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50화
18. 한성시 급제자 이순신(2)
‘폐급이지만 그래도 똑똑한 우리 이이 형님, 저에게 힘을 주세요!’
언젠가부터 나를 자연스럽게 동생이라고 부르던 이이!
평소에는 부담감을 느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이이의 구도장원공 붓을 쥔 채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
이번 종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초시에 불과한 한성시에서 낙방! ……하게 된다. 이건 아깝다는 변명조차 할 수 없는 결과였다.
정말 인당수에 다이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에는 아직 살날이 창창한 젊은 총각이었다. 그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나는 평소 찾지도 않았던 신들에게 배은망덕하게도 은혜를 구걸한 뒤, 어렵사리 붓을 들었다. 과연 인재는 어떻게 선발해야 하느냐?
일단은 의례적인 머리말부터 뽑아보자.
-돌아보건대 주상전하께서 대통을 이으신 이래로, 성덕이 날로 새로워지고 성덕이 날로 성취되어 고명하고 광대함이 천고에 으뜸이 되어서, 충분히 한 세상을 운영하고 품류를 제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소 쓰지 않는 단어가 대거 동원됐지만…… 이 시대 기준에서는 전형적인 인사말이다.
간만에 만난 지인에게 별 생각 없이 ‘요새 뭐 하고 지내냐?’ 묻듯이, 요즘 시대에는 윗선으로 올릴 공문에는 왕이 잘났다는 인사말이 의례적으로 들어갔다.
이 즈음에서 왕의 성덕을 조금 더 늘어놓을까, 싶었으나 말았다.
이제 치세 사 년 차에 접어든 선조에게 줄줄이 늘어놓을 업적은 없었다.
을사사화 희생자들을 모조리 복권하고 대거 기용한 이력은 있지만, 이번 글의 주제와 밀접하니 형식상 늘어놓을 말은 아니었다.
나는 고심하며 붓질을 이어나갔다.
-중종 말년에 인재가 많이 나왔으나 불행하게도 사림의 화가 있어, 죄도 없이 죽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은 스무 해나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아직까지 학문을 폐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뭇 사람들이 의기와 절개를 본받았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주상전하께오서 당대의 사람들을 구제하고 크게 기용하니, 세간에서 말하기를 드디어 나라가 반석에 바로 섰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이 일을 긍정하고 찬양하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등용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
다분히 비위를 맞추는 글이 되겠으나 다른 사람도 아닌 왕의 비위를 맞추는 글이다. 특징 없는 평이한 답안이 될 테고, 저평가는 받겠지만 어렵지 않게 중간은 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길은 나의 진심이 아니었다.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노수신과의 인연도 있지만 나는 을사사화 희생자들의 지금 대접에 동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분명 존중받을 자격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비정상적인 우대로 인해 주위 사람들은 물론 당사자들까지 곤란을 느꼈다.
만일 내가 그 점을 꼬집는다면…….
‘모 아니면 도가 되겠지.’
선조는 지랄 맞은 놈이다.
지금 당장은 왕 노릇을 하느라 바쁠 터이니, 고작 대과 초시인 한성시의 답지 하나에 연연할 여유는 없겠지.
하지만 누군가 나의 답안을 조정에서 언급한다면?
특히 지금 상시관, 그러니까 시험 총책인 박순의 입장을 생각하면 가능성 높은 일이었다.
그는 노수신이나 유희춘처럼 현재 특혜를 받고 있는 을사사화 희생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에도, 명종에 의해 다시 기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특혜에서 배제되고 있었다.
노수신과 유희춘이 억울하게 유배생활을 했다는 점은 분명 배려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게 공을 세운 건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꼬박 근속해온 박순의 뒤를 노수신과 유희춘이 빠르게 쫓아오고 있었다.
‘억울해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대놓고 억울함을 표출할 수는 없다. 보는 눈이 있으니까.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함부로 행동하기에는, 박순은 가진 것이 많았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라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예를 들어 을사사화 희생자들이 필요 이상의 우대를 받고 있음을 시사하는 답안이 나온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점수를 잘 줘서 시선을 끌게 하거나,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언급하는 식으로 자신의 의향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일을 베팅하는 심정으로 대해도 된다.
박순의 심리 상황을 이용해서 당장 점수와 사람들의 이목을 사는 대신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왕의 경계를 살 것인가.
혹은 평이한 답안을 내놓음으로써 불필요한 경계를 배제하고 아무것도 취하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이해타산적으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별것 아닌 자리였으나, 이런 자리에서 드러내는 모습이 진짜 모습인 법이다.
‘나의 진심은…….’
-조정에 복귀한 사람들 중에서 어떤 자는 나이가 일흔이 넘었고, 또 어떤 자는 예순을 넘겼으며 또 어떤 자는 예순에 가깝습니다.
그들의 의기와 절개는 분명 숭고한 것이나 오랫동안 세상의 일에서 단절되어 있어, 모범은 될지라도 나라의 대들보가 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예로부터 인재라는 것은 이미 원숙한 자들보다는 장차 나라의 동량이 될 자질을 가진 청년을 일컫는데 쓰여 왔으니, 만일 나라가 인재를 구한다면 젊은이들 중에서 찾음이 옳습니다.
더욱이 문과(文科, 대과)의 경우에는 구례(舊例)에 따라 국초부터 서른세 명만 뽑아왔는데, 옛 사료와 지금을 비교하면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이미 마흔 명만 선발하는 한성시에 응시하는 사람이 천 명이 넘었으며, 식년시로는 이들을 다 소화하지 못하여 각종 별시를 동원하여 희망자들을 가리고 인재를 수급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본래 정도(正道)는 옳은 길이라 하였으며 잡스러운 일들은 폐단이 쉬운 법인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정도인 식년시가 나날이 쇠해하고 뭇 유자와 선비들은 별시만을 기다리며 쉽게 관문에 올라서기를 바라니 실로 통탄할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제(古制, 옛 규례)를 참조하여도 문과(文科)의 33인 정액(定額, 정해진 인원)은 정해진 바가 없는데, 이는 33인 정액이 단순히 관습처럼 내려오다 폐습으로 변질되었다는 뜻입니다.
세도(世道)의 오르고 내림은 인재의 성쇠에 매어 있고, 인재의 성쇠는 편법이 아닌 정도(正道)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잡다한 별시를 자제하고 구태의연하게 폐습에 의존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사람을 가려 뽑는다면 인재는 자연스럽게 배출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재를 어떻게 선발해야 하느냐?’라는 주제에 대한 나의 진심이었다.
나라고 대과부터 치고 관문에 들어선 순혈은 아니지만, 출신에 연연해서 하고 싶은 말을 가리고 싶지는 않다.
정도(正道)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도라 할 수 있는 식년시는 삼 년에 한 번 어렵사리 열리는데 반해, 별시는 각종 명목으로 해마다 열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역시 식년시보다는 별시에 더 기대하고 있었다.
멀쩡히 놓은 길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가꾸지 않아 여기저기 샛길이 뻥뻥 뚫리고 그것이 나날이 넓어져서 원래 길보다 더 커진 셈이다.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좀 지저분해지고 말겠지만, 나랏일은 공원이나 산책로와 비교될 대상이 아니다.
“…….”
답안을 작성했으니 이제는 제출하는 일만 남았다.
이 답안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모른다. 의외로 박순이 시큰둥하게 반응할 수도 있었고, 그저 평범한 성적으로 통과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아예 대과 초시부터 탈락하는 처참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반대로 희대의 파란을 일으킬 답안이 될지도 몰랐다. 내 예상보다 박순은 지금 조정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척이나 불쾌해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 예정이건 지금의 내가 알 수 있겠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심 그대로를 담아낸 답안을 제출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거다.
나는 답지를 말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며칠 뒤.
북촌 일대가 굉장히 소란스러워졌다. 식년시가 있는 시기다 보니 원래 소란스러웠지만, 오늘은 더 소란스러웠다.
골목 너머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사람의 웃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절규와 비명이 있었고 외침도 있었다.
이런 극적인 반응이 매일처럼 벌어지는 건 아니다. 분명 이유가 있었고……, 나는 그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결과가 나왔구나.”
가슴이 쿵쾅거렸다.
한성시가 무엇인가? 천 명 넘게 응시하는데 고작 마흔 명 뽑는 시험이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상위 4%만이 고작 대과의 ‘초시’를 어렵사리 급제하게 되는 거다.
미래로 따지자면 수능 1등급 정도 되겠군.
1등급이 그다지 꿈같은 성적은 아니지만, 이건 고작 대과 본방이라 할 수 있는 ‘복시’에 응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생각하면 꽤나 빡센 기준이었다.
과연 나는 한성시에 합격한 것일까.
물론, 확인을 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잠시 뒤.
육조거리는 그야말로 인간의 천국이었다.
들어가는 사람, 나가는 사람, 우는 사람, 웃는 사람, 차마 직접 나오지 못한 지인을 대신해 확인하러 온 사람에, 주전부리를 가져와 그 와중에 상재를 발휘하는 사람까지!
발을 밟고 밟히며 막무가내로 인파를 파고드니 한참 후에야 합격자 방이 붙은 곳에 이르렀다.
거리가 멀어 글자는 까마득했지만 분간할 정도는 됐다. 방의 상단과 측면에 문장이 쓰여 있었지만 보나마나할 터라, 나는 빠르게 순위표부터 훑었다.
그런데 엄청 익숙한 한자가 초장부터 눈에 들어왔다.
漢城試 合格者 名單
一等 李純信
二等 徐廷玉
三等 崔千東
…….
‘일등, 이순신?!’
분명 나의 이름이 맞았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솔직히 육조거리에 나와서는 합격자 말석에만 있어도 천만 다행이겠다 싶었다. 눈앞에 바글바글 모인 인간들 중에서 고작 한 줌만 합격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해버렸으니까.
그런데 나의 이름 석 자가 당당하게 일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과 초시에 불과했고 그래서 장원 운운은 우스웠지만, 그래도 일등은 일등이었다.
“흐아…….”
나는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옆 사람 볼을 꼬집었다.
“으, 으응?”
옆 사람이 화들짝 놀라더니 별 미친 놈 다 본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극적으로 반응해주는 것을 보니 꿈은 아닌 모양이었다.
* * *
“그럼 자네, 이제 복시를 치는 겐가?”
정철이 물었다.
평소처럼 거나하게 취한 얼굴이었지만, 굉장한 놀라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 역시 기원은 했으나 정말로 내가 한성시를 당당하게 까부술 줄은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동명인이 아니었다면 복시를 치게 되겠지요.”
“허어……. 놀랍고 놀랍네, 이 사람아. 어떻게 고작 반년 공부했다고 한성시를 그렇게 급제해버린단 말인가?”
“많은 분들이 뜻을 함께해주신 덕이지요. 감사주 한 잔 올리겠습니다.”
“어, 어. 그래.”
정철은 술잔을 들면서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정철 곁에서 이산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에게 준 주석본은 도움이 되었던가?”
“물론입니다.”
이산해는 반년 사이 직제학에서 대사간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정삼품 관직이지만 대사간은 차관인 직제학과 달리 장관직이다.
그야말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이산해의 출세가도에 그동안 꿀린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번에 한성시에 떡하니 장원으로 합격해서 나도 면을 세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더 기쁜 점은 나에게 합격을 기원해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응원에 고마움을 표하는 최상의 방법이 좋은 결과로 보답해주는 것이니까.
“대사간 영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제가 초시에서라도 장원을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흐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
이산해는 썩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전시는 등수만 나누는 시험이고, 이미 관리가 된 첨정께서는 대과의 등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복시에만 착 달라붙으시게.”
“착 붙겠습니다.”
“그러게.”
정철과 이산해 외에도 주변에 사람은 많았다. 다들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사람들이다.
그래도 고작 초시 합격한 걸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른 감은 있다. 곧 복시가 치러질 터인데 긴장의 끈을 놓아서 되겠냐는 것이다.
내가 어지간한 등수로 초시에 합격했다면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딴에 장원을 한 걸 보니 역시 될 놈은 되는 게 또 세상일이었다.
만일 내가 복시에서도 될 놈 같으면 어련히 붙겠지. 아니 그런가?
‘애초에 반년 공부해서 삼십 년 한평생 공부한 사람들을 넘어서겠다는 것 자체가 도둑놈 심보였다니깐.’
나는 이이에게 구도장원공 붓의 신령스러움을 과장스럽게 설파하고는, 다함께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 * *
왕은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에도 매번 날카롭게 반응하니 궁인들도 학을 뗄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눈총을 사는 순간 두고두고 그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궁궐의 뒷문을 나선 사람이 양손을 들어도 다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편전의 복도는 한밤처럼 적막하기 짝이 없는데…….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를 내며 왕의 집무실로 향하는 존재가 있었다.
유일하게 왕의 곁에서 약간이나마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허락된 자들이었다. 승전색(承傳色). 왕과 승정원 사이를 이어주는 내시들이었고, 그 외의 잡다한 심부름도 거들었다.
역할이 역할인 만큼 평소에는 승정원에서 한 바가지 공문을 가져와, 그새 처리된 한 바가지 공문을 다시 승정원으로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일은 조금 특별했다.
집무실 앞을 지키던 늙은 내시가 승전색의 등장에 입을 열었다.
“전하, 승전색 정신붕 입시이옵니다.”
“들라 하시오.”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의 대답이 있은 뒤.
늙은 내시는 문을 좌우로 열었고 그 사이로 승전색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곳에 자리한 왕은 무척이나 젊고 어렸으나, 외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지배적이었고 무척이나 예민했다.
복도에서도 조금의 발소리는 내던 승전색도 집무실에서는 아주 조용히, 앞으로 나가 허리를 숙였다.
“전하, 하명하신대로 한성시 장원 이순신의 대책을 가져왔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