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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10화 (10/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10화

3.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승님(1)

“어제 무척이나 기뻤네. 새로 알게 된 동생이랑 마음도 잘 맞아서 좋았고. 다음에 이런 자리 있으면 또 도움 청하게!”

정철은 나의 등을 두드리곤 마당을 가로질렀다. 끼익, 덜컹.

술 마시기 좋은 날은 비단 휴일 전날만이 아니다. 휴일도 술 마시기 좋은 날이다.

주신(酒神)에 비할 수 있는 정철이라면 이미 몇 개의 선약이 잡혀 있겠지. 아마 그의 혈관에는 피가 아니라 술이 흐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좌우지간 그의 도움으로 주연은 좋게 시작해서 좋게 끝났다. 그렇게 인물 좋은 사람이 어떻게 기축옥사의 주역이 됐는지 모르겠다.

“을룡아……, 콩나물국이라도 끓여 와라…….”

그리고 얼마나 되었을까.

“여기 콩나물국 대령했습니다.”

을룡이 상을 내려놓았다. 달그락.

코에 닿는 콩나물 냄새만 맡아도 속이 편해졌다. 싱겁게 간이 된 국을 다 들이켠 다음에는, 술기운이 다 달아난 뒤였고 말이다.

“휘유!”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지만 느긋하게 쉴 여유는 없었다.

오늘이 바로 고대하던 휴일!

스승인 김성일에게는 이미 연통이 가 있었다. 휴일 미시(未時, 오후 1시~3시)에 방문하겠다고 말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중천이었다. 이쯤이면 미시 바로 전인 오시(午時)였다. 바로 외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세숫물 좀 가져와줘. 소금도.”

“옛.”

을룡은 재빠르게 물 대접과 소금을 가져왔다.

나는 먼저 소금을 입에 털어 넣고 물로 헹궜다. 이제 초면인데 스승 얼굴에다 술 냄새를 내서야 쓰겠나.

다음은 세수였다. 물이 미지근해 아쉬웠지만 얼굴을 닦고 나니 찌뿌둥한 기운이 훌쩍 가셨다. 밤새 쌓인 눈곱을 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네.”

방으로 들어가 옷가지까지 갈아입으니 그제야 사람의 행색이 나왔다.

누가 보더라도 바로 전날 필름 끊길 정도로 과음한 주정뱅이로는 보이지 않을 거다. 약간 정신이 몽롱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밖으로 나오니 을룡이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나의 일정을 알고 있었고, 스스로의 역할도 잘 알고 있었다.

“출발하자!”

“옛!”

거리로 나오니 사람들이 즐비했다. 점심이라 그런지 소반을 인 노비들도 많았다. 놀러 간 상전들 밥 챙겨주려는 것이다.

원래 이 시대에서는 아침과 저녁만 먹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렇다고 점심에 배가 안 고픈 것은 아니거든.

그래서 농부들은 새참을 먹었고 양반들은 점심을 먹었다. 양반들이 먹는 점심(點心)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표현 그대로 간식 수준이지만 말이다.

을룡과 잡담하며 걷다보니 금세 김성일의 저택에 도착했다.

아니, 저택이라고 불러주기에는 꽤 민망한 구색이 있었다. 고작 서너 칸 될까 싶은 초가집이었으니까.

다 삭아빠져 탈색된 싸리 울타리를 보니 고향에서 본 검불이네 집이 생각났다. 녀석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스승님?”

두드릴 대문도 없어 그냥 부르니 방문이 끼익, 열렸다.

“자네가 이순신인가?”

순간 집을 잘못 찾았나 싶었다. 김성일은 생각보다 젊어보였다. 이제야 서른쯤 되었을까.

게다가 막 과거에 급제한 범생이치고는 쾌남형이었다. 분명 갑옷을 입고 허리에 칼을 차도 잘 어울리리라.

“멀뚱멀뚱 있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오게.”

김성일이 빙긋 웃었다.

썩 호감형인 사람이다.

아버지께서 날 위해 어렵게 모신 스승이라 물릴 수도 없어, 나와 안 맞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기우로 끝나 다행이었다.

좁은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방으로 들어서니 협소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고작 두 사람이 누워도 꽉 찰 정도의 좁은 방. 그런데 가구까지 있으니 김성일 홀로도 편히 자기는 힘들어보였다.

한바탕 눈을 굴린 나는 김성일을 향해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검소하시군요.”

“원해서 검소한 게 아닐세, 하하.”

의외의 대답이었다.

“이렇게 제자가 생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좋은 집을 구할 걸 그랬어. 괜히 누택(陋宅, 자신의 집을 낮춰 부르는 말)을 보여주려니 내가 다 민망하군.”

“아닙니다. 스승님의 청렴함을 느끼니 스승님을 한층 존경하게 되고, 호화로운 삶이 몸에 익어버린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나도 호화롭게 살고 싶네! 여유가 없어서 이렇게 살고 있을 뿐이지.”

“스승님께서는 솔직하시군요.”

“사람이 어찌 욕심 하나 없겠나. 당연한 말을 하는 건데 솔직할 것까지야.”

김성일은 가볍게 사양하고는 물었다.

“자네 부친께 전해듣기로는 벌써 사서를 다 익혀간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자신 있게 답하는 걸 보니, 시험해봐도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시작하겠네.”

김성일은 굳이 책을 가져오지도 않았다. 보지 않아도 사서삼경의 내용은 독파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막 급제한 사람다운 패기였다.

“공자께서 인(仁)에 대해 짧게 강하신 적이 있네. 어디에 나오는 구절인가?”

“논어 안연편 1장입니다. 안연이 공자께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는 ‘자신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간다는 것이 인(仁)이다.’라고 하셨지요.”

“자신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간다 함은 무슨 뜻인가.”

“사람은 살아가면서 예를 망각하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여 살아가는 동안 예에 충실한 것을 두고 ‘자신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공자께서는 예로 돌아가는 방법 또한 사자(四子)로 강하셨네. 말해보겠나?”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입니다.”

각기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지극히 간단한 원칙이지만 실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들이었다.

“시경(詩經)에서 군자의 도를 강한 부분이 중용(中庸)에 있지. 어느 부분이며, 군자의 도란 무엇인가?”

“중용 33장에서 말하기를, 군자의 도란 어두운 듯하면서 날로 빛나며, 담백하지만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고, 간략하지만 무늬가 있고 온순하지만 논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잘 알고 있군. 근래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모두 자극적인 논리에 빠져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일이 잦지. 성현께서 가르침을 설파하신 지 이천 년이 지났거늘 아직도 세상에는 덕이 많지 않아.”

400년 뒤에도 마찬가집니다, 스승님.

“자네 배움은 전혀 부족하지 않네. 오히려 내가 부담스러울 지경이야. 스승 노릇을 오래는 못할 것 같거든.”

“설마요.”

“나는 자네 나이에 논어도 다 떼지 못했는걸! 자네는 분명 다음 식년시가 오기도 전에 삼경까지 뗄 걸세. 그때 응시하는 걸로 하세.”

“소과에 말입니까?”

“대과를 말하는 걸세.”

대과라니…….

매 시험마다 수만 명의 선비들이 경쟁하는 그 시험에 말인가?

“제가 대과를 치를 만한 학문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대과를 치르기 전에 소과에 입격해야 되는 게 아닌가요?”

“많은 사람들이 대과에 앞서 소과를 시험보네만, 그렇다고 꼭 소과를 거쳐야 한다는 제약은 없네. 단지 소과를 통해 성균관에 입학하면 별시를 치를 수 있으니 많이들 소과를 치는 게지.”

“그렇군요.”

“자네는 동년배나 그 이상과 비교해도 학문이 부족하지 않네. 누군들 논어나 중용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겠나? 문제는 체득일세. 가르침이 몸에 배어야 물음에 빠르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 마치 자네처럼 말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막 대과에 급제한 사람의 말이었다.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알겠습니다.”

“물론 오만해져서는 아니 되네. 앞으로도 지금처럼 해왔듯 학문에 정진해야만 노고에 합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문과와 무과를 동시에 치를 수 있나요?”

“허허. 오만해지지 말라 했거늘, 문과도 부족해서 이제는 무과도 쳐야겠다?”

“아, 아닙니다. 문의 길도 좋지만, 뜻은 무의 길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나는 이순신이다.

어쩌면 동명이인일지도 모르겠지만 불확실한 것에 조선의 명운을 걸 수는 없잖은가. 지금은 그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교양 있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문이 아니라 무의 길에서 대성한 사람이었다. 만일 문관이 된다면 역사가 어떻게 될지 몰랐다.

“무의 길도 좋지. 하지만 자네가 단순히 무인으로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이뤄내고 싶다면 문관이 되어야 하네. 왜인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무인이 오를 수 있는 관품은 당상관에 겨우 걸터앉은 정삼품 절충정군이 끝일세. 그 이상은 오직 문관에게만 허락되어 있지. 전장에서도 무인을 이끄는 자 역시 결국에는 문관일세.”

김성일은 진지한 어조로 권했다.

“칼을 잡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휘두를지는 아무나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네. 무과는 일단은 대과부터 합격한 뒤에 생각해. 지금은 시선을 분산시킬 때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내가 수긍하자 김성일은 한결 풀린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해가 진 뒤에 찾아오게.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수학한다면 자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야.”

“퇴청 후에는 많이 피곤하실 터인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후학을 기르는 일 아닌가. 자네는 자질도 충분하니 내가 조금 고생해서 나라가 좋은 인재를 얻는다면 좋은 일이지. 앞으로 잘 부탁하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나는 물러나서 절을 올렸다.

“일어나게. 나에게 너무 부담 갖지도 말고. 어차피 오래는 못 갈 사제 사이 아닌가.”

“부모와 자식의 연이 아무리 짧다 해도 자식이 부모를 부정하거나 잊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였으니 저와 스승님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크으……!”

김성일은 감탄하고는 물었다.

“자네 정말 지학 맞나? 껍데기를 벗기면 안에서 나이 한참 먹은 아저씨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정답이었다.

김성일이란 사람이 썩 괜찮았던지라, 나는 잔을 기울이는 모션을 취했다.

“날도 좋고, 간만의 휴일인데 어디 가서 한 잔 하시겠습니까?”

“언제는 군사부일체라더니. 설마 자네, 집에서도 부친께 술자리를 권하는 편인가?”

김성일이 짓궂은 얼굴을 하며 물었다.

“제 아버지께서는 이런 거 못 받아주십니다. 그러니 스승님께 청하는 거지요.”

“하하. 그럼 내 받아줘야만 하겠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시기가 별로 좋지 않네. 국상은 끝났지만 아직 해도 안 넘어가지 않았나.”

“아쉽군요.”

“신하된 자이니 본분을 지킬 수밖에.”

고지식한 면은 있는 스승님이셨다.

“술자리는 일단 올해를 넘긴 뒤에 논해보세.”

“알겠습니다.”

“그래도 다과(茶果) 정도는 괜찮겠지? 어디, 스승 된 김에 제자네 집 구경할 겸 점심이나 한 끼 얻어먹어볼까?”

나는 금세 반색했다.

“예! 그리 하시지요. 저녁밥이 필요 없을 정도로 든든하게 대접해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럼 내 기대하겠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쪽에 있던 내가 먼저 사랑방을 나왔고, 뒤이어 김성일이 나왔다.

“을룡아! 스승님께서 내 누택에서 밥 한 끼 하시겠단다. 먼저 가서 식모들에게 준비하라 일러두거라.”

“옛!”

을룡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달려 나갔다.

김성일은 그 광경을 보더니 물었다.

“보아하니 제자네 하인 같은데, 하인치고는 옷 때깔이 좋군. 이번에 명나라에서 수입했다는 비단 아닌가?”

“맞습니다. 제가 직접 입혀주었지요.”

“호오……. 자네 생각보다 부자로군?”

“부자라서는 아니고, 다만 저를 도와주는 자인데 잘 대해줘야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그게 사람을 대하는 방법 아닙니까?”

김성일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집 노비들은 운이 좋군. 착한 주인을 두어서 말이야.”

“아, 제 집에 노비는 없습니다. 싹 다 풀어줬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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