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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13화 (13/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13화

4. 이순신의 구호사업(2)

이순신은 개노답 조선에서의 유일한 빛이었고 소금이었다.

만일 조선에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했으리라는 데 내 전 재산하고 손모가지 하나를 건다.

당시의 조선에는 많은 영웅이 있었지만 선조와 원균이라는 희대의 악에 의해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순신이 없었다면, 미래의 사람들은 조선을 단지 ‘200년 존속했다가 일본에 의해 멸망한 한반도 국가’쯤으로 기억하겠지.

그러니 이건 국가적 손해라고!

“근래에 들어 도성의 거지 몇몇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사건이 있다. 그대는 이 일과 무관한가?!”

“뉘신지는 모르겠는데 이거 실수하는 거예요. 나중에 울고불고하셔도 못 봐드립니다.”

“어허! 그대는 지금 귀관을 능멸하는 것이냐! 바른 대로 고하지 않으면 내가 정말로 ‘실수’를 하게 만들어주겠다!”

“아이……, 참. 거지들은 다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나의 항변에 관리의 시선이 바뀌었다. 적의에서, 의문으로.

“무언가를 안다면 즉시 바른대로 고하라!”

“근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서 무슨 흉흉한 일이라도 벌어진 줄 아시나본데, 전혀 그런 일 없습니다. 단지 열심히 일하고만 있을 뿐이라고요!”

“허?”

“또 남의 무릎 안 찍겠다고 약조하시면 거지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좋다! 하지만 수상한 짓을 한다거나, 혹 본관을 기망한 것으로 드러났다간 엄히 죄를 물을 것이야!”

이 양반 텐션이 왜 이리 높아?

말끝마다 호통이었다.

다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니 텐션 높은 관리님께서 또 호통을 쳐댔다.

“앞장서라!”

“예, 예.”

나는 혹여 내가 잘못될까 벌벌 떠는 사람들에게 괜찮다 일러주었다.

내가 엄히 죄를 묻게 될 일은 없을 테니까.

곁에서는 이미 나를 거지 연쇄 살인범쯤으로 단정 지었을 관리의 눈이 따가웠지만, 곧 그가 느낄 뻘쭘함을 위안삼아 발을 옮겼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다.

나의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거지들의 거처가 있었다. 북촌의 한가운데였으므로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번듯한 저택이었다.

사실, 여기가 내 집보다 더 넓었다.

-쿵, 쿵.

대문을 두드리자 다급한 발소리가 나더니 건너편에서 물었다.

“뉘십니까요.”

“납니다. 귀생 아저씨.”

알고 보니 나름 사정이 있었던 아저씨.

내가 일감을 준 이래로 둘도 없는 광신도가 되어버렸다. 나로서는 그다지 많이 도와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동안 도움이 많이 고팠다는 뜻이겠지.

대문이 열리더니 건너편에 있던 귀생이 허리를 숙이며 환대했다.

“오셨습니까요, 공자님!”

공자님 소리에 방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족히 스무 명은 되는 인파였다.

다들 앞 다투어 공자님 운운하며 인사를 올리니, 옆에서 눈총 따갑게 보내던 관리의 기세가 푹 수그러졌다.

“자네들이 도성에서 사라졌다는 그 거지들인가?”

“거지라니요? 아.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닙니다요. 다들 공자님의 덕을 입어 여기서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을 한다?”

“베를 짜고 있습니다.”

“흠!”

관리는 침음과 함께 일렀다. 비켜라! 거지들이 길을 내어주자 관리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방마다 베 짜는 베틀이 놓여 있었다. 한 방에 몇 개씩.

그동안 거지들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분명해졌다. 사람의 간을 먹으면 나병(癩病)이 낫는다는 속설 따위에 희생된 것도, 정신이상자의 연쇄살인에 희생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거지들은 이 집에서 베를 짜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관리가 발을 돌려 물었다.

“그대들은 저자의 노비가 된 것인가?!”

“아닙니다요! 공자님께선 단지 소인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요. 비바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집과, 삼시세끼 따스한 밥까지도요!”

귀생이 환한 얼굴로 용의자 이순신을 공자님이라 극찬했다. 어지간한 고마움을 느껴서는 보이지 못할 태도.

주위에는 그런 자들이 스물도 넘게 있었다.

이쯤 되면 이들을 도와준 사람을 연쇄살인 용의자 취급한 것이 죄였다. 관리는 결국 침음을 흘리며 자신이 느끼는 무안함을 달랬다.

“으음!”

관리는 발을 돌리며 물었다.

“자네는 어째서 거지들을 도와주고 있나?”

호통의 연속이었던 이전보다는 훨씬 누그러진 어조였다. 아무리 뻣뻣한 사람이라지만 뻔뻔하지는 않은 그였다.

“누구나 도움이 절실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단지 거기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드는 비용이 만만찮을 텐데?”

“사람들이 짜는 베에서 숙식비와 군포, 빈민구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수익을 제하고 있습니다. 밑지는 건 없어요.”

“그럼 나머지는 거지들이 갖는 건가?”

“예. 그래서 ‘빈민구제’ 사업이라고 하는 겁니다.”

“……크흠.”

사람을 함부로 노비로 만든 것도 아니고, 도리어 거지들을 거두어서 살 곳을 마련해주고 일감도 주었단다.

이게 사실이라면 칭찬받을 일이지 벌건 대낮에 관리가 병사들을 데리고 쳐들어가 죄를 물을 일은 아니었다.

“흠, 흠. 미안하게 됐네. 거지들이 사라졌다는 말을 단지 흉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네.”

“세상이 각박하다보니 그런 생각부터 드는 것이 지당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부터 들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을 뿐입니다.”

“오……. 음, 음.”

관리는 더더욱 자신이 죄인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이런 사람을 그리 모질게 대했단 말인가?

만일 보는 눈이 없었더라면 자기 머리를 두들겼으리라. 오늘밤 고이 자기는 글렀다. 이불을 몇 번이고 찰 테니까.

“그럼, 이 일은 정식으로 윗선에 보고하겠네. 어쩌면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자네의 의행을 포상할지도 모르지.”

“누구에게 자랑하려고 해온 일은 아닙니다만…….”

“자네는 자랑하려 한 일이 아니라도 사람들이 보고 배워야지 않겠나. 본관은 한성부 판관을 지내고 있는 아계(鵝溪)일세.”

뜬금없는 소개에 의아하였으나, 아계가 말을 이었다.

“여의치 않게 좋은 일 하는 사람을 의심하였으니 폐를 끼쳤다 할 수 있겠지. 만일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찾아와 말해주게. 가능한 한 도와줄 터이니.”

“알겠습니다.”

물론 굳이 찾아갈 일이야 있겠느냐만…….

“그럼 가네.”

“살펴 가십시오.”

아계는 민망했는지 연신 헛기침하며 발을 재촉했다. 오래지 않아 그와 일행이 사라지자 귀생이 물었다.

“소인들 찾겠다고 온 사람들입니까?”

“예. 그렇다네요. 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들 굶어 죽어갈 때에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귀생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잘 됐으니 그만 아닙니까. 덕분에 괜히 고생했으니, 앞으로는 밖으로 나가서 얼굴도 비치면서 일하세요.”

“예에. 꼭 그러겠습니다요.”

대답은 좋았지만 영 신용이 안 갔다. 다들 각박한 시절을 겪어서인지, 고작 한 치의 베라도 더 짜려고 했으니까.

그러고도 정작 본인들은 돈을 쓰지 않았다. 이따금 필요한 것이 있다 싶어도, 굳이 찾아와 얼마간 가져가서 써도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몇 번이고 각자가 짠 베는 각자의 재산이라고 말해줬는데도 말이지. 운영비를 제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여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예의도 있고, 정말로 기회가 필요하던 사람들이었다. ‘노고를 통한 정당한 보상 취득’이라는 당연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저는 갑니다.”

“예, 공자님. 살펴 가십시오!”

“살펴 가십시오!”

“살펴 가십시오, 공자님!”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에서도 느껴지는 남정네, 그것도 연장자들의 과도한 애정…… 기분이 묘했다.

* * *

“자네 왔는가?!”

김성일이었다.

해도 떨어졌겠다, 이제 퇴근한 사람으로서는 무척이나 피곤하겠건만 김성일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예. 저 왔습니다, 스승님. 그런데 왜 호들갑이십니까?”

“자네에게는 호들갑으로 보일 수도 있겠군. 왜냐하면 순신이, 그대는 매번 나의 지평을 시험하면서도 항상 태연하니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평을 시험하는 건 또 뭐고, 태연하다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오늘 조정을 강타한 소식이 있었네. 고작 지학에 지나지 않은 젊은 청년이 도성의 걸인 수십 인을 구제하였다지 않겠나!”

아. 내 이야기로군.

아계(鵝溪)라는 사람에게는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했거늘. 어쩌면 입이 싼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김성일은 감탄을 이어나갔다.

“나는 듣자마자 자네 생각이 나더군. 그리고 실제로도 자네 이야기였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제 무슨 일을 또 꾸미고 있을지 모르겠네!”

“딱히 꾸미고 있는 건 없습니다만…….”

“자네 스스로는 자네가 특별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어쩌면 내가 더 감탄할만한 일을 몰래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하.”

김성일은 웃는 얼굴도 덧붙였다.

“자네가 나의 제자라서 정말 영광이야.”

“스승님께 영광이 될 정도인지는…….”

“아니야. 아직 결정 난 사안은 없지만, 전하께선 자네의 의행에 무척이나 기뻐하셨다네!”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겁니까?”

“어쩌면 자네는 대과를 보지 않고도 관원에 특채될 수 있다는 뜻이야. 최연소 관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일세!”

허.

당혹스러웠다.

선조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니. 사실 선조라는 인간이 인품적인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자는 아니잖은가.

게다가 그가 치세 내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신하들을 농락했으며, 이에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이순신 장군님도 있음을 알고 있어 더욱 부담스러웠다.

“흠? 별로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

“너무 어린 나이에 주목받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허어…….”

김성일이 탄식했다.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곤 말했다.

“내 나이라고 그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특히 자네 나이에는 패기가 있어야 해. 어째서 그리도 사리시는가? 정작 행동은 물불 가리지 않으면서.”

은근히 또 꼰대 끼 있는 발언을 하시는 스승님이셨다.

“공부나 합시다.”

“에이, 서두를 필요 없네. 어쩌면 대과를 보지 않고서도 관문에 들어설 수도 있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단 말인가?”

어울리지 않게 양아치 끼도 좀 있으시고…….

“기본이 탄탄해야 하는 법입니다. 설령 특채가 된다고 해도, 학문이 부족하면 관원 선배들이 사람대접 해주겠습니까?”

조선의 신고식이 혹독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먼지 먹은 벽을 손으로 닦아 이를 씻은 물을 마시게 한다던가, 추운 날 얼음장 같은 냇물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게 한다던가.

인터넷에서도 많이 돌았고 TV에서도 출연진들이 조선의 신고식을 직접 체험해보는 프로그램도 있어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신고식의 기원은 음서 따위로 쉽게 관원이 된 신입의 기를 죽이기 위함이다. 그러니 운이 나빠 이번 일로 특채된다면 신고식의 의의에 아주 걸맞은 꼴을 보게 될 터였다.

학문이 부족하다면 더더욱 말이지.

“크으……! 그래, 그래. 제자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내가 어찌 거역하겠나. 하지만 먼저 밥부터 들자고!”

해가 떨어져 막 퇴청한 김성일. 한창 배고플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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