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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4화 (4/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4화

1. 내가 왜 이순신이죠?(3)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세월의 흔적이 전신에 가득했다. 눈은 탁했고 약재를 옮기는 손은 덜덜 떨렸다. 쉽게 신뢰를 주기는 힘든 모습이다.

그러나 눈앞의 노인이 문간을 넘으면 십중팔구는 그 집 환자가 고쳐졌다. 둘도 없는 명의라는 뜻이다.

“동리의 말썽꾸러기 하나가 조용해졌다는 말은 들었다.”

검불.

“짐작 가는 부분이 있지만, 직접 진맥을 해서 병증을 확인해야겠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먼저 나가있어라. 곧 나가마.”

“예.”

의원에게 묵례하고 방을 나오자 숨구멍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약재 냄새가 얼마나 진동하던지.

“후!”

묵은 숨을 토하고 청량한 공기를 들이켜니 한결 살 것 같았다.

곧 나간다던 의원은, 한참이 되어서야 나왔다. 안내는 마을 지리를 잘 아는 을룡이 맡았다. 검불이네 집은 한식경을 꼬박 걸은 뒤에야 나왔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였다. 싸리를 엮어 만든 담장은 거무죽죽하게 탈색된 지 오래였다.

이따금 검불이를 볼 때마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빈한한 모습이었다.

발소리가 들린 걸까.

방문이 열리더니 검불이네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기 무섭게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공자님…….”

“아니에요. 인사해주실 필요 없으세요. 검불이는 어디 있나요?”

“안에 있습니다, 공자님.”

의원에게 시선을 보내니, 의원은 말은 필요없다는 듯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리고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검불은 이불을 덮어쓴 채 쥐죽은 듯 조용했다. 항상 사고만 치고 다녔던 녀석이 얌전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의원은 이불 속으로 손을 넣었다. 진맥을 하는 건가? 한동안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던 의원이 이불에서 팔을 뺐다.

“나으리…….”

검불 어머니가 간절한 어조로 의원을 불렀다.

“몸에 상처가 있소?”

“예에.”

“보여주시오.”

이불이 들춰졌다. 허벅지 바깥쪽에 상처가 있었다. 의원의 말대로였다.

나름의 민간요법인지 상처는 짓이긴 풀로 덮여 있었다. 의원이 쇠젓가락 같은 기구로 마른 약초를 떼어내니, 갈라진 상처에서 진물이 흘러내렸다.

“미리 처치를 했더라면 나았을 터인데, 방치해두어서 병증이 심해졌소이다.”

“죄송합니다…….”

“약재를 처방해줄 터이니 하루에 한 번 달여 먹이고 정해진 용법을 지키시오. 포공영(蒲公英, 민들레의 약명)은 계속 붙여주되 자주 갈아주고.”

“감사합니다, 나으리.”

“증상에 변화가 있으면 찾아와서 말해주어야 하오. 좋아지건, 나빠지건.”

“명심하겠습니다.”

의원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발길을 돌렸다.

방문이 닫히자 검불 어머니가 재차 허리를 숙였다.

“공자님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도와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저도 이만 가봐야겠네요. 아버지께서 부르셔서요.”

“살펴가십시오, 공자님.”

나는 검불 어머니에게 묵례한 뒤 방을 나왔다. 그리고 쪽마루에 앉아 신발을 신으려니, 을룡이 다가와 대신 신을 신겨주었다.

“을룡아.”

“예?”

“오늘 아버지께서 이상하지 않으시더냐?”

“음, 쇤네는 잘 모르겠습니다요.”

신발이 다 신겨졌다. 을룡은 물러났고 나는 마당으로 나왔다.

이제 집으로 향해야겠군. 내키지는 않지만…….

“아버지께서 나를 찾으신 적이 여태 없었단 말이야.”

평소 아버지를 볼 일은 하루에 딱 두 번, 그것도 정해진 일과에 따라서였다.

아침에 안녕히 주무셨냐고 문안인사 드릴 때, 그리고 밤에 안녕히 주무시라고 문안인사 드릴 때.

그 이외에는 아버지를 뵐 일이 없었다. 혼날 때에도 밤 문안인사 때 혼났다.

그런데 해줄 말이 있다고?

“게다가 아버지께선 네가 주머니를 쥐고 있는 것도 똑똑히 보셨지.”

내가 살금살금 돌아왔다가, 무언가를 챙겨 살금살금 나갈 때는 단 한 가지의 경우뿐이었다.

아버지의 재산을 훔쳐 남을 도울 때. 그리고 아버지는 나의 의적질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꾸중 한 번 안 하고 넘어가주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으니까.

이번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나긴 나려나본데…….”

직감 상 좋은 일은 아니었다.

“별수 있습니까요?”

을룡이 물었다.

“음. 별수 있는 건 아니지.”

“그러니 찾아뵈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요.”

“맞아.”

“게다가 공자님은 막내가 아니십니까요. 귀하지 않은 자식은 없는데 하물며 막내이시니, 설마 큰일인들 있으려구요.”

“위안 고맙다, 을룡아. 만일 일이 잘못 되면 너를 탓할게.”

“예에.”

을룡이 건성으로 답하며 웃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을룡이에게 잘못 해준 적은 없거든.

어쨌거나, 한 차례 위안을 받았음에도 막상 문간을 넘으려니 속이 쓰렸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돌아갈지 누가 알겠는가!

도모지(塗貌紙)라는 형벌이 있다. 사람을 포박해 저항할 수 없게 한 뒤, 얼굴 위에다 젖은 종이를 켜켜이 덮는 것이다.

물을 한가득 먹은 한지가 얼굴에 덮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호흡이 힘들어진다. 한 장, 한 장 더해질수록 호흡은 더욱 더 힘들어진다.

만일 도모지를 행하는 사람이 작정을 했다면 당하는 사람은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도모지는 반가에서 도를 넘은 말썽꾸러기를 제거하는 수법이기도 했다.

“끙!”

“무슨 걱정을 그리도 하십니까요, 공자님.”

“나, 혹시라도 도모지 당하는 건 아니냐?”

“공자님께서 무슨 죄를 지었다고 도모지까지 당하겠습니까요. 겁은 그만 내시고 아버지께 인사 드리셔요.”

“후우!”

나는 크게 숨을 내쉬고 문간을 넘었다. 맞은편 사랑방의 방문이 이미 열려 있었다.

그곳에 아버지가 계셨다. 문지방을 마치 팔걸이처럼, 팔을 얹어놓은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계셨다.

꿀꺽.

“소자, 다녀왔습니다.”

“들어오거라.”

아버지께서는 이번에도 가타부타 말이 없으셨다. 단지 들어오라는 명령 한 마디만 내리신 채 방 안쪽으로 들어가셨을 뿐.

이제 상황은 비탈을 굴러가는 수레처럼 됐다. 브레이크도 없고, 후진도 없다.

나는 섬돌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뒤 사랑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방문을 조용히 닫고서 아버지 맞은편 방석에 앉았다.

“부르셨습니까, 아버지.”

“귀환이 생각보다 늦었구나.”

“송구합니다.”

“오늘은 누구를 도우려고 나셨느냐?”

역시 알고 계셨구나.

“검불이라는 녀석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어, 의원을 보내주었습니다.”

“흠.”

아버지께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시다, 슬쩍 물으셨다.

“검불이라는 녀석이 쾌차는 할 수 있다더냐?”

나는 조금 놀랐다.

항상 딱딱하셨던 아버지셨다. 본인 의향으로 남을 도운 적도 없었고, 나의 억지로 구색이나마 갖췄을 때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그런데 검불이가 아프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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