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19화
6. 어이 늙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4)
웅성웅성.
일단의 사내들이 과천현 관아에 모였다. 다들 기분이 좋은지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감탄까지 내뱉었다.
“어우, 이 집 잘하네!”
사내들에게 과천현 관아는 맛집이었다.
타격감 맛집!
다들 신의와 원수진 사이였다. 신의가 옥에 갇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지금, 많은 사람들이 몽둥이와 최소한의 자제력을 갖춘 채 관아를 찾았다.
덕분에 관아에는 매 맞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푸들푸들 살이 늘어졌던 신의는 연육작용에 의해 보다 쫄깃해졌으며, 덕분에 숙성된 타격감을 가지게 되었고 말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신의의 자해로만 취급되었다.
과천현 현감이 조금만 더 욕심 있고 농담까지 좋아했다면, 필경 입장권과 타격권을 팔아서 큰돈을 벌었을 텐데 말이다.
사람이 딱딱하다보니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계가 인정하는 바였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신의에게 내릴 공식적인 처벌을 논의하고 있었다.
선조와 대신들은 신의의 죄악을 되새기기 위한 회상의 시간을 가졌다. 여전히 경천동지할만한 놀라운 기행들이 나열된 뒤, 영의정 이준경이 요약했다.
“영천위 신의는 성정이 극악하고 패려한 인물로 진상이 이러하니, 사사로운 죄과들은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 지경이옵니다.”
물론 이준경은 더 짧게 요약할 수도 있었다.
영천위 그 새끼는 아주 그, 유명한……, 어…… 씨, 씹새끼?
하고 말이다. 다만 어전에서 나올 수위가 아니었으므로 자제할 뿐이었다.
“지금에라도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않으면 필히 한 층 더 오만해져 전하의 치세에 누를 끼칠 것이오니, 엄벌을 내림이 옳을 것입니다.”
이준경의 공론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조의 의향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소. 명종대왕께서는 신의가 개심하기를 고대하여 많은 선처를 해주었으나, 신의는 도리어 더욱 방자해졌으니 불충한 자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신의의 악행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으니, 이제는 처벌을 정해야 할 때였다.
제일 먼저 나선 사람은 이조판서 박영준(朴永俊)이었다.
“만일 신의가 유배를 가게 된다면, 배소가 있는 지역의 목민관에게 신의를 엄히 감시하라고 주지시켜야 하옵니다.”
유배를 보낸다면 이전과 같은 만행을 다시 저지르지 못하게 해야 된다!
박영준의 의사였다.
신의가 배소를 빠져나와 일대의 주민을 괴롭히고, 나아가 배소를 이탈하여 도성에까지 등판한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배소가 있던 지역의 목민관도 희생당했다.
부자(父子)의 파란만장한 기행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두 명의 군수가 파직 당하였으며 도지사에 해당하는 감사는 청문까지 당했다.
왕까지 항복하게 만든 신의에게 군수와 감사를 엿 먹이는 일 따위는 간식거리도 되지 못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준경이 나섰다.
“신의는 위리안치(圍籬安置)의 형을 받고도 기어코 배소를 이탈하여 도성으로 상경하였사옵니다. 본래 위리안치라 함은, 담장에 가시울타리를 치고 주변에 병사를 두어 절대 죄인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인데 기어코 나오고 만 것입니다. 이를 위해 신의가 몇 번이나 울타리를 넘으려 했겠사옵니까?”
족히 수백 번의 시도가 좌절되었을 터.
신의는 자신의 존재감을 사회에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억압과 규제가 강요되어도 뻔뻔히 극복해냈으며, 이를 통해 특권층 편애를 정면으로 규탄하고 법질서의 무상함과 약자들의 취약성을 정면으로 증명해냈다.
어쩌면 사람들은 신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신의는 ‘종친이라면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되어야 하는가?’ 라는 화두를 제시하는 사상가였으며, 사람이 어디까지 저열해질 수 있느냐를 시험하는 철학가였다.
단지 사람이 과격하다보니 왕가를 우롱하고, 사람을 죽이며, 간간히 폭행과 강간, 약탈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아니면, 그냥 미친놈일 뿐이던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신의는 일반적인 유배로는 그동안의 죄과를 청산할 수 없는 자이며 계도되지도 못하는 자이옵니다.”
“극형에 처하라는 말이오?”
“그런 처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뜻이옵니다.”
제신들이 긴장했다.
유배 이상의 처벌은 죽음뿐.
물론 지엄한 조정의 명령으로 죄인 하나 죽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신의가 부마라는 점이 걸릴 뿐이었다.
특권층 하나의 죽음은 또 다른 특권층의 죽음을 예지했다. 뭐든지 처음이 쉬운 법이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특권층은 노령으로 인한 죽음이 아닌 이상 불멸이 약속되어야 했다. 그래서 특권층인 것이다.
하물며 신의는 부마. 왕의 딸과 혼약을 맺은 존재로 특권층 중에서도 특권층이었다. 이런 자를 제거하는 것은 왕가의 권위에도 손상을 입힌다.
신의가 그동안 저지른 죄악을 감안하면, 어떻게든 죽어주는 편이 좋겠으나 조정의 명으로 죽이는 것은 그림이 좋지 않았다.
선조가 물었다.
“자진(自盡, 자결)을 명하는 건 어떻소?”
타협안이었다.
알아서 죽으라는 것.
그러나 신의가 그리 만만한 인사던가? 죽으라고 예, 하고 죽을 놈이었으면 애초에 지금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다.
영의정 이준경이 아뢨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미 명종대왕께서 신의에게 한 차례 자진을 명하신 적이 있사옵니다.”
언젠가 문정왕후가 신의를 부른 적이 있었다.
그에게 시집 간 딸 경현공주가 너무나 고생하니 장모 입장에서 사위를 타이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친척들과 함께 조선을 반쯤 망가뜨렸던 여걸 문정왕후도 신의에게는 끗발이 딸렸다. 신의는 문정왕후의 부름을 상큼하게 무시한 뒤 공공연히 문정왕후를 욕하고 저주했다.
장모이자 왕의 어머니를 모욕하여 충과 효를 동시에 부정하는 초천재적인 만행을 접한 명종은 대노했고, 결국 특명을 내렸다.
위리안치하되 가시울타리를 각별히 굳게 설치하게 하며, 배소가 있는 지역을 엄히 단속하게 하고 신의에게는 ‘반드시’ 자진하라 명한 것이다.
“하지만 신의는 살아있지 않은가.”
그랬다.
신의는 자진하지도 않았으며, 왕명으로 각별히 굳게 설치한 가시울타리도 넘어, 엄히 단속되고 있는 고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도성으로 올라가 부녀를 간음하고 양민을 약탈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왕명을 거역하고 왕을 능멸한 죄로 즉참하여도 모자라겠으나, 명종은 결국 신의를 죽이지 못하고 정식으로 해배해주었다.
“단단히 죄주시고자 하신다면 용단을 내리실 수밖에 없사옵니다.”
왕명으로 죽이는 수밖에 없다.
이준경의 단호한 말에 선조는 한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만일 신의가 벼락이라도 맞고 뒈졌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선조는 하늘을 저주했다. 물론 하늘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신의의 생사는 명백하게 선조에게 달려있었다.
왕의 용단이 가장 절실한 이 시점에서, 선조가 선택한 것은 용단이 아니었다.
“……지친(至親, 종친)을 나라에서 명하여 죽게 하였다가 뒷말이 나올까 우려스럽다.”
꼭 신의를 죽여야만 한다면 나 대신 너희 중 하나가 나서서 강권해 달라. 그래야 뒷말이 나오면 책임을 전가할 수 있으니까.
“하오시면 유배하소서.”
“……다시 유배를 보내면 필경 배소를 빠져나와 난동을 부리지 않겠는가.”
선조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이준경은 침묵했다. 그 침묵이 너무나도 묵직해서, 선조는 그것이 책망처럼 느껴졌다.
졸렬하게 신하들에게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것을 모를 것 같냐고.
선조는 자신이 느끼는 이 의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이준경을 노려보았다. 이준경은 능청을 떨 법도 함에도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
마치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는 듯 말이다.
“…….”
분명 이준경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자였으나, 이준경은 그것을 왕에게 빚이라도 지웠다고 착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부득.
선조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어느 누구도 왕을 책망해서는 안 되며, 왕에게 빚을 지웠다고 착각해서는 안 됐다! 그건 왕을 우습게 생각하는 역적들이나 할 발상이니까!
불쾌한 침묵이 이어질 동안.
선조는 들끓는 노기를 갈무리했다. 당장 이준경의 오만한 혀를 잘라버리고 싶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속으로 몇 번이나 화를 삭인 선조는 어렵사리 절제된 어조로 명을 내렸다.
“전교하겠소. 영천위 신의는 성질이 본래 패악한데 나이가 들어도 조금도 허물을 고치지 않아 공주를 박대하고 질서를 어지럽혔으며, 문정왕후와 선왕께서 승하한 뒤에도 반성하지 않고 패악을 부렸으니 죄악이 매우 심하다. 이러한 죄상을 살핀다면 극형에 처하여도 여죄가 있을 것이나, 책망할 수 없는 사람이라 유배에 처한다.”
* * *
달포 후.
신립은 몇 명의 병사들과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물길을 잘 안다는 노잡이 할아범은 감흥 없이 노를 젓고 있었지만, 신립은 사방으로 펼쳐진 망망대해에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딴 곳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단 말인가.
“제길.”
그동안 지내온 감군은 중노동이었다.
사내대장부가 되어서 구차하게 앓는 소리나 할 수 없어 티내지 않았으나, 매일처럼 이른 오후에 입궐해서 해 뜰 때 퇴청하다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래서 감군 근무가 끝나고 다시 선전관이 됐을 때는 안도했다. 선전관의 업무 강도는 감군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느슨했으니까.
하지만 기대는 다 배신당하는 법이라던가?
반년 만에 선전관청에 등청하니, 마침 위에서 내려온 중대명령이 논의되고 있었다.
달포 전 유배된 영천위 신의에 대한 교형(絞刑)이 결정됐으니 선전관 중 하나가 신의의 배소인 ‘흑산도’까지 가서 형을 집행하라는 것이었다.
그래, 흑산도 말이다.
조선 팔도 최남단에 있는 절도 중의 절도(絶島, 뭍으로 나오지 못하는 섬).
선전관청에 배속된 선전관과 겸선전관의 총액은 칠십에 달했지만 어느 누구도 흑산도 구경은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립은 선전관청 막내였다.
아.
신립은 적색 전립(戰笠)을 벗어 얼굴에 부쳤다. 연초라 쌀쌀한데도 몸이 뜨거웠다.
누구라도 그러리라. 쪽배에 켜켜이 앉은 병졸들 역시 다들 상기되거나 딱딱한 얼굴을 한 채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바다로 나오는 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 배가 전복되거나 풍랑에 휩쓸려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아간다면 목숨을 보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주로 발령 난 관리는 임지로 떠나기 전 미리 제사를 치르기도 했고, 괴력난신(怪力亂神)과 음사(陰祀)는 믿지 않는다는 우직한 선비조차 굿판을 벌였다.
그런데 신립은 제주도가 아닌 흑산도로 가고 있었다. 제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신립은 선전관청의 선배들을 저주하며 미리 쓴 유언장과 함께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잘라 집에 두었다. 해류에 휩쓸려 죽으면 시신도 건지지 못할 테니까.
“저쪽에 섬 하나 보이십니까요?”
노잡이 할아범이 물었다.
그의 손끝에 섬이 있었다. 수평선 위에 티끌처럼 솟아있어, 만일 할아범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저 섬이 바로 흑산도입니다요.”
“후…….”
신립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물론 목적지를 코앞에 둔 채 해상사고가 날 수도 있었으며, 돌아가는 길이 마냥 순탄하리란 보장도 없었지만 신립은 그런 것들은 지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퉁.
쪽배의 머리가 섬에 닿았다. 그러자 말단 병졸들은 물론 신립까지 채신머리없이 육지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바위지대를 비틀비틀 넘어 비교적 평평한 곳에 이르자, 너나할 것 없이 무릎을 꿇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
“우왁!”
“살았다!”
신립도 다르지 않았다.
“우워어어!”
한참이나 생존의 기쁨을 드러낸 신립과 병졸들은 한 곳에 모여 당초의 계획을 다시 나누었다.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한 말이었지만 유사시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었다.
신립이 말했다.
“그럼, 가자. 내 형을 집행하기 전에 죄인의 면상을 짓이겨둬야 마음이 편하겠다.”
신의란 자는 곱게 보내주기에는 쌓아온 악행의 역사가 너무나도 두터웠다.
게다가 자신을 감히 위험천만한 흑산도로 직접 발걸음하게 만든 죄, 그것만큼은 고이 넘어가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벅, 저벅. 일행은 낑낑대며 야산이나 다름없는 흑산도를 탔다. 한참이나 긴장한 채 배를 타서인지 다리에는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병졸들은 창대를 바닥에 찍으며 지팡이 삼고 있었다. 평소라면 싸대기부터 날아갈 일이었으나 신립은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창대를 뺏어 자기 지팡이로 삼고 싶었으니.
“저, 저기에 집이 있습니다요!”
마침내 병졸 하나가 외쳤다.
과연 언덕 너머에 나무껍질을 덮어놓은 집이 한 채 있었다.
“후우……. 다들 고생했다. 빨리 끝내고 쉬자.”
“옛.”
신립은 자기 무릎을 짚으며 집에 다다른 뒤, 병졸들과 함께 저택 앞에 모였다. 그리고 죄인 신의를 교형에 처한다는 왕의 지엄한 명령이 적힌 교서를 꺼냈다.
“영천위 신의는 주상전하의 교지를 받들라!”
“…….”
“영천위 신의는 속히 나와 주상전하의 교지를 받들라!”
“…….”
“게 아무도 없느냐!”
“…….”
신립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지친 것도 잊어버리곤 집으로 들이닥쳤다. 하나뿐인 문을 열어젖히니 텅 빈 쪽방이 신립을 반겨주었다.
“도, 도망친 것 같습니다요.”
병졸 하나가 언도하듯 말했다.
신립은 생각했다. 자, 죄인은 도망쳤다. 어디로 간 것일까? 섬 안에 있을 가능성이 십중팔구지만 배를 타고 튀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신의는 과거 거제도에 유배되고도 기발하게 탈출한 자이니까.
확인을 위해서는 물가의 어촌을 다시 찾아야 했다. 그래서 사라진 배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만일 사라진 배가 없으면? 섬 안 어딘가에는 있을 테니 다시 산을 타듯 섬 전체를 이 잡듯 뒤져야 했다. 고생이 불 보듯 뻔했지만 차라리 이편이 나았다.
만일 사라진 배가 있으면…….
가보니 없던데요? 이 따위 멍청한 소리로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터였다.
“아! 아! 악! 으악! 신의 이 개셰끼야! 으아아아악!”
신립은 절규를 내질렀다.
죽어도 곱게는 안 죽어주는 신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