는 떨리는 시선으로 내용을 훑었다.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를 눈에 담을 때마다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건 원치 않았던, 그리고 예상대로의 답안이었다.
이순신은 을사사화 희생자들의 기용에 부정적이었다.
대신, 젊은 사람들은 선발하기를 원했고 그동안 만연했던 별시를 축소하고 식년시를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그 대안이라는 것도 선조에게는 불쾌했다.
별시란 왕이 주재하는 시험이다. 즉, 별시를 희망하는 자들은 왕의 입맛을 의식하고 스스로 복종하려 한다.
딱 선조가 원하는 방식의 인재 선발이다. 모든 신하는 학문을 자랑하기에 앞서 왕에게 굴복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못한 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데도 별시를 축소하라니?
“완전히 개소리를 하는군…….”
선조는 더 이상 답안을 보고 싶지 않아 옆으로 던졌다.
이순신은 왕을 배신했다. 지금의 자리에 올려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정녕 모르는 건가?
한동안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왕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으나, 답안에서 드러나는 그의 오만한 성정은 사실이 그렇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었다.
이순신이 자신의 역할을 다한 이유는 왕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했을 뿐, 누구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불씨(佛氏, 부처)가 말한 유아독존의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참으로 오만하다.
자신의 역할만큼은 다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것은 덕목일지도 몰랐다. 그조차도 못하는 자가 조정에는 즐비했으니까.
하지만 선조가 원하는 인재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인재란 설령 능력이 없어도 왕에게 굴복하고 복종하는 자였다.
……오직 그런 자들만이 선조가 그리는 절대왕권에 순종할 테니까.
이순신처럼 오만한 자는 그러지 못한다.
‘복시는 떨어졌으면 좋겠군.’
어차피 박순에게 잘 보여서 주제넘게 장원에 오른 이순신이다. 복시까지 합격할 일은 없겠지.
선조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눈을 감았다. 보잘 것 없는 배신자 하나 때문에 너무 많은 심력을 썼다. 잠깐이라도 쉬어야 할 때다.
* * *
“저 왔습니다, 대사헌.”
잠깐 군기시정을 지낸 노수신이 다음으로 임명된 관직은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이었다.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그동안 바빴던 탓에 만나지 못했는데 간만에 보고 싶은 마음이 부쩍 들었다. 그래서 서찰을 보내니 노수신은 기꺼이 응해주었다.
“자네 오셨구만.”
처음으로 찾은 노수신의 거처는 그가 지내는 대사헌이라는 관직에 맞지 않게 무척이나 소박했다.
나 혼자 살겠다고 마련한 북촌의 작은 집과 비슷한 정도니까.
“누추한 곳에 모시려니 내가 다 민망하군.”
“민망할 게 어디 있습니까? 그만큼 영감께서 청빈하시다는 뜻인데요.”
“청빈이랄 게 있나. 이 정도가 나에게는 딱 맞아서 그러네. 하나 있는 자식도 나가서 산 지 오래고……. 늙은이 둘이서 살려면 오히려 좁은 편이 낫지.”
노수신은 대답과 함께 흐릿하게 웃었다.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반응이었다.
그는 내가 비격진천뢰를 만들고 있을 때 잠깐 군기시정을 지내다, 시연이 끝나고 오래지 않아 대사헌에 임명됐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노수신이 시기적절하게 들어와서 부하의 공만 갈취한 뒤 더 높은 자리로 빠지는 것으로만 보였을 터.
스스로가 원해서 그리 된 일도 아니었건만 노수신은 그걸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첨정께서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가?”
“사직소를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나의 대답에 노수신이 아, 하며 말을 이었다.
“사직소야 습관처럼 내는 것이지. 특별할 것도 없는데 첨정께서 괜히 귀한 발걸음만 하게 만들었군.”
“다른 사람들은 대사헌 영감께서 다른 의도를 가지고서 사직을 청한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저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음…….”
노수신은 쓰게 웃었다.
처음 그가 조정으로 복귀했을 때, 노수신은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모두가 침묵하는 사이 정의를 관철한 사람. 그럼에도 때가 좋지 않아 방치된 재목. 마침내 빛을 보아 금의환향한 자.
하지만 선조의 을사사화 희생자 편애에 세간의 시선은 변했다. 존경은 질투로, 경외는 질시로.
본래 사람의 마음이란 변덕이 심한 법이다. 그리고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이 가까이 오면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노수신의 입장에서는 원치 않았던 왕의 일방적인 편애도 불편할진대, 주위사람들까지 등을 돌린 것이다.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첨정의 답안을 보았네.”
“별것 아닌데, 요새 제가 쓴 글이 많이 유행하는군요.”
“그렇지 않네, 첨정. 그대는 조정에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행보 하나하나가 주목받기 마련이지. 나 역시 깊은 관심이 갔으니까.”
노수신은 말을 이었다.
“현실에 대해 통렬한 지적을 해주었더군.”
“민망합니다.”
나의 답안에는 자칫 노수신이 불쾌해할 내용도 있었다.
을사사화 희생자들이 나이가 너무 많아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 힘들다는 구절이라던가…….
“첨정께서 민망해할 이유가 어디 있나? 틀린 말도 아닌 것을. 평소 이 사람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네. 을사사화는 오래전의 일이고, 그때의 사람들은 너무 많이 늙었어. 게다가…….”
노수신은 쓰게 말을 이었다.
“관리로서 제 역할을 하기도 힘든 상황 아닌가.”
그동안 경력도 경험도 쌓지 못한 을사사화 희생자들은 실무에 약했다. 그럼에도 드높은 요직을 돌아가며 차지하니, 주위에서는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처지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왕뿐이었다. 선조는 의도적으로 을사사화 희생자들을 고립시키는 한편, 그들을 높은 자리에 올려 조정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선조는 착각하고 있었다.
노수신을 포함해 을사사화 희생자들은 신념을 위해 스무 해 유배조차도 견뎌낸 자들이었다. 고작 허울뿐인 자리에 유혹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선조가 이들을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 건……, 을사사화 희생자들이 내심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으리라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노수신이 말을 이었다.
“내가 한창일 때에는 모든 것이 간단명료했네. 누가 악이고, 어떤 길이 선인지. 하지만 스무 해 만에 조정으로 돌아오니 모든 게 달라져 있었네. 어쩌면 내가 단지 늙은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너무 어렵게 변했어.”
“어쩌면 지금이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일지도 모르지요. 특히 신하 노릇하기에 말입니다.”
실제로도 그랬다.
사화로 일컬어지는 과거의 학살들은 ‘연산군’ 같은 개인이나 ‘훈구파’ 같은 집단이라는 명확한 존재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서 벌인 일이다.
그 경우에는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분명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선조가 일으킬 기축옥사는 최대 규모의 학살이라는 이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모든 것이 모호했다.
옥사를 주도한 사람은 정철이었으나 배후에는 송여립이 있었다, 선조가 있었다는 둥 말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옥사의 원인이 된 정여립의 난조차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학살의 양상이지. 사림 몇 명 죽인다고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역사적으로 드러났으니까. 그래서 선조는 방식을 바꾼 거야.’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명확한 것은 서인이 동인을 향해 칼을 들어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는 것뿐이다.
신하들이 힘을 합치면 항상 왕의 권세가 위협받기 마련.
선조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하들 사이를 철저하게 이간질했다. 이전부터 학맥과 인맥 등으로 집단이 나뉜 사림파는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기보다, 감정적인 대응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끊임없는 당쟁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실로 악독한 계략이다.’
당시 선조가 보여준 모습은, 마치 정치를 하려면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모범과도 같았다.
그는 왕의 자식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왕의 운명을 가지고 있었고, 왕의 학문은 배우지 못했으나 누구보다도 왕의 역할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선조는 아이러니의 극치다.
임진년에 왜적이 쳐들어왔을 때 신하와 백성 모두가 선조에게 기댔으나, 정작 조선의 가장 큰 적은 선조였다.
또 광해군을 세자로 만들어 차기 왕으로 지목했으나 정작 그 광해군이 정상적으로 등극할 수 없도록 갖은 견제와 압박을 가했던 자도 선조였다.
그야말로 불가해와 불합리의 존재였다. 이런 자가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신하에게는 신하 노릇하기 가혹한 때였다.
“을사사화는 대사헌의 삶에서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대사헌께서는 냉정한 안목을 가지게 되지 않으셨습니까.”
선조가 사악한 인물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왕조시대에서 왕이란 종교국가의 종교와도 같았다. 애초에 거역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실재하는 개인이라기보다는 중력과 같은 자연의 법칙 중 하나에 가까웠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선조의 의중에 대해 자연스럽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근시안적인 태도로 그가 주도하는 변화에 감각적으로만 반응할 뿐이다.
누가 불을 때는지도 모른 채 덥다, 덥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탓할 수는 없으리라. 시대가 그러했고 사람의 사고는 틀에 갇혀 있었다. 나 역시 미래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생각하지 못했겠지.
직접 당하지 않고서는 혜안을 가지기 힘든 법이다. 마치 노수신처럼…….
“하하.”
노수신은 멋쩍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냉정한 안목이라, 그리 말해주니 첨정께는 고맙지만 기쁘게는 생각하지 못하겠군. 차라리 별 생각 없이 그저 시류에 맞춰 물 흘러가듯 흘러가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르니까.”
의외의 반응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뜻이던가? 나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을사사화 때의 일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노수신은 단호하게 답했다.
“유배를 당했던 지난 이십 년 동안에는 나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었네. 하지만 요사이 들어서는 후회를 하게 되는군.”
“…….”
“첨정의 말이 백번이고 옳네. 명종대왕 시절이라고 태평성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신하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분명했어. 그래서 나는 신하답게 행동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군. 신하 노릇하기가 어려운 시대야.”
노수신이 쓰게 말했다.
“첨정께서는 나처럼 후회하지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