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순신이죠? 6화
2. 북촌에서 유명한 이순신(1)
머리가 띵했다.
어젯밤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세상이 출렁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잤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전형적인 과음 후 필름 절단 현상이다.
옆을 바라보니 서른 초반의 형이 있었다.
내 어릴 때만 하더라도 삼십대는 아저씨였는데, 전역하고 나니 형이 되더라.
형이 말했다.
“오늘 선약이 있어서 말이야. 동생도 선약이 있다고 했고. 그래서 깨워두고 가네. 다음에 안 깨워줬다고 무어라 하지 말라고.”
“……으. 제가 실수한 거 없죠?”
“실수? 없네. 다들 동생을 정말 좋아하더라고.”
“진짜 없어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일이라던지…….”
“무슨 일을 걱정하는지 잘 알겠는데, 그럴 일 없네. 물론 인상적인 행동을 보이긴 했지. 자네가 모두의 앞에서 췄던 춤이 아직도 기억나는군. 어떻게 춘 건가? 이렇게? 이렇게?”
송강은 내가 보여주었다는 춤사위를 따라하고 있었다.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몸짓이었다.
“아, 젠장.”
“걱정할 필요가 없네. 다들 어린 친구가 재미있다고 좋아했다니까. 아이들 재롱부리는 거 본 적 있나?”
“……알겠습니다. 형님은 가보세요. 저도 일과 시작할 테니까.”
“어제 무척이나 기뻤네. 새로 알게 된 동생이랑 마음도 잘 맞아서 좋았고. 다음에 이런 자리 있으면 또 도움 청하게!”
“예, 예.”
형은 나의 등을 두드리고는 마당을 가로질렀다. 끼익, 덜컹. 그가 사라진 뒤 나는 마루에 그대로 널부러졌다.
“을룡아……, 콩나물국이라도 끓여 와라…….”
* * *
3일 전.
“예를 들자면 말이야, ‘3일 전’처럼 시간을 뒤로 가는 연출은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짓이야. 보는 사람이 헷갈리거든.”
“예에…….”
“그러니 소설이 고작 대여섯 편밖에 안 됐을 때부터 시간을 넘나드는 건 작가 역량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지.”
“그렇습니까요?”
을룡이 건성으로 답했다.
뭐, 상관없었다. 원래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려 아무 헛소리나 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우리는 종로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명으로는 운종가(雲從街)가 있는데, 마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이미 주위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종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특별히 운종가에 볼일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아무 사람에게나 물어볼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관리들의 근무일.
스승인 김성일을 찾아뵈기에는 적절한 날이 아니었다.
지금 찾아가도 반겨주는 건 빈집일 테고, 조금 쉬다가 일몰 후에 찾아가면 퇴근한 후의 방문이 되어버린다.
퇴근해서 밥 먹고 쉬는데 새 제자의 첫 방문이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찾아간 사람도 눈치가 있으면 가시방석일 테고 말이다.
그러니 사람을 찾아갈 일이 있으면 넉넉하게 휴일에 찾아가는 게 예의다.
정확히 3일 뒤가 순휴일(旬休日)이라고 매 10일마다 쉬는 관리들의 정기 휴일인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을 해둘 생각이었다.
바로 이삿날 떡 돌리기!
정말로 떡을 돌리려는 건 아니다. 나는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물었다.
“도성에서 가장 잘 노는 사람이 누굽니까?”
“예?”
40대쯤 되었을까. 특색 없는 평민의 복장을 한 사내의 얼굴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도성에서 가장 잘 노는 사람이 누구냐니. 초면인 사람에게 듣기에는 실로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묻는 사람이 상전이었다. 결 좋은 하늘색 비단 도포를 걸칠 수 있는 사람은 부유하거나, 양반이거나, 부유한 양반뿐이었으니까.
“가장 잘 노는 사람이라면 송강(松江)이라는 자가 유명합지요.”
“그는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
“북촌 안국방(安國坊)에서 살고 있습지요.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습니다만,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해 밤낮으로 즐긴다니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갈 길 바쁜데 방해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예? 아! 감사합니다요. 하하. 나리께서도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40대 아저씨는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다. 소위 안국방에 사는 송강이라는 자가 그리도 잘 논단다.
이따위 정보를 구한 이유? 요즘 세상에는 파티 플래너가 없다. 잘 노는 사람이 파티 플래너였으니까. 나는 이사한 김에 주위사람들을 불러 모아 질펀하게 놀 생각이었다.
“을룡아, 네가 할 일이 생겼다.”
“송강이라는 사람을 찾는 것이지요?”
“잘 아는구나. 네가 똑똑해서 좋단다. 하지만 아직은 일러! 모름지기 사람이란 잘 입고 다녀야지. 포목점부터 다녀오자꾸나.”
“쇠, 쇤네에게 옷을 해 입히시려구요? 안 그러셔도 됩니다요…….”
“을룡아. 나를 모시겠단 녀석이 노비랍시고 빌빌대서야 되겠어?”
나는 꽉 쥔 주먹을 들며 말했다.
“잘 입고, 잘 먹고, 잘 커서 뒤에 서면 분위기가 있어야지. 그게 나를 위한 일이야, 임마!”
“예, 옛!”
“주위에 포목점이 있나, 없나, 잘 찾아보거라.”
“옛!”
휘적휘적 걸어가니 줄줄이 늘어선 상점가에 진입했다. 여기가 바로 시전(市廛)인가.
역시 서울은 미래나 지금이나 서울이었다. 요즘 시대에는 더해서, 흙먼지가 뽀얗게 올라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반사적으로 손부채를 해댔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휴, 씨. 을룡아, 빨리 포목점을…….”
“저기 있습니다요!”
을룡이가 상점 어딘가를 가리켰다. 보아하니 확실히 포목점이었다.
좌판에는 자투리 천으로 만든 장식이 있었고, 안쪽에는 돌돌 말린 색색의 옷감들이 쌓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 주인이 앉아 있었다.
이제 50대 후반쯤 되었을까. 요즘 세상에서는 삶의 황혼이라 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래서인지 집주인은 가늘게 뜬 눈을 연신 떴다, 감았다 하고 있었다.
졸린 모양이다.
“계십니까!”
내가 다가가서 주인을 부르니 노인이 슬금슬금 일어나 다가왔다.
“찾는 게 있으십니까, 도련님.”
“옷을 해 입으려는데 요즘 유행하는 양식이 있습니까?”
“저번에 다녀온 명 사신단이 진녹색 비단을 들여와서,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옷 해서 입고 다닙지요. 마침 소인의 매장에도 몇 필 있고…….”
“한 벌, 아니 두 벌 해 입을 생각인데 옷감은 어느 정도 들어갑니까?”
“옷감 한 필에 남자는 두 벌, 여자는 한 벌 반이 나오지요.”
“그럼 명에서 들어왔다는 그 비단 한 필 주세요. 물건은 관광방(觀光坊) 서쪽에, 흰색 벽돌담이 있는 집에 보내시면 됩니다. 대금도 거기서 받아가시고요.”
“예. 곧 사람을 보내겠습니다요. 다음에 또 찾아주십시오, 도련님.”
주인은 꾸벅 인사를 올리고는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펼쳤다. 내 주소와 예약해둔 물건을 적어두는 모양이다.
“가자, 을룡아!”
볼일 다 본 내가 거침없이 발길을 돌리니 을룡이 쫓아와 물었다.
“저, 정말로 쇤네에게 그 귀한 비단으로 옷을 해 입힐 생각이십니까요?”
“내가 한 입으로 두 말 할 사람이냐, 을룡아.”
“쇤네야 공자님 말씀을 따른대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요. 천한 노비가 저들도 못 입는 비단옷을 걸친다면…….”
“을룡아.”
“예.”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말했지? 나를 모시겠단 녀석이 노비랍시고 빌빌대서는 안 된다고. 을룡이 넌 임마, 내가 독립할 때부터 노비가 아니었어!”
“예에?!”
“집에나 들어가즈아,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