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24화
9. 신임 회령판관(1)
“혼처를 알아보는 중이다. 형제들 중에서 아직 결혼하지 못한 사람은 너뿐이니 말이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물론 열다섯쯤 되면 다들 결혼하는 세상이긴 한데, 이런 자리에서 혼사 얘기가 나올 줄은 추호도 몰랐다.
“게다가, 네가 판관에 제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온갖 곳에서 매파를 보내왔다. 너나 나로서는 좋은 혼처를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철부지 같은 나이에 판관으로 특채됐다.
현대로 따지면 딱 20살 찍고 5급 공채 합격한 정도?
결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미래에서도 소개가 많이 들어올 경력이니, 조선시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혼기 다다른 딸을 가진 수많은 가정의 가장들이 앞 다투어 매파를 구해 의향을 알렸겠지. 어쩌면 차기 장관이 될 사람이다. 사위를 둔다면 응당 이런 사람을 둬야지.
이런 가정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내는 매파와 단자 하나하나가 아버지에겐 훈장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곧 임지로 떠날 저를 걱정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혼사란 집안의 중대사입니다. 한 사람으로서는 일평생을 함께할 배필을 맞게 되는 것이고, 두 집안은 인연이 두텁게 되는데 이런 일은 무릇 신중히 진행해야 하는 법이지, 무턱대고 서두르는 것은 좋지 못한 듯합니다.”
이 시대에서는 일반적인 일이라도,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는 부부의 연을 맺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회령은 위험한 곳이다.
그런 곳에 인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인을 만들어 함께 가다니, 상책은 아니었다. 나 하나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 테니까.
“음…….”
아버지로서도 내가 걱정하는 바를 모르지는 않으실 거다.
뜬금없이 혼사가 언급된 것도, 내가 회령에서 총각귀신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셨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응해줄 수 없었다.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의향을 보다 강하게 드러내자, 아버지께서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셨다.
“알았다. 혼사는 네가 임지를 다녀온 뒤에 생각해보자꾸나.”
“감사합니다.”
부자간의 짧은 대화가 오갔고, 동석한 사람들이 한두 마디씩 꺼냈다.
젊은 사람이 많이도 당돌하다니, 관리가 되었으니 이미 어른이라니 따위의 사사로운 말들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뭇 사람들의 잡담에 어울려주기 위해 고개를 돌리셨다.
여기에 남아있다간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으므로, 나는 허리를 꾸벅 숙인 뒤 물러났다.
간만에 고향을 찾아와 어른들과 어울리니 심신이 피로했다.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별방을 찾으니, 내심 감탄이 나왔다.
꼬박 반년이나 비어있던 별방임에도 내부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비어버린 자식의 공간에 대한 아쉬움,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와 노복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나는 그 하나하나에 감사해하며 방에 드러누웠다. 간만에 접한 고향의 향수에 나는 금세 잠들었다.
며칠 뒤, 나는 회령으로 떠났다.
* * *
“이러다 얼어죽겠습니다!”
을룡이 양팔을 낀 채 덜덜 떨었다.
인기척이라곤 하나 없는 적막산하. 눈바람이 휘몰아치는데 세 명의 사람과 세 마리 말이 샛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털옷까지 걸친 채로 엄살이냐, 이 녀석아?”
“공자님께서는 아니 추우십니까? 갓 위에도 눈이 이불처럼 깔렸다고요.”
“원래 눈 아래가 따신 법이란다.”
“…….”
을룡은 헛소리라도 듣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이거 정말이야. 눈 아래가 따듯하다는 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뭐, 춥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갑작스레 배운 승마에 허리가 아팠고, 궁둥이는 얼얼했으며 앞쪽 가랑이에는 감각이 없었다. 필경 나의 세 번째 다리가 미더덕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단지 티를 안 낼 뿐이다. 춥다, 춥다 투정을 부린다고 안 추워지는 것도 아니잖나. 빨리 임지로 가기만을 원할 뿐이었다.
마침 곁에 동행한 무관이 있으니, 회령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볼 수 있었다.
“회령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반 시진이면 도착할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이제 나리께서도 판관으로 부임하시니, 인근의 지리는 익히셔야 합니다. 지금 옆으로 보이는 산이 오봉산이고, 저기 강은 알목하라 부릅니다. 회령까지 흐르지요.”
“알목하란 여진어로 된 지명입니까? 딱 그런 냄새가 풍기는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관련된 일화도 하나 있지요.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당연히 들어봐야지요!”
나의 재촉에 무관은 흠흠, 헛기침했고 덜덜 떨던 을룡도 시선을 돌렸다.
“먼 옛날, 여진족들이 회령을 부를 때 알목하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마침 회령을 지나치는 강이 있었고, 지명인 알목하는 공교롭게도 끝 글자가 ‘하’였지요. 이를 접한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습니까?”
“알목하의 하를 강 하(河)로 착각했군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알목하는 졸지에 지명이 아니라 강의 이름이 되었지요. 이제는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예전에는 많이도 헷갈렸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군요.”
“재밌게 들어주셨다면 저야 감사하지요. 아, 저기 눈이 불룩 솟은 게 보이십니까?”
무관이 팔을 뻗었다.
실로 그 끝에 눈이 불룩 솟은 채 늘어져 있었다.
“보입니다. 저기에 뭐라도 있는 겁니까? 눈이 어색하게 쌓여 있군요.”
“예. 저기가 바로 이풍입니다.”
“이풍?”
“진보(鎭堡, 주둔지) 이름입니다. 지금은 폐한 지 오래되어 흔적뿐이고, 그마저도 지금처럼 눈이 올 때는 보이지도 않지요. 나중에 눈이 녹은 뒤 다시 찾아오시면 돌담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구경해봐야겠군요.”
“이풍까지 왔으면 이미 회령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말을 약간 재촉하면 반 각 만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어쩌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말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재촉까지 할 필요야 있겠습니까. 인수인계 받을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니 그 전에 여유나 부립시다.”
“판관나리 뜻대로 하십시오, 하하.”
대화가 멎자 말발굽이 눈 밟는 사각사각 소리만 울렸다. 그렇게 조용히 나아가니, 마침내 드높이 쌓아올린 성이 눈에 들어왔다.
회령이었다.
여러 민가를 헤치고 성문을 넘어서니 내부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넓은 대로와 그 좌우로 줄줄이 늘어선 민가들. 눈발로 흐릿해진 시야 저편에 독보적인 규모의 저택이 있었다.
회령의 관아겠지.
찾아가서 상관인 회령부사와 전임자 판관에게 인사를 드리려니, 무관이 우뚝 서며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돌아가시렵니까?”
“예. 판관나리를 회령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것이 제 임무였으니, 이제 돌아가야지 않겠습니까.”
“안에서 조금 쉬지 않으시고요?”
“쉬어도 돌아가서 쉬어야지요.”
고생하는 모습이 불쌍했지만 본인이라고 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쉬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터이니, 붙잡을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요. 다음에 또 만날 날을 기약하겠습니다.”
“예.”
무관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기수를 돌렸다.
나 역시 그의 등판을 향해 묵례를 올린 뒤 갈 길을 재촉했다. 관아는 멀지 않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다들 거친 인상이었다.
육진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부령에서도 주민들의 모습이 보통의 조선 사람과는 달랐는데, 회령은 한 술 더 떴다.
왜소한 인상이 있었지만 체격은 도리어 큰 편이었으며 얼굴은 다부졌다. 상투를 튼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머리를 짧게 깎았으며, 한결같이 털옷을 걸친 채였다.
말만 조선의 영토지 순 여진족 천지였다.
고생길이 아주 훤하구만.
주변을 구경하니 관아에는 금세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아전이 맞아주었다. 그 역시 거리의 여진족처럼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나오는 말 역시 굉장히 억셌다.
“신임 회령판관이시군요.”
외모와는 달리 능숙한 조선어였다.
말투 때문에 신분을 묻는 게 아니라, ‘회령 판관이 아니라면 찢어버리겠다!’ 하고 협박하는 것처럼 들려서 그렇지.
내가 신임 회령판관이 맞아 천만 다행이었다.
“맞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듭시지요. 부사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전은 고개를 살짝 숙이곤 발을 돌렸다.
그를 쫓아 관청으로 들어서니, 집무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중년인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이제 사오십대쯤 되었을까. 노회한 인상이었으나 나이에 비해 활발한 기운도 느껴졌다.
“자네가 새 판관인 이순신인가?”
“그렇습니다.”
회령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거의 내 코앞까지 이르러서야 발을 멈춘 그는, 나의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쫙 스캔했다.
그러더니 작은 미소와 함께 팔짱을 꼈다.
“잘도 회령을 지원했군.”
새파랗게 어린 주제에 잘도 찾아왔다는 어조였다.
밖에서도 봤지만 강 너머만이 아니라 성 안에도 위험한 여진족 아저씨들 천국인 회령. 당연히 나 같은 녀석이 좋다고 찾아올 동네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내야 할 일이 있었다. 회령에서 일하는 것 정도에 주눅 들어선 안 됐다.
“회령 정도는 되어야 소관이 재주를 다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 그래? 배짱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그 정도의 배짱도 없이 회령으로 기어왔다면 크게 실망했을 거야. 나는 회령에서 부사를 지내고 있는 장필무라고 하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잘 부탁함세. 석탈리, 이 친구를 판관에게 보내게.”
석탈리라는 부름에 아전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딱 들어봐도 조선식 이름은 아니었다. 역시 생긴 대로 여진족 사람인 모양이다.
나는 부사 장필무에게 인사를 올린 뒤 전임 판관을 찾았다. 그는 부사와는 달리 관청 밖에 있었다.
물론 관청 바로 맞은편이라,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긴 했지만 말이다.
저택으로 들어서니 쓸데없이 넓인 마당과 마침 쪽마루에 앉아있던 사내가 나를 반겨주었다.
“자네가 신임 판관인가?”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전임 판관이 벌떡 일어서니 내 입도 떡 벌어졌다.
덩치가 큰 편인 여기 사람보다 손바닥 하나 만큼은 더 컸다. 쌀쌀한 기후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이나 피부도 시커멓게 탔고, 털은 무슨 와이어처럼 두꺼운 것이 금속성의 윤기까지 났다.
겨울만 되면 굴 파고 들어가서 잘 인상이었다.
이런 인간의 후임이랍시고 새파란 꼬맹이가 찾아왔으니 부사가 보인 반응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전임 참판은 저벅저벅 다가와서는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내 등판을 팡! 때렸다.
“으악!”
“아팠나?”
“두 대 맞으면 허리가 반대로 꺾이겠습니다!”
“약한 소리 하지 말게! 회령은 남쪽 지방들과는 달리 그리 친절한 동네가 되지 못하니 말이야.”
“으으.”
“너무 걱정하진 말게. 여기에서 석 달 구르면 나처럼 될 테니까.”
전임 판관은 껄껄 웃었다.
나도 이 사람처럼 야생 곰처럼 변해버리는 걸까?
“송구하지만 본관은 단군신화에서 등장한 웅녀(熊女)의 인간화를 역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하! 보기보다 재미있는 친구로군. 자네를 곁에 두고 농담을 나누고 싶지만, 나라고 회령에서 말뚝을 박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정이 안 든 건 아니지만 이제 떠나야 하거든.”
나도 바라는 일이었다.
이런 인간이 선임이랍시고 곁에 남아있으면 지옥이 펼쳐질 거다. 자신과 똑같은 곰-인간으로 만들려 들 테니까.
곰-인간께서는 저택을 향해 팔을 뻗으며 말했다.
“이제부턴 자네가 머물 거처네. 자료들은 항목에 따라 잘 정리해두었으니까, 부사께 방해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탐독해 두게. 그리고 최근 강 너머의 김자강이라는 자가 행동이 좋지 않으니 유의하고.”
“김자강이라면……. 조선인입니까?”
“아니. 이름이 조선식이긴 하지만, 단지 조상이 귀부하며 받은 김씨 성을 이었을 뿐이야. 김자강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것 같더군.”
썩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습니까?”
“아직은. 하지만 여기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면 수상한 기류에 민감해지기 마련이지. 그런 걸 감지하지 못한다면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그리고 내 육감은 조만간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다고 경고하더군.”
“음…….”
“알아서 잘 처신해주길 바라네. 만일 김자강에 의해 유사시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네 역할이 막중할 테니까.”
회령의 판관은 함경북도의 병마절제도위를 겸한다.
유사시 부사와 함께 병력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부사는 회령을 지켜야 하니, 군이 회령 밖으로 움직일 일이 생긴다면 내가 나서야 했다.
“알겠습니다. 김자강에 대해서는 주의하겠습니다.”
“내가 느낀 이상이 단지 기우로 끝난다면 좋겠군. 그렇지 않다면,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네.”
“감사합니다.”
전임 판관은 대화가 끝나자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반 각쯤 되어서 다시 나왔다.
“집이 낡은 구색이 조금 있지만, 적어도 자네 임기 동안 무너질 일은 없을 거야. 감부(勘簿)?”
감부라는 부름에 석탈리가 답했다. 그가 그냥 아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말씀하시지요.”
“말 한 필 내어주겠나?”
“떠나시렵니까?”
“다음 사람이 왔으니 나는 빠져줘야지.”
“짐은 다 챙기셨습니까.”
“올 때도 몸 하나만 가져왔네. 짐이랄 것도 없지.”
“금방 내오겠습니다.”
석탈리는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저택을 나섰다. 그 광경을 잠시 보던 전임 판관이 석탈리를 쫓았다.
“같이 가세.”
그러더니 문간에 이르러서는 나를 향해 한 마디 툭 던졌다.
“고생하게!”
그러고는 피식 웃곤 사라졌다.
통성명 한 번 없이 가버리는군. 뭐, 이제는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니 성명이 어떤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전임 판관은 다시 저택을 찾지 않았다. 정말로 그대로 떠나버린 모양이었다.
반 각쯤 되어 석탈리가 다시 돌아와 말했다.
“부사께서 직무는 내일부터 맡기시겠다 하십니다. 그동안 쉬고 계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석탈리는 으레 보여주었던 까딱, 고개만 움직이는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폭풍 같은 순간이 지났다. 이제 저택에는 나와 을룡뿐이었다. 그동안 조용하던 을룡이 저택을 스윽 둘러보더니 물었다.
“밥은 혼자 해먹어야 한답니까?”
“그렇지는 않을 거야. 전임 판관도 혼자서 지냈는데, 보아하니 부엌 찾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부엌 찾을 일이 있다면, 차라리 동개일습과 고기칼을 챙겨 산이나 찾았을 거다.
짐승 하나 잡아서 그 자리에서 뜯어먹는 것이 전임 판관의 인상에 훨씬 어울리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과연 때가 되니 공노비들이 저택을 찾았다. 사람이 둘이라는 걸 언제 전해들었는지 밥상도 두 개였다.
푸석푸석하게 생긴 아줌마 노비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반 시진 뒤에 상을 거두어 가겠습니다요.”
“그러세요. 고생하셨습니다.”
나의 반응이 이외였을까?
노비 아줌마는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깊게 숙이더니 동료들과 함께 물러났다.
밥상은 단출했다. 기름기 하나 없는 건조한 잡곡밥에, 정체불명의 갈비찜, 그리고 간장과 소금이 각기 한 종지씩이었다.
“공자님, 이거 완전 왕건이인데요?”
을룡이 갈비를 한 덩이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에서는 고기가 잘 나나보다. 뭐, 사는 사람도 얼마 없고 지형은 거치니 짐승 살기에는 딱 좋지. 그런데 무슨 고기려나?”
비주얼은 꽤 덩치가 있어 보이는 짐승의 고기였다. 살이 붙은 갈비뼈가 사람 손가락보다 더 두꺼웠으니까.
이런 고기는 흔히 소고기인데…….
“윽.”
한 점 물어보니 오묘한 맛이 났다. 분명 소고기와 비슷했으나, 마치 시궁창에다 절여놓은 듯 역한 냄새가 났다.
“이거 도대체 무슨 고기냐?”
“소인도 잘…….”
“이야. 씨. 이런 건 줘도 못 먹겠는데?”
내가 고기를 내려놓자 을룡이 실실 웃었다.
“먹을 게 없으면 결국 드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건, 뭐……. 그렇겠지.”
“지금부터라도 익숙해지셔야지요.”
“제기랄.”
나는 다시 고기를 집어 들었다.
이게 노루 고기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전임 판관이 남긴 문서를 탐독한 뒤였다. 회령의 특산품이 노루와 사슴이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