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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순신이죠-2화 (2/290)

내가 왜 이순신이죠? 2화

1. 내가 왜 이순신이죠?(1)

정말 아름다운 날이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내가 이순신이라니.”

자아성찰!

딱 열다섯 살 꼬맹이에게 어울리는 자문이었다.

갑자기 중2병이라도 도져서는 아니다. 겉으로는 파릇한 이순신이지만 안쪽은 쉰내 나는 아저씨였으니까!

단지 새삼스러운 고민이 들었을 뿐이다.

대행대왕이 승하하시고 얼마 안 되어 새 왕이 즉위했다. 세상이 다른 길을 가고 있지 않다면, 돌아가신 분은 명종이고 새 왕은 선조다.

선조!

그 ‘선조’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이 이순신이라는 점에 별 관심이 없었다. 유명인의 이름이긴 했지만 그동안 한반도에서 나고 살았던 이순신이 어디 한둘이겠나.

누구도 내 자신이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선조라니? 게다가 선조라면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지 않은가. 임진왜란 말이다.

‘선조 + 임진왜란 + 이순신’이라니. 합리적인 의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다. 혹시 내가……?

큰일이다.

나에게 충무공 이순신 같은 위인의 자질은 없다. 단지 전생의 기억을 갖고서 과거에서 다시 태어난 아저씨일 뿐이다.

미래인인 만큼 정보는 많이 알고 있었다. 전부 알맹이가 없어서 문제지.

대체역사 소설을 보다보면 주인공이 미래의 기술을 조선시대에서 실현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게 클리셰다.

대표적인 기술이 있다면 총, 엔진, 기계 같은 것이 있겠지. 나라고 그런 개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도해볼 만큼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핵미사일로 일본 열도를 가라앉힌다는 스펙터클한 전개란 내 인생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셈이다.

대학을 나온 만큼 전문적으로 아는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향 지원한 탓에 과가 좋지 않았다. 왜 쓸데없이 이름 긴 학과, 걸러야 할 단어가 들어간 학과들 있잖은가.

인지도가 목탁디자인학과만도 못한 학부에서 배운 것들은 대한민국에서도 쓸모없었고, 조선시대에서도 쓸모없었다.

인생이란.

4년 동안 잘 놀았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조선시대에서 한 일이라곤 착한 일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단히 착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대해줬다.

특히 노비들.

분명 사람임에도 재산 취급을 받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내가 살았던 대한민국에서는 용납되지 못할 일이었고, 자연스럽게 노비에 대한 연민이 들게 됐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노비들과 거리감을 두셨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다친 사람이 있으면 의원을 부르고, 다 헤진 옷을 입는 이에게는 새 옷을 주었다. 고작 반찬이라도, 노비들이 좋아할 것 같으면 일부러 남겨 양보했고 말이다.

덕분에 노비들 사이에서는 도련님이 아니라 공자님 소리까지 듣고 있었지만, 그 대가는 분명했다.

노비에게 잘 대해주었다는 소식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때마다 회초리로 맞았다. 어디 전주 이씨 왕가의 일원이 천것을 가까이 대하느냐고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나의 행동을 반항 이상으로는 보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분명한 의지가 있었다.

한 사람이 매 몇 번 맞아서 수십 사람이 조금이라도 안락할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이 오지랖 넓은 혜택은 집안의 땅을 일구는 소작농과 마을 사람들에게도 주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농민이 아니면 알지도 못하지만 조선에서는 가뭄에 대한 체감이 크다. 백성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뭄이 심할 때는 양곡이 매우 귀해진다. 지대를 내고 남은 양곡은 일가가 한 해를 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춘궁기에 이르러서는 야산 여기저기가 파헤쳐진다. 피죽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초근목피로라도 연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한 계절을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의 허기는 해소될지 몰라도 양분은 제한적인 탓이다.

마을마다 으레 굶어죽는 사람이 생겨나고…… 그 대부분은 노인과 아이다. 노동은 하지 못하면서 귀한 양곡은 계속해서 축내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영원히 노동력이 될 일이 없는 노인들의 처우가 매우 박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식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기꺼이 자신들의 운명을 감내했다.

이 모든 것들이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당연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애로운 분은 아니었지만 막내아들이 밤낮으로 청원해도 철벽을 칠 정도로 딱딱한 분도 아니었다.

소작농들은 싼 이자로 양곡을 빌릴 수 있었고 거리의 걸인들은 미음과 다를 바 없는 죽이나마 한 그릇 받을 수 있었다.

애매한 수준의 도움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마저도 감사해했다. 나에게.

“축복은 못 받아도 천벌은 안 받겠지, 싶었었는데.”

하필이면 선조 치세에, 임진왜란을 앞두고, 이순신이라니.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로 태어난 것이 누군가의 의도라면 꼭 물어보고 싶다.

내가 왜 이순신이죠?

언제나처럼,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주범이 있다면 심사 하나만큼은 크게 뒤틀린 녀석일 거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공자님!”

을룡이었다.

나에게는 위로 넷이나 있는 형들보다 훨씬 가까운 녀석이었다.

정확히 몇 살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려서부터 자주 어울렸으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열다섯 안팎이란 말이지.

하지만 근래에 들어 쑥쑥 자라는 키를 보면 예상보다 더 어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원체 성장이 빠른 녀석일 수도 있으니까.

“한창 분위기 타는 중인데, 뭐야?”

“저, 전쟁이 났습니다요!”

“전쟁?!”

“예! 삼재의 녀석들이 쳐들어왔는데 마을 아이들이 죄다 공자님만 찾고 있습니다요.”

임진왜란이라도 터진 줄 알았다, 이 녀석아.

삼재는 마을이 세 번째 고개 너머에 있다고 붙은 지명이다. 무속에서 말하는 삼재(三災)와 발음이 정확하게 같았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이름이 좋으면 부정 탄다나.

“왜 애들이 항상 나를 찾는지 모르겠네. 동리에 반가 꼬맹이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 공자님께서 인기가 좋으시니 그렇지요. 어른들께서도 좋아하시는데 아이들이라고 다르겠습니까요?”

“하. 전쟁놀이라!”

전쟁놀이라는 이름 그대로, 전쟁을 흉내 내어 노는 일이다.

룰은 간단하다.

반가의 아이들은 장군을 맡고, 민가의 아이들은 쫄따구를 맡는다.

귀한 몸이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싸우는 건 쫄따구들의 몫이다.

한쪽 편의 쫄따구들이 모두 항복하거나 달아나면 홀로 남은 장군은 적에게 포위되어 패배하게 된다.

무기로는 아이들 놀이에는 전혀 안전하지 않은 목검, 목창, 자갈이 동원된다.

난장판 속에서 반가 자제라고 마냥 멀쩡하리란 보장은 없다.

당연히 귀한 몸이 다치는 것도 왕왕 있는 일이지만 막상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관원이 되어 상경할 게 아니라면 한평생 눈에 담고 살 녀석들이니. 어릴 때에나마 조금 어울려두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전쟁놀이 따위 예전 같았으면 상큼하게 무시했을 거다. 예나 지금이나 몸 쓰는 체질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조기교육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전쟁놀이!

이순신의 유년시절에 어울리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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