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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38화 (38/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38화

14. 배웅을 받으며(1)

다사다난했던 여름도 이제는 무르익었다.

밭은 기장은 물론 잡초 같은 다른 곡식들이 줄지어 늘어서 거대한 들판처럼 보였다.

회령이나 주위 육진에서는 흔한 잡곡인 기장은 파종 후 세 달이면 익어버리는 단순한 녀석이었으므로, 이제는 기장도 수확철을 고작 달포 앞두고 있었다.

곧 수확이 이루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분명 남의 농사인데도 내가 다 뿌듯했다.

변경은 조용했으며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거대 부족을 이끌던 율호가 진압당하고 전말이 알려진 덕이겠지.

이따금 병사들을 위안하기 위해 볼하진을 찾을 때면 여러 사람들이 반겨주었다. 이전처럼 조선 출신과 여진족 사이의 날선 경계는 없었다.

한 차례 전투로 전우애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나와 감부의 지속적인 노력 덕일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회령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그 끝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회령부사 장필무가 말했다.

“조정에서 자네의 공훈을 치하하기 위해 조봉대부(朝奉大夫)로 가자하고 사복시 첨정에 제수하였네. 임기의 반의 반도 채우지 않고 회령을 떠나겠군.”

올 초에 회령에 도착해서 이제 여름의 끝을 보고 있었다. 장필무의 말대로 나는 고작 반년도 안 되어 회령을 떠나게 됐다.

“가급적이면 회령에서 더 머무르며 부사 영감을 보필하고 싶습니다.”

“나 역시도 그래줬으면 하네. 하지만 자네가 지금 도성으로 가지 않으면 언제 또 기회가 있을지 몰라. 빈자리란 항상 있는 게 아니니까.”

“이제 업무에 익숙해졌는데 기회가 있다고 회령을 박차고 나가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고작 반년 만에 새로운 판관이 부임하면 또 회령은 어수선해지겠지요.”

“음…….”

장필무로서도 이순신이 아깝긴 했다.

부산진 첨사, 만포진 점사, 강계부사, 그리고 회령부사까지 문무를 막론하고 여러 지방관직을 보내왔지만 지금처럼 만족스러운 적이 없었다.

이순신은 맡긴 일은 척척 해냈으며 정기적으로 자신 관할의 업무도 스스로 해결해냈다. 물론 일반적인 업무에 유능한 자는 많았다.

그럼에도 판관은 그 이상인 자였으며, 실제로 원정 당시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주위 번호들의 손실과 회령부의 신뢰도 하락을 완벽하게 방비했다.

원정을 촉발시킨 볼하진 습격의 배후를 정확하게 찾아냄으로써 말이다.

나아가 번호들은 보다 성장했으며 서로 분쟁도 일으키지 않았다. 이러한 여진족의 규합은 우려스러운 일이었으나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조짐은 추호도 없었다.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회령이 이 같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다른 육진 지역이라도? 없었다. 오직 이순신이 판관으로 복무하는 이 순간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순신을 항상 곁에 두고서 자신을 보필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는 식객이 아니라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였다. 앞으로는 자신보다 훨씬 성장할.

때문에 이순신을 붙들어놓을 수 없었다. 죄 짓는 기분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제가 남아있기를 원한다니…… 장필무도 마음이 동했다. 항상 이순신의 의견을 존중해주었으니 이번이라고 달라질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개의치 않네. 판관이 나를 걱정해줄 이유도 없고.”

장필무는 최후의 배려를 행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여전히 당돌했다.

“어렵사리 얻은 기회이긴 하지만 제 자질이 거짓이 아니라면 기회는 다시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못하면 처음부터 제 그릇이 여기까지겠지요.”

물론 그럴 일은 없겠다만.

장필무는 생각했다.

“알겠네. 자네의 의사가 정 그렇다면 조정에 공문을 올려보게. 나 역시 자네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상주하겠네.”

“감사합니다.”

나는 허리를 꾸벅 숙인 뒤 물러났다.

조정에서 준 기회는 고마웠지만 회령에서의 인연을 쉽게 저버릴 수는 없었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많은데 밧줄 하나 내려왔다고 그거 잡고 홀라당 넘어간다?

대외적인 인상은 둘째치더라도 나 스스로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당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순신인데. 나한테 기회를 더 안 주면 내가 아쉽나? 임진왜란을 맞을 조선이 아쉽지.

* * *

늦은 밤.

회령과는 달리 도성의 여름은 무척이나 후텁지근했다. 해가 떨어지고도 세 시진이나 지났건만 여전히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약간의 선선함만이 위로가 되어주는 정도였다.

그 사이에서 선조는 서류를 만지고 있었다.

하루는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사자를 보내 근황을 물으니, 제갈량이 식소사번(食少事煩)한다고 답했다던가?

식소사번이란 말 그대로 밥은 적게 먹고 공무는 다망하다는 뜻이다. 그 대답에 사마의가 우려하기를 안능구호(安能久乎)라 하였다.

어찌 그런 삶이 오래갈 수 있겠냐는 뜻이었다.

근래의 선조는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집무만 보아 소화불량에 걸렸다. 덕분에 식사량은 자연히 줄어들었는데 일감은 여전했으니 제갈량의 식소사번과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왕자시절 잘 먹어 통통했던 살들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초췌한 몰골 덕분에 괜히 더 말라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전에는 궁인들이 우려를 표했으나 선조의 공격적인 대응에 더 이상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조는 다만 업무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조봉대부 사복시 첨정에 친히 제수를 해주었거늘 아직 회령의 공무가 많이 밀려있어 나오기 힘들다?’

‘부사도 마찬가지로군. 판관이 유능한 사람이니 조정에서 일하는 것이 옳음을 아나 의지가 분명하므로 그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니…….’

사실 이 장계를 접한 것은 금일 오전 어전회의 때였다.

정전의 유력한 대신들은 이순신의 빠른 승진에 우려를 보냈다. 그래서 관할인 볼하진이 적의 습격에 성공적으로 방어해내고 오신호의 확산을 막았을 때에도 논공에 소극적이었다.

마침 파견해둔 원정군이 이순신의 임지인 회령을 거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녀석이 반드시 공훈을 세울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조는 양보해줄 수 있었다.

고작 칼 한 자루 내려주는 것으로.

전통적으로 장수에게 칼을 맡긴다 함은 군권을 맡긴다는 뜻과 동일했으며, 이순신이라면 능히 그 뜻을 읽어내고 원정에서 공훈을 세우리라.

그런 선조의 믿음은 보답받았다.

방어사 소흡과 종사관 정철 모두 회령판관 이순신의 역할을 분명히 드러냈으며, 공훈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종사관 정철이야 이전부터 이순신과 교류가 있던 자였으니(그래서 종사관으로 안배한 것이기도 했다.) 이순신을 좋게 평가하리라 짐작은 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깐깐하고 퉁명스런 늙은이인 소흡까지? 그는 배포가 그리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랫사람의 공훈을 보고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니까.

달리 말해서 소흡은 부하의 공을 탈취하는 자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의 오랜 관직생활 내내 무능력자들만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 소흡마저 이순신을 우대했다.

본인은 훨씬 큰 공훈을 가져왔기 때문이겠지.

소흡은 번호들에게 엄히 죄를 물어 볼하진 습격의 배후를 가려냈다. 그리고 번호들의 이해관계를 이용해 원정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편성한 지원군을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우군의 사상자를 단 한 명도 내지 않고 천호 급 부족이었던 율호의 수하들을 격파해냈다.

게다가 한 무더기의 수급과 수십 필의 우마, 그리고 도망치지 못한 채 포획당한 지휘관급 인사들 몇 명을 데려왔다.

하지만 이게 순전히 소흡의 공이었겠나? 그는 동북면과의 연이 없는 자였다.

때마침 그의 원정에 합류한 이순신이 회령의 판관이었다. 그가 여진족을 다루는데 통달했다는 것은 부사 장필무의 장계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또 이순신은 이번 원정에서 여진족 지원군을 전담했다. 전상자들은 여진족 지원군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놈들의 불만은 원정대나 회령에서나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소위 소흡의 공이라는 것은 이순신의 공일 게 분명했다. 커다란 떡을 입에 물려줬으니 소흡 같은 위인조차 이순신에게 기꺼이 지분을 나눠준 것이겠지.

‘그래서 내 더 크게 쓰고자 친히 교지(敎旨)를 내려 조정으로 불러들였건만!’

이순신은 응하지 않았다.

선조로서는 지극히 불쾌했다.

조정 대신들은 이순신의 기용을 반대했고 그가 거듭 품계가 오르는 것도 반대했다. 정당하게 인격과 공훈이 드러난 자임에도 말이다.

만일 자신이 대신들의 반대에 주눅들어 포기했더라면 이순신은 판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지금의 공훈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달리 말해 그가 이뤄낸 모든 것들은 선조, 자신의 안배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오만했다.

자신의 부름을 감히 거절한 것이다.

“…….”

어쩌면 편집증에 가까운 생각일 수도 있겠지.

이순신이라는 자는 대신들과는 다르게 배려심 많고 책임감 있는 자였다. 동시에 조정에서는 희박한 자질인 유능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런 인물이 어째서 자신의 뜻과 은혜를 모르겠는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없었을 뿐일 거다. 타고난 성정이 그러니까.

“…….”

선조는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합리화했다. 어쨌거나 썩 정당한 추론이었다. 사실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찝찝한 뒷맛마저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이순신은 곁에 둬야 할 인물이었고 그만큼 많이 기대했다.

그런 자가 자신의 기대와 바람을 저버렸으니 불쾌한 감정 전부를 어쩔 수는 없었다. 이제 보통의 사람이라면 보이지 않는 이역만리 오지의 상황을 쉽사리 넘겨짚거나, 자신의 추론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맹신하지도 않을 거다.

하지만 선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한 번 심어진 불쾌한 감정의 씁쓸한 뒷맛이 오래도록 남는 자였다.

그는 이순신의 의사를 존중해주기로 했다. 혹시나 보챘다가 또 배신당하는 불쾌한 감정이 들까봐. 그리고 그 배신감에 이순신을 내쳐 버릴까봐.

그래서 임기가 다 된 다음에 부르기로 했다. 그동안 불쾌한 뒷맛을 오래도록 씹으면서…….

* * *

“근래에 조정의 분위기가 좋은 편이 아니네, 첨정.”

장필무가 말했다.

내 판관 임기가 다하자 조정에서는 다시 한 번 공문을 보내왔다. 조봉대부에서 반 단계쯤 오른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임명하고 군기시 첨정에 제수하겠다는 교지였다.

더 남아있을 이유도 명분도 없었으므로 나는 선선히 교지를 받들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후임에게 인수인계한 뒤 마지막으로 부사 장필무를 뵈는 중이었다.

그 역시 임기가 끝에 달했으므로 교체될 날이 머지않았다. 어쩌면 조정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장필무는 한동안 못 볼 사람 대하듯 우려를 표했다.

“대사성이 사직상소를 올리며 영의정을 공격했네. 살아남은 쪽은 대사성이고. 그가 칼끝 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어 주위에 성한 사람을 안 남겨두긴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는군.”

장필무가 말하는 대사성은 기대승이었고, 영의정이란 이준경이었다.

과거 장필무는 기대승에 의해 한 차례 공격을 당한 적이 있었던 만큼 좋게 볼 이유가 없긴 했다. 하지만 영의정 이준경을 사직상소를 빌미로 공격했다라…….

내가 생각해도 성격 좋은 인간이 할 짓은 아니었다. 왕을 상대로 둘 중에 하나 포기하라는 겁박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 대상이 선조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기대승의 만행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대사성이 근래에 왕의 총애가 다한다 싶어 영의정을 바친 게 아닌가 싶군. 놈이 을사사화 복권 때와는 달리 입지가 줄어들었고, 영의정은 마침 왕에게 찍힌 상태였거든.”

“그래서 영의정을 축출할 명분을 제공하고 관직생활을 건사하려 했단 말입니까?”

“여기가 도성은 아니니 그 무엇도 장담할 수는 없지. 하지만 조정이란 항상 그래왔으니, 이번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지.”

“음.”

“조심하게. 모두가 도성에서 근무하는 게 훨씬 편하다곤 하지만 그건 봐주는 이 없는 참하관 때나 그럴 뿐이야. 자네의 품계와 입지가 높아질수록 시기하고 질시하는 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명심하게. 나아가 그런 단순한 악의를 떠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애먼 사람 팔아먹을 놈들도 많아!”

다분히 감정어린 조언이었다.

어째서 노회한 그가 지금의 위치에서 조정에 적대감을 드러내는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자네가 나처럼 변방만 전전하는 관직생활을 하지 않기를 바라겠네. 언제 다시 볼 일이 있다면 술잔이나 나눠보세.”

“예. 알겠습니다. 해주신 말씀은 각골명심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장필무에게 인사를 올린 뒤 관아를 나왔다.

밖에는 을룡이 말을 준비해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김자강, 석탈리와도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미 막 마지막 인사를 나눈 채로 또 찾아가는 건 민망했다.

“가자.”

말에 올라타며 짧게 이르니 을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나갔다. 두 해의 변방 오지생활을 지내며 그새 어엿한 남자가 된 을룡이었다.

올 때와는 달리 보다 듬직해진 녀석의 등판을 보면서 나는 회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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