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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5화 (5/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5화

1. 내가 왜 이순신이죠?(4)

도모지는 예상했어도 검불이가 아프냐는 물음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항상 딱딱하셨던 아버지니까.

그리고 사람이 평소 보기 힘든 모습을 보이는 것은, 큰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부디 좋은 쪽으로 큰일이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의원이 잘 대해줄 것 같습니다.”

“항상 시끄럽던 녀석이 조용하다니, 보통 병증이 아닌 모양이다. 내 따로 사람을 보낼 터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거라.”

“……약값을 지원해주시렵니까?”

“기왕 삯을 들였으면 목숨을 살려야 할 것 아니냐.”

“감사합니다.”

영 어색하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사서를 다 익혀간다고 들었다.”

좋아……, 점점 더 본론으로 들어가는군.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겸양 말거라.”

단호한 말씀이셨다. 이미 생각은 정해져 있다는 듯.

한동안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께서는,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묵직한 한숨이었다. 약한 모습.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일면이었다.

“너의 형들은 오랫동안 학문을 수행해왔지만 어떤 성취도 없었다. 논어를 배우면 대학을 잊었고 맹자를 익히면 논어를 잊었지.”

짧은 침묵.

“그동안 너의 형들을 많이도 야단쳤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가 그러하셨고, 나 역시 그러했듯 너의 형들도 내가 걸었던 길을 똑같이 걸을 모양이다.”

“아, 아닙니다. 아버지. 그런 말씀 마시지요.”

아버지는 검지를 입술에 대었다. 잠자코 들으라는 뜻이었다.

“순신아. 학문의 경지를 따지자면 너의 형들은 물론 나조차도 너만은 못할 것이다. 이런 자질은 미리 가꿔두어야 한다. 그것이 유능한 아들을 둔 아비의 역할이다.”

“…….”

“좋은 선생을 알아두었다. 학봉 김성일(金誠一) 선생이시다. 퇴계 이황 선생 문하에서 배우신 분이고, 올해 대과에 합격하셔 승문원 부정자에 제수됐다는구나.”

나는 잠자코 듣기만 할 뿐이었다.

“이미 너를 소개해두었다. 학봉 선생도 좋다고 하시는구나. ……북촌에 집 한 채 마련해두었다. 잘 해주겠느냐?”

“저는…….”

이순신.

문이 아닌 무의 길로 나아가야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께 드릴 말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족하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말을 이으셨다.

“해마다 생활비를 보낼까 싶었지만 부담주고 싶지 않았다.”

“부담이라니요. 아닙니다. 최대한 절약하며 공부하겠습니다.”

“공부는 마음이 반이다. 마음이 편해야만 공부도 편하게 할 수 있는 법이야.”

아버지께서는 목함을 서안 위에 올려놓았다. 달칵. 목함이 가볍게 울었다. 아버지께서 손을 뻗어 목함을 밀어냈다.

“이게 무엇인지요?”

“너의 재산이다.”

“아버지…….”

선뜻 받아들기 힘들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항상 독립을 열망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마음을 굳히셨다. 입을 꾹 다문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목함을 여전히 내민 채로 말이다.

결국은 받아드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재산이라…….

“마음 같아선 그 이상도 해주고 싶었지만, 덜떨어진 네 형들도 나의 자식이니 공평히 가를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직접 성취하여라.”

“알겠습니다.”

“저녁 문안은 받지 않겠다. 내일 아침 문안도. 너라면 무슨 뜻인지 알 거라 생각한다. 이만 물러가거라.”

나는 입술을 말았다.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으셨다. 항상 완고한 분이셨으니, 결정을 내리셨다면 변심은 하지 않으시겠지.

결국 나는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사랑방을 나섰다.

“후…….”

쪽마루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니, 여름의 하늘은 태평하게도 맑았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더니!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사랑방을 나와 버렸다.

방문 밖에서라도 감사를 표할까, 싶었지만 나중의 일로 미뤄두었다. 지금 아버지께서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실 테니까.

마당으로 나오니 을룡이 물었다.

“표정이 아니 좋으십니다요. 안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요?”

“차라리 매나 맞았으면 나았을 텐데, 결국 집에서 쫓겨났구나.”

“헉!”

을룡이 기겁하더니 새파랗게 돼서 물었다.

“그럼 쇤네도 쫓겨나는 겁니까요?!”

“아니야. 아버지께선 내가 도성에서 공부하기를 원하셔.”

곧 죽을 얼굴을 하던 을룡이 반색했다.

“그럼 공자님께선 상경하시는 겁니까요? 와…….”

“너도 갈래?”

“쇤네는 한참 전부터 공자님 수발을 맡아놓았습니다요!”

“그래. 도성 구경 한 번 하자꾸나.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올 테니 나귀 대령해둬. 바로 출발할 테니까.”

“석반은 아니 들고요?”

“석반을 들어도 새 집에서 들어야 돼.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어영부영하다간 미련 남아서 못 가.”

그것이 아버지께서 바란 일이었다. 그리고……,

“도착했다.”

“예?”

“우리가 살 집에 도착했다고.”

나는 옆을 가리켰다. 켜켜이 늘어진 저택들 가운데 새하얀 담장이 인상적인 기와집이었다.

돌 대신 벽돌과 석회로 쌓아올린 담장이라……. 이런 양식은 때가 잘 타서 관리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물론 내가 고생하는 건 아니지만.

“벌써요?”

“그래. 벌써 도착했다.”

나의 담백한 대답에 을룡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진부한 말을 늘어놓았다.

“몇 가지 절차가 빠진 것 같은걸요? 금천에서 도성까지 상경하는 과정이라던가, 성문 수비병에게 통행을 허락 받는다던지, 길을 잃고 헤맨다던지…….”

“을룡아, 그럼 우리가 하늘이라도 날아왔겠니?”

“그건 아니지만요.”

“원래 금천에서 도성까지는 지척이야. 오가는 사람도 워낙 많아서 수비병들은 일일이 검문 안 해. 게다가 집문서에 위치가 자세히 적혀 있어서 헤매지도 않았다고.”

“아.”

“도성 구경은 그만하고 집 구경이나 하자꾸나. 이리 오너라!”

저택을 향해 쩌렁쩌렁 외치니 문간이 끼익, 하고 열렸다. 한 30대쯤 되었을까 싶은 노복이 나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혹시 새 주인마님이십니까요?”

“그래. 내가 맞는 모양이다.”

“아! 안으로 듭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요.”

노복이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나는 나귀에서 펄쩍 뛰어내린 뒤, 층계 몇 개를 올라 저택에 입성했다.

“마음에 드십니까요?”

노복이 물었다.

나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고, 뒤따라 들어온 을룡이 대신 감탄해주었다.

“와!”

딱 내가 느끼는 감상 그대로로군.

작지만 깔끔한 사랑채, 옆에 딸린 작은 1.5층 정자.

별채도 하나 있었고 노비들이 묵을 행랑도 있었다.

뒤편으로 기와지붕이 보였는데 보나마나 안채였다. 반대편에 있는 나무판자 지붕은 창고겠지.

금천에서 머물던 아버지의 저택과는 비할 수도 없지만, 집주인이 고작 한 명이니 쓸데없니 넓은 것보단 콤팩트한 게 나았다.

이제 여기서 새 역사를 써내려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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