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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42화 (42/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42화

16. 하늘을 울게 만들(1)

“도성에서의 근무는 어떤가?”

정철이 물었다.

이제 막 자리가 시작되었건만 그는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나와는 술 먹는 속도가 다르니 자작이라도 때려가며 들이킨 탓이었다.

“그럭저럭 지낼 만합니다.”

“군기시에서 나쁜 녀석은 없던가? 젊은 친구가 자기 머리 꼭대기에 앉았다고 질시하는 녀석들 말이야.”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잘 지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정말 나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지요.”

“다행일세. 조정에서 첫 관직을 지낼 때부터 질 나쁜 인간이 곁에 있으면 많이 피곤하지. 그래서 아예 사모를 던져버린 사람도 있거든.”

“뭐든지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지요.”

“맞아. 그럴 때마다 내가 찾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 친구만 만나면 또 내가 기분이 아주 좋아지거든?”

정철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 친구란 것이 사람은 아닐 터였다. 정철은 애주가였고 제정신일 때나, 취했을 때나 술에 대해 찬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도 그 친구를 접하고 계시군요.”

“그렇지, 암.”

정철은 기꺼이 긍정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좋은 술을 내놓아서인지 정철은 썩 즐기고 있었다. 사람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손님이 기뻐하는 것만큼 주인이 기분 좋은 일은 없었다.

앞으로도 다른 손님들을 차근차근 부를 생각이었다. 내가 도성에 돌아왔다는 소식은 이미 여러 지인들의 귀에 들어갔을 거다. 재회를 기대하고 있을 터이니, 그 기대에 부응해줘야지 않겠나.

정철이 말했다.

“이번에 숭신방에 집 몇 채를 사들였다는 말이 있는데, 어쩌려고 그런 겐가? 숭신방에서 살려고 그런 건 아닐 테고.”

“큰 건물을 하나 올릴 생각입니다.”

“무슨 건물을?”

“도성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여전히 많더군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오.”

정철은 짧게 감탄했다.

군기시에서 화약의 성능과 보존성을 개량하는 가공법이 개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량의 전분과 물만으로 가능한 가공법이었기에 조정의 인사들은 왈가왈부 없이 도입했다.

이외의 자세한 전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중심에 신입 첨정 이순신이 있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부임 첫날부터 이뤄낸 일이라 군기시에서부터 떠들썩한 탓이었다.

그마저도 충분히 놀라운 소식이다. 그런데 이제는 예전부터 해오던 일을 더 확장하겠단다.

“이제 회령에서 돌아왔으니 휴식에 집중할 사람은 없는데 참으로 열심이로군.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없겠나?”

“막상 건물을 올리려다보니 생각보다 신경 쓸 일이 많더군요. 대목장도 수배해야 하고 자재도 조달해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으니 까마득합니다.”

대목장(大木匠)은 건축물을 전담하는 목수를 뜻했다. 가구들을 만드는 소목장(小木匠)과는 정 반대의 존재다.

건물을 올리는 과정에는 지붕에 기와를 얹을 개장(蓋匠), 뼈대 사이로 벽을 올리는 이장(泥匠), 주춧돌을 조달하고 설치할 석수(石手) 등도 필요했지만 총괄은 대목장이 맡았다.

그만큼 대목장은 건축 과정에서는 필수불가결의 존재였다. 또 목질이라는 것은 종류도 많고 민감한 자재인 만큼 다루는 사람의 기술과 숙련도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도성에는 널린 게 사람이니 수배를 한다면 한 트럭 분량의 대목장을 얻을 수 있겠지만, 곧 쓰러질 집을 짓는 게 아닌 만큼 옥석은 가려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옥석을 가릴 안목이 없었다. 건축에 대한 식견이 전혀 없었으니까.

“곤란하게 됐군.”

“예. 원래 다 겪으면서 배우는 거지만 이럴 때에는 지름길이 아쉽군요. 혹시나 도와주실 분을 알고 계시다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도와주실 분? 하하하. 그럼 잔이나 한 번 채워보게. 부탁하는 사람의 정성을 담아서.”

정철은 자신이 막 자작으로 채운 잔을 입에 털어 넣고는 내밀었다. 술독인지,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노회한 인상을 가진 정철치고는 유치한 행동이었다.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하하하!”

내가 어울려주며 술잔을 기울이자 정철은 만족한 듯 대소했다.

“그럼, 그새 나보다 윗줄이 되어버린 첨정나리께서 직접 따라주신 술을 맛볼까?”

음미랄 것도 없었다. 정철은 이번에도 단숨에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술 자체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도 취기와 분위기,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 좋다. 좋아!”

“이제 쇤네를 도와주실 기분이 나십니까?”

“암!”

정철은 용케 술잔까지 내려놓고서 입을 열었다.

“마침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대목장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 권 가(家)라고, 재상 어르신들 집도 몇 채 지어본 사람일세. 한 번 봐두겠나?”

“물론입니다! 좌랑께서 소개만 해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지요.”

“하하……. 그럼 감사주 한 번 받아볼까?”

정철은 태연하게 잔을 내밀었다.

* * *

대목장 권 가(家)는 깐깐한 사람이었다.

생긴 것도 꼭 성격대로였다. 검버섯 사이에 날카로운 눈이 빛을 발하는데……, 확실히 보통 사람의 인상은 아니었다.

“여기 집들을 전부 해체하고 부지 전체에 큰 건물을 하나 올리시겠다고 들었습니다.”

“예. 백 명 정도가 생활하면서 창고 역할도 할 건물을 세우려 합니다. 되겠습니까?”

“노비 일백에 창고 역할이라.”

권 가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마 마음속으로 건물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안은 쓰일 수 없었다.

“노비가 아닙니다. 전부 집의 주인이 될 사람들입니다.”

“아.”

권 가가 짧게 감탄했다. 그리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외지로 나섰던 관리의 귀환은 보통의 도성 주민들에게는 특별한 소식이 아니었으나, 여느 선비와는 달리 의를 몸소 행하는 이순신만큼은 예외였다.

권 가 역시 며칠 전 이순신이 귀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권 가에게는 남 일이었으나, 곧 그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기꺼이 응한 권 가였다.

“소인이 오해를 했군요. 송구합니다.”

“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도 권 대목장처럼 생각했을 겁니다. 그게 일반적이니까요.”

“음.”

“이해를 해주셨다면 설명이 쉬워지겠군요. 제가 말씀드린 백 명의 사람들 모두 베를 짜기 위해 거처에서 오랫동안 머물 사람들입니다. 대체로 몸이 안 좋은 분들이시니 그 점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장소이다 보니, 그만큼 재산도 많이 쌓이게 됩니다. 하물며 숭신방은 성 밖이다 보니 우려가 되더군요.”

방범 기술이 발달한 미래에도 잊을 만하면 절도사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사백 년 후의 미래조차 그럴진대, 요즘 세상에서 도둑이 얼마나 많겠는가?

도성에서는 순라군들이 딱따기를 치며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순라군의 존재를 모르고서 도둑이 된 사람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숭신방은 성 밖에 있었다. 만일 내가 세우려는 거처에 많은 재산이 비축된다면 도둑들이 개미처럼 모여들 게 분명했다.

“도둑을 방비하는 방법은 제한적입니다만…….”

“무엇입니까?”

“사람을 세워두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이 살게 된다면 돌아가며 번을 서게 하면 그만입니다. 잘 지킬지는 의문이지만, 이 편이 가장 이상적이지요.”

“집을 짓는 차원에서는 방비할 수 없는 겁니까?”

“그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담장을 높이는 것이지요. 단순하지만 확실합니다.”

직관적이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구조적으로 침입을 어렵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벽이 아닌 건물을 외벽으로 두르고, 창고를 여러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설치하는 것이지요.”

“흠.”

일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형태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특별할 정도는 아니었다. 북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집이 그러했으니까.

다들 2m를 훌쩍 뛰어넘는 높이의 담장에 그마저도 일부를 건물 외벽으로 대체해서 하나하나가 요새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뭐, 삭막하긴 하지만 내가 애써 일군 재산을 도둑들에게 나눠줄 이유는 하등 없잖은가? 게다가 이 거처에서 만들어질 재산은 나의 재산이 아니라 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애써 모을 재산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예산은 많이 늘어날 겁니다.”

“괜찮습니다.”

두 해 만큼의 소출이 쌓인 덕에 재산에는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1기 베 짜는 사람들이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번 거처를 올리는데 그동안 모아둔 재산을 기부한 것이다.

“만일 예산이 넉넉하시다면, 이따금 일손들에게 대접을 해주셔도 좋을 겁니다. 사기와 작업속도를 올리는 데는 그만한 게 없으니까요.”

“대목장께서 원하시는 만큼 집행해주세요. 믿고 맡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권 가도 바라는 일이었다.

그가 주로 작업해온 공사들은 모두 여유 있는 자들의 주문으로 이루어졌다. 대부분은 필요한 일이라면 그의 자율 집행을 인정했다.

능력이 이미 검증된 자이기도 했지만 예산으로 장난 칠 사람 같았으면 아직까지 일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설계 초안은 직접 보고 싶습니다. 삽을 푼 뒤에는 늦을 테니까요.”

“물론입니다. 설계가 잡힌다면 바로 댁으로 한 부 보내겠습니다.”

“그럼……, 오늘 바로 착수하시는 겁니까?”

“집에 돌아가는 대로 일을 시작해야지요.”

“하루 정도는 각오를 다지는데 써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중대한 일을 맡아주셨으니 삯 외에도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말에 권 가는 만족한 듯 빙긋 웃었다. 눈빛은 여전한 탓에, 순수한 기쁨보다는 나를 향한 인정 같은 느낌이었다.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앞으로도 자리를 몇 번 더 가져야겠군요.”

나는 을룡을 불러 주안상을 내오게 했다. 그동안 몇 가지 시답잖은 대화가 오갔다. 일 이야기는 끝났으니까.

권 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의 새 직무였다. 도성에 소문이 자자하다나 뭐라나?

그렇다면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비슷한 소문이 더 돌 거라는 점이었다. 이미 다음 일이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 * *

“자네의 기획대로라면 정말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겠군.”

심의겸이 말했다.

하지만 하는 말과는 달리 어조는 밝았다. 그는 나라의 무기를 총괄하는 군기시의 장관이었다. 그에게 무기란 무서울수록 좋았다.

이순신이 제공한 도면과 개념은 실로 놀라웠다.

이전까지 화약의 폭발력이란 대부분 발사체의 추진 용도로만 쓰여 왔다. 총통류는 물론 신기전까지 포탄과 화살을 쏘기 위해 화약을 이용했다.

물론 중, 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 같은 무기도 있었다. 효과적이었지만, 발사체에 추진제만 아니라 장약까지 장착된 만큼 무거워져서 소모되는 화약은 많았으나 폭발력은 형편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적병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폭음으로 사기를 꺾는 것을 목표로 쓰였으며, 화약이 귀해진 지금은 생산량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첨정이 고안한 이 무기는…….’

금속 소재의 구형 통을 화약과 철편으로 채우고 지연신관을 심은 폭탄!

단순한 형태였으나 그만큼 목적 또한 명확했다.

불을 붙여 적진에 던지면 그만이다. 심지가 다 타면 폭발해서 수많은 철편을 흩날리겠지. 몇 장 안에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벌어질 거다.

물론 이러한 개념의 무기는 이전부터 있어왔다. 질려포(蒺藜砲). 나무통에 화약과 마름쇠를 채운 폭탄이다.

하지만 직접 손으로 투척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고도로 훈련된 강군이라면 폭탄을 들고 적진으로 나아가는데 거리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군은 그것이 가능한 강군이 아니지.’

그런데 첨정이 제안한 무기는 그 단점을 명확하게 해결했다.

대포로 폭탄을 날릴 수 있었으며 폭탄은 발사시의 충격을 받아내기 위해 금속 소재가 사용됐다. 보다 용이하게 발사가 가능해진 만큼, 장약도 많아져 화력이 증대됐다.

이 신무기의 이름은,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라…….”

날아서 공격하는, 하늘을 울게 만들 폭탄이라.

마음에 꼭 드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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